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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워셔 셰퍼드 컨퍼런스 P2

LNCK 2019. 1. 21. 20:23

www.youtube.com/watch?v=Tjwrj1mOB3k

폴 워셔 셰퍼드 컨퍼런스 P2                고후5:20~21        출처      P1 

*위 동영상의 40분~끝까지 녹취, 정리   번역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 봅니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고, 이 시기에

저는 우리가 듣게 될 설교로 인해 두렵습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설교자들은 보통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신 인간이신지라,

앞으로 맞게 될 무서운 채찍, 가시면류관, 당하시게 될 조롱을 내다보셨습니다.

 

또 손과 발에 박힐 대못과

그 십자가의 엄청난 고통을 내다보시면서 두려움에 빠져서 절규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제가 말씀드립니다.

물론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셔서 엄청난 육체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후 3세기 동안 초기 기독교에 대한 무시무시한 박해와

순교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주 작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들도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 어떤 이들은 화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순교의 역사를 적은 책에 보면,

그들은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찬송을 부르며 십자가로 향했고

그 순교적 죽음을 장엄한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시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신 것을 두고, 두려워 움츠러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잔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습니까?

 

75:8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예레미야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25:15~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과거에 한 때 제가 어느 미션스쿨에 가서 설교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모인 초중고 학생들에게 제가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 때

그 잔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그때 아주 어린 만9세 여학생이 손을 들었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목사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잔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대답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가, 벌써 그런 성경지식을 갖고 있다니요!

 

그러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시고 갈등하신 것은
앞으로 당하게 될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앞으로 당신 혼자의 몸으로 감당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였던 것입니다.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시신 그리스도의 예

당신이 한 작은 마을에 살고 있고

댐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댐은 1천마일 높이에 1천마일 넓이의 초대형 댐입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와서 그 댐에 물이 차고, 곧 붕괴될 위험조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당신은 천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집의 창문으로 달려갑니다.

 

당신은 댐이 붕괴되어 하늘만큼 높은 물의 장벽이

당신을 향해 흘러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때는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별 수 없습니다.

달리기에 재간이 있는 사람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당신은 곧 죽을 것이고

그 후로 당신의 이름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파도가 당신을 덮치기 직전에

땅이 갈라져서, 그 거대한 물줄기를 다 마셔버립니다.

당신은 그 엄청난 진노에서 구사일생 건져진 것입니다.

 

그래서 단 한 방울의 물도

당신의 양말에 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진노이 잔을 내대신 마셔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보리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일반대학에서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속죄atonement에 대해 설교하자 한 학생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단 몇 시간동안의

십자가에서 고통 받은 것으로

많은 사람이, 셀 수 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젊은이여, 참 좋은 질문입니다. 지금 제 설교를 보충해 주고 있군요.

어떻게 한 사람이 나무에 달려 몇 시간 동안 혼자 죽어감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지옥에 가는 것을

구원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요?

 

왜냐면 그 한 사람의 생명이

그 모든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천칭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저울의 한 쪽에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산들과 작은 언덕,

또 거기에 사는 귀뚜라미로부터 모든 짐승들, 사람들까지 다 포함해서

또 거기에다 보태어 모든 행성들까지 다 가져와서 한쪽 접시에 올려놓고

 

그 반대편에 그리스도를 둔다면

그분이 그 모든 것들보다 더 무겁습니다. 더 가치있습니다.

그분이 그 모든 것들보다 더 가치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온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신학생 여러분은 더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더 많이 공부하십시오!

예수님의 그 영광이 당신에게 주목하여 보일 때까지요!

 

그 영광이 (너무 커서, 너무 놀라워서) 당신을 상하게 하고,

당신을 분해하고,

또한 당신을 다시 재건해서

참 설교자로 만들 때까지 말입니다.

 

 

역사상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의 한 사람은

존 플라벨 John Flavel 입니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중재자로서의 영광 Mediatorial Glories of Christ

에서 그는 자신이 달빛에 의지해 글을 쓰는 사람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1권에 한 부분이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아버지의 거래 the Father’s bargain’이라고 부르는데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간결하게 그는 여기서 복음을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영원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여기 철저히 스스로를 망쳐버린

불쌍하고 비참한 영혼들의 무리가,

이제 나의 공의에 무방비한 채로 있단다.

 

그들이 ()의롭다고 증명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공의에 의해 영원한 파멸로 심판받게 될 것이다.

Justice demands satisfaction for them,

or will satisfy itself in the eternal ruin of them.

     이 가련한 영혼들을 위해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겠니?'

 

(여러분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가 대답하십니다.

오 나의 아버지,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동정으로...

(제가 그 공의를 만족시키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신명기 7장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왜 저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같은 말을 반복하시며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신7:7-8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주셨고

제게 가장 특별한 것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갈보리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신부를 사랑하셔서 말입니다.

 

플라벨이 말한 것은 이렇습니다.

오 나의 아버지,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동정으로,

그들이 영원히 멸망하는 것 대신

제가 그들의 보증인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제가 그들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들어보십시오.

아버지, 그들이 아버지께 무엇을 빚졌는지 제가 볼 수 있게

모든 청구서를 가져다주십시오. 하나님 제게 모두 다 가져다주십시오.”

 

~ 들어보십시오.

하나님, 모두 다 가져와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결산할 것이 없게 해주십시오.”

 

들으셨습니까?

더 이상 결산할 것이 없습니다.

면제되었습니다! 자유입니다!

 

완전한 속죄, 완전한 제사입니다. 자유입니다!

면제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지불은 없습니다.

모든 청구서가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 모두 다 가져와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결산할 것이 없게 해주십시오.

모두 제게 요구하십시오. 그들이 치러야할 고통 대신

제가 그 진노의 고통을 담당하겠습니다.

아버지, 제게, 제게 그들의 모든 빚을 지게 하십시오.”

 

아버지가 대답하십니다. “하지만 내 아들아,

네가 그들을 위해 그 고통을 감당하겠다면

너는 그것의 가장 마지막까지 반드시 치러야만 한다.

감해질 것을 기대하지 말아라.“

 

당신이 아마존에서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갈 때,

저 멀리서 구름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면

당신은 기도할 것입니다. 당신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목적지 마을에 상륙하기까지는 몇 분밖에 남지 않았어.

만약 도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저 폭우에 가라앉을 거야.’

  

당신은 구름이 줄어들기를’, 구름이 어떻게든 두 개로 나눠져서

하나는 이쪽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저쪽 방향으로 가서

당신이 안전하기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파도가 뱃머리에 살짝 스치기만 하기를요.

 

당신은 감해질 것을 기도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폭우와 파도가 감해질 것을 기대하지 말아라, 아들아.

내가 그들을 살려둔다면, 나는 너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만족케 하십시오. 아버지! 그렇게 하십시오.

모든 것을 제게 청구하십시오.

저는 그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 빚이 저를 파멸시키게 된다고 할지라도,

저는 기꺼이 그 빚을 감당하겠습니다. 기꺼이 감당하겠습니다.”

 

 

이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구약의 가장 훌륭한 본문 중 하나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던 부분입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2

 

여러분은 그 노인이 순종함으로, 그러나 큰 슬픔으로

모리아 산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제단을 준비하고, 나무를 준비하고,

그의 아들을 눕힙니다. 그리고 부싯돌칼을 꺼냅니다.

아마 그 칼은 그 아이에게 할례를 행할 때 썼던 칼이었을 겁니다.

 

이제 팔을 들어 돌칼로 친아들을 잡을 바로 그 순간,

그의 손은 하나님에 의해 멈춰집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여호와가 숫양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듣습니다.

 

여담인데, 제 앞에서는 절대로 여호와 이레라는 단어를

주택이나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샀을 때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 분이 숫양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저

, 정말 아름다운 결말이다. 아름다운 결말이야!”라고 합니다.

 

아니요, 이것이 결말이 아닙니다. 막간intermission일 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비유해) 막이 닫혔습니다. 2천 년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막이 다시 열렸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매달려있습니다.

그분의 사랑하는 독자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에서 칼을 가져다가

그분의 친아들의 가슴에 찔러 넣으십니다.

아브라함은 못 찌르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친히 아들을 찌르신 것입니다.

 

한 시인은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제사를 드리세요!

모든 피조물이 요청을 드립니다. (*인류를 위해 너무 중요하니까)

 

(십자가의) 제물로 바쳐지세요!

모든 피조물들의 구속을 위한 한 생명값이니까요.

 

예수님, 그 제사를 바치십시오!

무죄한 자, 의로운 자가 죽임을 당해야 하니까요.

 

그 십자가의 제사를 올려드리십시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니까요.

 

다시 우리는 이 진주 같은 복음의 대사들입니다.

우리는 이 보화같은 구원의 복음의 사신 ambassador들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여기서 집에 돌아가거든

스스로 공부하십시오.

 

그분을 찾고, 찾고 또 찾아서 당신의 청중에게

그분을 더욱, 더욱, 더욱 보여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만약 그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그들이 그분을 붙잡는 만큼,

그들은 거룩함에 자랄 것이고, 헌신에 자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거리로 나가십시오.

 

정책에 대해 논쟁하지 마십시오.

특정한 도덕적 기준에 대해 사람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선포하십시오.

 

산 위에 올라가서 전하십시오!

하지만 산 위에 올라가기 전에, 당신이 입을 열 때 무언가가 확실히 나오게 하십시오.

 

이걸 아셔야합니다. 기도를 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처음 제 사역으로 부르심 받았을 때 저의 목사님은,

그분은 놀라운 분이셨는데, 저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혼자 있을 수 있겠니?”

 

저는 그분이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리를 설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의미했던 것은 다른 청년들은 기독교 워크샵에 가거나

미혼청년들과 어울리거나, 군중들과 함께하는 동안에,

너는 하나님과 함께 혼자 있을 수 있겠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너의 거처로 삼을 수 있겠니?

너는 보기 드문 사람이 될 수 있겠니?

너는 한동안 하나님과 함께 머무를 수 있겠니?’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세상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계시를 필요로 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제 당신의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 중 일부에게는, 많은 시간동안 제게 그랬던 것처럼,

입을 닫고 귀를 열어 공부하고 읽고 울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단에 서는 모든 순간에 우리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거나

선동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판매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에스겔입니다.

 

하나님은 마른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마른 뼈이기 때문입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37:3)

 

우리는 그분을 부인하고 불신함으로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분께 주제넘게 라고 말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7:3)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언하십시오. 대언하십시오!

 

모든 것, 이 왕국의 모든 것은 기적입니다.

현대 복음주의의 허술하고 어처구니없는 기적이 아니라

진짜 기적 말입니다.

 

사람은 오직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회심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가 대언할 때 가장 역사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바람을 잡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