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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도, 예수님도 고함치셨다 / Hymers

LNCK 2014. 5. 26. 13:11

 

◈베드로도, 예수님도 고함치셨다     렘23:15~22, 행2:14    05.11.27.스크랩

 

THE LOST ART OF EVANGELISTIC PREACHING

by Dr. Robert Hymers

 

◑1. 복음적인 설교는, 열정적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저는 '큰 목소리, 시끄러운 소리' 라는 단어를 사과하지 않고 사용하려고 합니다.

모든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는.. 큰 목소리입니다.

 

'무조건 볼륨이 높은 고함소리'란 뜻은 아니고,

자기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큰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는, 잠들어 있고,

교회 안에서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깨우기에 충분한 시끄러운 소리입니다.

 

적어도 구원받지 못하고 회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기에 충분한 큰 소리입니다.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적어도 괴롭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사도행전 2:14절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14

 

그것이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그것은 큰 목소리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목소리를 높여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귀담아 잘 들으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한 것은,

함께 모여 있는 수많은 군중들이 들을 수 있게 하였으며         *마이크가 없던 시절이라 하더라도 

그의 성령의 뜨거움과, 마음의 강한 열정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복음적인 예언자 이사야는 말하기를,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사40:9

 

다시 말하기를,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사58:1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는, 그가 한번들은 어떤 설교에 대해, 이런 비평을 하였습니다,

 

그의 설교에 한 가지 빠진 것은 ‘불, 열정’이었다.

그의 모든 자세는 사심이 없지만, 학구적이었다.

그것은 형식적이었고, 열정이 없었다...

 

부르심을 받은 주의 종은, 설교가 하고 싶어져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설교를 하려고 ‘뜨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고 싶은 열정이 없고, 맹숭맹숭 하고

설교는 그저,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따라서 어차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기가  ‘거짓 선지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과거에 웅변적으로 설교를 토한, 위대한 설교의 전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요?

왜 현대 설교자들은, 과거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했던 것처럼 하지 않을까요?

 

▲"베드로는...그의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14

 

베드로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 것은,

자기 속에 뭔가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꼭 전달해 주어야만 하는, 귀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설교를 듣든지.. 아니면 말든지..’의 자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만약 내가

‘여러분, 설교를 들으세요. 아니면 마시고요’ 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면,

나는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복음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시대에 "열정적 설교"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외치다," 또는 "내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열정적 설교’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진정한 복음적 설교가 오늘날 사실상 죽어버린 이유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현대 신학교에서, 설교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는 세례요한으로부터 들음으로써 설교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확신하기를, 세례 요한은 계속적으로 열정을 토하며 설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그리스도로부터 설교를 배웠습니다.

제가 확신하기는, 그리스도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약하고 힘이 없는 설교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매우 강렬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요8:59

 

얼마나 설교가 강렬했으면, 사람들이 돌을 들어서 치려고 했을까요?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요10:31

 

우리는 요한복음 7:28절과 7:37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설교의 분명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요7:28

 

다시,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7

 

그 두 구절에서 "외치다"는 헬라어로 ‘크라죠’로서 *croak, cry out

그 뜻은 "크게 외치다. 처절하게, 심각하게 말을 토하다, 보복의 기도"입니다. (#2896).

그러니까 <그 어투가, 아주 심각하고 무겁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설교하실 때, 큰 소리를 지르셨는데, 요7:28

예수님이 서서 외치셨는데, 요7:37

그 어투는, 매우 무겁고 엄중했습니다. 생기발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설교에서 큰 열정/ 무거움 / 고성을 지르시다의 요소들이 있었던 것은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설교는,

청중들의 마음을 아주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하였으며,

그것은 또한 아주 성경적인 것입니다. 

 

당신의 최근 설교에 소리 지르고, 외치고, 신음하는 것이 있었습니까?

거기에 어떤 큰 열정이 있었습니까?

만약에 없었다면, 그것은 복음적인 설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설교 방법도 아닙니다.

 

▲나는 근래에 ‘스펄전이 한번도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증명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의 설교가 녹음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사진이 나오기 전에, 그의 설교하는 모습을 스케치로 그렸습니다.

(스펄전 전기 제2권의 306과 307쪽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만약 여러분이 그 그림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당장에 내뿜고 있고 고함치고 있는, 남자의 진지한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그림에서, 그의 손이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들려있는,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그림에서, 그는 소리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에는, 스펄전이 설교를 마친 후에 의자에 앉아서

손수건으로 그의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펄전이 설교 시간에, 소리치지 않았다고요?

 

물론 그가, 자기 인간적 혈기로 고함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의 열정에서 오는 고함침은,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후에, 기진맥진해서, 땀을 닦았다니까요.

 

▲그리고 분명하게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2장에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2:14

그는 말하기를 "이 말을 들으라" 2:22

 

그것은 큰 소리로 외쳤으며, 무뚝뚝한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적인 설교였습니다.

그것이 만약에 청중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면, (무례한) 큰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뚝뚝한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지적하기를

진정한 설교는 여러분에게 단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설교는 사람들에게 무엇(반응, 회개, 돌이킴, 경배)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성경시대에 위대한 설교자가 말했을 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설교를 들었을 때, 무엇인가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냈고, 그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믿고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설교입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베드로가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강단에도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이 들어야하는 것입니다.

 

 

◑2. 복음적인 설교는, 청중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렘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거짓선지자들의 결국은, 독한 쑥과, 독한 물을 마시웁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그 거짓선지자들의 거짓된 영향력은, 예루살렘의 선지자로부터 나와서, 급속히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의 사악이, 순식간에 온 땅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쉽게 따라 배우니까요.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설교로 대치 가능)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거짓선지자들은, 설교를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받아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그냥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달합니다.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거짓선지자들은, 항상 ‘평안하리라’를 전파합니다.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한 면만 강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거짓선지자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일면 그 설교가 맞기 때문입니다.

 

 

18.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참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그런 일에, 남달리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설교가,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듣는 사람들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들은 후에, 주님의 임재가 임하면서,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22.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거짓선지자들은,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참선지자는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참 설교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당신을 심판할 것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라고

사랑의 마음에서, 지적해 줍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다시 들어야 할 종류의 설교입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 행2:36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 죽었습니다."

 

복음적인 설교는, 당신의 죄를 탄핵합니다.

당신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 안 한)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악한 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악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악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본질적인 악함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당신 자신의 악한 마음으로부터, 부인할 수 없는

당신의 속성과 엉키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항 속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불신앙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항하는 마음은,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외치는 소리를, 오순절에 사람들이 들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사람들이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설교>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설교의 요소에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아주 완벽한 실례가 있습니다.

 

.......................... 더 읽으실 분 .............................

 

◑3. 복음적인 설교는 복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복음적인 설교의 초점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사람이 죄에 의하여 타락하였습니다.

사람은 이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죄는 어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지불하여야만 합니다.

 

그 오직 한 사람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만이 죄가 없으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4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죄를 위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하여 죽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를 죽게 하는 행복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언제 변하였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를 죽였습니다. 당신의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고전15:3

 

그러나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2:24

 

God sent Jesus to die for your sins. God then raised Him from the dead. That is the main point of an evangelistic sermon.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3-4

 

그리스도의 죽음은 당신의 죄 값을 지불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위대한 복음적 신조입니다.

 

한 사람,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바로 죄인인 당신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당신 대신 그 분께 떨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죽음으로부터 그를 육체적으로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으로 복음적인 설교를 통하여, 당신들은 아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6

 

자 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행2:37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베드로가 말하기를, "회개하라. 그리스도에게 나오시오.

당신 자신 대신에 그를 의지하십시오. 당신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헬라어의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이아인데 그 뜻은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 바꾸는 것은 믿지 않는 것으로부터 믿음으로 바꾸는 것이며...

구원의 믿음의 뜻은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은 단지 2단계나 7단계가 아닙니다.

이 단계는 죄를 사랑하는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행2:37

그것이 복음적 설교,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산하는 그 질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이 아침에 그것이 여러분의 질문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을 향한 나의 대답은 베드로의 대답과 같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바꾸십시오.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사고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분을 믿으십시오. 그 분께로 나오세요.

그것이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 꼭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적 설교의 목적은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분께로 오세요. 그 분을 의지하세요.

그는 당신이 그렇게 하는 순간에 당신을 구원할 것입니다.

 

저는 설교가 피니는 설교의 주 목표를 손을 드십시오.

또는 앞으로 나오세요의 행동으로 복음적 설교에 해를 끼쳤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복음적 설교의 목표는 아닙니다.

 

진정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 분에게 나오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그리스도를 거절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이 아침에 중대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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