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역대상11:장 2021.03.17.큐티묵상
역대상 11:장부터 마지막 29:장까지는 다윗의 통치가 나온다.
그래서 본문 11:장에도 온통 ‘다윗’이란 단어로 도배되어 있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다윗의 기사에 관한 내용은
‘그는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다’
‘백성의 장로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여러 직분을 놓고서
스스로 되려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천거해서 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다윗은 후자였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 왕에게 나아간 것처럼,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면, 그 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인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니
사람들의 인정이 따라 왔으며
게다가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 성’ 즉 예루살렘 성을
여부스 족에게서 빼앗아 다윗의 기업으로 얻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종이 되면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기업, 즉 사역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이다.
남들에게는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공략하기 엄청 힘든 성이었는데도
하나님이 그 성을 다윗에게 주시니.. 다윗은 비교적 쉽게 그 성을 차지한 것이다.
그래서 주위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이렇게 평가하게 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9절
그리고 이어지는 :10절부터는 ‘다윗의 30용사’ 등 다윗의 동역자들이 나온다.
‘다윗의 용사들’이 오늘의 묵상 주제이다.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본문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한국 속담이 생각이 난다.
구슬 하나, 하나 각각은 구슬이라서 영롱하고 아름답겠지만
그 구슬들이 각자 존재해서는.. 큰 빛을 발하지 못한다.
각각의 구슬은 한동안 서랍에 보관되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실에 꿰어져서, 하나의 아름다운 목걸이를 이룰 때
그 각각의 구슬은 보배가 되는 것이다.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이다!’
▲본문의 다윗이 그런 구슬을 한데 꿰는 실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이다.
그러니 떠돌이 용사들, 강한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다.
다윗이 그들의 안식처, 본거지,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용사들 30명이, 또는 세 명이
용맹히 싸우는 용사들이 될 수 있도록
다윗이 어떤 장을 마련해 주고, 그들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윗이 아마 목동이어서.
그런 목자가 되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잘 연마했던 것 같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서 도망다닐 때부터 사람들을 ‘거두는’ 은사가 있었다.
삼상22 :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요즘은 가족도 다 귀찮다고 1인 1가구 시대가 대세인데,
8째 아들 막내인 다윗은, 위 구절에 보니까, 자기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을 ‘거두었고’
어디 가서 환영받지 못하고 쫓겨날 판인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는 왕이기 이전에 ‘목자’였던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도원결의에 의해 유비, 관우, 장비가 힘을 합치고
나중에 제갈공명이 합치고 그 외 여러 장수들이 유비를 도왔다.
유비가 무슨 전투의 선봉에 서서 칼과 창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다만 유비에게는 장수들을 거느리는 ‘덕’이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리더십’의 은사요,
성경적 용어로는 ‘목자의 자질’이 있었던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 가면, 대하소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기념관이 하나 있다.
평소에 박경리 작가가 머물며 글을 쓰던 방과
그가 거닐던 양지바른 정원이.. 글 쓰는 이의 고요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박경리 작가는, 출판사에서 받은 저작료로
원주시 인근에 젊은 작가들을 위한 무료 기숙사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마치 대학 근처의 학사관이나 하숙집처럼, 건물에 작은 방을 여러 개 마련해서
글 쓰는 작가들이 거기에 일정 기간 무료로 기거하면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장소는 제공했는데, 식사까지는 모르겠다.
(2003.12.23.중앙일보 기사)
“강원도 원주시 오봉산 자락 토지문화관(www.tojicul.or.kr) 안에 자리잡은
<무료 창작실>이 작가들에게 갈수록 인기다.
23일 토지문화관에 따르면 소설가 박완서. 박범신. 조용호 씨와
시인 이제하. 김승희씨 등이 내년 창작실 입주를 예약했다.
또 10여 명의 작가가 내년 입주 신청을 마친 상태다.
토지문화관이 2001년 하반기부터 운영하는 무료 창작실은
매년 2월 사용 신청을 받아 3월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한 작가가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세 달에서 넉 달까지다.”
▲그래서 정말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험란한 피난 길에 동행하려 했다.
다윗이 그 사람들을 잘 다독거려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목자의 리더십’은 본문에도 잘 드러난다.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했을 때,
세 용사가 자기 목숨을 고사하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그 물을 길어왔다. :17~19
이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기를 거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다.
그 물은 곧 그 용감한 세 용사의 피라는 것이었다. :19
이런 다윗의 목자의 마음은, 참으로 내가 기도해야 될 제목이다.
오늘날 이렇게 '구슬 꿰는 은사, 사명'을 받은 사람은
다윗처럼 많은 용사들을 인자와 진실로 잘 섬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목자로서 용사들을 거느리고 또한 돌보려면.. 다윗에게 손해가 많았을 것이다.
양식이 떨어져서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할 때도 있었을 것이며
자기 가족과 오롯이 개인적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호출 당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누가 아프면 찾아가 보고, 누구 가족의 장례가 나면 슬픔을 함께 위로 해주고,
누가 물질적 필요가 있으면 아낌 없이 나눠줘야 했을 것이다. 자신도 부족한데 말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다윗을 배신하는 용사도 있었을 것이고,
배은망덕하는 사람도 반드시 섞여 있었을 것이고
다윗을 그저 이용해 먹기만 하려는 팔로워들도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하나, 둘씩 가려내어 구슬을 내다버렸다면
아마 그 실에 꿰일 구슬들은 거의 하나도 없었고,
구슬을 꿰는 실만 덩그러니 앙상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선의와 선대로.. 사람을 모으기란 한계가 있다.
다윗에게 용사들이 모여 든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대상11: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든 것이지
그저 다윗의 인간적인 친절과 박애정신을 보고서.. 모여든 사람들은
또 그렇게 금방 다윗을 떠났을 것이다. 오래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 역시 그 팔로워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그들을 거두어들인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박애정신이 아니라,
그들을 훈련시켜서 어디 써 먹으려는 이기적 마음의 동기도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양떼’라는 점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환난을 당해서 떠돌고, 빚을 져서 몸을 숨기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지만
다윗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한 눈으로 보았던 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양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돌봄과 케어와 관심과 기도가 필요했던 하나님 집의 양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의 양떼는 아니다.
나 외에도 다른 목자도 여럿 있고, 그들은 그들 목자의 양떼 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양떼 일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우릿간을 잘 돌보아야 한다.
구슬이 한 말이든지, 서 말이든지.. 그것을 잘 꿰어서
본문처럼 하나님 나라의 요긴한 용사들로 키워내야 할 것이다!
‘주여 내게 주신 드라크마는 하나도 잃지 않게 하소서’ 눅1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