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가운데 탄생하신 예수 눅2:1
◑1. 로마의 평화 시대에, 평화가 없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전 세계를 통치하고 있었던 때였다.(눅 2:1)
가이사 아구스도는 「벤허」에 나오는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말한다.
그는 2차 3두 정치를 끝내고 패권을 잡아, 지난 백년간에 걸친
공화정의 내란을 일소시켜 로마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이 때 원로원은 그의 공을 인정해서 그에게 아구스도,
즉「존엄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존엄자란 너무 높아 인간이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자란 뜻이다.
아구스도 때부터 로마는 제정(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주의 정치)을
시작했고, 그는 大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세계 최고권력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로마를 새롭게 만들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통일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게 했다.
이 시대를 역사는 Pax Romana, 즉「로마로 인한 세계 평화」라고 한다.
또한 그는 벽돌의 로마를, 화려한 대리석의 로마로 바꾸었고
그 유명한 로마법을 완성해 세계가 로마법의 질서에 들어오게 했다.
이때 로마는 문화면에서도 유명한 시인들이 많이 나오는 등
최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이를 볼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요 통치자로 기억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 명령내렸다.
로마제국이 안정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했다.
여기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이 돈을 어디서
모을까 궁리하다가 인두세를 받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린 것이다.(눅 2:1)
이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호적하러 가야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마리아와 같이 임신해 만삭이 된 여인도 먼 길을 떠나야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들데 생업을 중단하고 먼 고향으로 호적하러
가자니 힘들었다. 사람들은 아구스도가 왜 호적 하라는지 다 알았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새로운 세금까지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구스도를 대적할 힘이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순순히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이로 볼 때 로마의 화려한 발전, 그로 인한 세계의 평화라는 것은
피지배 민족의 고혈을 빨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말만 Pax Romana지 사람들의 마음에는 참 평화가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민초의 고통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역사는 강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 때문에 너무 괴로워
'오,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 계시며 메시야는 언제 옵니까?'
하며 울부짖으며 괴로워했다.
◑2. 구속사와 세속사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가이사 아구스도를 쓰셨다.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미가 5:2)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호적 명령을 내리게 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만삭인 마리아가 그 먼 베들레헴까지 갈 필요 없었다.
이를 볼 때 가이사 아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는 도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세계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저런 일, 큰 일/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태풍을 위성으로 보면 그 가운데에 태풍의 눈이 있다.
그리고 그 눈 주변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거친 바람과 비가 있다.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태풍의 눈과도 같은 것이다.
태풍의 눈 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구원 역사가 조용히 움직이는 가운데
세상의 역사는, 이를 중심으로 따라오며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2천년 전 구속사의 핵심이 되신 예수님은 이렇게 조용히 태어나셨고
이를 위해 가이사 아구스도는 이처럼 변죽을 울리고 있었다.
▶역사에는 세속사와 구속사가 있다.
세속사는 바다 위에 출렁이는 어지러운 물결이라면,
구속사는 바다 밑을 도도히 흐르는 힘찬 저류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세상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그 누구도 거스릴 수 없다.
하나님은 구속사를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역사와 사건을 구속사 중심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찬 해석을 할 수 있다.
역사는 사건 그 자체보다는 해석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의 세계 상황이나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상황을 보고
한숨짓고 낙심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을 싫어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현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 마음이 매여 속상해 하면 안 되겠다.
우리는 속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런 와중에 이 모든 것을 도구 삼아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암울한 시대 상황 가운데서도
오늘도 위대한 구속역사의 수레바퀴를 쉼없이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또한 바다 밑을 도도히 흐르는 그 구속사의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언제나 희망이 생기고 힘이 솟는다.
◑3.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
Merry Christmas! 란 즐거운Merry 성탄절! 이란 뜻이다.
성탄절이 즐거운 이유는, 선물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때문이다(눅 2:10).
▶온 백성에게 미칠...
아니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세상에 그런 소식이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온통 슬프고 못된 소식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와 민족과 종족들이 있다.
또 수없이 많은 계층이 있고, 계층간에 대립이 있다.
인종분규, 종교분쟁, 좌파 우파의 대립, 노사분규 등
각계각층에 수없이 많은 갈등과 대립이 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다 함께 기뻐할 수 있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니 정말 놀랍다.
보통, 한쪽에 기쁜 소식이 되면 반대쪽에는 속상한 소식이 된다.
일본 여자들에게는 욘사마가 일본에 오는 것이 좋은 소식이 되지만,
일본의 남성들은 자기 부인의 마음을 빼앗는 욘사마가 밉다고 한다.
이처럼 세상의 기쁜 소식은 다 상대적이다.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 해도 그 소식은 일정 부류 사람에게만 좋을 뿐
그와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별의미가 없거나 아주 나쁜 소식이 된다.
그런데 천사는 인종, 국적, 신분 등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골고루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크리스천들은
어떤 계파나 이익집단의 이기적 기쁨을 추구하면 안 된다.
크리스천만이 인종, 국적, 계층, 신분의 모든 장벽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적자생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그 이윤은 결국 모든 계층을 위해 기꺼이 환원하는 사람들이다.
◑4.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여기서의 '오늘'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먹고 살기도 힘들고 슬픔과 고통, 죄 가운데 있던 그 어느 날,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던 그 어느 날 중의 '오늘'을 말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갖가지 문제로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오늘’ 구원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구주시신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오늘 그 누구든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구원을 얻고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긴다. (요 5: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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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가 세상 역사를 지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앗수르를 가리켜 "나의 진노의 막대기"
라고 하셨습니다.(사 10:5절)
또한 페르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고레스를 가리켜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는
나의 목자"라고 하셨습니다.(사 44:28절)
맞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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