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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교회의 전망 / 하워드 스나이더

LNCK 2019. 12. 26. 08:06

21세기 교회의 전망

 

아래는 하워드 스나이더가 쓴 21세기 교회의 전망의 어떤 독자의 요약 및 서평.

 

*출처: [다음카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 #587 "21세기 교회의 전망"

 

현대 세계의 성격이 무엇인가? 미래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세계의 동향, 즉 사회가 움직여나가는 어떤 길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급변하는 세계의 동향들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어떠한 세력들이 교회를 주도해나갈 것인가?

그리고 교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는 세계적 지식인 50명의 견해와 개별 응답자들,

그리고 연구 조사와 인터뷰를 통하여 이에 대해 답하고 있다.

 

현대의 가장 중요한 동향은 교회의 세계화교회 중심의 이동이라는 대전제

아래 저자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영역에서 세계의 동향을 소개하고 있다.

 

지역 교회에서 세계교회로의 변화이다.

20세기에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제3세계에서

기독교는 큰 성장을 보이고 있다.

 

세계선교는 더 이상 북미중심이 아니며, 오히려 북미인들이 선교대상으로

여겨왔던 (한국 같은) 지역들에서 활발하게 세계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의 무게중심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3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일부 교파적인) 부분적인 성장에서 (전 교파의) 전반적인 부흥으로의 변화이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은 우리 사회에서 뜻깊은 신앙부흥의 시기이며,

이 흐름은 21세기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오순절 교회의 성장과, 전례적인 예배를 따르는 복음주의자들의 부흥,

주류교파가톨릭의 부흥을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모든 교파의 전반적 부흥)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전 세계적인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저자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기독교 국가로의 변화이다.

저자는 금세기의 중국 교회에서 감지되고 있는 부흥의 열기를 소개하며,

21세기에는 중국 기독교가 세계 교회에 생동감 넘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교회의 성장률을 결정할 것이며,

중국 교회는 중국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다.

또한 중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새로운 활력과 리더쉽,

그리고 조직 구조의 출원지가 될 것이며,

중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신학과 자기 이해에 주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제도적 전통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의 변화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 신학 혹은 하나님의 다스림 신학이다.

이 신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사용하시든/거스르는 행위를 무시하시든

세계 역사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가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다시금 확언한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에서 사역자의 공동체로의 변화이다.

저자는 복수리더쉽과 준비시키기식 모델이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학교 교과과정의 주요 개혁에 관한 지적은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남성 지도자 제도에서 남녀 동반자 제도로의 변화이다.

1970년에 미국 목회자 중 단 2%가 여성이었으나, 1984년에는 7%가 되었다.

미국의 평신도들은, 일반적으로 여성 목회자가 남성 목회자보다

열매를 더 많이 거둔다고 평가했다.

 

여성 사역자의 증가와 괄목할만한 사역의 열매는

전세계적으로 감지되고 있으며,

새로운 세기에는 여성들의 장점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하게 될 것이다.

 

세속화로부터 종교적 상대주의로의 변화이다.

물질주의와 번영의 세대와 맞물려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고,

이러한 세속화는 종교적 상대주의(절대적인 것은 없다?)로 발전한다.

 

핵가족에서 가족의 다양화로의 변화이다.

가정의 몰락은 북아메리카와 서구 유럽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몰락과 일반 사회의 와해에 직면하고 있다.

 

정교 분리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행동주의로의 변화이다.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우익의 태도가 보여주듯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사회에 정의나 공의를 이루려는 활동에 역점을 두는

사회적 행동주의를 향한 동향이 펼쳐지고 있다.

 

위태로운 국가들에서 위태로운 지구로의 변화이다.

빈부간의 격차 심화, 위태로운 환경, 핵공포 등으로 세계는 위기에 처해있다.

과거에는 몇몇 국가들이 위태로웠으나, 이제는 지구적으로 위태롭다.

 

이제 구속의 손길이 창조 세계의 오지로 미치는 일까지를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계만방에

복음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보여줄 시기가 왔다.

 

이상과 같이 저자는 세계의 동향에 대해 10가지로 정리해주고 있다.

나는 저자의 치밀한 연구와 통계, 자료 사용의 광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며, 이정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란 말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보편화되었지만,

유독 교회만이 이러한 흐름에 둔감한 것을 자각하며,

나는 21세기의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제 감각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워드 스나이더 교수의 교회관

 

*출처: http://news.godpia.com/sub_con.asp?page=7&db_idx=11138&division=A001

 

성장침체라는 깊은 병에 걸려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성장의 성경적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기독교 미래학자이자 신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다.

그는 06.10.23. 양재횃불회관에서 개최된 미래 대안 교회가 온다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유기체적 교회론등에 대해 강의했다.

 

반쪽짜리 전통적 교회론에서 성경적인 종합적 교회론으로

 

교회의 4가지 고전적 특성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이라고 공표했다.

 

이후 교회의 특성에 대한 수많은 의견이 있었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통일성 거룩함 보편성 사도성

이상 네 가지 특성에 대한 의견은 논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교회의 4가지 고전적 특성이라고 한다.

다만 사도신경을 통해 성도의 교통5번째 고전적 특성으로

추가됐을 뿐이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이러한 4가지 고전적 특성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특성을 절반 밖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스나이더 교수의 지적이다.

 

하워드 스나이더 교수의 종합적 교회론

이에 그는, 이러한 이해는 반쪽짜리 이해라며

전통적 교회론에 대한 성경적ㆍ선교학적 관점에서의 재고가 있어야

한다면서 통합적으로 이해된 성경적인 종합적 교회관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성경이 말하는 교회

하나(one)이면서도 다양한(diverse),

거룩(holy)하면서도 은사적인(charismatic),

보편적(universal/catholic 세계교회는 하나)이면서도 지역적인(local 개교회적),

사도적(apostolic)이면서도 선지자적인(prophetic)인 교회 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적이란 제도권에서 엄격히 허락/안수 받은 데만 정식 교회/성직자라는 개념이고

선지자적이란 스스로 특별한 은혜가 임한 사람도 누구나 자유롭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성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이런 파라처치들과 교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

 

또한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성직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함. 이런 뜻도 포함함.

이것은 사도적 교회에 대한 보완적인 운동임.

 

사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대부분 교단들은 처음에 법적으로 사도적 교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적인 정통성을 주장하며 정체성을 고수한 것이... 오늘날 사도적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전통적 교회의 특성 4가지와 결합된 다른 한 쌍의 4가지 특성은

대조적인 그러나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것들로서

이렇게 통합적으로 이해할 때 온전한 교회론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