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j6ueYe0BF84&feature=youtu.be
◑서독에서 동독으로 간 목회자 스크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그 아버지 목사 호르스트 카스너 Horst Kasner(1926~2011) 이야기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된 뒤 1949년부터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기 전 1961년까지
동독에서 270만 명이나 되는 동독의 기술자, 전문직업인, 지식인들이
서독으로 빠져나갔다.
앙겔라 메르켈 가족이 동독 땅으로 이사갔던 1954년에도
18만 명이 동독을 탈출했다.
동독의 경제력은 노동력 부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동독에서 종교자유가 허락되었으나
공산치하를 염려한 동독 개신교 목사들이 대거 서독으로 넘어왔다.
대다수 동독인들은 풍요롭고 안정되고 자유를 만끽하는 서독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서독의 한 가정이 고향을 버리고 동독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는 1954년, 아직 동서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막히지 않았고,
점점 닫혀져 가는 상황이었다.
*1949~1961(완전 닫힘) 사이에 총 2백5십만 이상 넘어 옴
당시 카스너 목사 가족이, 아내와 생후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동독 땅으로 넘어간 이유는,
당시 동독에서 서독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넘어오고,
그 중에는 목사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동독에 목사가 모자랄 것을 염려해서,
그래서 목사 숫자가 모자라면, 동독에서 루터교 전체가 약화될 것을 우려해서
함부르크의 한스 오토 뵐러 Hans-Otto Wölber 목사가
(앙겔라 메르켈의 아버지인)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를
동독으로 파송한 것이었다.
이때 앙겔라 메르켈의 나이 생후 3개월이었다.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 목사는
가난하고 불안하고 독재정권이 국민들의 자유를 탄압하는
동독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는 동독에 목사가 부족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도 예배당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이사한다는 크나큰 모험이라 아니 할 수 없다.
(3년 후에는 동독내 새로운 루터교 목회지로 부임해서 목사관을 얻었다고 한다)
카스너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했다.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없는 공산치하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카스너 목사는 예수님처럼 낮은 곳,
가난하고 독재의 희생이 된 불행한 곳,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이 있으면 어디든 간다.”는 신념으로
가족을 데리고 동독(브란덴부르크)으로 떠났다.
카스너는 고향이 베를린이요 교사인 아내의 고향은 함부르크다.
그녀는 고향에서 친척들과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려고
극구 남편의 결정에 반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동독을 탈출해서 나오는데
거꾸로 그러한 동독으로 가서 산다는 것이 어리석고 우둔한 결정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굳은 의지를 받아들여
결국 1954년 동베를린 근교로 남편과 함께 이주했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독으로 이사 갔던 이 딸아이는
아버지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배우며 자랐다.
그녀가 바로 오늘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카스너 목사의 딸 앙겔라 메르켈은 *결혼 후 성이 카스너에서 메르켈로 바뀜
나중에 동독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보수정당인 ‘기민당(기독교민주연합 CDU)’ 당원이 되었다.
이 정당은 주로 독일 천주교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는 당이다.
독일이 통일(1989)된 뒤 독일 통일의 아버지 콜 총리의 총애를 받고
독일 정치의 주류 무대를 장악해 나가
2000년에 기민당의 당수로 선출되고
2005년 통일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되었다.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독에서 안정된 삶을 버리고
동독 기독교 신자들을 위해 헌신한 그의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상을 내리신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가난한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를
통일 독일의 최고지도자,
전 유럽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로 만드신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어렸을 때
동독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배운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을
독일 정치에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도 메르켈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독일 정치무대에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기독교 신앙 가르침에 기초한
자기의 정치이념을 실현하고 있다.
예컨대 인간 존엄성과 창조 세계의 보존이라는 기독교 가치에 따라
가족, 복지, 이민자의 인격 존엄성, 생명윤리를 강조하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이처럼 메르켈의 강력한 지도력은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의 철저한 신앙 교육에서 나왔다.
그녀는 심지어 사회 정의문제를 풀 때는 말라기 3장을 인용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치유 가능성을 제시할 때는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앓는 여인 이야기를 인용하곤 했을 정도였다.
“신앙은 나와 타인에 대한 관용적 시각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길러줍니다.
제가 만일 무신론자였다면 이와 같은 책임의식을 지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제가 무겁게만 느끼는 삶의 부담감을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기도는 부족한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겸손한 자세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앙겔라 메르켈의 1995년 함부르크 ‘교회의 날’ 강연 중)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있는 신앙, 예배의 감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세에 신앙의 전통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앙겔라 메르켈의 2005년 독일 하노버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