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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살렘 왕이냐, 예루살렘 왕이냐

LNCK 2014. 12. 15. 13:35

살렘 왕이냐, 예루살렘 왕이냐?        27:60, 수10:22~27          14.11.09.설교 녹취

 

 

※구약의 사건을, 신약 복음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서론

 

▲며칠 전 우리나라 최대 발간부수를 자랑하는 모 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하나 크게 실렸습니다.

소원성취, 만사형통, 황금의 돼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한 승려가, 자기가 그린 황금복돼지 그림을 하나 사서 집에 걸어놓기만 하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라는 겁니다.

결혼도 하게 되고, 사업도 번창하고, 병도 고치고, 소원하는 게 다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근데 그 다음 날 또 동일한 신문 일간지 전면 광고에, 이런 광고가 하나 올라온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셨습니다. 그 분은 지금 중국에 은밀히 강림하셔서

그 분은 한 무리 이긴 자들을 만들고 계신다.. 그런 광고였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광고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 정도 전면광고를 내면 얼마 정도의 비용이 지불됩니까?

물어봤더니, 부가세 포함해서 한번 광고에 1800~2000만원 정도 듭니다.. 하더라구요.

 

거금이잖아요. 이런 거금을 투자해서 광고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국이 혼란스럽기 때문일까요, 수능이 가깝기 때문일까요? 씁쓸한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서를 금년 들어서 우리가 집중하여 살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 마음 속에 동기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도대체 누구를 섬기며, 누구를 나의 왕으로 모시며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여호수와서만큼 우리에게 선명하게 메시지를 안겨주는

그런 성경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와서의 중심 구절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가 2014년 새해를 열면서, 무려 네 주에 걸쳐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는 말씀,

바로 여호수와서 24:15절 말씀, 이 말씀이 여호수아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오늘 몇 분 성도님들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입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나와 내 집은 누구를 섬기겠다?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이 결단, 이 다짐이 바로 이 학습과 입교와 세례 예식 속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세상의 어떤것을 섬기고 따르고 의지했을지라도, 이제는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이 결단의 표현이, 이 예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에는 도대체 세례를 언제 받았을까요?

출애굽 때, 홍해를 건너면서, 그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그 후 삶이 어떠했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내 산에서 저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송아지를 경배하며 섬기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모압 땅에 이르러서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곳에 푹 빠져서, 신앙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저들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을 거치면서 그들은 온전히 자기의 경험과 노력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본문 설명

 

 

▲아도니세덱을 배신한 기브온 족속 때문에, 전쟁이 발생합니다.

이런 와중에 사건이 하나 딱 터집니다. 그 사건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동안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에게 지배를 받고, 아도니세덱의 세력 안에 놓여 있던 기브온 족속

아도니세덱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이스라엘에게 나와서 화친을 청한 것입니다.

 

그러하여 이 사실을 안 아도니세덱이 분을 참지못하여서, 주변의 왕들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 왕들과 합세하여 여호수와를 향하여 대적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의 여호수와가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저들과 함께 대적 하면서 그는 하늘을 향하여 "태양아, 멈추어라. 달도 그렇게 할지니라."

이 외침에 태양도 멈추었고 달도 그리하였습니다.

 

그러자 혼비백산한 아도니세덱을 위시한, 연합한 왕들은, 막게다 굴 속에 숨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도니세덱을 잔인하게(?) 처치합니다. 왜요?

이 정보를 입수한 여호수와는 마게다 굴 앞에 큰 돌을 굴려 막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뒤쫓는 잔당들을 처리하고 난 뒤에 여호수아가, 드디어 이 굴 앞에 나타납니다.

굴 속에 숨은 아도니세덱을 위시한 왕들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 과정이 24절에 쭉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여호수와가 왕들을 불러내서는 왕들의 목을 밟는다. 목을 밟았습니다.

26절에 여호수와가 왕들을 쳐 죽여서 나무에다가 매달았습니다.

살아있는 자가 아니라 죽은 시신을 나무에게 매달았답니다. 저녁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27절에 해질 때쯤 되어서 그 시신을 나무에서 내려다가 그 굴 속에다 던져놓고

굴을 다시 막았는데,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하는 말씀으로 본문이 끝나고 있습니다.

 

▲문제 제기

저는 이 본문을 대하고 한 주간동안 정말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끔직하고 너무 처참한 잔인한, 그런 내용이 본문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도 아니고 성경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잔인한 내용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해놓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다섯 왕이 있습니다만,

이 다섯 왕 중에 네 왕은 다 옵서버(주변인, 관찰자)에 불과합니다. 주동자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입니다.

 

 

◑본론/ 멜기세덱과 아도니세덱 

 

 

▲살렘 왕, 멜기세덱 -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그런데 예루살렘이라는 도성의 옛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살렘이었습니다.

살렘의 왕이 누군지 아십니까. 살렘을 다스리던 왕이 지난 날 있었습니다.

 

창세기 14:17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지역의 왕들과 싸워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18절에 보시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자가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옵니다.

 

이 떡과 포도주, 다음 주에 우리가 다룰 성찬 예식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자가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와서는 19절에 보니까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한 뒤에 20절에 보니까

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이 바치는 십일조를 당당하게 받아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도대체 누구일까.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살렘 왕이었는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여러 왕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이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십일조를 받아서 갔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복을 드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아간 이 살렘 왕 멜기세덱.

도대체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상징하는 줄 믿습니다. 왜냐구요.

이 '멜기'라는 말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세덱'이라는 말은 의롭다라는 뜻입니다.

의로운 왕, 이게 멜기세덱입니다.

 

 

▲살렘 왕 아도니세덱 - 마귀의 예표

 

수10:1절에, 아도니세덱이 '예루살렘 왕'이라고 소개되어 나옵니다.

옛적 아브라함 시절에는, 멜기세덱이 예루살렘의 왕이었으나,

시대가 바뀌어 여호수아 시대에는, 아도니세덱이 예루살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에 왕이 등극하면 이름이 바뀝니다. 세종, 태종,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본명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면서 이름이 바뀌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이 당시에도 왕으로 등극하면 이름이 바뀌었어요.

 

그러므로 이 아도니세덱이 왕이 되기 전에 무슨 이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면서 자기 이름을 아도니세덱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도니세덱'은 멜기세덱과 아주 이름이 흡사합니다 . my lord is righteous 또는 '의로운 왕'이란 뜻입니다.

   '세덱'(체덱, 차닥, 의)는 둘 다 똑같지요?

   하나는 '멜기'(멜렉/왕)이고, 또 하나는 '아도니' (아도나이/주)입니다.

   멜렉 king 이나, 아도나이 lord는 혼용되어 쓰던 표현입니다. 임금이나 상감마마나 같은 말이듯이요. 

 

아도니세덱은, 공교롭게도

멜기세덱과 똑같은 의미를 가진 '의로운 왕', '의로운 주' 똑같은 이름이지 않습니까.

적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여호수아가, 아주 무섭게 그를 심판하고 말았습니다. 

 

그 가짜 '의의 왕'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아도니세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경배하고

자신을 섬기는 영원한 왕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나타났단 말입니다.

 

 

▲두 왕의 죽음의 비교

때문에 오늘 본문에는 멜기세덱이라는 그 분과, 아도니세덱이라는 이 왕을 비교하여서

이 사람들을 두 존재를 비교하여서, 지금 우리에게 대비시켜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잠시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와 18절을 보시면 여호수와가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막고

사람들을 그 곁에 두어 그 곁을 지키게 하고 라고 했습니다.

아도니세덱을 이렇게 굴 속에 넣고서는 그 곁을 지키게 했습니다.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굴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에 원수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7:60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을 무덤 속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서 무덤 문에 놓고 갔습니다.

빌라도가 말하길 힘들여 굳게 지키라. 그러니까

이 경비병들이 가서 돌을 입옹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아도니세덱의 모습과 멜기세덱의 모습이 똑같습니다.

26절에, 그 후에 여호수와가 왕들을 나무 위에 달았다. 저녁까지 나무에 단 채로 두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원수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언제까지 두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저녁까지 두었습니다. 돌아가신 채로 두었습니다.

 

아도니세덱과 멜기세덱이 똑같은 모습입니다.

본문 27절에 보시면, 그 시신을 나무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굴 속에 던지고 큰 돌로 막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운명하실 때.

원수들은 해가 질때에 저녁때에 예수님의 죽은 시신을 나무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 예수를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러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243절에 보니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왕이 죽었던 그 무덤 왕의 시신을 던져넣었던 그 큰 굴은, 지금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굳게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시신을 넣은 그 돌은 활짝 열려졌고

그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예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울고 있던 여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마리아야, 마리아야"하고 여인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 분은 벌벌 떨고 있는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저 북쪽 바다에 고기잡이하러 갔을 때, 부활하신 주님은 그 현장에 나타나셔서

얘들아 너희들에게 고기가 있느니라 하시면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고 고기를 잡았을 때에, 주님이 그 바닷가에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고기를 구워놓으시고 떡을 구워놓으시고 그들을 영접하시며 그들을 접대하는 현장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그 예수님은 5백 여 성도들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마지막에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바울 사도에게도 보이셨고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 드리는 우리 모두의 심령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 멜기세덱이신 그 분은 살아계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알 것 같습니다. 왜 심약했던 여호수아가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처단했는지 말입니다.

 

아도니세덱은, 만인의 왕이신 하나님께로, 기브온 거민들이 돌아가는 것을

그는 너무너무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섬기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세하려다가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었다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223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헤롯이라는 자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다가, 벌레에 먹혀 곧 죽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적용

첫째, 뻔뻔스러운 기도까지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할렐루야.

기브온 거민이 언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저들이 소원을 아뢰었을 때에

그 소원이 응답되어져서 여호수와라는 자가 대체 어떤 자이기에

그가 뻔뻔스럽게 하늘을 향하여 태양은 머무르라고 명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응답을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십니다 믿습니까?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담대함을 주십니다. 여호수와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25절을 보시면 그가 얼마나 담대하였는지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수능 시험장에서 우리 모든 수험생들에게 특별히 담대함을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까지도 극복하게 하십니다. 왜냐구요.

그 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가 그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며 살아갈 때에

죽음까지 극복하는 이 은혜 받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이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넘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