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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득이 되면, 내게도 득이 된다

LNCK 2015. 4. 3. 22:39

하나님께 득이 되면, 내게도 득이 된다                창22:1-14                    2015.03.15.설교 스크랩

                                                                             *원제목 :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준비하신 것

 

 

 

 

▲아브라함은 똑똑한 아들을 두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면서, 아버지에게 하는 질문은 똑똑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주 합리적인 사고에 기초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똑똑한 것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똑똑함으로 답변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답변했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시리라

이 말에서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이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최대한 똑똑하게 키워야 되지만, 그것만으로 되지 않고, 믿음으로 키워야 됩니다.

인간의 똑똑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똑똑함은 유전될 수 있지만,

믿음은 친히 본을 보여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친히 믿음의 본을 보임으로써, 이삭에게 믿음을 가르쳤습니다.

믿음은 책상머리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시련을 통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이 모리아산을 올라가면서 믿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배우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를 봐야 되기 때문이에요.

 

믿음을 배우는 데에는 위험이 수반됩니다.

위험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에요.

 

만일 아브라함의 믿음이 틀렸다면, 그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의 믿음이 틀렸다면, 베드로는 물위를 걸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의 믿음이 틀렸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다 죽었을 것입니다.

 

믿음을 배우려는 사람은 심장이 튼튼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갖는 과정에, 심장이 멎을 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믿음이란 How(어떻게)를 아는 것이 아니고, that(그럴 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양을 준비하실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양을 준비하실 줄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는, 모리아산으로 올라가 보면 알게 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믿어야, 그 가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어요.

아버지가 믿지 않으면, 어머니라도 믿어야 되고,

아들이 믿지 않으면, 딸이라도 믿어야 되고, 며느리라도 믿어야 됩니다.

누군가가 믿어야 됩니다.

 

완벽한 믿음을 가진 가정은 드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디모데에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는 믿음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것이 디모데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둘이 아니라면 하나라도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 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올라간 사람은, 사라가 아니고 아브라함이었어요.

왜 우리는 자식을 믿음으로 키우는 일이, 어머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요, 하나님을 제한하고, 사람을 제한하고,

아버지를 제안하고, 아버지 됨의 기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 번제할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주 중요한 구절이에요.

아브라함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나 이삭을 위하여 양을 준비하시는게 아니고,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 아브라함에게도 유익이 되고 이삭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해관계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아요.

하나님에게 유익한 것이 사람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에게 유익한 것이 사람에게도 유익하고, 하나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사람에게도 득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사람을 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해와, 인간의 이해는 엇갈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번제할 양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들의 생명을 건질 수가 있는 것이고,

이삭은 자기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유익한 것이 사람에게도 유익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해관계는 엇갈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을 위한 것과 우리를 위한 것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니

 

이런 식으로 영광은 하나님이 취하고, 우리는 고생을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물론 이렇게 사명을 이루기 위한 특별한 고난의 시기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사람이 희생을 받는 조건으로 당신이 영광을 얻으려고 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돈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는게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우리의 소유는 줄어들고 하나님의 소유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까워서 어떻게 헌금을 하겠습니까? 내 것은 줄어들고 하나님 것은 늘어난다는데..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결국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어떤 소년이 엄마가 싸준 오병이어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릴 때, 예수님이 그 소년의 도시락을 탐낸 것입니까?.

아니에요. 예수님이 그 오병이어를 받아 사례 하시고 다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 부스러기가 12 광주리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자기를 위하여 떡을 만들라고 부탁할 때

엘리야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탐낸 것입니까? 아니에요.

그 과부가 그렇게 순종했더니, 이스라엘에 비가 올 때까지

그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림으로 내 소유는 줄어들고, 주님의 소유가 많아지는게 아니에요.

주님의 소유가 많아질수록 내 것도 늘어납니다. 하나님에게 득이 되는 것이 내게도 득이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삶을 바쳐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지만, 우리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시간, 내 힘, 내 젊음 이것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이익을 취하시고,

나는 시간을 뺏기고, 힘을 뺏기고, 내 젊음을 받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렇게 생각해서 어떻게 주님을 섬기겠습니까? 아까워서.

 

옛날에 자식이 여럿 있는 집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의대를 보내고, 법대를 보내고

공부 못하는 아이를 신학교에 보내서 목사를 시켰다고 한 것처럼 뭐와 다릅니까?

아까운 마음이에요. 아까워하는 것입니다. 안 드릴 수는 없는데 아깝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아까워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레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까워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우리 소유는 줄어들고, 하나님의 소유만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까워하는 것입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에요.

 

그 반대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 것이 늘어날수록 내 것이 늘어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수록, 내게 기쁨이 되고, 복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수록, 내가 함께 기뻐하고 우리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이 높아지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준비하시는 것 속에, 우리의 몫이 포함돼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준비하시는 것 속에, 우리의 몫이 포함돼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것은, 저희 아버님의 월급날이에요. 저희 어머니에게는 가장 기쁜날이었어요.

아버님이 월급봉투를 통채로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가 흡족한 얼굴로 월급봉투를 열어서

그 월급을 꺼내서 세셨습니다. 이미 봉투에 얼마라고 써있는데,

그것을 손에 침을 튀겨가면서 한 번 세고, 한 번 더 세신거 같아요.

 

어머니의 얼굴에 흡족함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월급은 아버님이 버셨는데 쓰는 건 어머님이 쓰셨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몫. 그 하나님의 몫 속에 우리의 몫이 포함돼있습니다.

하나님 것 속에, 내 것이 있습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면 안 되고, 하나님의 것을 먼저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내 것이 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내게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내게 유익이 됩니다.

 

번제할 어린양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에요.

사람이 준비한 어린양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준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것은, 하나님 당신에게 기쁨이 됩니다.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노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린양은 우리에게 생명과 축복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