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오해에 빠뜨리는 결정적인 오해 롬 3:27~28 설교녹취
◑로마서의 자체 모순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즉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어떤 죄인에서 어떻게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인데
의인이 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느냐, 큰소리 칠 수 있겠느냐
절대 떵떵거리며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위 28절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가르쳤냐면 이렇게 가르쳤어요.
‘율법을 지켜서 우리는 절대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우리가 배워왔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될 수 있나?
의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아닙니다. 이를 악물고 한 번 율법을 지켜보죠.
율법을 한 번 지켜서 의인이 한 번 되어볼 수 있는
그런 분도 우리 가운데 계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613가지 율법을 한 번 지켜보는 겁니다.
한 번 해 보는 거죠.
그래서 이를 악물고 612가지를 지킨 겁니다.
그런데 1가지를 못 지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612가지를 지켰는데, 1가지 안 지킨 것
봐 주실 수 있죠?’
그러면 하나님은 ‘한 가지 못 지키면 다 못 지킨 거야’
한 가지 못 지켜도 지옥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못 지키고 지옥 갈바에야
저 같으면 많이 안 지키고 지옥 가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쳐 왔느냐면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될 수가 없다>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말씀이 그 말씀이면
이 말씀이 ‘율법을 지켜서 우리가 절대 의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로마서는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로마서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자라야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고
로마서 전체는 율법과 믿음을 절대로 분리하지 않고
율법 또는 행위 또는 순종과 .. 믿음을 같이 가는,
병행하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 이 구절(3:28)에 와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마치 율법과 믿음이 같이 갈 수 없는 것처럼, 서로 상반되고, 대치되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면,
이 로마서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겁니다.
이것은 self contradictory한 것입니다.
로마서 자체가 모순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율법과 믿음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아래 말씀에 나옵니다. ↓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믿음과 율법은 같이 갑니다. 마치 부부관계 처럼요!
▲그런데 왜 바울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할까요?
롬3:28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
이게 역설적이죠.
로마서에서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했고,
믿음은 율법을 도리어 세운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같은 로마서에서 서로 상반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늘 그걸 풀려고 하는 거죠)
◑우리는 이 모순을 해결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아래 1), 2) 중에 어디다 아멘 하실 겁니까?
1)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 *과거에 배운 건데요, 잘못 배웠습니다.
아니면
2)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이 녹취록의 논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우리가 모두 아멘 해야 되는데요
이것을 우리가 해결하지 않고 로마서를 읽고 은혜 받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잘 모르는 체로 은혜 받는 겁니다.)
▲자 여기서 ‘율법의 행위’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해와 딜레마를 풀려면, 여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뭐기에 믿음과는 원수지간인처럼,
믿음과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요?
분명히 믿음과 율법은 같이 가는데 (주제와 강조점이 서로 일치하는데)
이 ‘율법의 행위’와 ‘믿음’은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롬3:28절에서 그렇게 명백히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율법의 행위’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어마어마한 오해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율법’과 ‘믿음’
또는 ‘행위’와 ‘믿음’을 분리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이 구절이 했습니다.
이 오해가 5백년 전 루터로부터 시작되었죠.
루터는 ‘믿음으로만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 ‘율법의 행위로 안 된다’
라고 선포했는데,
야고보서에 보니까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약2:24
루터가 주장하는 내용과 상반되고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루터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로마서를 선택하고, 야고보서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같은 서신’이라고 혹평했고
그가 번역한 독일서 성경번역본에도 야고보서는 저 뒷구석에 미뤄놓고
페이지도 안 붙이고, 정경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루터와 같은 동역자였고, 같은 종교개혁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필립 멜랑히톤도
이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조화시켜보려고 하다가 못 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렇게 말합니다.
“필립 멜랑히톤이 <변증>에서 했던 것처럼 *책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를 바울과 화해시키기 위해
(야고보서의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하는 말과
바울이 말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땀을 흘리지만 소용이 없다.
믿음이 의롭게 한다는 말과
믿음이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말은, 완전히 모순된다.
누구라도 이 두 진술을 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내 박사모를 그에게 씌워주고
그로 하여금 나를 바보라고 부를 수 있게 하겠다.”
사람이 누구다 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루터가 위대한 일을 했지만, 위대한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교회는 둘로 나눠졌습니다.
믿음 쪽이냐, 행함 쪽이냐..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야고보가 말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
그래서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행함으로 또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믿음 없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두 말을 조합하면,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듯이.
믿음 없는 행함으로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말이니 한 번 따라서 해 보세요!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듯이.
믿음 없는 행함으로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손가락질 하면서 말하기를
‘저 사람들 예수님 믿는다 하면서 행함은 엉망진창이다’ 라고 말합니다.
행함 없는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 순종이 따르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정리하면
자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의 행위’는 반대했지만
율법과 순종은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성경을 한 번 보겠습니다.
1) 롬1:5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위 구절에 의하면, 믿으면 순종한다
즉 믿음은 순종을 낳습니다.
순종을 낳지 못하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껍데기만 있는, 생명이 없는, 무늬만 있는 믿음입니다.
2) 롬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
믿음은 순종을 일으킨다고 위 구절에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어 순종하는 믿음이 구원을 얻습니다.
3) 롬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결국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해서 구원 얻는 것입니다.
같은 로마서 말씀에 또
4) 로마서 2;2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러니까 믿음과 행함이 상반되는 겁니까, 같이 가는 겁니까?
당연히 같이 가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3~8장 요약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육신이 너무 연약하죠.
죄를 안 지으려고 하다가 죄를 짓고 맙니다.
참으려고 하다가 분노를 폭발하고 맙니다.
그렇게 우리 육신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으니까요!
이 육신 때문에, 나는 율법을 지키고 싶은데, 육신 때문에 안 된다 그말입니다.
‘율법이 연약한 육신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아멘!
어떻게 하나님이 하십니까?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육신의 죄를 정하사..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다 감당해야 될 그 죄값을
죄있는 인간의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
다 죄를 전가시키시고, 뒤집어 씌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덤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롬8:1 이제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그의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애당초 율법을 폐기하신 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고,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이 필요 없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무율법주의, 율법폐기론이라 그럽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제는 믿음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이게 진짜 예수 믿는 것이고, 이것이 로마서의 주장입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러니까 로마서는
1)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건가요?
2) 율법을 지키라는 건가요?
2)입니다. 롬8:3~4
순종하라는 얘기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로마서 이해에 오해를 일으킨 장본인 - "율법의 행위"
그런데 왜 롬3:28절에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겁니까?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위 구절에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율법(도덕법으로서의 율법)이 아닙니다.
이 명제는 중요하니,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모순을 푸는 열쇠입니다.
율법은 the law 헬라어로 노모스
‘율법의 행위’는 the works of the law
‘율법의 일들’이란 뜻인데요,
여기 롬3:28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는
율법(도덕법)이 아니라, 유대교의 관습인 할례 절기지킴 등을 뜻합니다.
※아울러 또한 <외적 율법 준수>를 뜻합니다. 즉 행위로, 외식적 율법준수 말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셨죠. '너희가 간음하지 말라 하는 것을 들었으나..'
마음으로 율법을 행하는, 십계명/도덕법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의 행위'로 그랬을 것으로(마음으로 지켰을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율법을 행하거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영어로 obeying the law, doing the law입니다.
반면에 ‘율법의 행위’는 works of the law죠.
그러니까 여기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3:28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들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doing the law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못 얻습니다. works of the law
▲지금 바울이 로마서에서 주장하는 것은
로마교회 안에 문제가 있는데, 어떤 문제냐 하면
이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3:28
롬2:17~18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로마교회 안에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유대인들 너희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아주 자랑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그럽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유대인들입니다.
롬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알고, 외적 형식으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들인 자기들에게만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너희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게 지금 로마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의 문제였습니다.
율법을 아예 몸에 갖고 다닙니다.
율법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안 지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2:24 ‘기록된 바 하나님이 이름이
너희 (유대인)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서 나쁜 짓은 다 하면서
예수님 이름 땅에 떨어지는 것과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롬2:25
할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바울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을 자랑했지만
정작 율법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유대인 교인들의 문제였죠.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안 지킴으로 구원받게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롬3:28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율법의 행위’는 신약성경에 8번 나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는 문맥은 언제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들어가는 문맥’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이 자기가 유대인인 점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죄인 취급하고 개 취급 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1) 할례,
‘우리는 할례 받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야!’ 라는 할례.
‘이 할례 받지 못한 자들아!’ .. 라고 이방인을 깔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는 것이 어마어마한 자부심이었습니다.
2) 절기 준수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3) 음식 규정 준수
그들은 정결한 음식 코셔를 먹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율법의 행위 works of the law’인데
이런 유대 종교적 전통이 자기를 유대인답게 하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서
거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십계명 등 율법의 도덕법은 팽개친 체 말입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이 그 점을 지적하셨죠.
그 외적 ‘율법의 행위’만 지키면, 자기는 구원 받은 의인이라 생각하는
로마의 유대교인들에게
그 따위 ‘율법의 행위’(외적, 형식적 율법 준수)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고 일갈한 것입니다. 롬3:28
이것은 정말 율법(도덕법)을 지킨 게 아니죠.
이건 그저 자기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필요했던 외적 의식들이었습니다.
-할례, 절기 준수, 음식 규정
그것만 지키면,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착각한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그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도덕법을 지킨 게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가 도덕법이 아닙니다.
안 그러면 로마서가 모순됩니다.
만약 ‘율법의 행위’가 도덕법을 뜻한다면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롬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롬14: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무슨 말이냐면, 어떤 사람들은 절기의 날, 안식일 규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날이 중요하다, 저 날이 중요하다’ 하는데요
본인의 믿음대로 해라는 말입니다.
꼭 이 날을 지켜야 된다 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 전체에 로마교회 안에 있는 이슈는
-할례
-절기를 지키는 이슈에 대해서
로마교인들이 갈등이 있고,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론은, ‘율법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는 할례, 절기 준수, 음식규정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도덕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저 그런 외적 전통을 지키면, 자기들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권고한 것입니다. 로마서를 써서!
다시 말하면, ‘율법의 행위’는 지키면서
그들은 정작 지켜야 할 ‘율법에 순종’은 하지 않았던 것이죠.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믿음 없는 행함, 율법의 행위로 25 10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즉 믿음이 동기가 되어서
믿음이 그 소스가 되어서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행함이 아니라면,
그 행함으로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만이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그 믿음이지,
하기 싫은데 겉으로 억지로 행하는 그 행함은 절대로 우리를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식적 율법 준수'로도 구원 못 얻습니다
※'외적, 외식적 율법 준수' 역시 '율법의 행위'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해 봅시다.
‘립써비스(입술) 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막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립써비스는 잘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딴데 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아주 그냥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아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니까요!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죠.
립써비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요!
‘나는 너희 마음을 원한다. 입으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느껴지게 좀 해 봐라!’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지 말고,
정말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드려 봐라’
지금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막7:6
‘율법의 행위’는 립써비스에 불과합니다.
립써비스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합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들은 십일조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드렸습니다.
그래서 뒤뜰의 상치까지 세어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대단한 ‘율법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그 내면적 신앙,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 행함, 긍휼 베풂, 믿음으로 살기입니다.
그 외적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구원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지니라’
*십일조의 율법은 아니지만, 십일조의 정신까지는 버리지 말라는 뜻이죠.
▲마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렇게 해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구원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결국 이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것을 조목조목 짚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입니다.
이건 바로 ‘율법의 행위’요, 겉 형식적인 종교전통을 지키는 의입니다.
반대로 천국에 들어가는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인데
지금 마태복음 5:21부터 7:21절까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의인데
그게 나머지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마5, 6, 7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마5:21~48절까지 즉 5장에는
6가지 주제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외식하는 6가지 주제를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이 6가지이고
그러나 그러나 그 보다 나은 의는 이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에서
-살인 5:21~22
-간음 5:27~28
-이혼 5:31~32
-맹세 5:33~3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 5:38~39
-원수를 사랑하라 5:43~44
이 6가지 주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6번이나
‘너희가 이렇게 배웠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래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이른다..
예를 들면,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8
너희는 이제까지 ‘간음 안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인입니다.’
이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럼 너희 마음은?
정말 천국에 들어가려면, 마음으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만 교회 다니고, 겉으로만 신앙생활 하면
구원 얻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순종해야 구원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6장 전체는, 4가지 주제에 대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뭔지,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뭔지 말씀해 주십니다.
4가지 주제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의롭게 생각하는 것이 구제입니다.
구제하는 사람을, 유대인들은 아주 높여줍니다.
그 첫 번째가 <구제>입니다.
그 다음에 유대인들에게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이 <기도>, <금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 유대인들이 많이 겉으로 행하면서 의인이라고 뽐내는 3가지,
즉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못 간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구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걸로는 천국에 못 간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6:2~4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2) 또 기도할 때 유대인들은 기도를 요란하게 합니다.
마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보이는 병에 걸렸나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입니다.
3)금식 할 때
마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런 의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모든 것이
‘율법의 외적 행동’들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에 갈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똑같습니다.
그러면서 구원 받았다고, 천국에 갈 줄로 알고 있습니다.
4)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물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천국은 가야 되니까요.
재물도 섬겼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럴 듯하게 살아야 했으니까요.
오늘날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습니까!
◑결론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3:28),
그 말은 율법을 행하지 않고가 아니라
율법을 엉터리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사도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함을 통해서
율법(도덕법, 산상수적 같은 내적인 율법 준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자기 마음대로, 엉터리로, 외식으로, 겉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러면서 자기는 유대인이라고
자기는 의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같은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6:16~17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겉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하여!’
이것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결론은, 지금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율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게 아니라
믿음만이 율법 지킴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롬3;31절의 결론이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정말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율법을 행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과연 내가 어떻게 의인이 되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반드시
나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진짜 믿음은 진짜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이게 로마서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정반대로 배워왔습니다.
‘행함은 안 돼!
행위구원은 안 돼!
행함을 강조하면 행위구원론자가 돼!’
로마서를 잘못 이해한 결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못 얻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율법의 행위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제대로 지키면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나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율법을 지킴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믿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겉치레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종교생활, 교회생활, 교회봉사를 해 왔다면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렇게는 절대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행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봉사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율법의 행위를 내버리고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제 우리가 의인 되었으니, 율법의 행위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순종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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