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7

이것이 결론입니다

LNCK 2018. 2. 5. 11:24

이것이 결론입니다             12:1~2                           출처, 녹취

 


도입

 

히브리서 12장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2장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아주 밸런스를 잡아주는,

균형을 잡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여러분들이 (아래에서) 직접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해서 미국에 그리고 캐나다에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부어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루가 한 주가 되고,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이 년이 되고 삼 년이 되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목회자들과 수많은 목마르고 굶주린 성도들이

그 장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존을 맛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과 자유함을 경험하게 되었고

많은 불신자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를, 제가 보기엔, 하나님의 성령께서 참으로 놀랍게 부어주신 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도시(펜사콜라)에도 부어졌고,

캐나다의 한 도시(토론토)에도 부어졌고,

영국과 남미의 한 도시(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에도 부어졌습니다.

 

그 교회들과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가장 강력하게 성령이 부어졌던 두 도시를 저는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한 도시에 성령님이 폭발적으로 부어지고

전세계에서 매일 수천 ~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장소에 제가 들어갔을 때, 그 장소는 정말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길 원하고 맛보길 원하는

수많은 영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한 장소에서 메시지가 전파되었고

그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그 장소에 오는 수많은 메신저들이, 수많은 스피커들이,

수많은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제가 들어보고 또 들어봐도 그들의 메시지는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기에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서 누리면 됩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나눠주면 됩니다.” 그렇게 설교하시고 또 실제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 한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 도시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거룩한 삶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두 교회를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관찰하면서 참으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한쪽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사랑만 이야기했습니다.

회개라든지 거룩함이라든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죄를 끊고 회개해야 한다고만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단히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동일한 하나님이, 똑같은 하나님이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만 이야기하고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함만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월이 지나서 그 두 교회의 열매를 지켜보게 되었고

그리고 그 교회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밸런스, 균형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거룩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했던 그 교회에서 제가 보았던 것은 방자함입니다.

너무나 죄송하지만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는 그 교회는,

물론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하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가벼워보였습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찬양팀과 사역자들이,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죄송하지만,

너무나 얍삽하게 보였습니다. 어떨 때는 무례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불편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밖에 표현될 수 없을까.

 

그런데 제가 또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교회는 정말 하나님의 임재가 무거웠습니다.

그 교회를 들어가면 왠지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경건함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나와서 설교하면 다른 설교하지 않고

회개하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궁금했습니다. 그럼 이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갔는가?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했던 그 교회는

제가 염려했던 열매들을 맺고 말았고,

그나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했던 교회는

비록 거기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제가 보고 있습니다.

 

오늘 드리려는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치우쳐도 안 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치우쳐도 안됩니다.

그분은 동일한 분입니다. 그 분은 사랑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분입니다.

 

우리가 성경 어디를 보면 어디가 치우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붙잡아줄 수 있는

균형 있는 말씀이 어딨을까?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12장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 히브리서 12장 말씀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메시지를 붙드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치우치는 교회가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이 지정하는 그대로,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제가 늘 추구하는 그런 교회의 상이 이런 것입니다.

<말씀에도 치우치지 않고, 성령에도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밸런스를 유지하는 교회!>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말씀이 치우치는 교회를 저는 잘 압니다.

저는 말씀에 치우친 교회에서 자랐기에.

 

그러나 말씀에 치우친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을 잘 가르치고 교리적인 완벽함은 있지만

그 속에 살아 역사하는 그런 하나님의 생동감 있는 역사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미국으로 보내셔서

전 세계 가장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고

성령론 연구소가 있는 학교에서 성령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말씀도 너무나 감사하게 받을 수 있고

성령도 너무나 감사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 치우쳐도 안되고, 성령에 치우쳐도 안 됩니다.

말씀에 치우치면 우리가 너무나 무미건조한 종교적인 생활,

교리적인 생활로 빠지게 되고

 

우리가 성령에 치우치게 되면

너무나 은사와 체험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균형이 중요합니다. Balance is the key.

 

 

12:1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오늘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보면 결론이 이겁니다.

결론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처음부터 보아야만 합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12장을 이렇게 결론지었는가.

 

1절부터 보시면, 여러분께 키워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12장 전체를 자세히 살펴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건 제 의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12장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 열쇠, 메시지만 붙잡으면 됩니다.

 

히브리서 121절 키워드가 무엇입니까.

<벗어버리자, 달리자(경주하자)>입니다.

 

무엇을 벗어버려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고 달려가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향하여 우리가 달려가야 하는데

내가 짐을 다 벗어버리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가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내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달려갈 수 있겠나,

 

히브리서 기자는 벗어버려야 한다, 벗어버려라!

뭘 벗어요? 두 가지를 벗어라.

 

1) 첫째는 무거운 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거운 짐 보따리를 하나씩 지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무거운 짐, 어떤 사람은 사업장에 무거운 짐,

어떤 사람은 자녀에 무거운 짐, 어떤 사람은 배우자의 무거운 짐,

어떤 사람은 공부라는 무거운 짐, 사람마다 물어보면 모두가 다 짐 보따리가 하나씩 있더군요.

 

어떤 사람은 그게 너무 무거워서 혼자 지고 가기에 벅차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얼마 못가서 정말 주저앉을 것만 같은,

그런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 삶의 인생의 짐입니다.

 

이 세상을 산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짐입니다.

 

2)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짐 보따리가 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라고 하는 보따리.

 

우리는 또 죄의 보따리를 하나씩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는 어떤 죄에요?

 

<얽매이기 쉬운 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쉽게 빠져드는 죄가 있습니다.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늘 똑같은 죄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또 넘어지는 그런 연약한 죄가 있습니다,

 

그 죄의 짐보따리를 지고 우리가 주님이 부르신 그 길을 가기에는

너무나 벅차기에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뭐라고 합니까?

벗어버려라!

삶의 짐을 벗어버려라. 죄의 짐을 벗어버려라!’

 

그래야만 하나님이 부르신 이 경주를 달릴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의 키워드는 벗어버리고, 경주하자.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절의 키워드는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바라보자라는 우리말의 번역도 틀린 건 아니지만

더 정확한 해석을 찾아본다면, 영어 성경에 Fix your eyes on Jesus,

그 말은 너의 눈을 예수님께 딱 고정시켜라, 그 말입니다.

너의 눈을 예수님께 딱 그냥 호치키스로 찍어버려라.

 

왜냐하면 우리의 눈이 예수님께 고정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을 보게 됩니다. 쾌락을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눈이 가는 곳으로 우리의 마음을 주게 되어있고

우리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 걸음이 가고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을 어디에 두느냐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Focus is so critically important!

우리 포커스가 예수님께 고정되서 떨어지지 않을 때만

비로소 우리는 환경을 이겨내고 상황을 이겨내고 죄를 이겨낼 수 있기에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우리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만 합니까?

우리가 예수님께 고정하지 않고, 우리 시선을 다른 곳에 두게 될 때

우리는 반드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 그러나 여전히 죄를 짓는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낙심하는 것입니다. 좌절하는 것입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직분자들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삶에 여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가 있고, 죄에 묶여있고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죄에서 씨름하는 것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죄를 벗어버리지 못합니까?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죄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을 이기고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초점은 언제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고정하시길 바랍니다.

 

 

12:3~4

 

그 다음에 히브리서 기자는 본격적으로 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짐을 벗어버리고 죄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향해 달려가는 데 있어서

히브리서 기자가 염려하는 것,

히브리서 기자가 꼭 지적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죄에 관한 이야기에요. 들어보세요. 34절을 보겠습니다.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3, 4절의 키워드는 <생각하라>입니다.

3절에 생각하라, 4절에는 싸워라.

 

무엇을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그 많은 죄과를 십자가에서 지시고 고통 가운데 돌아가시면서

그것을 인내하신, 그것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봐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너희가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그 말이에요.

 

다시 잘 보세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무슨 말씀입니까.

 

목사님, 저도 죄를 이겨보려고 싸웁니다, 저도 발버둥칩니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떡합니까. 제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걸 어떡합니까.

포기하고 싶습니다.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의 그 연약함을 우리 주님은 아시기에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너희가 죄와 싸우다가,

너희가 죄를 이겨보려고 발버둥치다가, 얼마나 낙심이 되느냐.

그러할 지라도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봐라.

그분은 끝까지 인내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리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 말이에요.

 

죄와 싸우되 낙심하지 말고 싸워라, 포기하지 말고 싸워라, 끝까지 싸워라,

넘어지면 일어나요, 넘어지면 또 일어나요,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요, 열 번 넘어지면 열한 번 일어나는 거예요.

원수 마귀가 지독하다 너, 포기할 때까지.

 

그리고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아직 싸우지 않았느냐.’

 

우리 예수께서는 피 흘리기까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는데,

너희는 너희의 죄를 위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보았느냐,

No, 아직 그러진 않았잖느냐.

 

여러분 여기서 피 흘리기까지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군대 용어입니다. 군사 용어입니다.

 

이건 마지막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도시가 무너지고 나라가 함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는 병사들이

내가 죽으면 죽었지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

나를 죽이던지, 그렇지 않고서는 결단코 이 도시를 점령할 수 없다그 말입니다.

 

이 뜻은 이런 뜻이에요. 죄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느니 내가 차라리 죽겠다그 말이에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운다는 말은 내가 죄를 짓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그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죄와 싸워보았느냐?

 

우리 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는가?

우리 주님은 어디까지 인내하셨느냐? 죽기까지!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인내하셨으면 우리도 죽기까지 싸워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히브리서 기자가 갑자기 주제를 바꿉니다.

주제를 뭐로 바꾸냐면,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바꿔요. 하나님의 징계하심.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 말이에요.

지금까지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징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징계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아들이 아니면 절대로 징계하지 않으신다.

 

뭐라고 합니까? 너희가 사생자면, 너희가 남의 자식이면, 징계하지 않지만

너희가 내 아들이기에, 내 자식이기에 징계하는 것이다.

이게 나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태도를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성경이 잘 설명해줍니다.

 

5절에, 주의 징계하심을 겸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깁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그 사람에게는 주의 경계하심이 결코 먹히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너무나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치우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습게 본다고요.

 

반대로, 하나님의 꾸지람을 듣고 완전히 낙심해서 가라앉아서 자포자기하는 사람.

이 둘 다 잘못된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할 때, 그 징계를 무시하거나 경히 여겨서도 안되지만

그 징계에 낙심해서 난 이제 못하겠어요, 라고 해도 안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실 때 여러분의 반응은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아직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이 뭐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해서 어떻게 하시려고 징계하시느냐,

그것이 참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감동적이고, 그 말씀을 한 번 보세요.

 

 

히브리서 12:6 ~ 10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이제 10절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이에요! 이런 축복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떤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Invite하신다는 거예요,

우리를 그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시길 원한다는 거에요.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뿐만 아니라

징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거룩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랑과 거룩은 반대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저는 히브리서 12장 말씀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우리가 너무나 치우치기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를 꼭 붙들어주잖아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신성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짐승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처럼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게 거룩하심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거예요.

 

그래서 징계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징계를 기쁘게 받으셔야 합니다.

너무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들로 간주하신다는 거예요.

 

 

12:12~13

 

그리고는 12절에 그러므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그러므로하면 중요한 말을 하고 싶을 때 그런 거예요.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가 죄와 싸울 때,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보려고 할 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주님이 아세요,

 

그래서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그리고 저는 다리. 이게 패잔병의 모습입니다,

그렇죠? 일주일 내내 여러분 세상에서 살고 주일날 교회 오시면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신가요?

 

다른 교회는 그럴 지 몰라도 우리 사랑과 교회 성도들은 승전가를 부르며

그렇게 성전에 들어오는 승리의 전사들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사는 것을 성경이 잘 알잖아요.

정말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정말 순종하면서 죄에 대항하고

세상을 이기려고 하면 피곤해요, 무릎이 연약해져요,

맨날 무릎 꿇고 기도하니까요.

 

이번에 장년 수련회 때, 제가 초청한 강사가 LA에서 왔어요,

그 자매님이 간증을 나누는 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들어보시면 깜짝 놀랐어요.

우리 윗세대들도 꼭 들어야 되겠더라고요.

 

간증의 결론이 뭐냐면 말씀대로 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게 결론이더라고요.

 

목사님 제 삶에는 놀라운 일이 안 일어나는데요?’

그게 차마 제가 답변을 못하겠지만 그 말은 곧 말씀대로 안 살고 있는데요, 그 말이죠 뭐.

 

결론입니다. 히브리서 1212~13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절대로 죄와 싸우며 이 세상과 싸우며 살다가 거기에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아라 그 말이죠,

그리고 뭐라고 해요.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Pursue peace with all men, and the sanctification

without which no one will see the Lord.

 

여기 키워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쫓으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무슨 얘길 하고 싶은 지 잘 들어보세요.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제대로 섬기기 위해선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속성과 성품을 알아야 될 것인가?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그분은 거룩한 하나님이기에

거룩함을 좇으라, 추구하라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이런 사람이 되선 안된다. 이런 사람을 주의하라. 어떤 사람이요?

 

15절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늘 교회를 나오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데 은혜를 못 받는 사람.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뭔가 막혀 있는 사람이에요.

 

그건 다른 게 아니라 반드시 둘 중에 한 가지입니다.

해결하지 않은 죄가 있든 지,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든지.

 

여러분 그것이 막혀 있으면요,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가 이르지 못해요.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것 먼저 해결하셔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는 자.’

그 다음 16절에 음행하는 자, 망령된 자’,

이런 사람들을 주의하라. 이런 사람들이 되면 안 된다.

 

왜요?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해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12:18~27

 

그런 다음에 18절 말씀부터 20절 말씀까지

아주 중요한 것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결론을 강조합니다. 잘 들어보세요.

 

18절부터 27절까지 한 번 들어보세요.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신의 산과 그 다음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비교합니다.

 

그 다음에 모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어떻게 비교하는지 한 번 볼까요.

    

22 너희가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

 

이게 어디에요? 신의 산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합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신의 산이 아니다. 신의 산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이른 곳은 어딥니까? 우리의 현주소가 어딥니까?

현주소가 나옵니다. 22.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이 말씀은 제가 이미 과거에 설교했습니다.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두 종류의 컨셉을 비교하는 거예요,

 

-하나는 시내산과 모세,

-하나는 이미 우리가 속해 있는 하늘.

 

우리 현 주소는 하늘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있다고

에베소서는 기록하고 있죠?

 

이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 거예요.

들어보세요. 이것이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12: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누구를 거역하지 말라? 말하신 자가 누구에요?

모세와 예수님이에요.

 

‘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늘

 

땅에서 경고한 자가 누구에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했는데 그들이 거역했어요.

땅에서 경고한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멸망하였거늘, 그 말이에요.

 

그 스토리 기억하시나요?

하나님께서 신의 산에서 정말 대단한 광경으로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산이 흔들렸습니다.

 

빽빽한 구름으로 뒤덮이고 천둥 번개가 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마시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께 주셨던 그 말을

거역했다는 거예요. 그 결과 어떻게 됐어요? 다 멸망했습니다.

두 사람만 빼고. 이해가 되십니까? 그 다음 들어보세요.

 

히브리서 12:25b

‘...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가 누구에요? 예수님.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경고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다면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와 경고를 거역하면 그 형벌이 어떠하겠냐?

그 말이에요. 작겠냐는 거예요, 크겠냐는 거예요? (더 큽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역한 사람들이 받은 형벌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분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모든 피를 다 뿌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분의 경고를

거역한 우리의 죄가 훨씬 더 크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구원론과 관련해서 이해하십시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구약은 율법 시대니까 그랬고, 지금 신약은 은혜 시대잖아요?

그러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너무 회개 얘기 하지마세요. 기분 나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그래요. 정말 몰라서 그래요. 말씀을 몰라요.

여러분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보세요. 아멘으로 받아보세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생명과 같은 말씀인지.

 

히브리서 12:26

26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땅도 하늘도

우주 만물이 진동할 것이다. 또 뭐라고 말씀하나요.

 

히브리서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하나님이 진동하지 않는 영원한 것들, 곧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이 땅의 모든 것은 흔들리고 진동한다는 것을 증명해주신 것이에요,

 

그러므로 너희의 믿음을 흔들린 이 땅에 둘 것이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둘 것이냐.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우리가 구하고 그 나라를 기도하며 사모하며 산다면

우리는 분명해집니다. 어디에 우리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할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진동합니다. 흔들립니다. 다 없어집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12:28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무슨 얘기하려고

지금까지 장고한 말씀을 우리에게 나눠주셨습니까. 결론은 뭐로 시작합니까.

그러므로!

 

히브리서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말 성경이 클리어하지 않기에

우리가 영어 성경으로 길게 풀어드립니다.

 

히브리서 1228(NASB)

Therefore, since we receive a kingdom which cannot be shaken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let us show gratitude

하나님께 감사하자, 어떻게 감사해요?

by which we ma offer to God an acceptable service with reverence and awe;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그분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감사를 표현하자. 왜냐하면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히브리서 1228(NIV)

Therefore, since we are receiving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let us be thankful, and so worship God acceptably with reverence and awe.

 

똑같은 말이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받으실 만하게. 지금 이사야의 문맥이 뭐에요?

헛된 예배. 드려도 하나님이 안 받으시는 예배.

그래서 이사야를 통해서 받으시는 예배 드려라 그랬잖아요.

 

지금 히브리서가 똑같은 얘기 하잖아요. 받으실 만한 예배 드려라.

Worship God acceptably. 어떻게요?

With reverence and awe.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For God is a consuming fire.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라

 

New Revised Standard Version(NRSV)를 제가 좀 인용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이 두 말씀을 하나로 모아놓은 영어 성경이에요. 표현이.

 

Therefore, since we are receiving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let us give thanks, by which we offer to God an acceptable worship with reverence and awe;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그리고 Acceptable worship,

받으실 만한 예배를 하나님께 offer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With reverence and awe.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것이 받으실 만한 예배라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 표현이다.

 

히브리서 12장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

이 죄악된 세상, 죄와 싸우고 또 싸워도 또 넘어지는.

너무나 무기력한 나의 모습에 좌절과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이런 믿음 생활을

우리가 계속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키워드로 가르쳐주잖아요.

 

넘버 원. 벗어버려라.

넘버 투. 너의 눈을 예수님께 완전히 내어버려라. 붙여버려라. 고정 시켜버려라.

넘버 쓰리.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고 너도 피 흘리기까지, 죽기까지 죄와 한 번 싸워봐라.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서 경고를 받았는데

거역하고 다 멸망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예수님께서 주신 경고를 거역하면

더 큰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만 한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의 원천이 어디서 옵니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만 옵니다.

 

그것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그 힘을 받아요?

어디서 공급 받아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저 원수 마귀는요. 정말 예배를 다 망쳐놨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는 예배 열심히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단 한 번 예배 드리더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요, 우리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때

가만히 있는 분이 아니에요. 그분은 너무나 감동하셔서 너무나 감격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고통하는 문제, 아파하는 문제.

그 문제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소연 자매 간증 들으면서 정말 제가 제 마음이 너무 찡했던 게요,

이 어린 딸이. 엄마하고 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사람을 찾아간 게 아니라

다른 어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늘 엄마가 말하길, 그래 우리 예배 드리자. 엄마 문제가 있어요.

그래 우리 예배 드리자.

 

이 딸이 엄마에게 배운 것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해결책은 예배 드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정말 딸이 그대로 하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거에요.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오늘 첫 찬양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모든 상황 가운데서 주를 예배할 지라.’

여기에 답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요. 마귀가 거짓말을 해요. 속여놨어요.

 

예배 그까짓거 드려봐야, 일주일 대충 살다가 예배 대충 드리고,

한 시간 짜리 대충대충 드리고, 나오면 되는 거지 뭘 예배 가지고 그러냐고.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

나님은 다른 건 다 Everything is okay에요, 그런데 예배는 Not okay에요.

우리 LTC, 정말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예배를 기뻐 받으시지만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더 깊은 예배, 더 충만한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