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0~2001 그 이전

동반자적 협력선교

LNCK 2015. 7. 3. 12:39

동반자적 협력선교                17:18                  출처보기

 

1996한인세계선교대회 中 / 1996.7.22-26 빌리그래함센터 / 휫튼대학

 

 

동반자적 협력선교란?

 

동반자적 협력선교란, 선교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기본적인 방식에 대한 논의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선교 형태입니다.

 

성경대로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도, 협력을 선교의 기본 형태로 취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구원사역과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역사 안에서 수행되는 하나님의 사역은,

개개 인간들과 동반자적 협력을 통해서 진행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한 출애굽의 성취, 가나안 정복,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들을 택하셔서, 그의 뜻을 구현시키신 것,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협력적으로 그의 일을 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선교를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파송하셨던 것입니다. 17:18

 

주님께서 제자들을 선교 훈련시키실 때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고, 훈련시키심으로써,

선교의 기본적인 패턴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바울도 누가나 마가 같은 동역자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협력 선교를 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선교를 관찰해도, 선교는 협력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어져 왔습니다.

개신교 선교가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것은, 17세기에 경건주의자들이 사람을 내고,

덴마크 정부가 선교비를 담당해서, ‘데니쉬-할레 미션’(Danish Halle Mission)을 창설한 것이,

개신교 선교의 기원으로 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윌리엄 캐리 이후에 일어났던 본격적인 개신교 선교 역시,

선교의 비전을 가졌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초교파적으로 선교회를 조직하고, 선교했던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와서 열려온 수차례의 세계선교대회를 보더라도,

그 주요 내용이, 선교의 협력에 있었습니다.

 

1910년 에딘버러 제1차 세계선교대회도,

'어떻게 세계 복음화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 관심사였습니다.

세계선교의 위대한 과제 앞에서, 어떤 개인도, 교회도, 선교회도,

자기 혼자 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1947년 제4차 세계선교대회도, 그 같은 취지 아래 모였던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였던 서구 여러 나라들이,

서로 적대하고 전쟁을 끝낸 후에,

 

특별히 기독교 국가였던 독일이 범한 가공할만한 부도덕적 행위가,

여러 가지 야만적인 행태로 인해서, 서구 기독교의 도덕적 위신이 추락하고,

서구 교회 지도력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1947년에 세계선교대회가 모였었던 것입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제시된 방식이 역시 <동반자적 협력 선교>였습니다. Partnership In Obedience

동반자적 협력 선교가 강력하게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선교에 세계교회의 동역성을 강조하고, 선교에 초국가적 성격을 밝히고,

친권주의 극복을 강조하고,

친권주의란 선교하는 교회가, 가부장적인 권위와 사고방식으로 사역하는 것을 뜻합니다.

백인들의 일방적인 부담감의 해소를 주장했습니다.

 

오래 동안 백인교회가, ‘선교가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일방적인 부담감을 안고 했기 때문에, 때때로 많은 무리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세계 교회들의 협력 사역이지, 백인들의 일방적인 부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선교한 교회와, 피선교지 교회를 구별하지 않는 것. 즉, 세계 모든 교회들의 영적 동등성.

선교를 위한 모든 자원의 활성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전적 헌신의 강조.

이 말은, ‘자기 인종이나, 자기 교파나, 자기 교회에 대한 우선적인 헌신보다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헌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신도의 역할 개발등이, 이 선교대회에서 강조되었습니다.

 

 

서구교회와 2/3세계교회의 동반자적 협력

 

그런데 진행되고 있는, 선교구도의 변화에서도, <동반자적 선교의 필요성>을 모두가 절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인구의 분포가, 전통적인 서구교회 위주로부터,

점점 2/3세계 쪽으로 그 분포가 역전되면서,

 

서구교회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로 진행되던 일반적인 세계선교가

이제는 오히려 2/3세계 쪽에서, 혹은 세계 모든 교회가 모든 세계를 위해서, 함께 선교해야 된다는,

그런 세계선교시대로 돌입하고 있으면서,

온 세계에 교회들의 동반자적 협력선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세계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가요?

몇 가지 기본적인 형태가 이렇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1) 첫째는 교육적 협력입니다.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피차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선교 정보 교환입니다.

 

3) 재정적인 협력입니다.

 

4) 기술 협력입니다.

 

5) 기도의 협력입니다.

 

6) 마지막으로, 여러 사역의 협력입니다.

교회 개척이나, 사회 봉사 등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1. 이 같은 세계 교회의 동반자적 협력의 차원을 생각할 때,

첫째로, 우리는 서구 교회와, 2/3세계 교회들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점점 2/3세계 교회들의 선교사가 증가하고,

2/3세계 교회의 선교적 주도력이 강조된 단계에 접어들면서,

어떤 서양의 선교학자까지도, 이같은 현상이 세계 선교를 촉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96년 강의임. 지금은 벌써 그렇게 되었죠.

 

왜냐하면,

1) 2/3세계 교회들이, 세계 선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때에

선교비가 절감된다고 생각합니다.

 

2) 또한 2/3세계 선교사들이, 열악한 선교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3) 2/3세계에 잔존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 때문에,

2/3세계출신 선교사들이 선교를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2/3세계 선교사의 약점도 심각합니다.

최근에 나오는 여러 가지 보고에 의하면, 2/3세계 출신의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일찍 그만두고, 혹은 실패하는 비율이

서구선교사들보다 높다는 발표가 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는, 2/3세계 선교사들이,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고 나가거나,

미비된 훈련을 받고, 선교현장에 나가기 때문에, 선교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초기에 선교사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3세계 교회의 선교 경험의 부족 때문에, 적절한 선교 훈련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 경험과 지식에서, 우리는 서구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론은 현장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오래 동안 선교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서구 교회의 도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서구 교회의 경험과 지식과, 2/3세계의 선교적 자원이 협력할 때,

세계 선교가 더욱 활성화 될 것입니다.

 

2. 둘째로, 2/3세계 교회와, 우리 한국 교회, 특별히 선교사들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대부분 관계된 선교지역은, 주로 2/3세계인데,

2/3세계 교회와 우리의 협력은, 주로 선교사를 통해서 중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1970년대 초에, 선교계의 모라토리움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선교사는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일종의 서구선교사에 대한 거부운동이었지요.

그때 라틴아메리카의 파브 라는 사람이 낸 문서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교사여, 돌아가던지 머물던지 하라.

만일 그대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그대가 여기까지 가져온 문화적인 습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르친다면,

그대는 돌아가야 한다.

 

만일 그대가, 희망도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불공평한 고난에 시달려,  *당시 남미 독재 정권 상황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의 사건들과, 불안과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국적에 대한 충성과 성실이, 권세있는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순종보다 더 강한 선교사는, 돌아가야 한다.

 

그대가 구하러 온 이런 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없다면, 그대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대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것과 같은 오류를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사람들과 교회가 성숙해지고, 독립하고, 책임감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기뻐할 수 없으면,

그대는 돌아가야 한다. 그런 것들이 그대가 돌아갈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징조들이다.

 

그러나 그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진통기의 모험과 고통을 견뎌나갈 용기가 있고,

복음이 오늘 시대의 희망의 선포와 정의일 뿐 아니라,

이미 역사를 변화시키고 있는 희망과 자유에 대한 선포의 확언이라는 것을 아는 기쁨을

 

우리와 함께 경축하고, 이제야 겨우 눈뜨기 시작한 우리와 함께 봉사하는데,

시간과 그대의 소중한 것들과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대는 머물러야 한다. 가서는 안 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리스도가 주와 개척자가 되어, 수행하는 위대한 일들을 위해, 손과 귀가 너무도 부족하다.’

이것이 1970년대 초에 모라토리움(선교사 배척)’ 운동이 일어났을 때 발표된 문서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이 용어는 지불유예선언인데, 빌린 돈 못 갚겠다는 뜻으로 쓰임. 같은 말이나, 약간 다른 의미

 

우리가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선교하는 입장에서 뿐 아니라,

선교 받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들을 가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월감

 

서구 선교사들이 위대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들의 선교에 흠으로 지적되는 것 한 가지는,

현지 교회나 지도자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데서 오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일들입니다.

 

모라토리움과 같은 심각한 반발이 나온 사태에 대해서,

서구 선교사들의 근본적인 실책 중 하나로,

허버트 케인은, 선교사들의 인종적, 문화적 우월감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아더 그래스는 선교사들이, 현지인에게 외인으로 느끼게 한 것.

Foreigner로 느끼게 한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동료가 아니고, 친구나 협력자, 동역자이기 보다는

주인, 선생, 지배자, 상급자, 지시자 같은 자세와 사고방식이

현지인에게 이질감과 거부감을 가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잘난 척 하고, 아는 척 하고, 돈 있는 척 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인간사회에서야, 더했으면 더하겠지요.

 

선교사들은, 피선교지의 교회와 입장에서

자신의 일과 역할을 생각하면서 사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네비우스 선교방식으로 알려진 ‘3자 원칙

즉 자치, 자립, 자전의 원칙을 적용해서 튼튼한 교회로 성장하고 부흥했다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들은, 그같은 원칙과 역행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지적을

우리가 근래에 듣고 있습니다.

 

현지 교회의 자율성을 중시하지 않거나, 지나친 선교비의 지원,

현지 사역자 양성의 지연, 현지 교회와 분리된 사역들이

그같은 지적들을 듣게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 가운데, 저는

두 분의 이상적인 선교사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분은, 한국에서 사역했던 호머 헐버트 선교사입니다Homer B. Hulbert, 1863-1949

 

서울 양화진 외인 묘지를 찾을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대단히 인상적인 묘비 하나가 있습니다.

묘비에는 그분의 출생연도와 소천연도가 나와있고, 그 아래에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18631월 미국에서 탄생, 194985일 서울에서 별세.

Man of Vision, Friend of Korea

나는 웨스트민스트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1886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그를 아는 이들에 의해서

한국인의 친구라고 새겨졌던 이 분이야 말로 진정한 선교사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소에 나는 웨스트민스트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렇게 말했던 이 분의 정신과 삶이,

우리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이분을 친구, 동역자로 여기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국 웨스트민스트 성당에 실제로 묻힌 한 선교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도 비범한 것입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서 대륙과 바다를 건너온 선교사, 여행가, 자선사업가.

데이빗 리빙스턴이 여기에 안식하다

 

그 밑에 몇 줄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숨을 거둔 후에 토인들에 의해서,

14일동안 그의 시신이 아프리카의 더운 햇볕과 바람에 건조된 후에,

토인들에 의해서 9개월에 걸쳐서 그의 시신이 런던으로 운반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정글 속에서 이 시신을 짊어지고 강까지 와서,

카누를 타서 항구까지 나오고, 배에 태워서 런던까지 9개월이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1874418일 토요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운집한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리빙스턴이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무지목매 했던 토인들이, 리빙스턴을 이렇게 짊어지고 왔다는 그 사실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선교사였는가.. 그야말로 진정한 토인의 친구였고, 협력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

 

리빙스턴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선교의 정신은 주님의 정신과 같다.’

그래서 그는 항상 종으로, 섬기는 자로, 친구로 사람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동반자적 협력은,

전도에 힘쓰고, 빈곤극복에 협력하며, 그들의 사역에 빨리 적응하며,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기를 원하고

진지한 그리스도인임을 자기 삶을 통해 보여주며

현지 언어에 능숙하기를 바란다..’ 이런 몇 가지를 그는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선교사

현지 교회 지도자나, 교우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를 잘 구사하며,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견과 태도를 존중해 주며,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 같은 선교사,

 

그리고 그들의 일에 분명한 지식과 능력과 의욕을 가진 선교사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앎과 사역과 인격, 이 세 가지 면에서 훌륭한 선교사를 그들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과 삶입니다.

어떤 것에서나 주인이 아니고, 협력자나 친구로서

현지교회 사역자들과 함께 사역하며,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실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교회관을 나누는, 선교사가 되기를 힘쓰는 것이

좋은 동반자적 협력선교를 하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적 제안

 

그래서 선교사가, 현지교회와 잘 협력하고, 성숙한 현지인 교회를 육성하기 위해서

실제적으로 이런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1) 첫째, 선교사는 일시적으로 주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너무 일찍 떠나도, 너무 늦게 떠나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빨리 필요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능한 선교사입니다.

2) 현지인이 하거나, 할 수 있는 자리를, 선교사가 차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친구나 섬기는 자의 자세를 유지하며, 현지인들에게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먼저 신뢰와 예절을 구축하도록 하고, 친해지기까지

서두르거나 무례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5)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하지 말고, 매사에 겸허하고 친절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현지인을 높여야 합니다. 자신의 업적보다

현지인의 업적과 명예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6) 언어, 문화, 관습에 빨리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7)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8) 성육신적 영성과 생활양식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그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태도를 고수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로 가라. 그들과 함께 살아라. 그들로부터 배우라. 그들과 함께 계획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라.

그들이 아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고, 그들이 가진 것 위에 세워나가라.’

우리가 선교하면서, 기억해야할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민족 교회끼리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우리끼리의 협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교의 주도적 역할이 점차적으로 2/3교회 쪽으로 온다고 하지만

사실 그 핵심은 한국교회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세계선교의 주역은, 우리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선교자원을 증대시켰고,

고난 중에 성장한 우리의 약소민족 교회의 독특한 영성,

또한 온 땅에 흩어져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 이런 것들이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한국교회가

선교 협력을 위해서 당면한, 현실적인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신학적 차이를 극복해가는 것입니다.

세계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도 선교신학적으로 다른 입장이

선교를 여러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흔히말하는 Evangelical(복음주의), Ecumenical(교회일치) 또는 Pentecostal(오순절파) 선교신학적 차이가

우리 선교를 분화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참으로 복음적이고, 참으로 협력적이고,

통전적으로 우리 선교신학을 결합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2) 교파간의 협력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파간의 경쟁과 갈등은 선교에 큰 저해요소가 됩니다.

선교 현장에서 같은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면서, 교파가 다르다고,

불필요한 갈등과 무모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비선교적 행태입니다.

 

장로교 선교사가 장로교 적으로 선교하고,

감리교 선교사가 감리교 적으로 선교하고,

다른 교파 선교사가 자기 교파 특징적으로 선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쟁과 반목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선교회(파송 단체)간의 협력도 더 원활해져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선교회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서양선교사들 중에 92.2%

국제적 선교단체에 의해서 파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렇게 해외선교가 (초교파)선교단체들에 의해서 주도된다면,

선교단체간의 협력은 더욱 더 심화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3) 교회와 선교회 간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개신교회가 세계선교를 시작할 때, 선교회가 그 중심 자리를 차지하면서

교회와 다소 분리되어 출발해 왔습니다.

선교회 주도로, 해외 선교가 진행되어져 왔습니다.

 

이같은 역사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회는, 교회와 선교회가

서로 경쟁적으로 서로를 인식해 온 측면이 다소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선교단체와의 경쟁과 불일치는

많은 선교 자원과 시간의 낭비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로, 세계선교를 지향하는 이 시점에서

교회와 선교회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과제가

대단히 중요한 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세계선교를 위하여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교회의 연결, 그리고 협력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한인교회나 선교단체 끼리의

원활한 정보교류, 공동사역과 협력이

한민족교회 선교사역을 훨씬 더 활성화 시킬 것입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고, 복음화하는 선교는

하나님과 사람들, 세계 교회들, 세계 선교회들

그리고 21세기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흩어진 한국 디아스포아 교회들의

동반자적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같은 선교는 우리 모두의 겸손과

주님을 향한 순수하고도 온전한 복종에 의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세계 선교의 위대한 역할을 우리가 기대 받을수록 우리는 철저한 겸손으로

이 위대한 책임을 수행해 가야 할 것입니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가 폐막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에딘버러 대회의 폐막이, 세계선교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번 한인선교대회의 폐막이, 한민족교회의 선교가 보다 동반자적 협력선교를 이루는 선교로 발전하는

획기적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1) 데이빗 리빙스턴 선교사의 묘비를 보고, 은혜 받은 또 한 사람의 이야기

http://blog.daum.net/rfcdrfcd/15974933 여기 후반부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