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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Glocal Impact P2 / 劉彤

LNCK 2011. 6. 29. 15:15

◈Glocal 세상에는 평신도가 뜹니다                행11:20~23, 시46:4  

시구셩밍허링량탕 예배 /31강 Glocal impact (후반부)     

矽谷生命河靈糧堂 (미국소재 화교교회)

 

◑‘편평한 세상’에서, 교회 조직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편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도, 인터넷을 통해서,

한 시민이 올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 단계가 시민→동장→구청장→시장→내무부장관→총리→비서실→백악관

이렇게 굉장히 피라미드식으로 높았고, (그러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시민→대통령 이렇게 두 단계만으로 세상이 편평해 졌습니다.

 

중동 현지에서 벌어지는 (빈라덴 축출) 작전 현장을,

중간 보고과정 다 생략해 버리고,

백악관에서 수뇌들이 모여서, 인터넷으로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과거에는 평신도→안수집사→장로→당회→당회장 이런 피라미드식 사회였다면

지금 현재에는 세상이 편평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와 목회자의 구분도 점점 파괴되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

 

그리고 ‘장로, 위원장’이 아니라 ‘팀장’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팀장은, 그 팀의 미션이 끝나면, 팀이 해체되면서, 자동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뭐 위 아래 서열을 따지던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인터넷 IT 사회,

이런 사회적 변화의 추세가, 점점 세상을 편평하게 만들어가고 있으며,

교계도 좋은 의미로 그것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좋은 의미로 서열, 직분이 파괴되면서

평신도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기의 빛과 소금된 역할을 감당할 때,

사회 곳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복음전도가 실제적으로 되어질 것입니다.

(단순히 교세 성장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참 성도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서, 평신도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세상 속에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평신도의 역할이 더욱 증대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의 목회자보다

한 크리스천 스포츠 스타가, 세상에 더욱 impact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는 지역교회에서

성도들 가운데 포진한 교수, 기업인, 교사, 청소부까지 모두에게 영향력을 끼쳐서

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나가서 활동하도록, 무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는 소망교회가 그 일을 했었습니다.)

 

▲평신도의 사역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직장은, 크리스천의 사역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역교회가 이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교회가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성직, 전도, 교회 봉사만..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가르친데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기vocation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특기, 전공,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의 사역과 직업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 일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요,

여러분의 직장이, 주님을 섬기는 사역지입니다. 경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신학'의 현실에 적용입니다.


      사역과 직장 일을 동시에 진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사회, 문화, 도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평신도들이 맹활약 했습니다.

행8:1절과 4절을 읽겠습니다.

 

행8:1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여기서 ‘그 흩어진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믿는 성도, 평신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흩어지든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삶속에서, 일터에서,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했고요,

그 결과, 성도들이 어디로 흩어지든지,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전도자들만 뽑아서, 전도자들만 나가서 전도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흩어진.. 이름도 없는 평신도들이, 안디옥에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관련글 / 그 중에 몇 사람이 

사도들이 아닙니다. 선교사들도 아닙니다. 평신도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안디옥에서 교회가 세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보내어, 진상을 알아보게 했을 정도였습니다. 행11:22

 

 

◑변화는, 사회 각계각층 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역의 패러다임의 변화

과거에는 교회를 크게 짓고, 많은 교인이 교회에 가입해서,

교회나 교단이 큰 인적/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사역을 하려고 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뚜렷하게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역교회 안에서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좋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룡화되어서, 오히려 비둔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교회는 점점 더 커지는데,

반작용으로 다수의 작은 교회들이 죽어버리는.. 예상 못한 결과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점점 발전되면서

‘변화는.. 개개인의 생명 안에서, 또한 사회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교회의 외적 성장이 하나님의 뜻,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회적으로 IMPACT을 끼쳤습니다.            *영향력

 

행4:32~35절을 보십시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초대교회는, 빈자들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상당부분 교회가 짊어졌습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의 문제(가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시 사회의 가난의 문제를 몇% 짊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가 중요한 게 아니죠)

그 마음, 그 정성이.. 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교회는 ‘우리는 영적인 문제만 관여합니다.’ 

‘여러분이 영혼의 구원만 얻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본문은, ‘예수 믿으면 모두다 집을 팔아서 나눠줘야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 주식, 내 부동산, 내 자동차를 다 팔아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초대교회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 안에서만 구현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펼쳐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세기 교회성장학의 과도한 강조로

교회 성장, 교세 확장, 그래서 심지어는 ‘식민지적 확장’까지라도 서슴지 않고,

무조건 확장을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예산과 교회의 총역량은, ‘확장’이란 코드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려면,

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희생하고 감수해야, 이 세상에 impact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저 impact을 끼치는 척, 구제하는 척, 섬기는 척...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사회 속에서도 변화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부흥이 임하면서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각계각층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되고, 진보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연합해야 합니다.   좋은 의미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세상과 연합해야 합니다.

 

▲2005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저도 당시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는데,

조찬기도회면, 의례 유명한 목사님이 나와서 설교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005년 당시 조찬기도회에는

유명한 목사님이 아니라,

록그룹 리더 보노를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목사님들은, 의외의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보노는 단상에 올라서자마자,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똑같은 마음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것이 썩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원합니다.’

 

보노는 200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함께

세계의 십대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 2가지

 

①교회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각양각생의 사람들을 감동하십니다. (위의 보노 처럼)

우리는 이전에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도 연합하고 어울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입니다. 신앙을 타협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영성주의, 은사주의, 인종과 종파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위해서, 연합하고 상호 협력해야 합니다.

 

물론 외적인 연합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인 거듭남, 성령충만>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결코 ‘교회 안’이라는 테두리에 갇혀서 지내지 않습니다.

반드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됩니다.

 

②교파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을 ‘보수주의’니, ‘자유주의’니, ‘은사주의’니, ‘영성주의’니, ‘무슨 교단’.. 하면서

어느 한 계파에 묶어두지 않습니다.

그렇지 못한 다른 계파와 대결구도로 가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은.. 그 특징이 ‘포용적’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 속에 들어가 빛과 소금이 되지 않으면(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아주 도의 초보에 불과합니다.

 

▲제가 한 번은, 미국 남가주의 어느 스타벅스 커피숍에 갔습니다.

그 커피숍 벽에 보니까, 이런 포스트가 걸려 있었습니다.

“Starbucks and Dream center

Join hands together  to serve the community”

 

남가주에 <드림센터>라는 교회가

특별히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아마 그 커피숍이 <드림센터>교회와 함께, 지역사회를 섬기는데 열심인 모양입니다.

 

그 교회는 자기 교회의 힘으로만 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합해서,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교회가 세상 속으로 성육신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시편46:4절을 보십시다.

 

‘한 시내가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오늘 우리가 사는 각 도시는,

모두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강이, 각 도시 각계각층 가운데로 나누어 흐르게 해야 합니다.

 

‘나뉘어 흐르는 시내’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도 각자이며,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시내, 생수의 강이지만, 강의 지류처럼 각각 나뉘어 흐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연합해서, 큰 강물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뉘어 흐르는 시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위대한 전도자 한 사람에게 맡겨둘 수 없습니다.

 

이제 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리 각자 각자가.. 도시 각계각층에서.. 나뉘어 흐르는 시내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 한 분만 의지해도 안 됩니다.

지금은 성도 각자가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고, 날마다 성령충만 속에 거해야 합니다.

맨 정신으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1세기는, 더 이상 유명 선교사나(19세기), 특정 선교단체에 의해(20세기의 특징)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세상은 편평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았으면.. 말입니다.

 

지금은 내가 우리 동네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임팩 impact이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실력과 컨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이란, 주일날 교회에 왔다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 중에,

그저 주일날 습관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 데요.. 이것 재검토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나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있습니까?

내 직장에서, 내 지역사회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만 말고요.

 

여러분,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과 사명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반드시 이 세상에 임팩 impact과 영향력을 주는 크리스천들이 되십시다.

 

이건 뭐 구호로 "되자!"는게 아니고요,

내 내면에 진정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빛과 소금으로, 세상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꼭 교수, 사장, 머리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도 좋지만, 청소부, 말단직원이라도 크게 상관 없습니다.

 

직장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갈급한 사랑, 소망, 웃음, 평화를 나누어주며,

그들이 괴롭고 힘들 때, 따뜻한 위로와 미소를 건네주며,

예수님의 평화, 기쁨, 행복, 인내를.. 나를 통해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 ..를 실물로 보여주는 겁니다...

 

무슨 선교사가 되겠다. 무슨 선교단체에 들어가야 되겠다.

큰 교회를 이루는 비전을 갖자... 이런 것들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그런 것에 앞서, 우리 각자가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먼저 살아갑시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십시다.

억지로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성령충만 가운데 거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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