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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용기있는 사람을 쓰신다 !

LNCK 2018. 4. 18. 19:12

하나님 용기있는 사람 쓰신다 !       행14:3, 단 11:32           스크랩 

 

하나님은 용기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호에 맞아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면
쓰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1. 진리의 선포만이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른 진리를 선포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대히"라는 구절이 아래와 같이 많습니다.


"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 하나님의 말씀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 하나님의 말씀

전하니라"(행 4:29-31)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 9:27)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행 9:29)

 

"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기사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증언하시니"(행 14:3)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행 18:26)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행 19:8)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1)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6:19-20)


참된 진리를 선포하는데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으면
이렇게 구구절절이 "담대히"
라고 쓰여 있는 것일까요?

 

▲성령의 권능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권능으로 쓰임 받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복음을 전하면 안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2. 어떻게 해야 용기 있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용기는 참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다 용기있는 자가 아닙니다

용기있는 자가 되려면 그 믿음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삼상 17:45-47)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2. 용기는 성령 충만에서 나옵니다
용기의 근원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바울이 제시한 9가지만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용기 역시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3. 용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눅 12:4-5)

 

4. 용기는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에서 나옵니다.
마지막 시대는 두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간담이

녹는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에 관해서만 아는 목사들과 신자들은

겁쟁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 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

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단 11:32)

 

5. 용기는 순수성에서 나옵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육신의 나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어린아이들,은 요한 베드로,야고보,

안드레,도마,마태입니다.

그들은 결혼했고 성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어린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순수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순수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택하지 않습니다

한번 먹은 나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50대가 20대보다 순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60대가 10대보다 더 순수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끝으로 저는 "비겁이 겸손처럼 위장하고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다"라는 A.W.토저의 글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나귀를 이용하셔서 선지자 발람을 꾸짖으셨듯이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에게 경고하고 권고하는데 도구를 사용하신다.

 

이때 도구가 완전치 않아도 그분은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양들이 위험 속에 처해 있는데도

목자가 별들만 바라보며 "영감있는"주제들이나 묵상하고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목자는 무기를 움켜쥐고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달려가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비겁은 단지 겸손으로만 위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겁은 위장술이 뛰어나서
때로는 온유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뛰어난 인격과 성숙으로

자신을 위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가 없는 온유, 용기가 없는 사랑,

용기가 없는 인격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덕이 아니라 비겁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겸손 온유 사랑 인격 뒤에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비겁함과 정직하게 대면하십시오.

그래서 회개하고 용기 있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주님 눈에 발견되어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