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기뻐하라 눅10:17~21
https://www.youtube.com/watch?v=MM4Z-u_5TEY
인생을 살다보면 슬픈 일도 많지만, 우리 삶 속에 작은 기쁨들이 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세 가지 기쁨이 나옵니다.
<70인 전도인의 기쁨>, <구원의 기쁨>, 세 번째로 <예수님의 기쁨>이 소개됩니다.
◑1. 먼저 70인 전도인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를 떠났던 70인의 사람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 하는 장면이죠.
눅10:17절.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여러분, 전도를 떠났던 70명의 사람들이 돌아오는데, 어떻게 돌아왔다고 말하냐면
기뻐하며 돌아왔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돌아왔어요.
여러분 떠났던 사람이 돌아올 때의 모습을 보면, 결과를 대강 예측할 수 있잖아요.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사람의 그 모습. 면접을 보고 돌아올 때의 모습.
누군가 맞선을 보고 돌아올 때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미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70인 전도단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왜 70인 전도단은 그토록 기뻐하며 돌아왔을까요?
70인 전도인이 그토록 기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7절b절을 읽겠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70인 전도인이 기뻐했던 이유가 뭐죠? 귀신들의 항복이에요.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에,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거예요.
항복했다는 말은 굴복했다, 그들을 복종시켰다는 말이거든요.
한 마디로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명했을 때에
더러운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떠났다는 거죠.
그런데 제자들은요, '항복했다]는 말을 사용할 때에 (부정)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를 사용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굴복시킨 그 현장의 감동과 기쁨이
지금까지 그들 가운데 남아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항복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전도가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항복'이라는 말은, 아무데나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전투에만 쓸 수 있는 용어고, 입사에 실패했는데 항복했다. 시험을 잘못 봤는데 항복했다.. 그러지 않습니다.
'항복했다'는 표현은,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에,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에만 쓸 수 있는 용어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영적 전쟁의 현장에는 무승부가 없습니다. 승리와 패배가 함께 공존하지 않습니다.
승리하든지/ 패배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전쟁이라는 것은, 절반의 승리가 있어요 절반의 패배가 있어요.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해내는 영적인 전투는, 승리와 패배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 전쟁은, 주께서 마귀를 멸하시고 이미 승리하셨기에
승리가 보장된 전쟁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70명의 전도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순종하여 나아가 복음을 전하며
귀신들이 떠나가는 걸 경험했습니다.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로 인하여, 흥분하고 감격하고 기뻐했던 것이죠.
▲자 이렇게 70인 전도인들이 돌아와서 흥분과 감격과 기쁨으로 승전 보고를 할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10:18
예수님은 그들이 와서 귀신의 항복 소식을 전하기 전에, 즉 그들이 전도할 때에
이미 그 영적 전투 현장을 "보고 계셨다"는 거예요.
'내가 보았노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본문을 보면, 어쩌다가 우연히 본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이 '보았다'는 말의 의미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력을 가지고 뚫어지게 보았다는 말이에요.
1절을 보면 70명의 전도단이 두사람씩 짝을 지어 각 동네와 마을로 갔잖아요.
한꺼번에 70명이 전한 게 아니라, 두 사람씩 여러 동네와 지역으로 흩어져서
각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그들이 전하는 그 복음의 현장, 영적 전투의 현장을
주님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력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셨다는 거예요.
이 사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누군가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투의 현장을
주님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나 홀로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 현장을, 주님께서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질 때에
우리가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마귀가 우리의 복음을 대적하고 핍박해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귀신들의 항복을,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한 영혼이 돌아올 때마다, 사탄의 세력이 그만큼 약화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사탄의 패배를 '쫓겨남'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용, 큰 뱀이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가 그 졸개들과 더불어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사자들과 더불어 영적인 전쟁이 있었는데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이 사탄이, 자기의 졸개들을 거느리고 내쫓김을 당했습니다.
어디로? 땅으로 '내쫓김'을 당했다고 요한계시록 12장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2장 31절에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내던져지리라'는 뜻, 엑크발로)
여러분 이 세상의 임금이 누구죠? 사탄 마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탄의 패배를, '쫓겨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항복하므로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졌다는 말은요,
그만큼 하늘의 공중에 자리잡은 자의 세력이, 귀신들의 항복으로 인하여 약화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들의 두목인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은
이미 사탄이 패배했음을 말하는 것이죠.
귀신들의 두목인 사탄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사탄의 졸개인 귀신들이 항복할 리 없겠죠.
왜 그 귀신들이 항복합니까? 그의 두목인 사탄이 패배했기에, 졸개들인 귀신들이 항복을 하는 것이죠.
우리가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들이면
그만큼 사탄의 왕국은 약화되고, 하나님 나라의 왕국은 확장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19절에서 왜 예수님의 이름을 말할 때에, 귀신들이 항복했는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에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을까요. 그 이유가 뭐에요?
19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뱀과 전갈은 뭘 말하죠? 사탄과 그를 추종하여 따르는 귀신들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누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습니까.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었으니.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신 이가 누구죠?
바로 마귀를 멸하시고 승리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마귀를 멸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너희'가 누구에요? 당시에 나가서 복음을 전했던 70인 전도자만이 아니에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께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무슨 권세를 주신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미래 어느 순간에 내가 너희에게 권능을 준다는 게 아니고
내가 예수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순간에,
우리의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권세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영접하는 자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이미 주셨다 그 말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이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옆사람에게 전합시다.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뱀과 전갈을 밟을 수 있는 권세,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우리에게 주님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떠났던 70인들은,
복음을 전하여 귀신이 항복하는 그 기쁨을 누리게 된 거죠.
◑2. 두 번째로,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주님은, 귀신들의 항복으로 기뻐하는 자들에게 그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귀신들의 항복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에요.
오늘 우리에게는 귀신들의 항복으로 인한 기쁨이 필요합니다. 사역의 열매로 인한 기쁨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말미암는 기쁨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보다 더 엄청난 기쁨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이 있다는 거예요.
아니 이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죠?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구원 받았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 땅에서도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어떻게 하죠? 출생 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리잖아요.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이 말씀의 의미는요,
구원 받았다는 그 사실로 인해서 기뻐하라는 거예요.
사역의 기쁨도 좋지만, 네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더 기뻐하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는 귀신들의 항복으로 인한 70인 전도단의 기쁨과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1절 상반절을 보면 예수님의 기쁨이 나옵니다.
◑3. 예수님의 기쁨
눅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예수님은 무엇으로 기뻐하셨다구요? 성령으로 기뻐하셨어요.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하시죠? 손주로 인하여 기뻐하고, 돈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아파트 평수로 기뻐하고 그렇죠. 그런데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셨어요.
이게 다른 거예요.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단식하시고 우셨다는 기록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직접 웃으셨다는 기록이 딱 한 번 나와요. 그게 오늘 본문입니다.
누가는 성령의 감독을 받은 누가는 유일하게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말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셨다' 그런 얘기죠.
▲그런데 여기 기뻐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카이레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요 그냥 기뻐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온 몸이 떨릴 정도로 크게 기뻐했다고 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요 통상적으로 개콘 보고 껄껄 웃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로 기뻐하셨냐면 껑충껑충 뛰면서 소리를 지르시면서
온 몸이 떨릴 정도로 기뻐하셨다 그 이야깁니다.
2002 월드컵에서 우리가 이탈리아에 역전골 넣었을 때에 그 상황 기억하시죠.
우리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말은 그냥 입가에 미소를 띄는 정도가 아니라
껑충껑충 뛰면서 온 몸이 떨릴 정도로 기뻐하셨다는 그런 얘기에요.
여러분 얼마나 기쁘셨으면, 주님이 그렇게 기뻐하셨을까요. 여러분 이게 바로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쁨은 껑충껑충 뛰면서 크게 소리를 지를만큼 온 몸이 떨릴 만큼의 기쁨인 거예요.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만큼의 기쁨,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는 기쁨이..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해들은 여러분 안에 이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돈이나 환경으로 인한 기쁨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기쁨,
이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이 기쁨을 가졌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기뻤으면 그 한밤중에 옥중에서 찬양했겠어요.
그러면 우리 주님은 왜 그렇게 기뻐하셨을까요.
그것은 복음의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보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이 언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때에, 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70인 전도인들의 보고를 받는 그때입니다.
70인 전도자들의 복음을 받으신 그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복음의 증거로 인해 귀신들이 항복하신 것으로 기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복음의 증거를 통해서 귀신들이 항복하고
죽은 영혼들이 거듭나고 구원을 받아서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인해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신 거예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속에서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이 다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그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역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던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은 단순히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복음이 증거되고 귀신들의 역사가 떠나가고 구원 받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져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주님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쁨은요.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기쁨은 기대했던 일이 성취되어질 때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라고 사전에 표현하고 있어요.
주님이 기대했던 게 뭐에요 바로 이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뭐에요.
그런데 70인 전도단이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여 귀신이 항복하여 떠나가죠.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잖아요.
이 모습을 보시는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복음전도는 우리 주님을 온 몸이 떨릴 정도로 크게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입어 담대히 나아가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여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그들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 주님은 기뻐하실 거예요.
▲오늘날 신앙 생활의 최대위기는 오늘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한 기쁨이 오늘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오늘 내 안에 이 사역의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내 안에 기쁨이 없다면, 구원의 기쁨이 없다면 내게 엄습해오는 이 죽음의 그림자들을
어떻게 몰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내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없다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의 수많은 두려움을 어떻게 몰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는 이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구원의 즐거움이 없다면 달처럼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내게 오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사역의 기쁨이 없다면 신앙 생활의 년수를 자랑하지 말고
여러분 사역의 현장을 만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그 사역의 현장 속에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십시오.
우리에게 현장이 있어야만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우리 가운데 현장이 없다면
여러분 귀신이 항복하고 떠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사역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길 원합니다.
그 사역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키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사역의 현장에 나가셔서
그래서 오늘 우리 안에 복음의 증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나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될 때에
주님이 성령으로 인하여 기뻐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이 떨릴만큼
우리가 껑충껑충 뛰면서 크게 기뻐할만큼 놀라운 큰 기쁨이 우리 안에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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