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계21:1-8 김성수 목사님 계시록 92강, 출처
제가 2년 반 동안 거의 매번 설교 때마다 그토록 외쳤던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디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망도 슬픔도 눈물도 아픔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그 말은 지금의 이 땅과 하늘은 사망과 눈물과 아픔과 고통의 땅이라는 말이지요.
이 땅은 이제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던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렇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반드시 올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징적 해석
※계시록 해석의 큰 2가지 토대가 상징적 해석이냐, 문자적 해석이냐로 나뉘는데,
이 설교는 ‘상징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1절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는 구절을 보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살고 계신 이 땅과 많은 시인들이 감탄 속에 노래했던
저 청명한 하늘이 다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 정말 믿겨 지십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이 땅과 하늘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발전시키고 개선시켜서 오래 오래 유지시키려는 시도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잘하고 계신 것입니다. 분명 교회는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꼭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그러한 노력을 허락하시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변화시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라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너희들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과 하늘은 없애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당위성을
성도들의 삶을 통해 차곡차곡 쌓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독교가 탄생한 이래 수 천년동안
교회의 표어로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것이 바로
‘성도여 일어나 빛과 소금의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변화 되었나요? 기독교인들의 애씀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영향을 받아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빛으로 소금으로 잘 살아내면, 정말 세상은 감동을 받고 변화가 될까요?
정말 의인들의 삶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의인인 노아가 살던 시대에 세상 전체를 물로 심판하신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의인인 노아를 오래 오래 살게 하셔서(그 때는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았으니까)
그의 삶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기회를 좀 더 주시지 않으시고
노아의 여덟 식구만을 택하시고 나머지를 전부 몰살 시키셨을까요?
이 세상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사단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한 덩어리의 악의 유기체입니다.
하나님은 그 세상을 성도의 삶을 통해 변화시키시기 위해
성도들에게 빛과 소금의 삶을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을 통해 그 사단의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더럽고 불가능한 세상인지를 폭로시켜서
심판의 근거를 마련하여 그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
성도들에게 빛과 소금의 삶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성도가 이렇게 빛과 소금의 삶으로 권고를 해도 콧방귀도 안 뀌더라.’
이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올바른 행실을 통하여 증명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세상을 심판하셔서
불로 소멸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우리에게 유업으로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옛 것들은 모두 사라질 한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이 붙들고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옛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그 옛 것들을 놓아 가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옛 것이 아닌 새 것을 소망하는 새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전1:8-10)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눈을 두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벧후3:5-13)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계6:12-17)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땅의 것들을 추구하던 자들을 대표적으로 상징)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렇게 이 세상은 끝이 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그리고 그 죄의 원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업적들과 역사는
종국에는 불과 같은 시련 속으로 영원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땅의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지만 자기의 해골을 꼭 약속의 땅으로 가져가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해골마저도 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 묻히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심판의 불은 죄를 향해 마치 자석처럼 끌려서 그 위에 쏟아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심판의 불을 맞지 않을 수 있는 자들은, 그 죄의 문제가 해결 된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한 무리를 택하셔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다가 안전하게 넣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불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는 그 진노의 불을 맞고 죽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맞아야 할 진노의 불을
내 아들이 다 맞았다. 이제 너희는 자유다’라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 속에 죄의 오염과 부패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옛 것에 속한 오염과 부패성을 지속적으로
이 땅에서 불로 태워 버리십니다.
성도들이 그 오염과 부패성을 소유한 채
절대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그들의 삶 속에 불 시험이 들이 닥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있을 영원한 불 시련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작은 불 시험들로 그것들을 미리 태워 버리시는 것입니다.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불 시험, 고난은 우리가 죄를 그치게 하는 방법이요,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여러분, 은혜 받았다는 말씀들을 자주 하시는데
어떨 때 주로 ‘은혜 받았다’는 말을 하십니까?
눈이 빠지게 울었을 때?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씀을 들었을 때?
성경은 고난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 고난이 우리의 죄를 그치게 하고 우리의 거룩에 방법으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기 때문에
고난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난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은 저마다
‘나 은혜 받았어.’라고 자랑하고 다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옛 것들이 다 멸해지고 새 것들의 세상이 오게 되는데
‘그 새 세상은 지금의 이 옛 세상과는 비교할 수없이 정말 좋은 곳’이라고
성경 여러 곳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35:4-10)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사51: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사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 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면 과연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식으로 오게 될 것인가요?
제가 서두에 옛 하늘과 옛 땅은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분명 본문 말씀에도 ‘옛 하늘과 옛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정말 말 그대로 옛 하늘과 옛 땅이 전부 소멸되고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우주가 창조 될 것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 현대 신학은 ‘완전 소멸설’과 ‘갱신설‘ 두 가지 이론 내 놓고 있습니다.
‘완전 소멸설’은 지금의 이 땅과 하늘은 모두 소멸 될 것이고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창조 될 것이라는 주장이고,
‘갱신설’은 지금의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오지만
그 새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어떤 연속성을 공유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갱신이라고 해서 지금의 세상을 조금 고쳐서 쓴다는 말은 아닙니다.
루터교 신학자들은 옛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완전소멸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옛 하늘과 옛 땅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옛 땅과 옛 하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연속적인 면이 전혀 없는
그런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 올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루이스 벌콥이나 안토니 후크마, 필립 휴즈를 비롯한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갱신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조금 의외지요?
갱신설의 주장에 따르면
1)그들은 베드로 후서 3장 13절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쓰여진 ‘새 것’이라는 단어가
'neos'가 아니라 ‘kainos'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헬라어 ’neos'는 시간과 기원에 있어서 전혀 새 것이라는 뜻인데 반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쓰인 ‘새 것, kainos'는 본성이나 질에 있어서 새롭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과 벧후3:13절에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하늘과 땅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우주의 출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주와 동질이되, 영화롭게 갱신된 우주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2) 그리고 그들이 완전 소멸론보다도, 갱신론을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는
로마서 8장에 나타난 바울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롬8:19-23)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여기 보시면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필립스 번역은 23절의 ‘기다리다/아페크데코마이’를 ’발꿈치를 들고 기다리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참 처절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아페크데코마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간절하게 학수고대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피조물들이 하나님 백성들의 구속을 너무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면
피조물들이 모두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이 모든 부패에서 자유하게 되어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는 일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발꿈치를 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소멸될 것이면, 왜 피조물들이 발꿈치를 들고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을 썼겠느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절대 피조물들이 다 소멸되고 전혀 다른 새 것들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갱신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지금의 우주와 전혀 상관없는 그러한 곳일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연속성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세 번째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신자들의 부활한 육체를 생각해 보면
분명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의 우주와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인간은 육체를 입고 부활을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부활의 육신은 지금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나’가 부활하는 것이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어떤 다른 존재가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활의 육체는 지금의 ‘나’와 연속성이 있는 육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인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육체를 입고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추적 방법을 통해 볼 때, 새 하늘과 새 땅도
이 우주와 전혀 다른 종류가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새롭게 변한 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의 이 땅과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가진 땅이라는 것입니다.
4) 네 번째로 갱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완전 소멸론을 거부하는 이유는,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이 땅이
사단의 방해로 완전하게 소멸시켜 버릴 수밖에 없는 땅이 된다면
결국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사단이 하나님께 승리를 거두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완전 소멸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사단이 현재의 우주와 창조질서를 치명적으로 부패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현재의 창조세계는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으며
하나님도 병든 우주를 어떻게 다루실 수 없어서 결국 완전히 소멸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결국 사단이 하나님의 일을 완벽하게 방해한 꼴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갱신(更新)론 자들은 사단이 그토록 부패시키려고 힘썼던 바로 이 땅을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사단의 악한 음모의 결과들을 이 땅에서부터 완전히 제거하시는 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유(만물)의 회복
(행3:19-21)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여기 보시면 하나님은 만유를 회복하실 거라고 합니다.
(엡1:8-10)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도 보면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것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애나케 팔라이오/재통일’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훼손되고 어그러지고 왜곡된 것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되는 것, 그것을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의 우주와 전혀 다른 우주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우주가 영화롭고 새롭게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갱신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서나 계시록에서 옛 하늘과 옛 땅이 없어진다는 구절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이
죄악과 어두움을 상징하는 바다가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의 상태가 되듯이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고 훼손되고 어그러진 옛 땅의 삶의 원리와
그 원리가 토해 낸 역사가 완전히 물러간다는 의미에서
‘옛 하늘과 옛 땅이 없어진다. 불에 탄다’라고 상징적으로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릴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라는 거죠.
그러나 그 곳은 지금처럼 자연계가 있고, 문화가 있으며,
육체를 지닌 자들이 누릴만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화란의 조직신학자인 루이스 벌콥은
‘현재의 생활 중에서 인간 존재를 자유케 하는데 공헌한 것들은
무엇이든지 새 땅에 그대로 유지 보존 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천국은 신선처럼 구름 타고 날아다니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김성수 목사도 그 갱신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인간과 피조물을 성령으로 묶으셔서
인간이 그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 아래서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할은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시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만물을 통일시키시고
그 만물을 실핏줄처럼 하나로 연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성령은 만물을 하나로 통일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다른 말로 왕 노릇을 해야 할 인간이 타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여있던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땅이 그들이 죄 짓는 데 동조를 했나요?
그런데 왜 땅이 저주를 받지요?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식물들이 길을 안내해 줬나요?
그런데 왜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까?
피조물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성령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을 하자, 전부 함께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끔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저주받은 세상이 타락한 인간의 구원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단이 타락시켜 놓은 그 질서를 다시 회복시키셔서
‘애나케 팔라이오/재통일’시켜 놓은 세상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타락할 수 없는 세상, 다시는 죄에 의해 왜곡되거나 훼손될 수 없는 세상,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즐거워 하는 자들만이 존재하는 그곳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마치는 말
▶지금까지 소멸(消滅)론이 무엇이고 갱신(更新)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떤 것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멸(消滅)론이 맞느냐, 갱신(更新)론이 맞느냐를 구분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새것이면 어떻고,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갱신된 것이면 어떻습니까?
이제 그곳에는 죄가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곳은 죄가 소멸되고 죄의 열매로 주어진, 사망과 그 사망의 증상들인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다 사라진 그런 순결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갱신론에 의한 새 하늘과 새 땅이든
소멸론에 의한 새 하늘과 새 땅이든
지금 죄의 원리인 힘의 원리로 운영되고 있는 이 세상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집중을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곳은 나를 비우고 나를 죽여서, 남이 유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십자가의 원리로 살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땅에서
그 죄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십자가의 원리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옛 하늘과 옛 땅에다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새로운 피조물’들을 이미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그 삶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었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났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새 것으로 살게 될 새 사람들이 벌써 이 땅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의 원리를
지금 이 땅에서 연습하고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들은 어떻게 산다고요? 자기만을 위하여 힘의 원리로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의 원리로 사는 새 사람의 연습을 이 땅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벧후3:10-14)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러니까 여러분이 궁금해 해야 할 것은 소멸이냐 갱신이냐가 아니라
나는 지금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부지런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분명 새 하늘과 새 땅은 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믿음으로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느라
정작 중요한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해 아래 새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새 것들이 옛 것들을 추구하며 산다면 그 것은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살며 연습하며, 훈련할 수 있는지,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갖고 있는 영적 의미에 관해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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