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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7장, 레위기 7장
레위기는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사법, 제사장, 부정의 처리, 성결법이 그것입니다.
1-7장은 제사법,
8-10장은 제사장의 직무,
11-16장은 부정의 처리,
17-27장은 실천적 성결법에 대한 것입니다.
1장부터 6:7까지는 5대 제사를 행할 때
백성 편에서 할 일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본문 6:8~7장 끝까지는 5대 제사를 행할 때
제사장 편에서 할 일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처럼 1장~7장까지의 5대 제사법은
백성 편에서, 또한 제사장 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따라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백성에 대한 제사법 지침의 순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 대한 제사법 지침의 순서는 이와 달리
번제, 소제, 대제사장의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순서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순서를 따라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번제는 제물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불로 태우는 제사로서,
제사자가, 제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헌신
소제입니다. 소제는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제사인데,
역시 자신을 말갛게 갈아서 바치는 헌신과 충성을 나타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또한 인간 사이에 화평을 위하는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유일하게 예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제사의 기본 개념은 화평과 친교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롬5: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친히 화목 예물이 되어주셨죠.
속죄제는, 죄를 용서(속함) 받기 위해 드려진 제사로서,
우리의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죄를 깨달을 때마다 즉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건제입니다. 속건제는 물질과 관련된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로서,
속죄제와 동일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속죄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라 한다면,
속건제는 돌이킬 수 있는 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위한 제사입니다.
이렇듯 레위기의 앞부분(1:1~6:7)은 5가지의 제사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6:8절부터 오늘 본문인 7장 까지는
5대 제사의 추가 규정들을 일러주는데,
6:8절부터는 번제 (6:9~), 소제 (:14~), 속죄제 (:25~)
7:1절부터는 속건제 (7:1~) , 화목제 (7:11~)에 대한 내용입니다.
1장~6:7까지는 5대 제사를 행할 때
백성 편에서 할 일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본문 6:8~7장 끝까지는 5대 제사를 행할 때
제사장 편에서 할 일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우선 속건제를 드리는 규례입니다.
7:2~5 (새번역) ‘그 제물은 번제물을 잡는 바로 그 곳에서 잡아야 하고,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 둘레에 뿌려야 한다.
제물에 붙어 있는 기름기는 모두 바쳐야 한다.
기름진 꼬리와, 내장 전체를 덮고 있는 기름기와, 두 콩팥과,
거기에 덮여 있는 허리께의 기름기와, 콩팥을 떼어 낼 때에 함께 떼어 낸,
간을 덮고 있는 껍질을 모두 거두어서 바쳐야 한다.
제사장은 이것들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주에게 살라 바치는 제사로
바쳐야 한다. 이것이 속건제사이다.’
속건제사에 대한 내용은 앞에서 언급해 드린 것처럼,
레위기 5장 14절에서 6장 7절까지의 본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속건제사가 언제(when) 드려지는 제사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죠.
반면에 오늘 본문은 속건제사가 어떻게 드리는지, 즉 how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속건제는 번제물의 희생을 통해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기름기는 모두 바치며,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서 화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6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으나
거룩한 곳에서만 먹어야 하고,
성경은 가장 거룩한 제물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속건제물로 사용된 것이 흠이 없는 숫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흠이 없고 잘 키워진 숫양이라고 해도,
우리는 양에게 거룩하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그 제물을 거룩하다고, *7:1, 6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숫양이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다른 짐승들과 구별도 안 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숫양이었지만
그 양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순간 그 짐승은
세상 어떤 짐승보다도 거룩하고 귀한 존재로 취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면, 우리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영원한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의인으로 칭함을 받았습니다.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적으로 봤을 때,
때론 뒤처지고, 능력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고 하더라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온전히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서 나아간다면
그 누구보다도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7:11 부터는 화목제물을 드리는 규례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는데,
이는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의 동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감사제, 즉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제사(12, 13, 15절)입니다.
여기에서 제물로 드려진 고기는 그 날 먹거나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됨을 명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경우, 또는 서원이 이루어진 경우에 드리는
서원제입니다.(16절)
세 번째는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자원해서 드리는 자원제(16절)입니다.
이때에도 제물의 고기는 그 날 먹거나, 먹고 남은 것이 있다면
그 다음 날까지는 다 먹되, 사흘째 되는 날까지 고기가 남게 된다면
그것은 꼭 불사라야만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아니하고 제 삼 일에 조금이라도 고기를 먹게 된다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왜 일까요?
왜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튿날까지만 먹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결코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멋지고 정성을 다하는 예배를 드리고
많은 예물을 올려드린다 하더라도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와 예물을 결코 기쁘게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우리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자
정신 중에 하나입니다.
이처럼 매일 매일의 우리의 삶이 거룩한 예배가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깨어 지키며 순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하나님과 영적 거리는 더 멀어져 갈 겁니다.
반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분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겸손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 여호와의 손이 결코 짧지 않으심을 드러내십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 37절을 보면,
다섯 가지 제사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언급이 됩니다.
그런데 조금은 낫 설은 또 하나의 제사가 언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7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바로 위임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을 세우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임제가 5대 제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언급된 사실은
그만큼 위임제의 중요성을 본문이 웅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아론과 그 자손들이 위임받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직분인지를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처럼 귀한 제사장의 직분을 지금의 우리가 물려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바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오늘 하루도 가장 귀하고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시고
주님께 순종하면서 거룩하게 나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레위기 7:22~38
우리는 앞서 감사함으로 드릴 때의 화목제 규례, 화목 제사 후의
공동 식사에 관한 규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청중이 제사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바뀝니다.
본문의 규례들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지켜야 하는 규례이기 때문입니다.
7:22~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다른 데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는 말지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나님은 이미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레3:16~17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본문은 이 규정에 대하여 추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희생 제물로 드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짐승의 살과 섞여 있는 기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장을 감싸고 있는 기름을 의미합니다.
즉 갈비살과 섞인 기름은 먹을 수 있지만,
콩팥, 간 등 내장을 감싸고 있는 기름은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태웠던 제물의 기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기름은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습니다.
제단 위에 올려진 기름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바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이 자연적 원인으로 죽는다면 더 이상 제물로 바쳐질 수 없었는데,
이는 오직 흠 없는 짐승만이 하나님께 드리기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사한 짐승의 기름은 먹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용도로는 무엇이든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등불을 밝히는 것, 윤을 내는 것,
집안의 다른 목적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일 사람이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짐승의 기름은 최상의 것을 뜻하며,
그 최상의 것은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최상의 것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7:26~27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는 절대로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를 먹는다는 것은 새나 짐승의 몸에서 피를 빼내지 않고
고기를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기를 먹을 때는, 피를 다 제거한 후에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나 짐승의 피 섭취 금지는
어떠한 형식이든 모두 금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피를 먹는 것은 물론이며, 피를 넣어 만든 일체의 음식이 금지됩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순댓국과 선짓국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한 도살할 때 피를 제대로 빼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것은 고기를 피 째 먹는 일, 즉 피가 섞인 고기를 먹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유대 문헌의 가축 도살법에 의하면,
도살자는 짐승의 목의 동맥을 정확히 찔러 도살한 뒤 거꾸로 매달아 놓거나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비스듬히 눕혀 놓아 몸통의 피를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노아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내리신 적이 있습니다.
창9: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육식을 허용하시면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피를 먹는 것을 이렇게 강력하게 규제하실까요?
레17:11 (새번역) ‘생물의 생명이 바로 그 피 속에 있기 때문이다.
피는 너희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치라고, 너희에게
준 것이다. 피가 바로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죄를 속하는 것이다.’
새나 짐승의 피를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피가 곧 그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인간이 새나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때도 새나 짐승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도 선짓국이나 순댓국을 먹으면 안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음식에 대한 규정은 더 이상 항구적이지 않습니다.
(그 정신은 내려옵니다. 안 먹으면 좋죠,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고요.)
먹는 것은 외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민족과 국가의 식문화를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7:14-23). 바울 또한 이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인은 원칙적으로 모든 음식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선포했죠.
(롬14:15, 고전10:25-26)
7:28~30a,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물 중에서
그의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되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하나님은 화목제를 드리는 자가 자기 손으로 제단에서 태워질 짐승의 부위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 의하여 강제로 가져오도록
강요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자가 제단으로 가져가는 짐승의 부위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는 제물의 가장 소중한 부위를
스스로 제단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는 강제성을 완전히 배제해야 하며,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드리는 가장 좋은 제물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더 이상 짐승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지만,
근본 원리는 동일합니다.
고전9: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는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고,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은 주님의 권위 아래 두겠다는 신앙고백으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7:30b-34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화목제의 희생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두 부위입니다.
하나는 제물의 가슴이고, 다른 하나는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가슴 부위는 하나님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아 제사장에게 돌리고,
오른쪽 뒷다리 부위는 거제를 삼아 제사장의 소득으로 돌리도록 규정합니다.
제물의 가슴은 일반 제사장들의 몫인 반면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를 드린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여기서 요제와 거제는 제물을 드리는 의식과 관계된 용어로서
요제는 제물을 좌우로 흔드는 의식을 가리키고, *흔들 요, 요람할 때 요
거제는 제물을 위로 올리는 의식을 가리킵니다. *들 거, 휴거할 때 거
그러나 현대의 신학자들은 요제와 거제 모두 제물을
위로 올려서 드리는 의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위로 올리는 것은 소유권 이전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이 행동으로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우리도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이 원래부터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하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7:35~36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레위기 6-7장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화제물 중에서 제사장에게 돌릴 몫은
그들이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물에 대한 제사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생계를 돌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에게 적용합니다.
고전9:13~14절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사역자들의 생계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는 사역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교우를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마땅히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7:37~38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 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
레위기 1-7장 전체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과 제사장 모두와 관련된 이스라엘 제사 제도의
적합한 시행 지침 및 절차를 계시하신
레위기의 첫 번째 주요 부분에 대한 맺음말입니다.
이것은 저자, 출판사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의
마지막 장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누가 지금까지 말씀하셨고,
누가 이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사를 나열하는 일에 있어서 레위기 6-7장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중간에 위임제를 삽입합니다.
이 규례들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되풀이함으로써
레위기의 시작 부분(레 1:1)과 더불어 수미쌍관을 형성합니다.
본문은 희생 제물의 기름과 피에 대한 규정과 희생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에 대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더 이상의 희생 제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취해야 할 바른 태도와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수천 년 전에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사용하십시다.
모든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십시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런 설교도 참고해 보십시다)
학생이 학교에서 자기 나이에 맞는 교과목을 학습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제사학교인 레위기에서 거룩과 사랑을 배웁니다.
출애굽기 다음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청소년기입니다.
소년기,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신앙과 삶에 대한 내용입니다.
레위기 신앙을 옷에 비유하자면, 바로 ‘교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번제입니다. 번제를 통하여 진정한 만남의 가치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배웁니다. 번제는 가장 소중한 것을 태워 드립니다.
소, 양, 염소, 새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임의로 선택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만일 소가 없을 경우는 양을, 소도 없고, 양도 없을 경우에는 염소를,
다 없을 경우는 새라도 제물로 드립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이유, 단 하나입니다.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만남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만남의 질과 깊이는 언제나 그 만남에 있어 희생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안에는 십자가 나무를
태워서 친히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타는 사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은 언제나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영원한 삶이 돌아옵니다.
두 번째 소제입니다. 곡물로 드리는 소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나는 사랑을 배웁니다.
소제는 노동. 재산의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노동을 헌신한다는 것은 재산을 모으는데 불의한 방법,
부정한 수단을 동원해서 모으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노동들을 하나님께 드려 거룩한 삶을 영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떤 삶의 영역도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피할 영역은 아무데도 없죠.
세 번째 속죄제입니다. 속죄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애끊는 사랑을 배웁니다.
속죄제는 죄를 처리, 죄 용서를 위한 제사입니다.
5대 제사중에 속죄제를 다루는 분량이 제일 많습니다.
분량이 제일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제사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어렵고 힘든 속죄제를 날마다 드리다 보니,
영원한 제사, 속죄제물이 없을까? 하면서
영원한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속죄제사안에는 십자가에서 로마 군병의 창으로 자신의 창자를 끊은,
바로 하나님의 애끊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창자를 끊는 사랑는 엄마가 자식을 향해 가지는 사랑입니다.
탯줄을 끊는 사랑, 생명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창자는 모든 음식을 삭혀 배설물로 만들어 거름이 되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자에서 나온 사랑은
온갖 종류의 죄들을 삭혀 은혜의 거름이 되게 합니다.
네 번째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배웁니다.
화목제에서는 이웃과 함께 나눈 제사입니다. 그런데 새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입니까? 새는 너무 작기 때문에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이 안나오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무슨 사랑입니까? 이웃을, 가난한 자를, 소외된 자를
전적으로 배려하는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따뜻한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속건제입니다. 속건제를 통하여 배려하는 사랑을 배웁니다.
공동체안에서 주로 부지중에 죄를 짓거나,
실수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때 드립니다.
너를 향한 사랑을 잃어버려 반드시 찾아야 할 때,
빗질을 해서라도 (세밀하게) 찾아야 하는 사랑입니다.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서에는 있습니다. 빌 바가 있습니다.
5가지 제사를 통하여 하늘로 통하는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라는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갈 수 있는 자동문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 빈틈없는 사랑,
애끊는 사랑, 따뜻한 사랑, 그리고 무더기 사랑을
마음껏 원대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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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글레7장, 속건제, 화목제 때 제사장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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