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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27, 빌3:12-14 걱정이 아니라 힘써 달리십시오! (신년설교)

LNCK 2022. 12. 30. 08:45

 

◈걱정이 아니라 힘써 달리십시오!     마6:27, 빌3:12-14     설교정리, 출처

  

◑'걱정'이 문화가 된 세상

 

미국에서 "걱정"은 우리 국민 문화의 일부가되었습니다.

수많은 미국 묘비에 '바쁘게 살다가, 걱정하며 살다가, 묻혔다'라는 비문을

볼 수 있습니다.   "hurried, worried, buried"

 

이 말은 현재의 불안의 시대에 독특하게 적합한 것 같습니다.

 

이런 “걱정과 염려”는, 언론이 기사화해서 부추기는 경향이 있지만,

또한 사실이요, 현실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새해에 대한 헤드라인은 말자하면 이런 것입니다.

“2012년은 "살아있는 기억에서 가장 무서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2012년 새해를 걱정과 염려로 전망하는 이유는,

‘유로화의 붕괴 가능성, 중동 문제, 중국의 부상,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때문이죠.   *2012년 설교

 

그런데 이런 국가적, 국제적 염려, 근심, 걱정 말고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지는 여러 가지 염려, 근심, 걱정이 있지요.

사실 우리는, 국가나 국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별로 느낌이 없지만,

개인적인 걱정과 염려를 주는 이슈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요.

 

우리는 사람들이 걱정하며 사는 것에 대해, 그를 비난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살아있는 사람은, 당연히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빌4:6)고 분명히 말씀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무언가에 대해 늘 염려합니다.

 

한 저술가는 걱정을 가리켜 "사람의 마음에 흐르는 희미한 두려움의 흐름”

a thin stream of fear trickling through the mind 이라고 불렀습니다.

 

TV를 꺼놓아도 미세한 전류가 계속 흐르고 있듯이

걱정은 사람들 마음속에 늘 떠나지 않고, 잔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걱정은 "현재를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anxiety over the future that dominates the present.

 

확실히 이 말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한 좋은 묘사입니다.

 

▲2012년 초창기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우리는 마6:27에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분명하게 상기시켜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6:27

 

이런 뜻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걱정으로 자기 인생에 한 시간을 더할 수 있겠느냐?"

(*NIV, NASB, 공동번역은 모두 이렇게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걱정으로 인생에 한 시간을 더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반대로 걱정은 실제로 건강을 무너 뜨릴 정도로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는

다음과 같은 실용적인 훈계를 주셨습니다.

 

"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6:34

 

당신은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내일의 어려움까지 빌려오려 하십니까?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회복 중에 종종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지침은 "한 번에 하루"입니다.

 

그 사람이 내일 유혹에 빠질지 걱정하는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들의 중독은 오늘날 싸워야합니다. 내일의 싸움은 내일 일어날 것입니다.

 

중독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 하루의 승리에 집중하는 거죠.

 

큰 계획을 세우면 지레 포기하지만,

작은 계획을 나눠세워서, 하루하루 차근차근 나가는 거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현명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죠.

여기서의 맥락은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미래 계획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내일의 싸움은 내일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한 싸움은 항상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제자들에게 순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집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도록 하십시오.'

 

▲걱정이 비생산적인 이유는 적어도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더 나은 방법으로 보낼 수있는 시간을 낭비합니다.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만 속한 책임을 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해야 될 몫을, 자기가 걱정하는 겁니다)

-그것은 두려움으로 우리를 마비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쁨을 약화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고 곁길로 빠지게 합니다.

 

 

◑1. 새해를 잘 출발하려면

그것은 매우 솔직한 인정으로 시작됩니다.

내 현실에 대한 정확한 평가, 객관적 평가, 솔직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미 이 모든 것을 얻었거나 이미 온전케 된 것은 아니다" 빌3:12

 

사도바울의 이 말은, 물론 겸손한 표현이지만

여기에는 상쾌한 정직함 refreshing honesty 이 있습니다.

 

그의 업적에 대해 자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울입니다. 사실 대단한 분 아닙니까!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메섹 길에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는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에서 1, 2, 3차 전도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서신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중 어느 것도 그에게 자랑이나 뿌듯함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일은, 일평생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미 온전케 된 것은 아니다" 빌3:12

   

그는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후에 그는 자신을 "죄인들의 우두머리"(딤전 1:15)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가 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전하다거나 자신의 영적 여정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문제와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나됨, 나의 진면목,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마도 위의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무슨 단체장이야, 내가 작년에 무슨 큰 업적을 이루었지..’ 하면서

자만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간단하고 심오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취하기 어려운 자세입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직관’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직관’을 직접 관람한다는 줄임말로 쓰는데, 다른 의미죠)

 

우리가 삶에 어려움을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될 게 된 거야’ It is what it is.

이렇게 솔직해 인정하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될 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죠.

 

그러므로 새해를 잘 출발하려면

현실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 직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새해가 올바르게 스타트 되는 것이지요.

죄송한 표현이지만 ‘주제 파악’을 못 하면, 기초부터가 흔들리는 거죠.

 

우리의 미래는,

현실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미래는 "있는 그대로 됩니다." It is what it is.

 

-결혼 생활에,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신의 꿈이 산산조각났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내 자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잘 키우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당신이 파산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비판적인 정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신이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정신병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는 아인슈타인, 베토벤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병에 걸렸음을 모르니... 해결책이 없는 것이죠.

치료는.. 그것을 알고, 스스로 인정할 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내 현실이 무엇인지, 내 모습의 진면목을 파악할 때까지”

금년에 새해에도 내가 개선되거나,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회개하면서 진지하게 기도해야 되는 거죠.

 

인생의 모든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우리는 "당연한 게 왔다"라고 말하면서부터, 회복이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회개한다’는 말은, 회개를 평소에 피상적으로 한다는 뜻이죠.

회개 안 한다..그러면 또 비난 받으니까,

늘 회개를 하기는 하는데, 진지한 회개가 아니라, 수박 겉핥기로 하는 거죠.

 

바울이 "내가 아직 얻지 못하였노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나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도착'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는 뜻이죠.

 

이 말은, 바울이 자신을 직시하며

올바른 자세로 회개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더 회개하며 나아가겠다는 거죠.

 

마르틴 루터는 교만이 우리 안에 너무 깊어서 "회개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repent of our repentance!”

이는 우리의 회개조차도 교만으로 물들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2. 거룩한 열망으로 달려가는 삶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b

 

"내가 예수께 붙잡혔다, 그리스도 예수 나를 붙잡으셨다"는 구절에서

잠시 멈추어 묵상해 보세요.

 

-그리스도가 나를 찾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내 삶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삶의 최고의 목적은 나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발견하는 거죠.

 

이렇게 내가 붙잡힌 바된 내용을 발견하고

그 길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1. 평생이 걸립니다.

2. 그것은 노력과 집중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힘써 달려가노라 Press on’고 3:14절에서 말했죠.)

3. 은혜 안에서 점진적인 성장으로 인도합니다.

4.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발전시킵니다.

 

외적인 사역의 열매를 위해서도 달려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기위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 번역한 ‘Press on (달려가노라)’ 이란, 젖먹던 힘을 다 짜내서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는 의미죠. 원래 ‘계속 쥐어짠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내가 이미 (온전을) 얻었다 함도 아니다’ :12

 

무슨 뜻입니까?

‘나는 아직 그리스도처럼 되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는 힘써 달려간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왜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잡으십니까’? :12

저를 설교자로 만드시려고요?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나로 하여금 자신 Jesus을 닮도록 만드시려고’ 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설교자(또는 여러분 각자의 직업)가 되는 것이

1차적이 아니라

우리의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perfect 함도 아니요’라고 말할 때

(*신약성경에서 ‘온전’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관련해서 쓰는 말입니다.)

 

그는 ‘내가 아직 그리스도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힘써 달려가노라!’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오직 한 일 (한 가지 중요한 일)’ 그게 뭡니까? :13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한다 빌3:13

 

그래서 나는 내 (성화의) 과정을 완전히 마치기를 소원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1차적이고, 나의 직업적 소명은 2차적인 부르심입니다.

이게 1차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1% 밖에 안 되고

진짜 중요한 세상은 내세, 영생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천국에,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그 신부를 선별하고 계시죠.

거기는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선별해서 데려가지 않습니다.

거기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된 사람들을 데려가십니다.

   ☞요일3:2절의 해석상 중대한 오해 (중요) (tistory.com)

 

그래서 새해에도 우리는 더욱 더 온전해져가야 합니다

여전히 아직 완전히 온전 perfect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작년보다 더 온전해져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당신은 작년보다 금년에 더욱 예수님 같아졌어요!’

 

남편도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당신은 작년보다 금년에 더욱 예수님을 닮았어요!’

 

이것이 지금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볼 때 아직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바로 ‘온전을 향해 힘써 달려가는 삶’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내가 속한 가정, 교회, 직장 공동체는

작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가정, 교회, 즉 천국을 이룰 것입니다.

장차 가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내 현실에서 맛보기로 이루어지는 거죠.

이것이 우리의 신년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한 가지 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3

오직 한 일은, 영어로 one thing입니다.

한 가지 그 일에만 집중한다는 거죠.

 

삶의 어떤 방면에서든 탁월해지려면 "내가 하는 이 10가지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이 한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작품활동“

훌륭한 교사는 "내가하는 한 가지는 교육“

챔피언십 선수는 "내가 하는 한 가지는 운동“

우등으로 졸업하기를 원하는 학생은 "내가하는 한 가지는 공부“

라고 말합니다.

 

이런 분들은, 은행에 가서 업무를 잘 볼 줄도 모릅니다.

무슨 앱을 사용해서 예약하고, 직구(직접 구매) 하고 이런 것도 못 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지만,

‘오직 한 가지’일에만 집중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오직 한 가지 일 one thing’에만 집중하는 것은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관련된 *텔레이오스

말이라 그랬습니다.
어떤 자기 사명, 외적 전도의 업적은 부차적이고,

그가 ‘한 가지’ 집중하기 원했던 일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온전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보십시오.

 

-당신의 목회는 .. 새해에 달라질 것입니다. 회복될 것입니다.

덩달아 성도의 가정들도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의 사업과 직장도.. 새해에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이 들어간 거래처와 직장 분위기가.. 화목해질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도 있듯이, 사업도 화목해야 잘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학업도 .. 새해에는 진보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 집중’하고, 딴 짓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경제도 .. 새해에는 개선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방식으로만 지출하기 때문에, 헛된 씀씀이가 없어지죠.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일 one thing’에 집중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원 씽, 오직 한 가지 일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