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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 존 파이퍼

LNCK 2014. 12. 29. 16:58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시105:4                 출처보기      영어보기

 

존 파이퍼    What Does It Mean to Seek the Lord?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105:4

  Seek the LORD, and his strength: seek his face evermore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임재”란 히브리어 단어 “얼굴”에 대한 통상적 번역입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그의 “얼굴”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히브리식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앞에 있다는 것은, 그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이 말은, 절반 맞지만, 절반 틀린 말입니다.

 

'신자가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는 말이 맞는 것은, 

1) 하나님은 편재하는 분이며, 그러므로 항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붙들고 계십니다.

그의 능력은 만물을 지탱하며 다스리시는 것 안에 항상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 사람들은, 기도원에 잘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집에도 계시는데, 뭐하러 굳이 기도원까지 가느냐는 논리입니다.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립니다.

 

2)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언약이 항상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 Presence 가, 늘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여호와를...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시104:5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 우리가 이를 의식하고,

이에 의탁하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늘 끊임없이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등한시하고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주님을 신뢰하거나 의뢰하지 않습니다.

즉, 주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시지 않는"

즉, 우리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주님이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하게 인식되지 않는

그러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 임재는

우리의 육신적 욕망들의 커튼 뒤로 숨겨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답답하고, 무의미한 상태, 무능력하며, 미지근해 집니다.

 

이러한 어두운 상태는, 늘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분의 임재를 항상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104:5

  Seek the LORD, and his strength: seek his face evermore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또는 신앙이 나태해지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과 보배로움(즉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믿음/느낌/확신이 더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세상 염려가 더 커지지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자학하지 말고, 

   그런 시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임재는 "구하는 것"을 통해 일어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무엇을 뜻합니까?

 

구약과 신약 공히 말씀하기를, 이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마음의 의식과 우리 마음의 애정을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고정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역대상 22:19)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3:1-2)

 

이렇게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설정하는 것은, 생각이 그냥 떠돌아 다니는 것과 반대됩니다.

이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려는, 의식적 선택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3:5).

 

이는 우리 측면에서 볼 때는, 우리의 의식적 노력입니다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구하는 그러한 노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러한 정신적, 정서적 노력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려서가 아닙니다.

동전이나 양이라면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통해서 나아가거나, 아니면 빙 돌아서 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통해서 나아가거나 돌아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숨어 계십니다.

우리는 수단↓들을 통해서 나아가야 하며, 장애물들을 돌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1) 하늘/대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을 통해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은혜의 증거들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서 나아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그의 계시의 수단을 통하여. 그에게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고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빙 돌아서 가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침체되게 하는 활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도망가고, 돌아서/피해서 가야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세상과 말씀에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를 지극히 민감하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침체되게 하고, 눈을 가리며, 하나님을 찾고 싶지 않게 만드는지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로부터 떠나고, 그로부터 돌아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사야 55:6)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욥기 8:5)

 

구하는 것은 부르는 것과 간구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오 주님, 저는 눈이 먼 자와 같이 어두우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를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주의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주님을 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입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편 10:4).

 

따라서, 주님을 구하는 데 있어 겸손은 필수적입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을 향한 위대한 약속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그를 찾게 될 것입니다.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역대상 28:9)

 

그리고 그를 찾았을 때는 큰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Seek the LORD, and his strength: seek his face evermore.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역

 

데이빗 윌커슨

https://www.youtube.com/watch?v=0lWovOW1Cbk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3:17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현대교회의 사역에 대한 개념은 부패 했습니다.

우리는 사역을 생각할 때

경력, 임명받은 사람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인도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사역자들은, 교회를 목회하고 기관을 세우고 관리한다고.. 행정적 측면으로 생각합니다.

사역자는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어떤 교단이나 조직이 사역자로 임명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감독이나 어떤 교단도, 누군가를 사역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류를 주지만, 그 서류가 복음의 사역자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역을, 효과나 크기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늘 여기 있는 우리 각 사람이

부름 받은 사역에 대해 얘기합니다. 고후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4:1 

 

 

 

 

바울은 모든 거듭난 신자가 하도록, 부름 받은 부르심을 말합니다.

가장 첫째 되는 부르심

바로 그 사역에서 모든 다른 경건한 열정이 탄생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임재 안에서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조용히 예배하는 것입니다.

헌신되고 집중된 예배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단지 바라보면서, 예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바라본다’ 단어는

매우 진지하고 강한 단어입니다.

단지 한 번 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어로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부름심이다”

‘내가 그외 다른 것을 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 전에

나는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있다가 해야 한다.

나는 그 분의 임재 가운데 받은 것으로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이 나를 변화 시킨다. 나는 변화되어 왔다.

 

나는 신학교에서 이것을 받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이것을 받지 않았다.

나는 홀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것을 얻었고

나는 그 분께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것이 내 생명이 될 것이다.’

 

내 생명이 중요하다면 “내 생명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며 그냥 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경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하도록 부르신

한 가지를 하려고 할 것이다.

 

예수님과 홀로, 그 분의 임재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예배하며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것이다.’

 

그것이 바울이 얘기했던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다른 말로 우리가 응시하는 것처럼

우리가 시선을 고정해서 보는 것입니다.

단지 지나치며 힐끗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십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변화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께 심령과 생각을 여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로 나아갈 때마다, 변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느끼거나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홀로 시간을 보낼 때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그 분을 바라볼 때

 

첫 번째로 일어나는 일은

주님의 영광에 우리가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를 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눈이 멀었었는가?

‘변화가 계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마치기전에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건물에 있는 모든 사람들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는 변화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변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성품은, 우리 마음을 차지했던 것에 의해

형성되고 변화됩니다.

 

무언가 당신의 심령을 차지하는 것,

당신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

당신이 추구하고 있는 한 가지

그것이 당신의 성품을 형성할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영혼에 먹이는 그것이

당신을 변화시킵니다.

당신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게으른 그리스도인들

제가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는 한 가지,

제 심령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그것은 제게 어떠한 요구(갈망)도 없는 편안함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게을러졌습니다.

저는 말씀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 영적 성장이 멈춘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반대의 길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시력을 잃어서, 예수님의 얼굴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죽기를 바랄 것입니다.

 

제 삶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 얼굴을 지성소에 두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게 하소서.

 

당신이 지금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면

시련을 직면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당신을 그 (얼굴을 바라보는) 사역에 두신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불평함으로 그 사역에 방해를 가져오지 말라.

불평함으로 그 사역에 방해를 가져오지 말라.

 

여러분은 준비해야 합니다.

충격이 오기 전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성품을 가져야합니다.

이 교회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심령을 준비 하십시오.

“네 사역은 이제 홀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를 예배하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일에든지 준비될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발하는 광채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을 발하는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이들이 떨어져 나갈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사역이고 저의 사역입니다.

 

▲제가 천국에 도착하고 생명책이 펼쳐질 때

주님은 제가 세웠던 건물이나 기관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대형 전도 집회에 대해 말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광채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중에, 마음의 고통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다가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난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압도되면 안될텐데.”라고 말하며

어떤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동행해 왔다면...

당신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때로 저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 중 어떤 이들,

가장 부드러운 사람들이

굳건한 반석과 같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들이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과 동행한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약속 안에 있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일을 통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이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