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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리더십 (재발행)

LNCK 2017. 1. 1. 08:51

기도하는 리더십 - YouTube

기도하는 리더십         막4:32                09.08.29. CBMC 한국대회 (부산 벡스코)

출처 http://www.cts.tv/program/list.asp?PID=P215&DPID=102863&Order=   #319

 

도서 <하나님의 대사>의 저자이신 김하중 장로님의 놀라운 삶은,

그 바탕에 '중보기도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모든 승리는 다름 아니라, 중보기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복을 받은 것 같은데.. 혼란 가운데 사는 사람들

 

▲성공했지만, 불안초조하게 사는 사람들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애타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를 희망하고, 높은 자리에 이르기를 꿈꿉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갖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타게 바라던 성공을

노력을 많이 했든지, 운이 좋았든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적 네트워크’를 잘 구성해서인지,

자기가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공하신 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재산이 많으신 분들, 권력을 가지신 분들, 명예를 가지신 분들을.. 가까이서 만나 보았는데,

(안 그러신 분들도 많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분들의 마음속에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항상 그들은 마음속에 (안 그러신 분들도 있지만)

불안과, 걱정과, 근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마음속에, 남에 대한 미움이 많습니다.

시기심이 많고, 질투심이 많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갖든지, 명예를 갖든지, 권력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인데,

 

항상 불안하고, 항상 근심이 많고,

남을 늘 미워하고, 항상 사랑이 결핍된 그런 인생으로 사는 것을 볼 때,

‘과연 저것이 복 받은 인생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마 관리하고, 지켜야 될 분야가 많고,

또한 그것을 빼앗고자 하는 대적들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스트레스, 즉 근심과 미움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성공이라면, 다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원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기 원하고,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합니다. 좋은 집을 갖기 원합니다.

명품을 많이 갖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이

매일 불안과, 걱정과, 남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 성공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지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잠언에, 그(지혜)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의 길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잠3:16~17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안에서 누리고 사용하는

부귀와, 영원한 생명, 그 안에서 누리는 장수

이런 것들이 영원한 축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구하십시오,

하나님과 깊이 사귀고, 가까이 교제하는 일을.. (복보다) 더 사모하십시오.

 

부귀와 장수도,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내가 내 힘과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라면.. 불안 초조하기 쉽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 주시는 부귀와 장수.. 이것만이 참 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복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도, 혼란 가운데 사는 이유

마24장에 보면, 예수께서 말세의 징조를 설명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고,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런 현상들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그런 혼란을 겪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전심으로 믿음생활을 하지 않으면,

말세에 나타날 혼란에서, 그저 교인이라고 면제되지 않습니다.

 

또 기도생활을 하더라도, 그 기도가 영적인 기도가 되지 못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기도를 드린다면.. 여전히 말세의 혼란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욕심을 따라 기도하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누르고, 무시하고, 억압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내 속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든 일을 내 욕심에 따라 처리하려고 하니까,

우리가 성령님과 매일 친밀하게 교제/동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변을 못하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도 못 받습니다. (새벽/금식/철야기도를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나가서 기도하면서도.. 좌절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기도하다가

스스로 지치면서, 영적 침체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트라도.. 별 소용없습니다. 기도에 전념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가, 좋은 대학을 나오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자기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들 합니다.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까, 머리도 좋고,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니까,

자기의 지혜로, 미래를 예측하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고 발버둥치지만,

사람들은 크게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항상 올바른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런 사례를 여러분께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모험적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은,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대단히 모험적인adventurous 삶인데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①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어디로 가야 될지 알게 됩니다.

 

②우리는, 세상의 어떤 유혹과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경고하시고, 나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③우리는,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내 곁에 서서, 나를 도와주시고, 나와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④내공이 깊어집니다. 영적인 맷집이 단련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에 대해 위협하고, 비난을 하더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나를 인도/감동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종해야 되겠죠. 그러나 순종할 수 있는 힘도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탈북자들을 한국에 망명시킨 간증

 

과거에 제가 주중대사관에서 공사로 3년간 재임할 때,

탈북자들이 한국대사관에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대사관은 탈북자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정부와 마찰 때문이었습니다.

 

(제 회심은 1994년 북경 21세기교회에 다닐 때였고, 당시46세.

그 후 얼마 안 있어 1995년 외무부 아태국장으로 서울에 귀임했습니다. 

1997년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으로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 의전비서관으로 있다가)

 

그리고 제가 2001년에 (중국을 떠난지 6년 후에) 중국대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탈북자를 이렇게 계속 내버려두어서 되겠습니까? 탈북자를 우리 대사관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탈북자를 받으면,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몇 달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탈북자를 (대사관에서) 받아주어라’

그래서 제가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진입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탈북자가 대사관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중국정부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고,

중국 측과 엄청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고려해서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 절대로 북한 정부 편을 들었습니다. 잡히면 무조건 북송시켰습니다.)

 

주중대사관의 간부들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대사님, 탈북자들을 대사관에서 받으시면 안 됩니다.

그들을 받으시면, 앞으로 한중관계에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집니다.”

 

그래도 저는 (주중대사의 직권으로) 탈북자들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받으면서, 저는 계속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중대사로 있는 동안에, 탈북자 1천명만 받게 해 주십시오.”

(여기서 받는다는 뜻은, 한국으로 보낸다는 뜻을 포함함)

 

그래서 제가 대사관 전체 회의 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명예로운 사람이, 탈북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이 순간에,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사람은

나(주중대사)밖에 없습니다. 주중대사관 직원 우리들 밖에 없습니다.

 

나는, 대사직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이 탈북자들을 구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천명의 탈북자를 한국에 보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요.”

 

제가 2008년 3월 2일에,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어, 주중대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주중대사로 재임하는 동안에,  

한국으로 보낸 탈북자 수가 모두 몇 명이냐’고, 담당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대사관 직원들은,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 횟수가 435회에

한국으로 보내진 사람의 숫자는 1,065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좌중 일제히 박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운 교섭을 하고, 중국 측과 줄다리기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한 번은,

탈북자가 우리 대사관에서 170명이나 머물렀었습니다.

170명이나 머무르니까, 대사관 직원들이 근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장소도 비좁죠. 또 그들의 뒷바라지 하랴, 중국 측과 협상하랴.. 거의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금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안 보내줍니다.

하나님 정말 도와주십시오.

아무리 교섭을 해도, 교섭이 안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사부 문을 닫아라’

 

그래서 제가 한국 외무부에 건의를 했습니다.

탈북자 포화 상태로, 영사 업무 마비사태로, 영사부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본부가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사부 문을 닫으면,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발급하지 못하니까,

한국행을 바라는 중국인들이 발이 묶이는 것입니다.)

 

본부에서는 아무런 공식적인 회신이 없었습니다. 사적 라인으로 알아보니,

‘대사가 현지 사정을 고려해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부에서 그것을 허락했다가는,

나중에 한중관계에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사 직권으로 주중 대사관 영사부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지 않는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못 간다면, 중국인들도 비자 발급 중지로 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영사부에 탈북자들이 너무 많아서, 영사업무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 있는 한국 교포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문제로 크게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사부 문을 닫은 날은, 총 15일입니다.

15일 만에, 중국 정부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중국인들의 항의도 접수되었겠죠?)

‘탈북자 몇 명을 한국에 보내주면, 영사부 문을 다시 열겠습니까?’

‘60명만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먼저 탈북자 60명을 한국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물꼬를 튼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계속 매 회 60~80명의 대사관에 진입하여 망명을 요청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 제가 영사부 문을 닫아라고 명령하자,

우리 대사관 직원들이 깜짝 놀라했습니다.

‘어떻게 대사가 저렇게 담대하게 모험을 하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를 밝히자면.., 이것은 성령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대함이었습니다.

 

 

◑‘제 중보기도의 삶’ 나눔

 

성령의 인도/교제 가운데 살려면, 서로 사랑해야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시다고 하면서

마음에 사랑이 없고, 미움이 가득하면,

우리는 절대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대사로 있을 때, 장관으로 있을 때,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시간 반~2시간 반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제가 중보기도하는 사람은, 최소한 3백 명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혼자서 3백 명씩이나, 그것도 매일, 중보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주기도문을 다 외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초 정도 걸립니다.

주기도문으로 그를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OOO의 아버지여,

   OOO를 통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OOO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OOO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런 식으로 중보기도하면, 한 사람을 위한 기도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주기도문 식으로 중보기도하면, 숙달되면 1분에 4명도 중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1시간에 240명을 위해 중보기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으로 중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중보기도하면, 매일 3백 명도 중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년, 2년, 3년.. 10년 이상 이렇게 지속적으로 오래 동안

그를 위해 중보기도 합니다.

특별히 제 ‘중국친구’들을 위해서는, 정말 오래 동안 수 십 년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중국 고위관료들을 의미하는 듯)

 

매일 그를 위해 2번씩 중보기도하고, 14년을 그렇게 하면

그 ‘중국 친구’를 위해서 1만 번 이상 중보기도 한 셈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를 위해 1만 번 중보기도하면,

어떤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안 일어나겠습니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의 음성이 중보기도한 나에게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이다. 네가 가서 알려줘라!’

이렇게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저를 끊임없이 중보기도로 지키며 보호하고 있습니다.

 

94년 회심 후 지금까지 지난 15년 동안에

제게 무슨 중대한 일이 일어날 때는,

그 10명 중에 한 명이, 반드시 제게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미리 준비하게 했습니다.

 

지금, 제가 3백 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어떤 지시가 올 때에

‘조심하십시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언적으로 그에게 알려 줍니다.

안 좋은 일뿐만 아니라, 물론 좋은 일이 일어날 때도.. 미리 알려 줍니다.

그래서 그가, 기도로 미리 대비하게/깨어있게 합니다.

 

저는 하루 일과가 끝나는 밤10시 즈음이면,

기도실에 들어가서 오래도록 계속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성경보고.. 그렇게 하다보면 밤12시가 훌쩍 지나갑니다.

다른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다른 시시콜콜한 일은.. 일절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직에 재직할 때에도,

세세한 의사결정은.. 모두 제 주위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었습니다.

 

마치 초대교회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한 것처럼

저는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나아갈 방향을 분변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어떤 잘생긴 여성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가 유명한 여배우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이름을 듣고도, 그와 인사를 나누고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습니다.

기도에 전념해서 그런지 세상일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렇게 좀 세상일에 무관심한 면이 있어야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드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성령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시려면, 생활이 아주 단조로워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무미건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사에 분주하면.. 제 경험으로는 여러분이 절대 기도에 전념하실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의 큰 능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큰 능력을 받으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깊이, 오래 하다보면,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되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 그 자체가.. 능력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따로 능력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늘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다보면.. 일상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능력, 섬김의 능력, 용서의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은사적 능력도 나타나겠죠...

 

 

▲제가 예수 믿게 된 계기

저는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회를 다녔습니다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무려 30년 동안 교회를 떠나있었습니다.

결혼도 안 믿는 사람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 어머니가, 아내(며느리)를 교회로 인도해서

먼저 크리스천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 주일 자동차로 아내와 자녀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었지만,

저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또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술자리에도 끼게 되고,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30년이나 떠나 살았는데, 1994년에,

제 딸이, 아빠인 저의 회심을 위해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금식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항복하고, 교회에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는, 엄청난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서 살 때 지었던 많은 죄악들에 대해서

얼마나 눈물로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이후로, 내가 즐기던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다 끊었습니다.

이제 저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예수 믿은 후, 공직자 생활할 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지난 15년 동안에, 저는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정말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갖기 시작하면서

제가 성령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성령을 따라서 살기로 작정하면서,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이

‘내가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내가 비록 공무원 고위직에 있지만,

나는 절대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겠다’는 것이 제 결심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살지, 사람에게 불의하게 종노릇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제 자리에서 내려올 각오를 하고 살았습니다.

사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님을 3년8개월간 청와대에서 의전비서로 모시고 있는 동안에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 후에 제가 6년반 동안 중국대사를 하는 기간 동안에도,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 후에 제가 1년 동안 통일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어느 누가, ‘자리’를 가지고 저를 시험하는 일에,

단호하게 대처했습니다. (청탁을 받지도, 하지도 않았다는 뜻인 듯)

 

저는 세상에서 살지만, 구별된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외교관출신이지만, 지난 36년 동안에

골프채를 손에 잡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잘 마시던 술도, 그 이후로 다 끊었습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크리스마스카드, 연하장 하나도 안 보냅니다.

인적 네트워크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는 뭐든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합니다.

 

 

▲사스 발생 때, 기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건

제가 주중대사로 있을 때, 2003년 봄에 중국에서 사스(SARS)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2003년 4월초부터 각국 대사관이 중국에서 다 철수하고, 자기 교민들을 철수시킬 때

한국 외무부에서도, 대사가 판단해서, 교민들을 철수시켜도 좋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철수시키게 해 달라는 식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철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국민들은, 한 명도 손대지 않을 터이니, 이 일로 철수시키지 말아라.’

제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수많은 중국주재 상사원들이 대사관에 찾아와서

철수 명령을 내려줄 것을 제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야 자기들이 본국에 돌아갈 수 있지,

안 그러고 자진해서 귀국하면.. 그것도 본사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철수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스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대사관 직원들이 제게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대사님께서 중국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저희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사님께서 하시는 행동은, 저희가 볼 때 좀 지나치십니다.

대사님, 그러다가 만일 우리 교민들이 사스에 걸리면, 어떻게 책임을 지실 것입니까?’

 

그때 제가 대사관 직원/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한 명이라도 사스에 걸리면, 나는 주중대사직을 내려놓겠소.’

 

여러분, 대사가 자기 사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교민 철수명령을 못 내리겠다는데.. 대사관 직원들이 별 도리가 없었지요.

 

그리고 저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스는, 정말 하나님의 음성대로, 중국 교민들 가운데

단 한 명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사스 발생국인데도 말입니다. 

 

 

이 조치는, 중국 정부와의 관계에 큰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각국 대사관과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국 기업들이 철수하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이었습니다.)

 

또한 한국 대통령의 중국방문도, 사스 때문에 취소 혹은 연기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음성에 의지해서’

저는 주중대사로서, 오히려 한국 대통령을 중국 방문을 하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중국 가시기 이틀 전에,

중국에 사스가 종결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음성대로 된 것입니다.                                                                           ▣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