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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와 세상 권세 1

LNCK 2014. 5. 27. 11:42

◈성도와 세상 권세 1              롬13:1-7                           로마서강해(73강) 정낙원 목사 

 

 

◑서론 / 성도와 죄의 관계.. 그 원리

 

▲성도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는 비록 세상이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하늘나라 가치관으로 사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세상에는 세상 가치관이 있듯이 하늘나라도 하늘나라 가치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서 하늘나라 가치관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은, 곧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사는 삶에 본이기도 합니다.

이 본이 계속하여 우리를 고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흙에서 낳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나셨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우리는 죄의 몸이고, 예수님은 죄가 없는 몸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을 살아간 그것이 곧 정답이 되어서, 우리를 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삶이 정답이 되어서, 우리의 삶이 틀렸음을 드러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더러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살지 말라는 것도 아니에요.

 

이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해요.

성경의 요구는, 신자더러 예수님처럼 살라고 해요.

하지만 예수님처럼 살라고 하는 그 명령의 진의(眞意)는 다른데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고서는 우리가 틀렸음을 말해주고

이렇게 틀린 자가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은혜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흔히들 착각을 하는데!

신앙생활을 죄인이 개과천선을 하여서

더 이상 죄를 안 짓고 천사처럼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이건 천사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지만... 진의는 아니에요.

 

신앙의 본질은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가 그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 죄 문제를

예수를 보내서 해결해 주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애당초 창세 전부터, 그게 하나님의 작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사함 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고!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은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원함이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 아래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쉬운 말로 우리가 죄 아래 태어난 것도 모두가

창세전 언약 성취를 위한 수순(手順)인 것입니다. 주1)

 

▲그래서 제가 늘 그러는 겁니다.

죄인은 정답을 알려 주어도 정답대로 살 수가 없는 자라고!

 

우린 성경이라는 정답을 가지고 있어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정답대로 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이라야만 지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죄가 없는 자라야, 지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 어떤 인간이 죄 없는 인간이 있나요?

아무도 없어요.

 

우린 모두가 죄 아래서 태어난 타고난 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낳아준 조상이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정氏입니다.

제가 정씨가 된 것은 제 원함으로 된 것이 아니에요.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정씨이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정(鄭)씨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인이 된 것도, 우리를 낳아준 조상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난 인간은, 그 누구라도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즉 죄 안 짓고 살 수가 없단 말입니다.

 

죄인이 사는 것 자체가 죄에요.

이게 이 세상 구조에요.

우린 이 구조를 벗어 날 수가 없어요.

 

벗어나려면, 이 세상 바깥에서 누군가가 오셔서 건져주셔야 해요.

구원이란.. 죄의 권세 바깥에서 누군가가 건져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원래 죄 아래 가두어진 자들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죄로부터 건져 주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 안 짓고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죄 아래서 난 몸뚱이를 가지고 사는 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신앙의 포커스를 “죄 짓지 마세요” 라는 데 맞추면 안 되어요.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죄인이 “죄 안지을께요” 라고 하는 것은 교만이고 참람이에요.

이건 자기 주제를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이건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나 앞으로 엄마 말 잘 들을게요!’ 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어린아이는, 엄마 말을 잘 들을 수가 없어요.

 

마음이야 잘 듣고 싶지요.

그러나 어린아이의 몸뚱이가, 엄마 말을 거역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요.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엄마 말을 잘 들으라고 해요.

 

결국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 말 잘 들으라”는 그 말이 법이 되어서

계속하여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 불효자라는 것을 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아이는 자라가면서, 난 참으로 부모님 말을 안 듣는 불효자라는 것을 알고!

‘이런 죄인이 부모님의 은혜로 살았구나!’를 알게 되고 감사케 되는 것입니다.

 

효도가 뭔가요?

부모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럼 신앙이 뭔가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의 포카스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죄가 고발당하고

그러함에도 정죄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임을 알고 감사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을 살면서 철저하게

자기 안에 죄가 낱낱이 고발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MRI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행동이 죄라고 고발을 해 주어요.

성령 충만은,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반대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고

이런 악당이 주의 은혜로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 짓고 막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만약에 죄 짓고 막살아도 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 속에는,

성령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성령은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죄를 지으라고 하지 않아요.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그것이, 계속해서 우리를 죄인의 자리로 끌고 가요.

왜냐하면 우리 몸뚱이는 죄 안 짓고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신자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와 싸우는 모습으로 살아가되, 그 죄를 이길 수 없음을 아는 쪽으로 나아가겠지요.

 

이러한 같은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이해해보세요.

그럼 왜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에 굴복하라고 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본론 / 성도와 세상 권세와의 관계

 

본문 롬13:1-7을 보면, 각 사람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

이는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합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낫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악한 권세이든 선한 권세이든 다 하나님으로부터 났어요.

 

구약 이스라엘을 보면 선한 왕도 있고 악한 왕도 있습니다.

그 왕들을 모두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악인도 악한 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일으켰고

선인도 선한 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일으켰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이 땅에 오고 가는 모든 인간들은,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왔다가 갑니다.

태어남이 우리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어요.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이 필요에 의하여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마치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들처럼, 자기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때와 기한에 따른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반응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고!

복음을 듣지만, 반응 못 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귀를 열어 혹자는 깨닫게 하시고, 혹자는 못 깨닫게 하십니다.

한 사람의 일어서고 넘어짐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서 결정이 됩니다.

 

성도는 이 사실을 알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자기들 힘으로 권세에 도전하여, 자기들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곧 스스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행동이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는 자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하는 것이지,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자가 아니에요.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심을 믿어야 해요.

 

성도는, 때리면 맞고 욕을 하면 욕을 먹는 자들이지, 같이 싸우는 자가 아니에요.

원수 갚음을 하나님께 맡겨야지, 내가 원수를 갚고자 하면 안 된단 말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사울을 죽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어요.

사울은 다윗을 그렇게 죽이고자 하였음에도,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서 도망을 가고,

또한 도망가는 길에 별 거지같은 자가 쫓아오면서 조롱 하고 욕을 해도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하신 일이라고 믿고 수욕을 그대로 당하였어요.

 

예수님도 그렇게 당하셨어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에요.

모두가 세상 권세에 굴복했어요.

 

▲그런데 이단들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들 힘으로 실력행사를 해요.

자기들이 원수를 갚고 심판을 하고자 한단 말입니다.

이게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에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자기들의 옳음을 자기가 증명하고자 해요.

그러나 옳고 그름은 우리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옳음은, 하나님이 증명해 주세요.

 

예수님을 보세요.

유대인들이 예수를 틀렸다고 죽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죽인 그 예수를, 그들 앞에 보란 듯이 부활케 하여서

예수가 옳았다는 것을 증거해 주셨잖아요.

 

예수님은 아버지가 자기의 억울함과 옳음을 증명해 줄 것이란 것을 믿었기 때문에

순순히 십자가에 죽어준 것입니다.

이게 신앙이에요.

 

이단들의 특징이 뭡니까?

자기들 힘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하나님께서 일으킨 것으로 보지 않으니까

돈의 힘으로, 또는 사람의 숫자를 힘으로 하여서

자기들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불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증거에요.

 

사람의 수를 힘으로 삼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잘못해서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이 흠 없는 자가 죽는 것이기 때문에, 힘없이 잡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임 당함으로써, 아버지 뜻을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희생을 통해서

세상의 악함과 틀렸음을 고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운명에 동참이 되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왜 세상의 권세에 굴복하라고 합니까?

이는 세상의 권세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요한계시록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세력들에게 권세를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는 성도들이 그들에게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왜 거짓 종들에게 권세를 줍니까?

이는 그 권세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라고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들이 불을 토하면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예수님처럼 힘없이 무기력하게 죽임 당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면 우리 힘으로 실력 행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실력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천국을 만들기 위하여 존재하는 자가 아니에요.

도리어 세상의 악함을 고발하는 미끼로 존재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올바로 예수를 믿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고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질서를 무시하고, 어지럽히고 무관심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을 뜯어 고치고자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 아니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하지만요.)

본질과 비 본질을 혼동하지 마세요.

 

 

◑주님이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세상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어요.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립니다.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생명이란? 하나님이 살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만물이 창조가 되었습니다.

이는 만물이 곧 하나님의 명령에 붙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라는 명령이 있으니까.. 살아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나지 아니함이 없다고 합니다.

옛말에, 임금은 하늘에서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도 하고 페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구약 이스라엘에서, 왕이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 존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왕과 상대 하였습니다.

 

왕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으면, 백성들이 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반대로 왕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되면, 모든 백성들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장차 오실 진정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성’을

이야기해주고자 하신 표상학적인 그림들입니다.

 

▲구약 시대에, 장차 오실 왕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하늘에 별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것을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별을 따라 온 동방 박사들이, 유대 왕에게 가서

방금 유대인의 진정한 왕이 났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낸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 하나님은, 예수님하고만 상대를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자

세상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이양을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알려 줍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변화 산에서도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지목한 그 왕이란 말입니다.

예수가 만왕의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예표적인 왕들의 실체이신

진짜 왕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으로서 지금도 만유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만유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다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제일 먼저

예수님의 주 되시는 사건들을, 만물을 가지고 알리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주 되심이란, 주인이란 말이고 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한 것은, 예수님이 이들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새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나귀를 타고 갑니다.

그 나귀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오라고 할 때 나귀 임자가 뭐라고 하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 나귀의 주인이 곧 주님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전에 바칠 세금을 물고기 입에서 가져 오라고 합니다.

누가 들으면 황당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물고기 입을 열고 보니, 놀랍게도 그 속에 돈이 들어 있는 겁니다.

결국 물고기도 주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들에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입히시고 먹이신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해 봅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인입니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모두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악한 자는 악한 일을 위하여 다스리고, 선한 자는 선한 일을 위하여 다스리십니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일어난 제국들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나라들을 일으키겠다는 뜻입니다. 단2:29-45.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큰 신상의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 꿈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나아가서, 왕이 꾼 꿈은 장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알려 줍니다.

앞으로 세상에 일어날 제국들을, 금속성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금 나라가 일어나고,

그 후에 은 나라가 일어나고,

그 후에 놋 나라가 일어나고,

그 후에 철의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큰 틀에서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나라는, 이 네 나라에 속한 것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금속성으로 말을 할 때는

갈수록 단단해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세상이 악해진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이 짐승처럼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건 마치 노아 시대에 죄악이 관영하였듯이

세상의 종말이 짐승의 세계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행과 인간성을 보세요.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성은 더욱 더 말살 되어 갑니다.

이게 세상 역사가 보여준 교훈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7장에서는 세상에 일어날 나라들을

네 짐승으로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단7:1-18.

 

사자, 곰, 표범, 무섭고 놀라운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장차 역사 속에서 일어날 세상 나라들을

“짐승”으로 알려 줍니다. 모두 다 야수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역사가 흐를수록

그 시대 사람들은, 인간도 아니고, 야수요, 괴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악함을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희망을 걸거나, 낙을 갖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세상은, 장망성(장차 망할 도시)요.

 

그래서 이 세상의 죄악됨을 볼수록,

이 세상에서 피하여, 자기 초점과 관심을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세상 권세에 복종하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 시스템을 악하게 허용하시는 주권과,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악한 세상 시스템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이 험악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결국은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꼭 미래 천국으로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천국을 포함합니다.

이 현실 세상은, ‘장망성’과 ‘현재 천국’이 함께 뒤섞인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말씀하는 ‘새 예루살렘’도

저 낙원, 파라다이스, 푸른 풀밭이 아니라,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 푸른 초원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많다는 도시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더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

 

주1)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멸망당할 세상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창세기 15장의 아브람 언약을 보세요.

 

창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

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통고입니다.

 

앞으로 이렇게 간섭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시나리오 따라서 아브람의 후손들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언약의 후손들이 이방에 객이 되었다가 사대 만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 언약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에서 끄집어내기 위해서 이방의 종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서 먼저 버려짐이 있는 겁니다.

 

이방에서 돌아 올 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 뿌림을 뒤집어쓰고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애굽에서 돌아 온 자들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살아나는 은혜를 입고 오게 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돌아온 자들은 그 은혜를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 속에 담겨놓은 비밀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브람의 언약을 위하여 생겨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 속에 담겨진 그 수순들을, 밟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그러므로 만물에 속한 우리들은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절실하게 깨달아가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죄를 안 짓고 살고자 하는 그 원함은 있으나

그 원함대로 살 수 없는 육신의 한계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용서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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