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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7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20. 18:29

◈삼상7장  해석 및 주석

 

<삼상7장 추천 설교>

7:1~17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었다는 증거 6가지

 

7:1~11 우상을 제하고 전심으로

 

7:1~12 진정한 부흥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기럇여아림...여호와의 궤를 옮겨'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성막이 있는 실로(Shiloh)로 옮겨가지 아니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 아벡 전투(4:9-11) 결과, 블레셋 족속에 의해 당시 실로까지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2) 되도록이면 큰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곳에 법궤를 보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편 '기럇여아림'에 대해서는 6:21 주석을 참조하라. 다른 이름으로 헤브론이다.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레위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봐야 할 까닭은 다옴과 같다. 
1)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경우가 흔했으며(삿 17:12), 
2) 후일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삼하 6: 3).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이 기럇여아림성읍의 교외 산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들여 놓고' 
아비나답의 집은 언약궤를 보관하기에 적당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그의 집이 기럇여아림의 교외 고지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들 엘리아살' 
'엘리아살'(Eleazzr)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자'란 뜻으로, 이 사람은 아론의 아들로서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Eleazzr, 출6:23, 민 20:25-28)과는 동명 이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의 소유자는 위의 두 사람이외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레위 지파의 후예임을 은연중 시사한다.

'거룩히 구별하여' 
이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출 28:3, 41).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엘리아살이 혈통상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한 상황은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비슷하게 사무엘도 레위지파이기는 하나, 제사장 가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릴 적부터 에봇을 입고, 제사장 직분을 감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15장에서 자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제사를 드린 사울을 책망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2:35에서의 '제사장'도 사무엘을 암시한 것이다/주) 
따라서 그가 비록 제사장 가문의 후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위 지파였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운 듯하다. 한편 성경은 엘리아살이 어떤 권위에 의해, 또한 어떤 방식에 따라 제사장으로 구별되었는지에 대혜서는 침묵한다.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제사장적 신분으로 거룩히 구별된 엘리아살이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지켰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아벡 전투로 말미암은 실로 파괴 이후 공식적인 예배나 제사는 일단 중지된 듯하다. 따라서 엘리아살의 주임무는 예배나 제사 행위 보다도 법궤를 안전하고도 정결하게 잘 보관. 건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궤가...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여기서 '이십 년 동안'은 다윗에 의하여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완전히 옮겨진 때까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빼앗겼던 아벡 전투(혹은 에벤에셀 전투)는 B.C. 1075년에 있었고,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 때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시작한 직후인 적어도 B.C. 1003년 이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이십 년 동안'은 사무엘이 최초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한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3절).

비록 하나님의 언약궤는 일찍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6:14), 20년이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여전히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4:10), 또한 언약궤는 비록 이스라엘 땅이긴 하지만 여전히 블레셋의 깊숙한 영향권 아래 있는 기럇여아림 땅에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6:21, 당시 기럇여아림을 블레셋 점령지로 보는 시각도 있음).

'이스아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여기서 '사모하다'(나하)란 말은 본래 '크게 울다', '부르짖다'란 뜻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흔히 신세를 몹시 한탄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깊게 뉘우쳐 크게 울면서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렘 9:10, 31:15,  겔 32:18,  암 5:16,  미 2:4).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활동을 이방 족속 블레셋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강제로 억제당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사무엘의 분투적인 노력과 활동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일찍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명망이 높았던(3:19, 20) 사무엘이 이 오랜 시기 동안 잠자코 있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성경은 이 점에 대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러 일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1) 아벡 전투의 결과로 말미암은 실로 성소 파괴 이후, 아마도 사무엘은 성막을 놉(Nob)으로 이전하는 일에 깊이 관여 했을 것이다(21:1-9). 
2)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사망 이후, 사무엘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타락된 제사 예식의 기강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3) 블레셋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고 죄의 회개를 부르짖는 등 신앙각성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4) 또한 사무엘은 종교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모세 율법으로 바로 세우고, 아울러 선지 학교를 창설하여 젊은 인재들을 육성했던 것 같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이...일러 가로되' 
여기서 드디어 사무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비록 공식적이며 전면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무엘의 신앙 부흥 운동이 그동안 계속 되어 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3:19-21,  4:1).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적절한 때를 포착한 사무엘은 본격적이고도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때 사무엘의 나이는 32세 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사무엘은 아벡 전투(4: 5-11)가 있었던 약 12살에 소명되었고(3:1-14), 활동 당시는 그 전투 직후 궤를 빼앗긴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심으로...돌아 오려거든' 
여기서 '돌아오다'(슈브)란 말은 '회복하다', '돌아가다', '전향하다', '회개하다'란 뜻으로서 곧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 된다(왕상 8:33, 48, 대하 6:24, 느1:9, 렘3:10). 한편 '전심으로'(베콜레바브켐)는 '너의 마음 송두리채'란 뜻으로서, 이는 회개의 순수하고 진정한 성격을 강력히 암시해 주는 문구이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제하고' 
우상을 제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와 여호와만을 섬기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출 20:3-6). 여기의 '이방 신'(엘로헤 하네카르)은 문자적으로는 '낯선 신들'(the strange gods, KJV)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4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구체적으로는 '바알 신'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 '바알'(Baal)은 '주'(主)라는 의미인데, 가나안 땅에서 이 바알 신은 원래 '엘(EL) 신'의 아들로 비와 풍년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신인 '못(Mot) 신'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후 7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전쟁의 여신'아낫'(Anat)이 그의 시체를 찾아 그를 다시 살렸다고 한다. 

'너희 중에서 제하고' 
'제하고'(하시루)는 '제껴두다', '뽑다', '떠나다'란 뜻,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 특히 우상을그 흔적까지도 없앤다는 뜻으로서 많이 사용된 단어이다(창 35:2, 수24:14,  왕상15:14, 왕하 12:3, 대하15:17). 한편, 후일 유다의 두 현군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우상 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찍어버리는 것'(왕하 18:4)과 '불살라 재로 만들어 평민의 묘지에 버리는 것'(왕하 23:4-6) 등의 두 가지를 백성에게 제시하였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의 이 말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족속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심하게 유린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그러한 압제와 핍박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도 분명히 시사해 준다.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에...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본절은 사무엘이 선지자로서 백성들에 의하여 크게 신임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3: 19-21, 4:1). 사무엘의 회개 촉구에 순히 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같은 행동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자신들을 자유케 하는 지름길임을 체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그동안 힘써 노력해 온 사무엘의 신앙 각성 운동이 열매를 맺은 것이요, 또한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삿 3:8,9)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이같은 대성회는 전에도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루어졌었다(삿 20:1, 21: 5,8). 더구나 중앙 성소였던 실로(Shiloh)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미스바 모임의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스바'는 '파수대'(watchtower)라는 뜻을 가지며, 오늘날의 '텔 엔-나스베에'와 동일 지역으로서 해발 784m의 고지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3km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다. 한편 이 성읍의 역사적 존재 사실은 1920년부터 1935년 사이에 실시된 탐사를 통하여 B.C. 1100-400년경의 많은 유적들이 이 지역에서 발굴됨으로써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런데 사무엘이 많은 성읍 중 이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이도록 한 이유는 아마도 미스바가 온 이스라엘이 모이기에 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지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미스바 모임의 목적은 다음 두 가지였다. 
1) 대회개 운동을 통하여 국운을 회복하고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성회였다. 
2) 블레셋으로부터 정치.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거사였다. 

아울러 미스바 성회가 가지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1)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님의 왕국답게 혁신하는 대개혁의 모임이었다. 
2) 파괴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간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대전환의 모임이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기도하리라'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중보의 기도임이 분명하다(12:19, 시99:6,  렘15:1). 따라서 이 일은 마땅히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할 일이었지만, 
1) 당시는 대제사장이 뚜렷이 없었고 또한 제사의식마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2)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부름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2:35, 3:19-21) 사무엘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었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이처럼 '물을...붓는' 행위는 마치 물을 부어 쏟듯이 자신의 마음 전부를 다 내어놓고 회개한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 행동이며(시22:14), 아울러 자신의 슬픔을 외적으로 모두 토로해 낸다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동이다(애2:18,19). 따라서 반대로 '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는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상징적 행동이다(사12:3).

'금식하고' '금식하다'에 해당하는 '춤'(*)운 본래 '입을 덮다'란 뜻이다.여기서는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금식'(fast)란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사 58: 6-9). 아울러 여기 '금식'은 애통과 회개와 기도 등을 모두 함축하는 말이다(삿 20:26,  삼하 12:16-23,  왕상 21:27).

'우리가...범죄하였나이다' 
이 말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회개에 대한 묘사 중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출32: 31,  신1:41,  삿10:10,  삼하 24:10, 왕상8:47,  왕하18:14).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와 같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그들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삿3:9, 15, 4:3, 6:6).

'사무엘이 미스바에서...다스리니라' 
여기의 '다스리니라'는 '재판하다'란 의미이다(출18:16, 22, 사2:4,  렘5:28, 단 9:12). 
꼭 재판만이 아니라, 재판을 포함한 모든 통치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주도한 사무엘은 이제 종교적인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생활 태도 전반을 교정시키고 감독하며 재판해야 하는 사사(士師)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듣고...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삿 20:1). 블레셋 사람들은 사무엘의 영도하에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거행한 의식(儀式)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 성전(聖戰)을 준비키 위한 행위로 파악했기 때문에, 그러한 움직임이 더 확장되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Klein). 사실 오랫동안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권 하에 있던 이스라엘이 이방 신상을 제거하고 민족 신앙을 고취시키는 거국적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곧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정치.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는 명백한 도전 행위임은 분명했다.   

'이스라엘 자손이...두려워하여'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숱한 세월 동안 압제를 당해왔던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블레셋의 공격 소식에 이같은 반응을 보임은 당연하였다(출 14:10, 13장, 수10:8). 더군다나 당시 이스라엘은 싸울 무기나 조직 조차 변변치 못한 반면에, 블레셋 족속은 강력한 철병기로 중무장한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던가?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쉬지 말고 부르짖어' 
여기서 '부르짖다'(자아크)는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호소를 가리킨다(삿6:7,   대상5:20,  렘 11:11). 따라서 '쉬지말고 부르짖어'라는 말은 어려운 고비를 벗어날 때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행위를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이것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의 중보자로 인정하고 있으며(왕하 3: 11-19). 2) 백성들이 하나님만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또한 의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말이다.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이 어린 양은 태어난 지 최소한 7일 이상은 된 양일 것이다(레 22:27). 한편 이처럼 사무엘이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방 신상을 제하고 회개한 이스라엘이 이 순결한 어린 양처럼 새롭게 거듭 태어났음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것은 희생 의식 절차에 있어서의 완전성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헌신하는 마음 자세의 완전성을 뜻한다. 또한 실제적으로는 어린 양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화제(火祭)로 불살라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할다. 한편 여기서 사무엘이 여러 가지 제사 형태 중에서 번제를 드린 이유는 '번제'가 전적 헌신의 제사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다짐하므로써 1) 자신들의 회개의 진실성을 강조하며(6절), 2) 자신들이 구원 받아야 할 간절한 필요성을 호소하였다(8절).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블레셋 사람이...가까이 오매' 
본절의 장면은 생생하다. 즉 미스바 제단에서 어린 양은 번제로 계속 불타고 있었고, 사무엘은 전심 전력으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었다. 때에 철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는 득의 앙양하여 미스바 산지의 아래에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결해 있는 고지로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도저히 군사력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었던 몰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오로지 하늘의 도우심만 의뢰하고 바랄 뿐이었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뢰로써 기도에 응답하셨다.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헌신과 기도에 대하여 우뢰(雨雷)로써 응답하셨다. 즉 여기서 '우뢰'는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는 하나님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2:10,  삼하 22: 14).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번개(삼하 22:15,  왕상 18: 38), 우박(수 10:11), 흑암(수 24: 7), 심지어 별(삿5:20)과 질병(5:6)까지도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징벌하시는 당신의 무기로 사용하신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연계를 당신의 의지에 따라 주장하셔서 '우뢰'라는 자연현상을 유발시키셨던 것이다. 사실 고대인들은 이 우뢰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생각했었다. 여하튼 때맞춰 하늘로부터 터져나온 이 '우뢰' 소리로 인하여 블레셋 족속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혼비 백산(魂飛魄散)하게 되었을 것이다.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이...블레셋 사람을...쳤더라' 
득의 양양하게 진군해 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던 순간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터져나온 큰 우뢰 소리에 놀라 혼비 백산한 블레셋 군대를 이스라엘이 사기충천하여 파죽지세로 몰아쳤다는 의미이다. 한편 타민족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 장면은 사사기 16장을 끝으로 여기서 처음 언급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승리가 항상 그렇듯, 이 승리 역시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거두어들인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당시 블레셋 족속들은 철병기를 소유하였으며, 이러한 블레셋 군대를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승리의 헌장에 다만 은혜로 참여하였을 뿐이다(수 10:10).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이라 하니라 

'돌을 취하여...세워' 
구약 성경에서 '돌을 취하여 세우는 일'은 특별한 사건을 후대에까지 기념 혹은 기억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창 31: 44-47,  수 4:6-7).

'여호와께서...우리를 도우셨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1)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대한 감사, (2)계속적인 은혜 공급의 간절한 요청, (3)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계속 머물겠다는 전적인 헌신의 각오 등이다.

'여기까지’
'여기'는 구체적으로 그때 사무엘과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추격해 갔던 서쪽 한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근 40년간 블레셋의 압제에 시달리던(삿 13: 1) 이스라엘이 싸움에 이겼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족속의 영역권인 가나안 서쪽까지 막강한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면서 쫓아갈 수 있었던 것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란 뜻)은 미스바 전투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오고오는 세대에 증거하기 위해 세운 기념석(記念石)으로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추격해간 장소에 세워졌다. 한편, 그런데 여기 '에벤에셀'(Ebenezer)은 4:1의 에벤에셀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1) 그 위치에 있어서 다르며 (2) 4:1의 에벤에셀은 한 지역의 명칭인 반면, 여기의 에벤에셀은 다만 '돌'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여기의 '블레셋 사람의 굴복'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완전한 항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 영내 일부에 자신들의 총독부 및 수비대를 계속 두고 있을 정도로(10:5), 이스라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9: 16). 따라서 여기 이 말은 미스바 패전 이후 불레셋은 더이상 이전처럼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많은 성읍을 도로 회복할 수 었었다.

'여호와의 손이...막으시매' 
이것은 미스바 전투(10, 11절)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블레셋의 파상적 공격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의 공격을 막아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도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라는 단서가 붙음으로써, 사무엘 사후 이스라엘에 밀어 닥칠 격랑을 예상케 한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 말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통치하고 있을 동안을 가리키는 말로, 이 기간은 사울이 왕이 된 후의 약 5년을 포함하는 기간이었다. 실제로 사울은 이 5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남길 수 있었다(14: 23).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이...빼앗았던 성읍' 
이 '성읍'들은 대부분 아벡 전투(4:5-11)의 패배로 말미암아 블레셋에 빼앗긴 곳들이었다.

'에그론부터 가드까지...회복되니' 
이 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주요 성읍인 에그론과 가드까지 정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에그론과 가드를 잇는 블레셋 경계의 동쪽 성읍을 회복 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 부근의 이스라엘 성읍들은 오랫동안 블레셋의 통치와 압제하에 있었으나, 사무엘 시대에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 중 가장 강력한 족속으로서, 출애굽 이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족속이었다. 그러나 사사 사무엘의 시대에는 이들간에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이처럼 아모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코자 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블레셋의 강력한 군대가 이스라엘에 의하여 패퇴당하는 것을 아모리 족속이 분명 목도하고그 위세에 눌렸기 때문일 것이다.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다스렸으되' 
여기서는 사무엘의 사사직 수행이,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이후에도 계속 수행되었다는 사실이 애써 강조되고 있다(13절,  12:11,  13:13,  15:1). 즉 사무엘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사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것은 사울의 타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당시 사울은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지기는 하였으나 (11:14,15),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지도자였다(8장,  9:16).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왕이 세워지기까지, 새로운 신정 왕국(神政王國) 건설을 준비해야 할 사무엘은 자신의 사사직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었다.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해마다...순회하여' 
'해마다'는 '적어도 1년에 한 차례씩'의 의미이다. 그 당시 사무엘은 이같은 일을 사울이 왕으로 세워질 때까지 적어도 5년간은 계속했을 것이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벧엘'(Bethel)은 예루살렘 북쪽 약 16km지점의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지역으로, 이곳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는 등의 역사적 사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의 성지(聖地)로 여겨 졌다(10:3,  창12:8,  28:17-19,  수 7:2,  왕상 12:29). 한편 '미스바'(Mizpah)는 예루살렘 북쪽 13km지점, 곧 예루살렘과 벧엘 사이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5절 주석 참조. 그리고 '길갈'(Gilgal)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직후 집단적으로 할례를 받은 곳으로서(수5:8), 요단 서쪽 약 6km 지점이다(수 4:19). 이처럼 사무엘이 순회했던 지역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우리는 사무엘의 사사직 수행이 온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역을 총망라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이뤄졌음을 볼 수 있다. 그같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위에 언급된 지역들이 모두 팔레스틴의 중앙부에 위치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여기서 '그 모든 곳'과 '이스라엘'은 동격이며, 이것들은 곧 위에 언급된 여러 지역들을 가리킬 뿐이다.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라마로 돌아왔으니' 
'라마'(Ramah)는 예루살렘 북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사무엘의 고향이었다(1: 1, 19). 당시 언약궤도 없고 성막도 존재치 않는 상황에서, 사무엘이 더이상 실로(Shiloh)에 계속 머물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때 고향 라마를 중심으로 인근 주요 성읍을 순회하면서 사사직을 수행하였던 것이다(10: 5 , 19: 18).

'단을 쌓았더라' 
이것은 지극히 타당한 행동이었다. 그 이유는 (1) 당시는 아직 중앙 성소가 확정되지 않았으며(신 12: 11), (2) 또한 제사장의 무리들은 엘리 가문의 파멸 이후 제 기능을 발휘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3) 실로의 성막은 아벡 전투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처럼 영적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이 두드러졌던 당시 상황에서 선지자요 사사인 사무엘이 또한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을 회복하는 일은 실로 시급한 문제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사무엘은 고향 라마에 여호와의 단을 쌓아 제사 의식을 수행했는데, 특히 '라마'는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하였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곳에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