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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영적 목마름 요7:37~38 스크랩
존 라일『거룩』중에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중 하나가 목마름이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4)
육신의 목마름이 이토록 고통스럽다면 영혼의 목마름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자신의 영혼이 영원한 멸망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맛보게 될 고통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고통이다.
영혼을 삼키고 관절과 골수를 찌르는 고통이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목마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참으로 깨어난 양심이 갖게 되는 갈망이다.
이글거리는 땅을 한없이 걸어도 도무지 쉴 곳을 찾을 수 없는 영혼을 녹아 내리는 열망이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유대인들이 느꼈을 목마름이 바로 이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우리도 이 목마름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죽어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것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죽음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고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되는 때조차도 우리는 얼마나 가난하고 연약하고 변덕스럽고
부족한 피조물인지 절감해야 한다.
영원에서의 우리 자리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마음 중심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한 ‘목마름’ 같은 것을 맛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이런 영적 갈망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실 이런 갈망의 결핍이야말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이다.
성경에서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을 묘사할 때, ‘죽은’, ‘잠자는’, ‘눈먼’, ‘귀먹은’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거듭남과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령이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세우시면서 제일 먼저 놓으시는 초석은,
죄와 자기 죄책을 절감하고 자기 영혼이 얼마나 헐벗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새 창조에서 가장 먼저 되는 일은 빛으로 자신의 상태를 조명 받는 것이다.
목마른 영혼을 가졌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의 영적 필요를 깨닫고 참된 영적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 바로 구원하는 기독교의 시작이다.
더 큰 목마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이 말씀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철학자들도 도무지 풀지 못한 난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가?”-를 한순간에 해결한다.
(요6:35, 6:37, 8:12, 19:9, 14:6, 마11:28)
이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여러분이 차거운 요단 강물에 발을 담글 때,
이 말씀들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는 목마른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생수의 샘이라는 말이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의 칭의를 위해 다시 살아나신
우리의 구속주요 대속자이신 예수님께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용서, 사죄, 자비, 은혜, 평화, 안식, 구원, 위로, 희망이 넘치도록 있고 다함이 없다.
이 놀라운 샘이 터지도록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다. 죄인을 받으시는 것이 그분의 직무이다.
죄인에게 용서와 생명과 평화를 주시는 것이 그분의 즐거움이다.
본문은 온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1
. 목마름을 해갈하고 편히 쉬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리스도 그분께로 가야 한다.
교회에 출석하고, 정해진 규례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대면해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 등에 짊어진 짐을 벗겨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직접 그리스도를 대면해야 한다.
2. 실제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생각만 하고 살다가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반드시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만약 탕자가 생각만 하고 그쳤다면, 아마 평생 돼지우리에서 살았을 것이다.
3. 목마름을 해갈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바라는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단순한 믿음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회개하고 통회하는 상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믿음은 생수를 우리 입술로 가져가는 유일한 손이다.
목마른 자에게 주어진 이 치료책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이 치료책을 받아들이도록 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영적 질병을 치료할 유일한 처방이다.
이 땅과 천국을 잇는 유일한 가교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 생수를 마셔야 한다.
교회사가 배출한 성도들과 순교자들을 보라. 이들은 하나같이 날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와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그 피는 참된 음료”임을 발견한 사람들이었다.(요6:55)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한 위대한 처방이 널리 알려진 땅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성경을 펴서 볼 수 있고, 복음이 선포되고 풍성한 은혜의 방편을 누릴 수 있는 땅에 산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우리에게 유익과 격려가 되는 보배로운 ‘의무’와 ‘약속’이 성경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
그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한지를 헤아리는 그리스도인은 극히 드물다.
성경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영혼을 대하실 때 즐겨 사용하시는 위대한 방편이다.
사람들의 약속은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뜻이 일정”하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1:17)
하나님의 보고에는 모든 상황에 적합한 ‘의무’와 ‘약속’이 있다.
본문의 그리스도의 약속은 특별히 영적 목마름 가운데 있는 사람,
그리고 안식을 찾아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약속의 말씀이다.
1. 지금 주님께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은,
자기 영혼의 부족함을 채울 모든 것을 풍성히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속사람에게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 속한 것’에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사망과 심판과 영원에 대한 영적 두려움마저 힘을 잃게 될 것이다.(요16:15)
물론 자신에게 있는 연약함과 마귀의 유혹 때문에 어두움과 의심의 때를 지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가장 비천하고 연약한 신자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로 나아와서 마시자마자 흐르기 시작하는 “생수의 강”이다.
2. 다른 영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하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한 사람의 회심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반드시 다른 사람의 회심으로 이어진다.
회심한 이후의 삶이 너무도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심한 강도조차도
수많은 영혼에게 복의 근원이 되지 않았는가?
1) 이 땅에서 “생수의 강”으로 살아가는 신자가 있다.
그들의 말, 설교, 가르침 등 모든 것으로 자신에게 있는 생명수를 이웃으로 흘려보내는 통로가 된다.
(루터, 윗필드, 웨슬리)
2) 죽음을 맞으면서 “생수의 강”이 되는 신자가 있다.
가장 격심한 고통 가운데서 드러나는 담대함,
화형대에서조차 굽히지 않는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신뢰.
무덤으로 내려가는 순간에서조차 흔들리지 않는 평화 등.
이런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받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었다.
삼손과 같이 죽는 순간에 그들이 이룬 일은 그들이 일생 해온 일보다 훨씬 위대했다.
3) 죽은 후에 “생수의 강”이 되는 신자가 있다.
이들이 썼던 저서가 세상 곳곳으로 흘러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행동과 행실을 통해
“생수의 강”으로 드러나는 신자가 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자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관된 삶을 잠잠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말로 말미암지 않고” 이긴 자들이다.(벧전3:1)
믿음으로 나아가 그분을 따를 때, 오직 여러분 한 사람의 영혼만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어나 말하고 기도하고 일하라.
적용)
1. 영적 목마름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 자기 영혼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자신이 지나온 길바닥에 깔린 석재와 같은 냉랭한 마음으로 와서는
벽의 대리석 흉상처럼 아무 감동 없이 무정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저는 결코 누구도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눕거나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여러분의 영혼의 필요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양심을 깨우는 큰 종소리가 귀에 들어오게 될 때,
사람들이 자신의 목마름을 깨닫고 안식을 찾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2. 지금 여러분의 양심은 깨어 일하고 있는가? 영적 목마름이 있는가?
그렇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초대에 귀 기울이라.
그냥오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 이미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안도를 얻었는가?
날마다 이 샘에 가까이 머물수록 여러분 안에서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요4:14)
복 받은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여러분이 열망하는 위로를 얻을 수 없다.
완전한 행복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마귀도 아직 완전히 결박당한 것은 아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완전한 해갈을 얻게 될 것이다.
좁은 길의 정상은 결국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