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눅16:11
◑이원론적 기독교란?
이 세상은 하나님께 항거하는 마귀가 지배하는 사회로 본다.
성도는 본향인 천국을 지향하며,
세상에 살 동안에는 핍박을 견디며 사는 나그네다.
그러므로, 전도의 사명 이외에 다른 사회적 사명을 거의 배격한다.
이런 (잘못된) 세계관이 한국 교계에 대단히 강하게,
(과거에) 널리 퍼져 있었다.
▶관심을 안 기울이면 슬그머니 침입함
교회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안 쓰면
→사회의 부조리가 교회로 슬그머니 침투함.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해 무관심다가
→사회의 부패함이 교회로 침입해서
→그 결과, 교회의 세속화가 가속되었다(지난 30년 현상).
겉으로는 경건해서 기도와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속에서 교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물신/권세/명예를 섬기는
세상 가치관과 똑 같았다.
내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사회' 또는 '사회와 교회의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성도는,
그것을 생각하며 사는 성도보다,
사회의 세속적 가치관을 더욱 쉽게 받아들인다. 쉽게 동화된다.
▶한국 교회의 세속화 원인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한국 성도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아왔으므로,
지금 현재, 사회의 (안 좋은) 영향력을 훨씬 많이 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돈/권력/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향이 있다.
대부분 교회가 돈 우상을 섬기는 이유
→그 동안 '사회/경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살았기 때문.
무관심하니까 슬그머니 교회로 침입하는 것도 모르는 체 지내왔다.
권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사회의 정치권력 문제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결과,
권력의 폐해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교회에는 세상 권력 체계가 고스란히 들어오고,
세상 권세자들을 필요이상으로 우대하는 세속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①교회의 전도가 중지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며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도덕적 존경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②크리스천 정치가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고,
크리스천 법조인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직업 활동을 한다.
예를 들면, 뻔히 질 재판인데도 한 번 소송을 걸어보자고 나온다.
▶'교회 성장'이 너무 과도했음
실제로 목회자가 성경대로 설교하면 (초기에)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떠나
버릴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목회자는 교인들 귀에 듣기 좋은 설교를 하게 된다.
교인을 더 끌어 모으려다 보니 축복/사랑/위로의 하나님을 강조하게 되었다.
'교회성장'이란 우상은 한국 교회에 여전히 큰 문제이다.
◑금융에 관한 성경적 시각
▶이자 수입
원래 성경은 동족인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취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한다.
중세 시대까지 고리대금업은 매춘보다 같거나 더한 범죄 행위였다.
그래서 그런 범죄적 사업은 비난받는 천한 유대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칼빈은 역사상 최초로 이자 수익을 허용했다. 이유인즉,
구약시대 때 돈을 빌리는 목적은 생계/목숨 유지를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이자를 취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업자본주의'로 시대가 변했고, 돈 빌리는 목적도 바뀌었다.
지금은 사업을 위해 돈을 빌리므로, 공평의 원칙에 의해, 이자 받음이
옳다고 주장했다.
▶주식 투자
주식 투자를 통해 '배당 이익'을 얻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단타 매매를 통해 시세 차익을 챙기는 행위는 →불로소득이다.
주식 투자를 하되, 하루만에 사고 파는 'day trading'은 금해야 한다.
미국은 day trading이 15%인데 반해, 한국은 모든 증권거래의 70%를 차지.
크리스천들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재테크 방식을 양심상 금해야 한다.
윤리적 크리스천이 좋은 크리스천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좋은 크리스천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한다.
거창한 일도 필요하지만, 내 주변의 작은 일에서부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
나가보자.
<손봉호 교수. 동덕여대 총장. 2001년 당시 사랑의교회 특강 영상자료 녹취.
▶축재에 대한 교회의 주장
종교 개혁 이전까지 교회는 한 번도 축재에 대해서 장려한 적이 없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따르는 것이었다.
교회는 축재에 대해 비판적으로 가르쳤고, 그래서 부자들이 교회 다니기 힘들었다.
칼빈 이후 개신 교회는 전통 가톨릭교회와 조금 다른 입장을 가르쳤다.
물질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일부-선한 것-로 보았다. 죄악시하지 않았다.
거룩한 목적의 부의 축재가 (당시 소수파였던) 개신 교회에서 최초로 용인되었다.
그 결과, 귀족과 봉건 영주들이 대거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고,
개신교는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되는데 중요한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다.
반대로 이 사상을 극단적으로 오용, 남용한 결과 '물질의 우상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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