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들은 사람의 책임 1 요15:22~23 영문 대강 번역, 출처
Human Responsibility by C. H. Spurgeon May 16, 1858
"요15:22~23.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까지도 미워한다..”
◑서론
▶유대인들의 죄는, 특별히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서 등에서 ‘오실 메시야’로 예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자기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야가, 자기들이 바라는 방식의 강력한 왕, 정복자 군주로 오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분이 정말 ‘마른 땅에서 난 줄기’같이 볼품이 없었으니까,
그 분을 ‘멸시를 하였고,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메시야를 거부한 정도가 아니라, 분노 중에,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렇게 메달리신 분을, 아래서 조롱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2:8
▶이런 유대인들의 ‘거부한 죄’는, 유독 그들만의 죄가 아니라,
사실 오늘날에도 똑같이, 불신자/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서
계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올바른 교리를 알고 있다는 신자들조차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삶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구세주는 그저 ‘명목상’의 구세주일 뿐이요,
오늘날 그리스도는, 여전히 배척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뿐입니까?
신자들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행9:4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3:18
오늘날에도,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때,
그것을 배척, 반대, 훼방하는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입니다.
자기 손에 못과 망치만 들지 않았다는 것이지, 예수님을 못 박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지난 2천년동안 정처 없이 떠돌며 방황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핍박한 죗값이.. 그 자손들에게 대대로 유전되었습니다.
"요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위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차라리 복음을 안 들었으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 ‘거부한 죄’를 핑계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모든 성직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매 시대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과 메신저들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함이로다.’ 출16:8
보십시오, 모세는 자기를 향한 원망을, 여호와께 한 원망이라고 백성들을 훈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그런 신적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외치는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어떤 설교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그를 보내시고 세우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닐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본문 요15:22절이 바로 그것을 말씀합니다.
안 들었으면 몰라도, 들었으면.. 거기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순종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한 죄가 됩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우신 메신저가 맞다면,
그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거부/대적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제 스펄전이 하는 모든 말이, 다 그런 권위가 있다는 뜻은 아니고요,
제가 사람의 말을 할 때는, 여러분이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는,
여러분은 주의를 기울이셔야 하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전달한 메시지라면,
만약 회중들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엇보다 ‘자기 영혼에’ 손해를 당할 것입니다.
믿고/회개하고/돌이킬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계속 잃어버리다가는.. 결국 유대인들처럼 되는 거죠.
▶그러므로 설교자 자신도, 엄중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말씀을 가볍게 전하거나/듣지 말 것을, 권면했습니다.
‘살피십시오!’ - 즉,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면합니다.
딤전4:16,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을 살피십시오. 이런 일을 계속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 자신도 구원하고,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Take heedunto thyself, and unto the doctrine; continue in them:
for in doing this thou shalt both save thyself and them that hear thee,"
이렇게 복음 사역, 말씀 사역, 기독교 사역은.. 엄중한 것입니다.
그렇게 ‘엄중한/비장한’ 각오로 임할 때
자기도 구원하고,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딤전4:16b
▶보십시오. 하나님은 파수꾼에게
겔3:18,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메신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똑바로 전파하지 않아서,
만약 그 회중 가운데, 누가 멸망당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피값을, 그 메신저에게 찾으시겠답니다. 이 얼마나 엄중한 사역입니까!
그러니 ‘말씀 사역자’에겐, 특권과 책임이, 동시에 둘 다 따릅니다.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특권입니다.
그 말씀에 권위가 있어서, 그 말씀에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되는.. 특권!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만 올바르게 전달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만약 잘못 전달해서, 그 회중이 자기 죄에서 죽게 되면,
그 책임이.. 메신저에게 돌아오니까요. 그 피값을 하나님은, 메신저에게 물으십니다!
▶본문 요15:22절이, ‘듣는 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차라리 그러면 나는 안 듣겠다’ 는 자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 듣는 것’도.. 죄요,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라’고, 그 종들을 통해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가, 고의적으로, 그 말씀을 듣기를 회피하는 것 역시도,
하나님 자신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죄가 되고,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귀에 듣기에 좋고 복된 것입니다.
혹시 그것이 ‘심판의 선포’라 할지라도,
그 선포를 통해, 자기 양심의 죄를 깨닫고, 돌이킨다면.. 얼마나 복입니까!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고의적으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죄’가 되는 것이고, 그 결국은 유대인들처럼 될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설교를 들을 때는, 자기 두 무릎이 부딪힐 정도로, 하나님 말씀을 떨며 두려워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들은 말씀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며, 은혜의 성령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간절히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즉시 자기 옛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가 된다는 우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도, 뒤돌아서서 금방 그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십자가 찬송을 부르고는, 집에 와서는 다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뻔히 쳐다보고서, 그저 지나쳐버리는 유대인들과 다름없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감격하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까마득하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그 사랑, 그 은혜를.. 모두 다 ‘거절’하고, '멸시'하는 태도가 아닙니까!
히12: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 특별히 들은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이런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통해, 자기 양심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계속 범죄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받았습니다.
이때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행인데,
이때 또 마귀가 역사하거든요. ‘설교는 다 뻥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널 이용해 먹으려고, 목사가 괜히 겁주는 거야!’ 이런 유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라는 복음’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설교 제목이 Human Responsibility 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잊어버리거나, 반응하지 않으면,
그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립이 아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그가 들은 복음은, 마지막 심판에 앞서, 주님이 주신
‘최후의 회개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 멀리 떨어진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
아주 죄라는 죄는 다 지은, 큰 죄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도 그 죄인이, 어쩌면 여러분 보다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모든 죄는 다 지었지만, 아직 한 가지 죄는 안 지었습니다.
‘그는 아직 복음을 듣지 않았고, 회개하라는 음성도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영국에서
복음도 듣고, 회개하라는 음성도 들은 사람이
만일, 회개치 않고, 들은 복음을 거절하고 만다면,
그는 저 캄차카에 사는 그 큰 죄인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인이 됩니다.
‘당신은 복음을 들었으면서도, 아직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거부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요!’
복음을 들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요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까지도 미워한다. (메신저를 미워하면, 그를 보내신 분을 미워하는 거죠)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8, 그를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마11:21, '고라신아, 벳새다야, 너희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삼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을 것이다.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히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위 구절들은, 모두 ‘복음을 거부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설명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마태복음, 히브리서 등 .. 골고루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증거가 다 나쁜 죄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받는 죄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거부하는 죄’는, ‘회개’가 안 됩니다.
그래서 간음자, 살인자도.. 회개를 거친 후에.. 천국에 들어가지만,
‘복음을 거부한 자’는.. 그가 선량한 이웃 시민이었다 하더라도..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어쩌면 이 ‘복음을 거절하는 죄’는, 모든 죄의 모판이라고 입니다.
모든 죄가, 여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사형장의 죄수가, 자기가 원하면 사면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사면을 거절한다면,
그건 스스로 자살이 아닙니까. 복음을 거절하는 죄가,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교만’이 모든 죄의 근원이라 하는데,
‘복음을 거절하는 죄’야 말로, 교만 중에 교만입니다.
또 이것은 ‘반역’의 죄가 됩니다.
복음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그런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반역 rebellion’의 죄입니다. 과거 군주시대에 반역은 큰 죄였습니다. 국보법 위반 같은!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완전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다 겪으시고, 그 모든 수치를 다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시고, 죄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런데 누가, 그 복음의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역 중에도 그런 반역이 없는 거죠.
반역+배은망덕+교만+살인(자살)!
▶그런데 사실, 예수를 안 믿고, 복음을 듣지 않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고, 약간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고요.
그런데, 복음을 다 듣고, 자기 양심으로 죄를 깨닫고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은,
이것은, 즉 믿는다는 신자들의 ‘계속되는 죄’는.. 대단히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히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어떤 신자라는 사람이 ‘죄를 계속짓는’ 것은, 그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즉, 신자가 아닙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당신은 예수 믿은 후로, 과연 ‘무슨 죄로부터 구원’ 받았습니까?
만약 그가, 예수를 믿은 후에도, ‘자기 죄로부터 구원’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여전히 자기 죄 가운데 거한다면.. 그건 구원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도둑이, 구원을 받고도, 계속 도둑질을 한다면,
그건 구원 받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들에겐 위 히6:4~6절 말씀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복음, 우리가 들은 복음을
우리는 매우 두려워해야 합니다.
복음을 들은 자에게는.. 책임 Human Responsibility이 따르고요,
들은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차라리 복음을 듣지(믿지) 못한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저 스펄전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고 엄중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이 따르고,
말씀을 들은 여러분도, 책임 Human Responsibility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끝날 인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짐승이나 식물은, 심판이 없지만.. 사람들은, 반드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에, 얼마나 신실하게 반응했느냐.. 하는 심판입니다.
들은 복음의 말씀대로 살았는가? .. 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때로 저는, 여러분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그 일을, 쉽거나 가볍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께엄중하게 경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성경에 저주하신 내용은, 그대로 저주의 말씀으로 선포했고,
제가 그 내용을, 완곡하게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은혜’의 교리도 전파했습니다. ‘심판’과 아울러요.
그때 대적들은, 저를 ‘율법폐기론자 Antinomian’라고 공격했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반대로 ‘율법폐기론자 Antinomian’이 주류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성경 그대로 엄하게 전파하는 설교자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은혜’를 설교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책임 solemn responsibility’을 엄중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또한 저를 ‘알미니안’이라고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복음을 듣고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엄청나게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건 복음 전하는 ‘사람’을 거부한 죄가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가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짓는데, 죄 안 짓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 모든 자기 죄 위에, 한 가지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복음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복음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속히 그것을 집에 가자마자 잊어버리거나
자기의 죄 가운데, 계속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요!
그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죄’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역시 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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