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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기찻길이 깔려 있습니다

LNCK 2014. 7. 27. 19:57

 

 

◈기찻길이 깔려 있습니다           롬9:8-13               2007.09.16설교스크랩, 출처

 

                                                                        *원 제목 : 아! 한 발 늦었다

 

 

 

롬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성균관대학교에서 찍은 시스템 경영공학부에 계시는 신완선 교수님이 쓰신

 

<굿 타이밍>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선택의 과정이나 선택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의사(의견)를 결정하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요지의 책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경영학계에서는 유명해진 하나의 법칙을 말합니다.

 

1:10:100이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이 무엇인가면, 미국의 “말콤볼드리지 상”이라고 하는,

 

품질과 상품의 관리 실적이 좋은 기업에게 국가가 상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상을 첫 번째로 받은 회사가 여러분이 다 아시는 Fedex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하면, 예일대학의 경제학부에 다니고 있는

 

프레드 스미스라고 하는 학생이 리포트를 하나 냅니다.

 

 

 

그 내용이 뭔가 하면, 자전거 바퀴살을 보고 물류를 운송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조직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전거 바퀴살이 가운데 중심축으로 모아져 있지요.

 

그러면 운송해야 할 모든 물건을 중앙 집결지를 정하고

 

그 하나에 다 모아서, 자전거 바퀴살처럼 분산을 시킨다는 겁니다.

 

 

 

이 리포트를 보고 교수가 30년 전에 단선적인,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물건을 보낸다고 하면,

 

최단거리로 빨리 이송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던 물류운송방법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물건을 보내는데,

 

아니 달라스에 있는 중앙 집결지까지 물건을 보냈다가 갈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점수를 C를 줬어요. D를 주려다가

 

자전거 바퀴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 그래도 기특해서 C를 줬습니다.

 

 

 

그 자전거 바퀴살 모양의 배송조직을 고수해서 만든 것이 이 ‘페덱스’입니다.

 

 

 

그래서 73년도에 시작할 때에, 고물 비행기 조그만 것을 6대를 구해서,

 

16개의 도시를 연결했는데, 운송한 물건이 186 보따리를 날랐어요.

 

 

 

그런데 요즘은 214개국의 365개의 공항을 연결하면서 610대의 비행기로,

 

매년 115억 불의 매출을 올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택배 회사로 둔갑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만들어낸 법칙이 1:10:100이에요.

 

 

 

1:10:100이라는 것은 처음에 문제가 발견됐을 때에,

 

빨리 수정하면 1이라는 비용을 들여서 고칠 수 있는데,

 

윗사람한테 문책을 받을 까봐 넘어가서 제품을 만들면,

 

10의 비용을 들여서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10의 비용을 들여서 고쳤을 때, 문제가 발견되면 빨리 수정을 하면 10밖에는 안 들어가는데,

 

또 그걸 고객에게 돌려버렸어요. 그러면 고객에게 돌아가서

 

물건의 하자가 발견되면, 그 때 원상으로 돌리려면 비용이 100이 든다는 겁니다.

 

 

 

타이밍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잘못을 찾아내고 잘못을 인정해서 수정 보완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지 않으면 점점 더 비용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시기에서 적절한 방향을 정하면, 비용이 안 들고 쭉쭉 빠져 나갈 것인데,

 

결혼한 다음에 잘못 됐구나 생각하면, 10의 비용이 들어야 인생이 제 궤도에 오르고,

 

50이 넘어서 뭔가 잘못 됐구나 싶으면.. 그 때는 그만 둬야지요.

 

 

 

100을 들여서 뭘 바꾸고 말고 할 시간이나 있겠습니까?

 

그래도 바꾸어야 된다면 바꿔야 되겠지요. 그렇게 인생이 진행 된다는 것이에요.

 

 

 

이 타이밍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해석하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인생에 대한 결정 타이밍이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태어났는데 야곱과 에서를 하나님이 가르십니다.

 

야곱은 선택한 아들이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은 아들로 갈라놓으십니다.

 

 

 

그런데 야곱이 인생을 130년을 산 뒤에,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

 

“험악한 인생이었다.”라고 자기의 인생을 고백해 버립니다.

 

 

 

‘선택받은 백성’인데 왜 험악할까요?

 

 

 

본문 13절에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고 합니다.

 

 

 

야곱을 사랑하셨는데, 왜 그 인생이 험악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한 마디로 인생에 행복함이 없이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을, ‘험악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했습니다.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왜 험악한 인생을 130년이나 살았을까요?

 

 

 

하나님의 선택, 예정에 대해.. 아무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 뜻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레일(철길)을 달렸으면.. 쉬었을 터인데,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서 달리려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야곱이 예정을 안중에 두지 않고 복을 향해 좇아갑니다.

 

 

 

인생의 복을 자기가 쟁취하기로 결정하고,

 

주위 사람들을 속이면서까지, 복을 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게 선택 받은 사명자로서의 의식이 없었고

 

험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야곱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복은 이미 하나님이 결정을 했습니다.

 

 

 

야곱이 ‘내가 복을 받아야겠어.’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복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서, 이미 하나님이 결정을 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복된 길, 그 철길을 따라서 달려야지..

 

 

 

괜히 자기 눈에 복으로 보이는, 그 자기 야망의 길로 달려서는.. 험악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한 번씩 탈선해서, 자기 레일/궤도로 돌아오는데.. 많은 고생과 시간이 허비되거든요.

 

 

 

▶예를 들면, 자녀들이 지금 입학시험을 봐요.

 

이 선교회 나오는 가정의 자녀들 중에 이번에 대학 입시를 보는 아이들이 8명이에요.

 

지금 가정마다 피가 끓는 시기입니다.

 

 

 

부모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그 입시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가 뺏어오고 싶어요.

 

너무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레일)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그래도 일류대는 가고 봐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의 진로에 대해서 우리가 마음에 떠올리고 주제로 삼고,

 

그것에 대해 결정을 하려고 하는 순간, 선택 받은 백성들은 언제나 깨달아야 돼요.

 

 

 

‘한 타이밍 놓쳤구나. 하나님이 이미 결정해 놓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이제 그 아이에게,

 

내가 이 세상에서 배운 기준을 따라서 정한 인생 행복을 향한 방향을 가리킬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한 타이밍 늦었고,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좇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부모가 뭐라고 소원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결정해 놓은 사실을, 내 현실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제일 큰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나님이 결정해 두신 일에 대해서

 

종종 레일에서 탈선해 버리는 길로 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요.

 

 

 

첫 번째, 우리 인생이 달려가야 될 레일입니다.

 

레일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하면, KTX가 80년대 말에 건설이 결정 됐습니다.

 

 

 

이제 외국 열차를 수입하기 위해서 경매를 하고 철로를 깔고 하려고 했는데,

 

6년 계획에 5조 예산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속철로를 까는 실력이 모자라서,

 

결국은 12년 만에 일부 구간만을 완공하게 됩니다.

 

 

 

6년 계획에 5조 계획했던 예산이, 12년 동안 18조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1:10:100의 법칙을 어긴 겁니다.

 

 

 

철로를 깔다가 안 되면, 계획을 바꿨어야 했어요.

 

떼제베가 와서 보니까 기술력도 턱도 없는 상황에서 만든 철로 위로

 

열차를 달리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12년을 지나는 동안에, 10조 이상이 그냥 날아가 버린 겁니다.

 

 

 

지금 우리가 40년, 50년, 60년 살아왔죠.

 

지금 우리 인생의 수지타산이 어떻게 된 것 같으세요?

 

 

 

10조 이상은 그냥 날아가 버린 것이에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레일을 깔 수 있을만한 실력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계획되어진 하나님의 레일을 가져다 옮겨놓고 달리면 됐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5조면 될 것을, 18조를 들여서, 공사를 일부 구간만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이, 왜 그렇게 어렵고, 짐이 되고, 부담스러운지 아십니까?

 

왜 그렇게 얼굴들이 펴지질 않고 있어요? 왜 그래요?

 

레일이 안 깔려서 그래요.

 

 

 

계속해서 노력, 시간, 졍력, 계산, 관심, 노력이라는 비용이 들어가고 있지만

 

어디 한 군데 시원하게 달리는 느낌이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뜻’만이 내 인생의 레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결정 된 그 레일을, 우리가 깔고, 그 위로 달리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레일이 깔려있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 아이의 인생이 서울대 들어간다고 해서 펴지지 않아요.

 

 

 

우리 아이의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 뜻이 이루어져야 펴지게 됩니다.

 

예일대 가고 하버드대 간다고,, 술술 저절로 펴지는 게 절대 아닙니다.

 

 

 

▶두 번째 예는, 하나님의 뜻은 인생의 대본입니다. 시나리오고 각본입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하도 요란을 떨고 해서, 인터넷을 좀 찾아봤습니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태왕사신기에 신기록이 여러 가지가 있대요.

 

 

 

방영시간을 6번이나 뒤로 미룬 드라마는 처음이랍니다.

 

그리고 예비 제작기간이 4년이나 걸렸던 드라마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공중으로 날려버렸어요.

 

 

 

‘반지의 제왕’에서 특수효과를 했던 컴퓨터그래픽 팀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팀이 1년 동안 놀다가 그냥 갔어요. 그리고 계약한 대로 돈을 다 줬습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대본이 안 나왔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대본이 안 나오게도 생겼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군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던 좌청룡 우백호를 연결시키고 하려니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겠습니까?

 

대본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렇게 막대한 예산이 허비될 수밖에 없어요.

 

 

 

극장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 말씀으로는, 영화 흥행의 관건은, 대본에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우리 인생의 성공 관건은 각본(시나리오)에 있어요.

 

 

 

어떤 각본을 가지고 어떻게 실행해 가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계시죠?

 

그 자기 시나리오 (자기 야망) 가지고는 턱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끊임없이 인생의 비용만 지불 될 뿐인지,

 

조금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그런 인생이 진행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철로가 곧 대본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서는, 결국 마지막 인생을 다 살고도

 

제자리걸음을 한 게 됩니다.

 

 

 

‘험악한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인생을 돌아봐서 펑크가 났다는 이야기예요.

 

‘레일’ 또는 ‘대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미래를 좇아가고 추구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는,

 

결국 어마어마한 인생의 비용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정말 불행하게 살았다고 하는 뼛속 깊은 반성 밖에는 주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가느냐? 제 경험을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어 산책을 합니다.

 

제가 5단지에 사는데 7단지로 가면, 거기는 70평~80평짜리 집들이 있는 곳입니다.

 

 

 

아주 한적합니다. 우리 5단지처럼 차가 많고 바글거리지 않고,

 

애들도 바글거리지 않고 조용합니다.

 

 

 

그래서 제가 산책하면서 ‘그래도 목사가 말씀을 준비하려면

 

애들이 바글거리는 동네보다는 이런 데가 낫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딱 멈춥니다.

 

 

 

내가 잠자고 기거하는 아파트라는 주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한 타이밍 앞서서 결정하신 것이고,

 

그 결정에 따른 결과가 지금 5단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결정이 이미 이루어졌어요.

 

 

 

제 핸드폰을 꺼내보면 뚱뚱하고 못생긴 8만 원짜리입니다. 2007년 경

 

그런데 이 핸드폰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결정이 이미 주어진 것이 있습니다.

 

 

 

이 핸드폰을 보면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8만 원짜리 핸드폰을 나에게 주셨다는 생각이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핸드폰을 가지고 묵상하게 됩니다.

 

 

 

‘이 핸드폰을 진짜 하나님이 주셨지’하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물론 집이나 핸드폰을 구입하기 전에, 아무렇게나 우연히 구입하지 않고,

 

많이 기도하고 난 후에,

 

어떤 내 의사를 고집하지 않고, 그때 내게 주어지는 환경/정황/처지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입한 경우입니다. 절대 무리하게 고집 피워서, 비싼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육신적 생각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지고 발전이 있냐? 40평에 살면 60평으로 늘릴 생각을 해야지.

 

8만 원짜리 핸드폰을 쓰면 15만 원, 20만 원짜리로 늘릴 생각을 해야지.’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에게,

 

하나님이 핸드폰 같은 작은 문제에서까지도 자신의 뜻으로 인도해 주실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결정한 것은, 항상 최선이었고, 내게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당시엔, 잘 모르지만요.

 

 

 

하물며 우리 인생의 미래, 자녀들 인생의 미래를

 

우리의 결정으로 뒷북치고 와서 하나님의 결정한 것을 뭉개버리고 들이밉니까?

 

큰일 날 일이에요. 이렇게 살면 큰일 나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구약학 가르치시는 총장님께 그런 말을 들었어요.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도착한 후에, 나사의 우주국 국장의 인터뷰를 보셨대요.

 

 

 

그 국장이 하는 말이

 

‘우리가 과학적으로 최고봉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며 달나라에 착륙을 시켰더니,

 

신학자들이 그 정상에서 놀고 있더라.’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뭐 물리학이다 뭐다 연구해서 인공위성 쏘고 그러는데,

 

그렇게 과학의 최고봉에 선 사람들의 생각은,

 

이 세상이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리고 그 지점에 올라가서 굉장한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더니,

 

신학자들은 이미 거기 올라와서 신발 벗고 놀고 있더라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성경이 말씀한 것을, 뒤늦게 확인해 준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마찬가지예요. 왜 애를 쓰세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을 들이세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고 근심하세요? 여러분의 내일과 미래가 결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걱정하며 뒷북치고 계십니까? (자기 계획은 다 뒷북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거 궤도 수정하는데, 1:110:100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한 타이밍 먼저 하나님이 결정해 놓으셨는데.

 

 

 

그럼 기독교인들이 결정론(운명론)자들이냐?

 

물론 아니지요.

 

 

 

왜 아니냐면 하나님이 결정해 놓은 것을,

 

야곱은 자신의 (오)복에 대한 생각으로 그냥 뭉개버렸어요.

 

 

 

내가 내 생각으로 뒷북치며 들이밀며 실천에 옮기자마자,

 

하나님의 앞선 계획들이 다 뭉개져버리고 맙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돌아올 때까지 지켜주고,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너에게 그대로 주겠다.”라고 하셨어요.

 

 

 

벌써 결정해버렸어요.

 

 

 

그런데 뒤늦게 내가 잘 살아보겠다고 방향을 정하고

 

자기 인생에 대해서 들이밀기 시작합니다. 다 뭉개버려요.

 

 

 

그리고 130년 동안 공돈을 공중에 날리듯이 인생을 다 허비하고 돌아보니,

 

고생 밖에 안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입시를 볼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래야 되겠습니까?

 

어느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러면 대학과 연관 지어, 하나님이 결정한 결정사항에 대해서,

 

우리가 뭉개고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결정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이게 결정론과 다른 것이에요.

 

 

 

하나님은 결정하셨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각본과 레일이 놓여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결국 앞선 계획들을 다 뭉개버리고 말 것입니다.

 

 

 

‘목사님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 아이가 1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놀기만 했는데,

 

그럼 하나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1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놀기만 한 놈의 오늘은,

 

놀기만 한 그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혼을 내시려면 내실 것이고, 돌아가게 하려면 돌아가게 하실 것이고,

 

대학에 떨어뜨리시려면 떨어뜨리실 것입니다.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공부를 안 한 놈을 눈치를 봐서

 

끝까지 하나님 뜻을 구하지 않고, 아무 대학이나 집어넣자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공부를 하지 않아서 떨어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비용을 1개 들여서 고칠 일인데,

 

묘하게 작전을 써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앞으로 10년~20년을 그렇게 살다가 고치려면

 

인생의 비용이 100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제가 대학 입시를 볼 때 3수 했어요.

 

그런데 그 3년이라는 것이 10년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학교 3년 늦게 들어갔을 때에,

 

서울대 졸업하고 신대원 들어오셔서 신대원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에서 강의를 맡은 뛰어난 선배님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제가 뒤늦게 학부 마치고 독일 대학원에 유학 갔더니, 그 분들이 먼저 와서 공부하고 계세요.

 

저보다 8년을 먼저 공부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다 놔두고, 먼저 혼자 박사 학위 받고 나왔어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3수하면서 하나님의 뜻 찾는 걸 연습한 거예요.

 

 

 

그리고 시작해서 같은 신학 계열에서 박사학위를 쓰는데,

 

8년 먼저 공부한 분들보다 제가 먼저 논문 패스하고 나왔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철로와 하나님의 대본을 찾는 것이에요.

 

 

 

▶이렇게 잘한 적도 있었지만, 반대로 죽사발이 난적도 있어요.

 

 

 

박사학위 받고 와서 영락교회에서 부 목사로 목회를 하는데,

 

태승철 신드롬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교회 바깥에까지도 난리가 났어요.

 

 

 

물론 저도 양식이 있고 교양이 있어서,

 

떠드는 교인들 앞에서 제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전부 아닙니다.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겸손하게 기도까지 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제가 그때 마음에 사무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왜 겸손하지 못했냐면, 상가를 얻어서 개척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저건 공해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서울의 모 교회에서 담임으로 데려 간다, 어쩐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미국가고 밴쿠버 가서 거기서 사람이 완전히 바닥으로 진창에 굴러버렸죠.

 

 

 

그리고 요즘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속에서 했던 그 말을.

 

‘상가에서 개척하는 목사님들을 공해라고 했던 그 말을’

 

 

 

제가 지금 뭐하고 있죠? 이 상가도 보통 상가가 아니에요.

 

밑에 갈마라는 술집이 있어요. 우리 선교회를 찾아올 때는

 

모든 교인들의 지표가 갈마라는 술집이에요.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결국 하나님께서 그 지점까지 ‘네가 너의 뜻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해?

 

너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이건 나건 하나님의 뜻이 안중에 없었다는 겁니다.

 

 

 

무슨 근거로 하나님이 상가에서 교회를 시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뜻이 안중에 없었던 거예요. 내가 잘난 줄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어떻습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욕하고 있을 그 때에도,

 

어떤 목사님들은 위에 주점을 놔두고 개척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고백하며 사셨을 분들이 계셨을 텐데,

 

거기에 대고 제가 공해라고 그랬던 거예요. 밴쿠버에 가서 묵사발이 되어도 싸죠.

 

 

 

결국은, 목회라는 것에 있어서

 

저 또한 조직적으로 부피가 큰 목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더라는 겁니다.

 

 

 

성경이 갖고 있는 이 진리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교회라는 조직을 크게 하는데 중요한 기술이 설교라고 생각했던 것이에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하지 않고,

 

결국은 내 인생 내가 챙겨보겠다고 내가 대본을 쓴 거예요.

 

 

 

멋지게 설교하는 목사가 돼서 큰- 교회에서 당회장 목사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죠.

 

 

 

결국은 어디로 돌아옵니까? 50살이 돼서 하나님이 쓰신 대본인

 

복음 자체를 위해서 섬기는 종의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신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 자식들 하나하나를 보세요. 다 기적이에요.

 

얘는 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어요.

 

 

 

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대본을 갖고 계시고,

 

하나님이 철로를 깔아놓고 계세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느 대학을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전문대학이면 어떻고 못 들어가면 어때요? 이 아이를 위한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돼요.

 

 

 

괜히 잘난 척하고, 저처럼 상가 교회 욕하다가,

 

결국은 50살에 상가 교회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100의 비용을 들여서 수정하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아이와 함께 대화하면서, ‘어느 대학을 가도 좋다.

 

네가 진짜 하나님이 깔아주신 대본과 철로를 찾는다면 엄마는 걱정 놓겠다.’라고

 

아예 선서를 하고 혈서를 쓰세요.

 

 

 

우리의 혈서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 피로 내 마음에 혈서를 쓰세요.

 

 

 

‘내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대본대로 되기’ 마음에 써 버리세요.

 

공부 하나도 안 한 아이는 공부 안 한 아이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뜻.

 

 

 

집 나갔다가 오늘 들어왔으면 외박한 놈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뜻.

 

사업이 망해가면 망해가는 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

 

 

 

내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으면 위기에 처한 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

 

어제까지 망나니로 살았으면 망나니로 살아온 오늘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

 

(탕자를 강제로 못 나가게 할 수도 있었지만,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뜻이었습니다.)

 

 

 

그것만 구하면 되는 거예요. 그걸 찾는 것이 삶의 길이니까,

 

이제까지 잘못 산 것을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잘못 산 나를 주님의 십자가에서 용서해주시고,

 

그렇게 잘못 살았던 오늘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만 물어보면 된다는 겁니다.

 

 

 

▶입시를 앞두고 있는 자녀들은 무거울 것 하나도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뜻만.

 

 

 

공부도 수학을 할지 영어를 할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느냐? 간단해요. 조율(튜닝)을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주님! 입시 앞에서 제가 죽은 자입니다.

 

2000년 전에 죽었는데 입시는 무슨 입시에요.’

 

 

 

그러고 있으면 수학해야지, 영어해야지 하는 소원도 생기고

 

저도 그렇게 공부한 거예요.

 

 

 

독일에서 논문 쓸 때도 ‘내가 죽었는데 논문은 무슨 논문’ 이러고 있다가,

 

독일 교수님이 놀랄 정도로 정말 칭찬받는 논문 쓰고 나왔어요.

 

 

 

공부도 지금 그렇게 시작하자는 거예요.

 

 

 

우리 엄마 아빠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우리가 하나님 뜻을 찾는 것이

 

체질이 되는 삶을 지금 시작하자는 거예요.

 

 

 

저를 따라서 재수, 삼수하는 아이도 있을 줄 알아요.

 

 

 

그것도 조급해하거나 급박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이번에 못 붙으면?’ 이런 생각 가지지 마요.

 

 

 

언제나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이 생각이 안 날 때에는 저를 생각하세요.

 

 

 

조급한 가운데 결정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조급한 가운데 공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든 자녀들은, 이번 입시를 통해서 완벽하게 될 겁니다.

 

 

 

떨어져도 하나님의 뜻 찾아 떨어지고,

 

붙어도 하나님의 뜻 찾아 붙으면, 떨어진 놈과 붙은 놈 똑같아요.

 

 

 

하나님 뜻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지,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은 돈 좀 더 벌겠다고 난리를 치며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대학 좀 들여보내겠다고, 그저 부모와 자식 간에 싸움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찾아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벌써 내 마음이 갖고 있는 테마, 내 마음이 갖고 있는 토픽,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벌써 결정하셨구나.’ 하며,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이 결정을 받아들이고, 이 결정을 알기 위해서만 애쓰며 살아갈 때에,

 

하늘의 대본과 하늘의 철로가 땅 위에서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우리의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하늘의 대본과 하늘의 철로를 좇아가며

 

언제나 하나님이 앞서서 결정해 놓으셨다고 고백하며 사는,

 

하늘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