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레위기 13~14장에는 문둥병 규례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기에도 복잡하고, 설교하기도 어려운 본문입니다.
그러나 딤후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때문에 레위기 13~14장에 기록된 내용도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한 말씀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율법의 규례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복음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규례에 나타난 예표와 실체를 찾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문둥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짜라아트’는 오늘날의 한센병과는 전혀 다른 병입니다. 한센병은 현대 의학으로 치료될 수 있는 질병가운데 하나이지만, ‘짜라아트’는 치료 방법이 없는 특별한 질병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문둥병은 인간의 의술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을 가리킵니다. NIV성경을 봐도 ‘Infectious skin disease’(전염성이 있는 피부질환)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에는 대게 ‘Leprosy’(한센병)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전염성이 있는 피부질환’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성경의 문둥병은 사람의 피부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복과 주택에도 발병했습니다. 오늘날 사람의 피부에만 발병하는 한센병과는 종류도 다르고, 발병하는 곳도 다르고, 치료방법도 다릅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에 이를 ‘문둥병’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저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레위기 13장과 14장을 보면 문둥병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는데 13장에는 사람의 인체와 의복에 발병된 문둥병 진단에 관하여, 14장에는 회복된 문둥병자의 정결의식과 가옥에 발병된 문둥병의 정결예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3장은 문둥병 진단에 관한 말씀이고, 14장은 정결의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문둥병이 의복이나 가옥에도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삶의 환경도 얼마든지 죄로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옥의 문둥병에 관한 말씀은,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정결해야 한다는 요지입니다.
오늘 본문 레13장은, 인체에 발병한 문둥병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둥병은 영적인 부정을 가리키는 ‘죄’를 상징한다.
문둥병은 단순한 피부질병을 넘어 영적인 부정과 죄를 상징합니다. 영적인 질병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죄의 상징이라는 것은 세 가지 증거로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에 보면 문둥병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즉각적인 발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의 지도력에 대항하며 비판 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게 된 미리암이 그 예입니다.
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가 거짓과 탐욕으로 나아만 장군에게 뇌물을 요구했다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직접 하나님께 분향하려던 남 유다 웃시야 왕도 이마에 즉각적으로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문둥병이 단순히 육체적 질병이었다면 의사들이 관리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13~14장의 기록에 따르면 문둥병은 철저히 제사장의 관리 아래 있었습니다.
문둥병을 진단하고 확정해 선포하는 것이 제사장의 사명이었고 병이 나은 이후, 정결의식을 행하는 것도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진단하고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문둥병은 단순히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영적인 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문둥병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습니다. 어떤 약을 써도 문둥병을 깨끗게 할 수 없고, 노력해서 낫는 병도 아닙니다. 문둥병이 깨끗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영어로 ‘Defilement’(부정)입니다.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는 거죠. ‘부정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정결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문둥병에는 ‘치료하다’(Cur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다’(Cleans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도 문둥병자를 고치실 때 “네가 깨끗함을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문둥병이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영적인 부정을 씻어주실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2. 문둥병에 대한 진단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한다.
요16:7~8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보혜사’는 제삼위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야단을 치거나 혼을 낸다’는 의미보다 ‘마음 깊이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의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0~12).
문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거죠. 죄가 가져올 결과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도 믿지 않고,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해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주일에도 놀러다니고 교회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의 사위처럼 복음을 농담으로 여기며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의 문제는 가볍게 생각할 주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 문제가 가벼운 주제였다면 어떤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죄인인데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실 때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하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고 “이대로 죽었다가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겠구나!”하는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사장이 문둥병자에게 문둥병이 있다고 진단해 주는 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시는 역사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레13장은 대단히 복잡해 보이지만 제사장이 환자를 문둥병자로 선언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첫째,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겼을 때, 그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해야 합니다. 13: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그러니까 문둥병자로 확진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해야 한다는 거죠. 우묵하지 않으면 문둥병이 아니죠.
이는 성령 하나님이 사람 영혼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에는 피상적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감옥에 가보면 죄수들이 대부분 자신들이 행한 범죄를 뉘우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뉘우침이요, 후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후회는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역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도, 죄수들처럼 예수님을 은 30개 받고 팔아넘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였죠.
그리고 돈을 준 제사장들을 찾아가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다시 예수님의 제자도 되지도 못하고, 제사장 편에도 서지 못하는, 오갈 데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속된 말로 왕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고, 그 몸이 갈대밭에 떨어져 창자가 흘러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회는 했으나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피상적인 후회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영혼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회개’(Saving Repentance)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피부에 흰점이 돋고 털이 희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털은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발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 여기저기 자라는 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얀 색 반점이 생기고 흰 털이 나오는 것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피부의 뿌리까지 부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피부 속까지 썩었기 때문에 건강한 털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죄를 깨닫게 하실 때는 한두 가지 자범죄를 깨닫게 하지 않습니다. 근원부터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는 천국에 들어갈 의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사람이 구원받는 일에 자신이 50%, 하나님이 50%를 공헌하면 천국에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극락에 가는 법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론은 이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실 때에는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도 천국 들어가는 데 공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0.0001%도 공헌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문둥병으로 진단하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 것이라 이는 문둥병임이니라”
피부에 퍼지면 문둥병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죄를 깨닫게 하실 때, 죄인들의 지정의(知情意) 전 영역이 모두 부패했음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만 부패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 of Man)은 건강한 진리가 나오는 제일 뿌리의 교리입니다.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정하는 모든 신학은 거짓된 것입니다.
4) 넷째, 피부에 난육이 발생하면 문둥병으로 진단하라고 하셨습니다. 14절에 “아무 때든지 그에게 난육이 발생하면 그는 부정한즉”
‘난육’은 ‘생살’(Raw Flesh)이라는 뜻입니다. 환부에 종기가 터지고 안에서 생살이 부풀어나면서 진물이 나는 것을 ‘난육’이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곪은 상처가 터진 것처럼 사람의 양심에 심한 가책이 와서 상한 심령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실 때는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았을까? 내게는 천국에 갈 의가 전혀 없구나!”하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51: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4가지는 성령께서 우리가 마음의 뿌리에서부터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이 되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참된 회개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교인입니다. 그러나 피상적인 후회 정도의 뉘우침으로는 참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참된 회개를 하시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13장에는 문둥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취해야 할 조치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45~46절에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
문둥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먼저 옷을 찢어야 합니다. 옷을 찢는 것은 “나에게 천국에 들어갈 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참된 회개는 하나같이 모두 옷을 찢고 기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풉니다. 묶었던 머리를 푸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름에 태양 볕이 내리 쬐이고,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모자와 같은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존재다” (I am under the wrath of God)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윗입술을 가리고 다녀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고 다녀야 됩니다. :45 이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서 진 밖으로 홀로 나가야 합니다.
홀로 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영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또는 속죄양) 사역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영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죄의 값이 그토록 엄하고 무거움을 뜻합니다.
반드시 혼자 나가야 합니다. 구원은 누가 대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믿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믿는다고 자식이 저절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각자가, 일대일로 영문 밖에서 수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 분을 만나야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영문밖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그 사람이 바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3. 정결의식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적용해 주시는 과정’을 설명한다.
문둥병에 대한 정결의식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죄인들에게 적용해 주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의학기술로 고칠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가, 사람의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해 주고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떤 교육, 어떤 선행, 어떤 훈련으로 가능합니까? 어떤 약도 문둥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진단하고 깨끗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과정이 바로 레14장의 정결의식에 그림처럼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자의 정결의식은 대단히 복잡해 보이지만 5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단계는 문둥병자가 진 밖에 있기 때문에 제사장이 문둥병자에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문둥병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14:3
“하나님이 이 사람을 치료해주셨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살펴보는 거죠. 사람의 구원은 예수님이 먼저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야 가능해 집니다. 결코 자유의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면 구원받고, 원치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요5장 그런데 그 가운데 38년 된 병자 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왜 그에게 다가가셨을까요?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2단계는 제사장이 산새 두 마리를 취하여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잡고, 다른 한 마리는 날려 보냅니다.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14:5~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속죄하심으로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단계는 제사장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묶어서 붓을 만든 후, 14:6~7 산새의 피를 찍어 문둥병자에게 일곱 번 뿌립니다. 피뿌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죄인들의 영혼에 뿌리셔서 죄 사함과 자유를 얻게 하고, 평안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영혼의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4단계는 영문 밖에서 피 뿌림을 받은 사람이 자기 옷을 빨고 14:8 털을 밀고 맑은 물에 몸을 씻은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고, 7일을 거한 후 다시 한 번 옷을 빨고 털을 밀고 물로 씻은 후에 가족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로 격리되어 있다가 드디어 그리운 가족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웠던 가족들을 오래간만에 재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 받은 후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소속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면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가 됩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형제자매입니다.
5단계는 하나님 앞에서 피와 기름을 일곱 번 뿌리고 기름을 세 곳에 바릅니다.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쪽 발가락에 바릅니다. 14:14~17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가 되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화된 삶,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듣고 보고 행하는 모든 것에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죗값을 갚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사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셔서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문둥병의 정결예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림입니다.
결론 문둥병자에 대한 진단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라는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이미 죄인 된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저주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 상태에서 자신이 저주 받은 문둥병자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의 역사로 주시는 깨달음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이렇게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참된 성도가 된 자는 놀라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교인이라고 다 똑같은 교인은 아닙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상한 심령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 피로 씻음 받고,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령 체험입니다.
요즘은 이상한 종교행위를 통해 성령을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방언, 예언, 통변과 같은 은사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런 현상들이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도 있고, 천주교에도 있고, 힌두교에서도 나타납니다. 몰몬교 교리에도 “우리는 방언과 통변을 믿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비로운 체험이 진정한 성령 체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체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자신의 전 삶을 예수님께 드려 정결케 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성령의 참된 역사를 체험 하여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