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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드는 것보다 기뻐해야 예배된다 / 존 파이퍼

LNCK 2018. 11. 25. 07:54

 

손드는 것보다 기뻐해야 예배된다                    시43:4                      출처

 

Are You Going Through the Motions with God

존 파이퍼

   

43: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To God my exceeding joy 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저는 시43:4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정한 찬양은, 우리의 넘치는 큰 기쁨으로서의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하는데, 그 기쁨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여러분의 성대의 떨리는 소리도 아니며,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그저 선포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그 분은 존귀하시다고 하는 여러분의 신앙을

선포하는 것도.. 진정한 찬양이 아닙니다.

 

진정한 찬양은, 여러분의 마음의 표현인데

큰 기쁨으로서의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나로부터 멀리 떠나 있구나

그래서 헛되어 나를 경배하는구나!’ 15:8

 

여러분이 입술로 적절한 말로써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존귀하심을요

그렇지만 그게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죠.

제로가 되고 쓸모없게 될 수 있어요.

 

그러므로 경배 찬양은 주일 아침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드려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큰 기쁨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와 보화로 여기지 않는다면,

입술의 고백만으로, 또는 손을 들거나 춤을 추는 행위만으로

경배 찬양이 드려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기쁨이 빠진다면 말이죠!

 

기뻐하지 않는 마음으로의 예배는,

기쁨이 결여된 예배는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주제>

 

43: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To God my exceeding joy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우리는 찬양이 무엇인줄 알며,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이론적으로는 잘 압니다.

 

찬양은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높아지시고 영광 받으시도록

위대하게 보여지도록.. 하는 것이 찬양의 목적입니다.

 

이 찬양이란 수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돌립니다.

이것이 찬양의 원래 목적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의 속성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 존귀하심을

우리의 노래로, 몸으로 더 높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하는 것이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러나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진정한 찬양은, 우리 마음의 기쁨이 꼭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입술로만 가지고는 진정한 찬양이 안 됩니다.

 

우리의 최고 존귀하신 분로서 하나님을

우리 마음으로 진정으로 크게 기뻐하지 않은 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 이런 제 주장은 논쟁거리입니다.

 

이게 논쟁거리인 이유는

그것이 매우 곤혹스럽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망연자실하게 합니다.

왜냐면 당신은 발견하거나 이런 사람을 압니다.

아마 여러분의 가족 중에서도

사람들이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하나님을 모심 없이, 큰 기쁨 없이 찬양하거든요.

 

그런 것은 찬양이 아니란 뜻입니까?

그래서 논쟁거리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일생을 다 산 후에 말씀하시길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제로야, 헛되고 텅 비었어

그러면 여러분은 망연자실 할 것입니다.

 

교회도 늘 다니고

늘 올바른 말도 하는데

너희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도다15:8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장 큰 보화요, 큰 기쁨이 되지 못할 때

그렇게 되죠.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고 있어도

큰 기쁨이 없으면, 이 예배는 황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황폐의 맞은편에

회개가 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뻐함으로 찬양을 받으신다는 말을!

 

하나님은 영광받으십니다.

왜냐면 당신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니까요.

 

하나님은 영광받으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것은,

우리가 무슨 큰 성취를 이룰 때만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꼭 영웅이 되어서만 기뻐하는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는 지금 내 모습 이대로,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가장 큰 기쁨으로, 보화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영광돌리는데

무슨 큰 행사, 큰 집회, 대단한 업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쁨의 예배는 놀라운 것이지요.

우리 예배가 기쁨 없이 황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인데,

우리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 분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그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어 드린다는 것을요!

 

50년 전에 제 존 파이퍼가 이 진리를 깨닫고

그때부터 저는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성령의 감화로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하나님의 열심과

-즐거워지려는 나의 소원은

둘은 서로 관계가 어색한 게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요!

이것은 정말 영광스런 발견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희락주의 Christian Hedonism를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데

내가 가장 하나님을 만족할 때입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깊은 즐거움을 열망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건 명령이다

왜냐면 기쁨 없이 하나님을 영광 돌릴 수 없으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광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깊은 즐거움을 열망하라는 명령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영생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 없이) 단순히 의무적인 신앙생활을 하는데요

기독교 희락주의는 말하길 그런 신앙생활은 끝내라

의지적 신앙생활은 그만하라

그런 의무적 신앙생활은 끝내라고 합니다.

 

왜냐면 그건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데요

하나님은 그렇게는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그건 참된 기독교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왜 성경에서 반복해서 이렇게 명령하는 이유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37:4,

여호와를 즐거워할지어다32:11

주안에서 기뻐하라3:1

이렇게 명령하는 이유는 당신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온 우주의 창조 목적입니다. 43:7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께 수차례 반복해서 명령하셨어요.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왜냐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즐거워할 때 가장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