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속성 롬12:17
곽선희 목사님 설교 중 발췌
▶전쟁 발전 4단계
①선한 명분으로 시작함 - 처음 전쟁할 때는 누구든지 나라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나가요.
좋은 이름으로 좋은 명분 하에 나라를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그런 마음으로 출전합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②생존 위해 싸움 - 실제 전쟁 상황에 딱 부딪히면 이제 뭐 나라고 국가고
그런 선의의 목적이 문제가 아니고요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나 한 몸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써바이벌을 위해서 싸웁니다.
③싸움을 위한 싸움 - 이제 싸우다 보면 싸우기 위해 싸웁니다.
안 싸울 수가 없게 돼있어요. 이 싸움이라는 불가피성에 몰려서 싸우기 위해 싸웁니다.
④미치광이 싸움 - 한 단 더 나아가면은 싸우는 것을 미치광이처럼 즐기면서 싸웁니다.
여기서 전쟁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올시다.
그러면은 이제는 어느 순간에서는 그대로 총으로 난사하면서 쓰러지는걸 보고 즐깁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보면,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대며 인간 사냥을 하는 미군 헬리콥터 편대를 볼 수 있습니다.
※선으로 시작했다가 악으로 끝나는 악의 응징/전쟁
악의 응징/전쟁의 속성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누구나 선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선으로 시작한 행위가 악을 척결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한 목적은 사라지고
이제 악한 방법으로 선을 이루려고 합니다. 악을 대항하면서 나 또한 악해지고 맙니다.
마침내 목적은 상실하고 왜 싸워야 되는지도 모릅니다. 더 악해집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나쁜 놈 버릇 가르친다고 하다가 자기가 더 나빠진다고.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말합니다. '분노란 흔히 어리석음이나 경솔에서 시작하고 후회로 끝내기 쉽다.'
분노란 것은 언제나 저 끝에 가서 후회로 끝나는 것이요.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도 내가 악해졌다면 나는 판정패올시다. 이걸 잊지 말아야합니다.
▶악의 속성
①논리적인 악
악 중에 가장 무서운 악이 논리적인 악입니다. 논리적 악의 대표가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입니다.
여기서 모든 악을 정당화합니다. 그래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The end justify means -
유명한 명제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기에 논리적인 악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적 진리와 위배되는 이성적 논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을 무시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논리적으로 합리화 시킵니다.
도스또옙스키가 쓴 「죄와 벌」, 거기에 주인공이 되는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코프 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주인공은 젊었을 때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이 있고 또한 특별한 사람이 있다고.
소위 초인간적인 사람이 있다고. 이 초인간적인 사람의 행위는 정당화되어야 된다는
이런 이상한 철학을 가집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 고리대금업을 하는 전당포 노파, 돈은 많은데 그냥 긁어모아서
못된 방법으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조금도 선한 일에 쓰지 않아요.
'저런 쓰레기같은 인간은 죽여도 된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 하면 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 쓰레기같은 저 인간을 없애고 저 돈으로 위대한 일을 할 것이다.' 그래서 노파를 죽여버립니다.
그러나 그는 뒤에 두고두고 마음속에 노파를 죽인 가책의식 때문에 한평생을 괴로워합니다.
<죄와 벌>입니다. 여러분 어떤 악한 수단도 선한 목적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②피해자의 보복으로서의 악
내가 피해를 당했으니까 내가 보복하는 것은 정의이지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속성이
인간에게 내제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봅니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그대로 폭파되었습니다만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이것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책임은 원인제공자인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철학, 그 논리가 오늘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자기들은 피해자요, 약자요, 그래서 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때까지 억울하게 당하고 살아왔으니까....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으면 이런 일이 왔겠느냐 라며
무죄 선언을 해버립니다. 이 무서운 철학, 이 논리가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난하고 배고프다고, 사회가 나를 냉대해서 가난하게 되었다고 은행을 털어도 되는 것입니까?
한 여자가 어떤 남자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다고 해서 이제 이 여자가 많은 남자를 괴롭혀도 되는 것입니까?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저지르는 악한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냐고요?
내가 중고차를 잘못 사서 큰 손해를 보았다면, 나도 똑같이 이 중고차를 속이고 되팔아서
내가 입은 손해를 남에게 떠넘기겠다는 식의 이 무서운 논리적인 철학이 알게 모르게
이 세상을 점점 수렁으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③심미학적 악(악을 행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것)
사람은 행복이라는 것도 좋은 일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잠깐 오락도 그렇고 기쁨도 그렇고 우리의 행복은 전부 선한 일, 아름다운 일,
진선미를 찾아가면서 행복을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고 나면은 그 오락성과 행복관도 바뀝니다.
그래서 남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남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잘 걷는 사람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보고 폭소를 합니다.
그래서 남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자꾸 돌아가며 퍼뜨리고 다니는 거예요.
이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심미학적 악이예요.
그래가지고 거짓말하는 게 재미있고 속이는 것이 재미있고 악한 일을 하면서 거기서 통쾌함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악 자체를 즐깁니다. 악을 행하면서 통쾌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무서운 악입니다.
④의지적인 악
악을 행하고 승리감/성취감을 즐깁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기가 지금 악마의 노예가 되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대로 성공, 물리적인 성공, 권력 이것만을 즐기고 있는 거예요.
벌써 그는 어느 사이에 악마의 도구가 되어있어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①마음의 평화가 흔들리면 진 것
성경은 말합니다. '평화하라'. 내가 악한 대접을 받아도 내가 어떤 핍박을 받아도 평화하라.
내 마음의 참 평안이, 이 평안이 흔들려서는 안돼요. 내 마음이 먼저 평화하고 또한 상대를 평화하게 해야 됩니다.
나는 평화를 얻고 상대는 평화를 잃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나도 이기고 저도 이기는 윈-윈입니다.
②미워하면 진 것
맞고도 웃으면 이긴 것이고요 때리고도 불안하면 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손해를 보고도 내 마음에 평안함이 있으면 이긴 것이예요.
그러나 이익을 보고도 마음이 불안에 떨고 저를 미워하게 되면 그건 악에게 진 거예요.
③사랑이 없으면 진 것
성경은 말씀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라 하면 도덕규범의 극치처럼 들려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도덕군자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성자들이나 얘기지,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나. 추상적인 진리처럼 얘기합니다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이상 자기가 미움의 죄를 짓게 되고, 자기 스스로 파멸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원수가 나에게 해를 입혀서 괴로웠지만,
이제는 내가 저를 미워함으로써 두 배로 괴로움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원수는 물론이고, 나를 위해서라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The Sane Society'
「건강한 사회」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정신에서 오는데,
건강한 정신이란 뭐냐? 먼저 사랑하며 바로 그 사랑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 얼마나 창조적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 사랑 받고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미움을 받지만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창조해 내어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기에
건강한 사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
대신 미움뿐인 곳에서 사랑을 창조해 내는 능력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곽선희 목사님 설교 중 발췌
'분류 없음 > 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니었다 (0) | 2018.08.30 |
---|---|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 / 찰스 스펄전 (0) | 2018.08.30 |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0) | 2018.08.30 |
기독교 문화관 (0) | 2018.08.30 |
기독교 예술관 / 데이빗 페즈 (0) | 201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