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부흥과 기독교의 부흥은 같은 것인가? 눅11:13 19.08.11.스크랩, 녹취
제 김영준 목사가 유럽선교를 준비하면서
이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기독교의 부흥은 같은 것인가?’
유럽 사람들이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가
기독교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가?
‘그 둘이 같은 것이 아니냐,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이냐?’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예수께서 뜻하셨던 교회가
지금의 교회와 같은 구조와 같은 제도였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생전에 ‘예수께서 꿈꾸시던 교회’라는
발언을 하셨는데,
그 어구가 제 마음속에 두고 두고 남습니다.
‘예수께서 꿈꾸시던 교회’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냥 세상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그게 ‘예수께서 꿈꾸시던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중세 가톨릭 어느 교황이
꿈에 거대한 예배당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순간에 한 수도사가
그 담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한 사람이, 그 담을 버티고 서 있는 바람에
예배당이 쓰러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교황이 염려하면서 기도하는데
다음날 어느 수도사가 교황을 알현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니까 꿈에 나타났던 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성 프란시스 였습니다.
그러니까 중세 교회가 거대해 졌는데
오히려 기독교는 위기에 처해있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2000,09,03. 이 교회를 개척하는 바로 그 날 새벽이었습니다.
첫 주일 예배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에 제가 인상적인 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제가 조그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려고 하는데
바다에는 거대한 폭풍우, 태풍이 불고 있었고
여러 큰 배들이 좌초하는 꿈이었습니다.
교회 개척하는 날 새벽에 꾼 꿈치고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꿈이었죠.
저는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지를 두고두고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저희 교회가 작은 배와 같으리라.. 는 내용이었습니다.
큰 배가 되리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큰 배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풍랑을 만나서 좌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꿈을 꾼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꿈을 꾼 적은 거의 없고
꿈속에서 제가 발견하는 제 모습은
무력한 모습,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무력한 그런 모습을 꿈속에서 볼 때가 많습니다.
제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와 같았습니다.
바다는 험하다는 사실!
바다에 풍랑이 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큰 배와 같은 큰 교회들이 좌초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였습니다.
▲왜 서구사회의 교회가 쇠퇴했는가요?
2천년의 기독교 역사가 지나간 후에
그 많은 세월과
그 많은 기독교의 전통과
교회의 경험과
그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어찌하여 서구사회의 교회가 쇠퇴하게 되었는가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교회의 부흥과 기독교의 부흥이 반드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어떻게 보면, 교회가 비대해진 것이
오히려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바로 아는데
걸림돌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힘이 많아지고
너무 비중이 커지고
유럽 문명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데 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고
교회의 영광을 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교회의 건축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음악을 하나님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원했는데
그러나 서구 사회의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엇으로 대체했느냐 하면,
-전통으로 대체하고
-권위, 문화, 위엄.. 이런 것들로 대체해서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영국의 BBC 방송에서
유럽의 시들어가는 교회에 대해 취재하면서
다른 나라의 교회는 어떠한지를 비교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그 다큐 방송을 봤는데
서울의 어느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 실황을 촬영하고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을 떠나가는 인파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취재하는 진행자의 얼굴 표정이
별로 밝아보이지 않고
별로 감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별로 깊은 인상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파의 규모에 별다른 감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소가 닭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인파의 모습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규모나 숫자를 말하자면
유럽도 한 때 그런 영화를 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 자랑을 하겠습니까.
유럽의 교회는 한국교회보다도 더 화려했고
예배당이 더 아름다웠고
교회음악과 또 신학과 기독교 문화를 누렸지요.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 프로그램을 취재한 BBC 진행자는
과거에 유럽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한 때 그러했었는데,
우리도 한 때 북적거렸는데..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말일까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 같지 않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희망에 부풀었고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를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자 했을까요?
혹시 목회방법론을 배우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한국 성도들의 열정을 배우려고 했을까요?
아마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했을 것인데
여러분, 이것이 진짜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어디 계시다, 저기 계신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말을 믿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 저기를 찾아다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엉뚱한 데를 찾아갑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목회자를 찾아간다든지
유명한 교회를 찾아간다든지
효험이 있다는 기도원에 찾아간다든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적이 있다는 ‘성지’를 찾아간다든가..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례를 가기도 합니다.
‘성지순례’
외국에서는 이스라엘 땅을 찾아가는 것을 ‘성지순례’라 하지 않고
그저 ‘이스라엘 투어’라고, 관광이란 말을 씁니다만
우리는 ‘성지순례’라는 말을 씁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모든 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4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여기서도 말고, 저기서도 말고, 요4:21
어디서 예배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감옥속에도 계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주님이 그를 감옥에서 건져주셨고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도
옥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던져졌던 사자굴속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고
사자들이 금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물고기 뱃속에도 계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한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어요.
어디에 가느냐? ..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뵙기 보다는
누군가를 의지하고
어떤 단체를 의지하고
능력 있는 어떤 사람을 의지해서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게 자기가 직접 만나는 것보다 쉬운가 봅니다)
여러분,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줄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가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성령세례를 교회가 주는 게 아닙니다.
목회자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마7:7, 눅11:10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3
이 말씀은,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왜 서구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갔겠습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가서 얻는 것이 없다면.. 떠나갑니다.
얻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얻는 것이 있다면, 막아도 교회에 옵니다.
얻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무엇을 얻습니까?
무슨 강좌를 통해 정보를 얻겠습니까?
성도의 교제를 통해 재미있는 시간을 얻겠습니까?
교회에서 무엇을 얻습니까?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경쟁력이요,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서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구원!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이것이 은과 금이 없더라도
교회가 갖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믿음으로 주님을 만날
확신을 갖지 못하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누군가의 기도빨(기도의 능력)을 의지하려고 하고
누가 내 대신 기도해 주기를 원하고
누구의 믿음에 업히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그것이 어린아이의 믿음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걷기보다는 엄마 등에 업히려고 하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당시에
종로나 명동 지역을 ‘시내’라고 불렀는데
어머니가 시내로 외출하실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때 저는 항상 다리가 아프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시내 한 번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그래야 시내에 나온 어떤 유익이 제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 때는 누구나 그러겠지요. 누구에게 의존적이 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자기 스스로 살고, 또한 남을 돌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이제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를, 제가 때로는 안아서
위치를 이리 저리 변경해드리고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살이 빠지셨는지 하나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 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생의 삶이 그렇고,
신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믿는 것은
나만을 위해 믿는 게 아니고
내가 책임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할 때가 됩니다.
기도할 때도,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도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고
또 내가 순종하는 것도,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른의 모습, 신앙적/영적인 어른은 남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가 낮아져야
예수님이 높아지실 수 있고
교회가 겸손함으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교회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과 기독교의 부흥을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은 다릅니다.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늘 평강을 말한다고 성경에서 말씀했죠.
‘모든 것이 평안하다..’ 라고 말하는 중에
거짓선지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여러분은 목회자의 영빨(영력)을 의지하십니까?
여러분은 교단을 의지하십니까?
한국기독교의 전통을 의지하십니까?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의지하십니까?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의 쇄신은 날마다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험한 바다를 건너는 사람과 같습니다.
내가 타는 배가 크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풍랑 치면 큰 배도 가라앉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겸손한 마음으로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섰다고 생각하다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다 이룬 사람이 없고
우리 모두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바라봐야 됩니다.
우리 모두는 신실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우리의 푯대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