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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대표성의 원리

LNCK 2018. 7. 2. 18:27

 

◈국대, 대표성의 원리                      5:18                                 묵상글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운동선수라면 모두가 소망하는 국대

축구, 야구, 배구, 탁구 등 모든 경기를 막론하고

운동선수라면 모두가 한 번쯤 국가대표 선수를 꿈꾼다고 합니다.

소위 국대라고 줄여서 부릅니다.

 

국대가 되면 트레이닝 운동복 등에 KOREA 라는 다섯 글자가

자랑스럽게 새겨집니다.

 

요즘은 운동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킵니다.

그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꿈은 한결같이 국대입니다.

나중에 커서 국가대표선수로 뛰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은 그 어린 나이에도 힘든 운동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 나라에도 이런 국대

즉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가대표에겐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한국과 외국이 축구를 하면,

만약 한국이 외국을 이기면, 응원한 국민 모두가

마치 자기가 그 나라를 이긴 것처럼 환호하고 즐거워합니다.

 

자기는 국가대표선수도 아니고, 운동장에 나가서 뛰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자기가 뭐 응분해서 축포를 터트릴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길에서 거리 응원을 하다가도, 옆에 서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과

막 손을 잡고 발을 굴리며 뛰고, 또 어깨동무까지 같이 하면서 함께 응원하는 것은

바로 대표성의 원리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도, 영적인 국가대표선수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나라의 국대가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자기에게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되는지, 아닌지를 보면 됩니다.

 

이런 대표성의 원리가 성경 곳곳에 발견되는데요.

 

1) 소돔과 고모라

하나님은 의인 10명을 찾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의인 10명은, 소돔과 고모라의 영적인 국대가 되었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쉽게도 영적인 국대가 없었습니다.

 

2) 열 두 정탐꾼

출애굽 때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탐지하라고 파견된 12 정탐꾼은

당시 이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국대 였습니다.

 

그런데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중에 10정탐꾼은 부정적 보고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부정적 보고에 동조한 백성들의 잘못도 크지만,

만약 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는, 남자 장정만 60만이요, 다 합치면 약 2백만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표들이 잘못한 결과,

그 죄의 결과가 온 나라에 미친 것이지요.

 

3) 바벨론에서 포로 시절에

다니엘, 그의 세 친구들, 모르드개, 에스더 등은

당시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인 국대 (국가대표선수) 들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모두가 다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대표로 싸웠고, 마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 처럼요,

그들의 승리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국가대표가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남다른 고난이 뒤따릅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갈망한다는 국가대표, 소위 국대!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도 한 번 갈망해 봄직 합니다. “영적인 국대!”

 

그런데 국대가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거기엔 어마어마한 대가가 뒤따릅니다.

남들이 전혀 모르는, 남들이 전혀 겪지 않는

엄청난 고난을, 그들은 당하게 되고, 통과하게 되고,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난, 모세의 고난, 다윗의 고난, 사도들의 고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역대급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국대는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국대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받으신 고난이 없었다면 국대가 결코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8세기의 영적인 국대요한 웨슬리는 *1703-1791

88세를 사셨는데, 그 시대로 볼 때 비교적 오래 장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가 인정을 받은 것은 80세부터 라고 합니다.

80세까지는 계속 환란, 핍박, 고통의 연속이었던 것이죠.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대가로 루터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것처럼

영국에서 비슷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국교회로부터 감리교를 독립시켰던

요한 웨슬리가 치렀어야 했던 대가는, 우리가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가 국대로 뛰며 고난을 받고 있을 동안,

거대한 영국 성공회 교회는, 6명의 대주교들이 거쳐갔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름이 여기 있습니다,

 

존 포터 John Potter (1737-1747)

토마스 헤링 Thomas Herring (1747-1757)

매튜 허턴 Matthew Hutton (1757-1758)

토마스 세커 Thomas Secker (1758-1768)

프레드릭 콘월리스 Frederick Cornwallis (1768-1783)

존 무어 John Moore (1783-1805).

 

여러분은,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럼 역사를 연구한, 역사를 잘 아는 역사학자들은,

6명중 단 한명이라도 위대한사람이라고 인정하는지요? No!

 

그러나 오늘 날,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요한 웨슬리를 알고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하나님 나라의 국대는 요한 웨슬리와

그의 감리교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국대로서 그 위치에 걸맞는 고난과 시련을 겪었고

 

웨슬리는 혹시 사흘 동안에 아무 핍박이 없으면 말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길에서 무릎 꿇고 회개기도 했다는 얘기가 내려올 만큼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가 뭘 제대로 안 했기에 사흘 동안 핍박이 없나?’

하며 회개했다는 것이죠.)

 

그에게 국대의 위상이 주어졌지만,

거기에 걸맞는 극심한 시련을 그는 겪어내야 했습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훼퍼

20세기에 독일에서 나치당과 히틀러가 한참 기세가 등등할 때

당시 주류 기독교였던 독일 루터교회는 대부분 거기에 굴복했습니다.

일부 루터교 목사들은,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나치당과 히틀러의 전횡과 폭거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역할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 당시 독일 및 서유럽에서는 본훼퍼가 영적인 국대였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신학교수로 있다가, 급히 고국인 독일에 귀국해서

히틀러에 대항해서 옳은 발언을 하다가,

국대에 걸맞는 고난과 시련을 당했는데, 옥중에서 총살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독일 개신교회는

20세기 중반 독일교회의 전통은

당시 비주류, 소주자였던 본훼퍼와 고백교회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류요 대다수였던 독일 루터교회가 아닙니다.

 

20세기 중반의 독일교회의 국대

당시 큰 교세를 이루고, 수많은 교인을 보유하고 있었던 루터교회가 아니라

당시 비주류요, 소수자였던 본훼퍼와 고백교회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국대로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시련과 고난을, 피해서 도망가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아서

그 고난의 잔을 기꺼이 들이켜 마셨던 것입니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예수님께 헌신하면 헌신할수록 시련은 가중된다

 

우리가 기본적인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은

예수를 잘 믿으면, 계명에 순종해서 살면,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풀리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산다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입니다.

성경도 그 점을 일반적으로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에덴동산이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게 된다고요!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국대들에겐, 좀 다릅니다.

국대들에겐, 대신에 이런 명제가 적용됩니다.

예수님께 헌신하면 헌신할수록 시련은 더 가중된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21:18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서 국대가 되는 것을 소원하겠지만,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소원할 일입니다.

 

우리는 국대도 되고, 세상 복도 무진장 받기를 소원하지만,

신약성경에 그런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국대로 뛰면서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같은 고난을 기꺼이 받든지

-아니면 편하게 살면서 그냥 국대를 포기하든지!

 

국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그분들이 고난을 당하실 때, 1940~1950년대 사이에

결국 두 분 다 순교의 길을 가셨는데요,

 

그때도 교세도 있었고, 큰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예배드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의 순교는, 한쪽 켠에서 일어난 사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한국기독교 역사는

20세기 중반기 한국기독교를 이끄신 국대급 지도자로

두 분을 포함한 몇몇 순교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당시 크게 세력을 이끄신 분들을 꼽지 않습니다.

 

주제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예수 잘 믿어서 더욱 복 받고 더욱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예수 잘 믿어서 더 고난 받고 더 십자가 지는 사람도 있다

는 것입니다.

 

전자는 그저 보통 일반 크리스천이고

후자는 하나님 나라의 국대급 선수들이라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일례로 미국에 인디언 선교에 헌신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라는 분이 있습니다.

 

18세기에 말을 타고 다니면서, 미국의 산 속 원주민 인디언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했던 분이신데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남기셨죠.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위해서 헌신했으면,

하나님이 그의 폐병도 고쳐주시고, 팔자를 좀 편하게 해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속하게도 하나님은, 30세의 어린 나이에, 그를 데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21세에 회심하고, 성장의 기간을 거친 후

4년 인디언 선교하고 4년 후에 죽었습니다.

 

안 믿는 친구나 친척들은 차라리 믿지 말았으면 오래 살았을 터인데..’

라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일례로 들었지만, 이런 예를 수두룩합니다.

 

1956년 에콰도르에서 순교했던 짐 엘리엇과 4명의 선교사들도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었습니다.

 

네이트 세인트 33

로저 유데리안 32

짐 엘리엇 29

에드 멕컬리 29

피트 플래밍 28

 

예수 잘 믿어서, 세상에서 더 잘 풀린 것이 아니라

더 고난 받고 더 십자가 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들은 국대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들로 뽑힌 분들은

너무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고, 그 고난과 시련을 감당할 힘을 또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국대로 뽑히기 위해, 어릴 적부터 소원하고 바란다는데

오늘날 하나님 나라는 어떤가요?

 

히브리서 11장에도, 당시 신구약 중간기에

많이 배출된 국대들이 열거되어 나옵니다.

암혈과 토굴에 거한 사람들입니다.

 

사는 동안에는 정말 형용하기 어려운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당당히 국대로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대접받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어느 쪽을 바라고 또한 스스로 만족할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