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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왜곡

LNCK 2019. 2. 26. 20:01

경험의 왜곡                 12:5~7                  스크랩

 

12:5b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오늘 히브리서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징계, discipline)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개역에 징계로 번역했는데, ‘훈육이 더 좋은 변역입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 말씀에 대해 저는 이렇게 다시 반문하고 싶습니다.

히브리서여아버지의 훈육을 아들이 받는 것을 당연한 듯 얘기하는데

훈육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제로 얼마나 됩니까?’

 

실로 우리는 아버지의 훈육을 책망으로만 여기고

시련을 벌로만 여길 뿐

훈육discipline 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또한 윗사람으로부터

별로 책망을 많이 받지 않았고

시련도 많이 받지도 않았지만

그 책망이나 시련을 징벌(처벌 punishment) 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저는 충고나 책망을 오히려 많이 하게 되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요.

 

그래서일까, 저의 훈육을 훈육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책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왜 그렇게밖에 못할까 많이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게 뭐든지, 사람들은

다 미움 때문에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의심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는 몰라도, 어찌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의심할까요?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을 알거늘

어찌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쁘고 해로운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경험의 왜곡> 때문입니다.

 

우리 또는 우리의 아버지가 정말 독선적으로 책망하거나

홧김에 할 말 못할 말을 퍼붓거나 한 경험이 있었다면,

아니그 정도는 아니고 사랑으로 하셨겠지만

그 사랑에 약간의 분노가 불순물처럼 있었다면

그 과거의 쓴 경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도 그럴 거라고... 오해를 하기 쉽지요.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하나님도 무서운 분,

벌주시는 분으로만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이 시간 육신의 아버지는 예로 든 것이고,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적 지도자의 경우입니다.

그러니 우리 영적 지도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 각자의 언행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하나님의 참 사랑을 전달해 주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전달자입니까 왜곡자입니까?

 

신자들에게, 또는 제자들에게

가끔이라도 진심어린 충고를 해 줄 때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나를 하나님 사랑의 왜곡자로 규정하는 일이 없도록

특히 충고하고, 책망할 때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