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10장, 메시아가 오셔서 백성들을 회복시키신다 여러 설교 정리
10장의 내용구조는
1~3절, 거짓 목자들이 양떼를 돌보지 않음
4~12절, 메시아가 오셔서 목자가 되셔서
대적으로부터 양떼를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킴
◑해석
1 봄비(늦은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봄비가 올 때가 되었다고 해서 항상 봄비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올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왜 갑자기 본문 1절에 ‘봄비’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10장의 문맥과 연관지어 해석하자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말고, 기도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이 당연하고,
하나님은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모든 것이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이 예언하셨으므로)
그러나 그래도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봄비가 내릴 때 ‘당연히 봄비가 오겠지’ 하지 말고,
‘그래도 봄비가 내리도록 기도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1
겔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아래에 적용1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드라빔은 ‘가정의 신’을 뜻하며 복술자는 점쟁이입니다.
생명이 없는 드라빔이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복술자에게
무슨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슥10장은, 슥1~6장까지 ‘8가지 환상’이 끝나고
슥7장부터 금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대답과 더불어
‘도래할 메시아의 나라’에 관해서 스가랴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 메시아가 오셔야 하는가?
그 이유가 2절에 나타나 있는데,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입니다. :2
그 결과 백성들, 양떼들은
드라빔, 복술자, 점치기 등 각종 헛된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겔34:10 ‘내가 내 양을 그들(목자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목자나 숫염소는 평행법입니다. 둘 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죠.
특별히 ‘숫염소’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고집 세다, 완고하다’는 뜻이죠.
이렇게 양들을 방황하게 만든 목자, 즉 거짓목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숫염소를
벌하시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지도자(거짓 목자와 숫염소)를 징계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을 전쟁의 준마 His majestic horse 같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메시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평신도들이
전쟁의 준마가 되는 시대’ 임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적용2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본 절에 나오는 4개의 이미지, 모퉁잇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는..
모두 미래에 오실 메시아를 뜻합니다.
‘그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유다 지파를 가리킵니다.
(지금 귀환한 남유다 백성들은, 주로 유다지파입니다. 포로로 잡혀갈 때부터)
실제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서 나오셨습니다.
본문의 ‘말뚝’은, 장막을 칠 때, 줄을 고정시키는 못 peg을 뜻합니다.
그래야 장막이 세워지는 거죠. 여기서는 메시아를 뜻합니다.
사22:23 ‘못 peg 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즉 본문의 ‘말뚝’은, 견고하게 한다는 뜻이죠.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개역에는 주어가 빠져 있는데, *원전에도 빠짐
주어는 유다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왜냐면 동사가 복수
영어성경들은 주로 They(그들)를 넣어 번역했습니다.
그냥 읽으면, 마지 4절의 메시아가 주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복수이면 ‘백성들’입니다.
즉 백성(평신도)들이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는 거죠.
여기서 ‘말 탄 자들’이란,
1) 3절에 나오는 ‘목자들, 숫염소들’이 되겠습니다.
2) 적군의 지휘관으로도 볼 수 있는데,
뭐든지 해석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백성(평신도)들이 큰 공을 세우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다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 백성들은, 용사같이 원수를 밟을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 사람들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견고히 할 것이고 요셉 족속을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이 둘은 각각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북왕국 요셉 족속을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어디서 돌아오는 것이겠습니까?
스가랴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였습니다.
이때 ‘돌아오게 하리니’는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벨론 포로 귀환 시 돌아오지 못하고
세계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일 수 있고
-장차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긍휼의 결과입니다.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완전한 회복의 때가 올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answer”고 하셨습니다.
그저 귀로 듣는다는 말이 아니고, 말을 들어준다 answer 라는 뜻이죠.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관계 회복이 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남 유다 족속과 대조적인 북쪽 족속이 에브라임입니다.
이들 역시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은 영광과 기쁨을 볼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해
마음이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이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완전한 회복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하나님께서 휘파람을 불어 백성들을 모으신다고 합니다.
이는 목자가 양들을 부를 때 부는 휘파람처럼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시어 백성들을 인도하여 부르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길을 잃은 양처럼 헤맬 때도 부르시고
그 이유는 구속하기 위함입니다.
살려주신 것도 놀라운 일인데 번성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 번성이 있습니다.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8절의 말씀처럼 부르셔서 모으시는데 흩으신 후에 부르시겠다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백성들이 다시 세계로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님께서 모으실 것입니다. *적용3
또한 세계 처처에 있는 예수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끝날에 모든 백성들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주님이 소집하면 가야 합니다.
바로 그 때가 세상의 끝 날입니다. 이 날을 늘 잊지 않으며 살아가십시다.
10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그들은 세계 처처에 흩어져 있는 선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진 그들이 돌아오는 출발지를 알려주시는데
애굽과 앗수르라고 하십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였죠.
이 두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고 압제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와 같고 빈들과 같은 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으로 부르십니다. 그곳으로부터 돌아올 때
사람들의 수가 많아 차고 넘쳐서, 장소가 모자라서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과 북쪽 국경의 레바논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11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그런데 그들이 돌아올 때에
고난의 바다와 바다 물결은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의 장애물을 치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일 물이 마르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강대한 나라 앗수르와 애굽이 약화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약화되고 몰락될 것입니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백성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적용
▲1. 당연한 것이지만,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1 봄비(늦은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봄비가 올 때가 되었다고 해서 항상 봄비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올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왜 갑자기 본문 1절에 ‘봄비’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10장을 끝절까지 읽어보면 ‘놀라운 회복의 약속들’이 구절 구절 나옵니다.
지금 유다는, 바벨론 포로에서 겨우 돌아온 소수의 연약한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장차 메시아가 오시면,
남유다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까지 회복되고
그 땅에 거민이 너무 많아져서, 부동산 부족 사태가 일어나서, 10절에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우리나라로 치면 연해주나 만주까지 가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에도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이 말은 ‘숫자가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지금 한국의 최대 화두는 ‘저출산’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나라가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스라엘이 숫적으로도 회복되고, 번성하고, 거주지 대란이 온다는 거죠.
그래서 1절에 미리 ‘운을 띄우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라’는 거죠!
항상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동역하십니다.
성도의 기도없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까요?
본문에 이렇게 스가랴가 예언하는 이유도
예언과 환상을 주심을 통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며 기다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동역자요, 파트너가 되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말고, 기도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이 당연하고,
하나님은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모든 것이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이 예언하셨으므로)
그러나 그래도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봄비가 내릴 때 ‘당연히 봄비가 오겠지’ 하지 말고,
‘그래도 봄비가 내리도록 기도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1
겔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갑자기 말로만 듣던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펀 글)
철없던 시절이라서 그랬던지 엄청 신났습니다.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곳을 수도 없이 다녔습니다.
긴 여정이었기에 출발하기 전에 나름대로 계획도 세웠습니다.
책들을 펼쳐놓고 경유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수집했습니다.
그런 나름대로의 준비가 있어서 그랬던지,
처음에 성지순례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날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결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데도.. 삶이 허전하고, 메마르고, 은혜가 고갈되었죠.
성지순례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기도는 뒷전이고,
어떻게 여행을 즐길까,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돌아다닐까만 생각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엄청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어찌 보면 일종의 순례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는 여행입니다. 성지순례 길인 셈이죠
천국을 향해가는 여행길인 우리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획들을 세우는 것 등 모두가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계획인 ‘기도’에 있어서 소홀하지는 않은지요?
그래야 그 ‘여행’(순례)가 더 의미 있고 풍성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메시아 나라의 풍성함이 약속되어 있지만
(오늘 우리는 메시아가 이미 오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 그 모든 풍성한 약속들이 무난하게 성취되고,
봄비(늦은 비)도 제 때에 내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 약속의 책입니다.
신약, 구약에서 '약'자는 언약, 약속이란 뜻입니다.
그 약속은 그저 저절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메시아 왕국, 하나님의 나라는, 평신도들이 활약하는 시대가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지도자들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평신도들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하나님은 양들을 방황하게 만든 목자, 즉 거짓목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벌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을 전쟁의 준마 His majestic horse 같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메시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평신도들이
전쟁의 준마가 되는 시대’ 임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12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6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3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이 능력으로 성전도 완공했고,
마카비 전쟁에서도 이겼고,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 때는 사도행전 때인데요,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예수님도 믿지 않았죠.
그러나 당시 평신도라고 볼 수 있었던 12사도들과 제자들은
땅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정말 ‘준마’와 같이 된 것입니다. :3
5절에도 회복된 백성들(평신도들)의 활약상이 이렇게 묘사됩니다.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사실 성직자-평신도로 나누고 ‘평신도 laity’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설명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성직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다 ‘성도’들인 거죠.
성직자-평신도 구도가 이렇게 뚜렷하게 나눠진 것은
5세기 경에 기독교가 국가종교가 된 이후에, 곳곳에 큰 성당이 세워지고
그곳을 관리할 책임자를 세우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전에 초대교회는, 모두들 가정에서 모였기 때문에,
가정교회가 주축인지라.. 큰 건물을 관리할 성직자가 아예 필요 없었던 거죠.
<21세기 교회의 전망>에서 하워드 스나이더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에서 → 사역자의 공동체로의 변화를 예견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flat world 라고 합니다. 평면화된 세상입니다.
과거의 피라미드 식 서열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개혁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아예 교회에서 ‘장로, 권사’ 직분도
없애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계급이 되기도 하고,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위화감을 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또 다르게 반대적 측면에서 말씀하는 구절도 있지만
적어도 본절에서는 ‘하나님은 지도자는 꾸짖으시고, 백성들을 일으키신다’
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기대를 걸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