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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3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27. 19:36

한글 주석 - HANGL NOCR

◈삼상13장 해석 및 주석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구약 성경 중 특히 사무엘서는 본문 전승 과정상의 문제로 인하여 숫자상의 난제가 많이 발견된다. 본절도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데, 비록 본서 저자가 일반적인 열왕기의 기술법에 따라(삼하2:10,  5:4,  왕상14:21,  22:42) 왕의 즉위 년도 및 통치 기간 등을 밝히고자 의도적으로 시도했을지라도, 여러 사본상의 차이로 인하여 그 해석에 있어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벤 솨나솨울 베말르크)' 
이 말을 직역하면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일년)이었다'(It was one year since Saul has become king)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문제점이 따르게 되므로, 여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1) 이 말을 의역하여,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 난 어린이와 같았다'라는 해석이 있다(Targum, the Chaldee). 이것은 사울이 그만큼 순진했거나 또는 유치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너무 지나친 의역(意譯)으로서 그 타당성은 없다. 
2) 원문의 '살'(year)앞에 나이를 표시하는 알파벳 또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되었다고 보고, 추측하여 '사울이 왕이 될 때에 30세이었더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는 병력을 통솔하고(3절) 적군을 무찌를 만큼(14:4)성숙한 아들 요나단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해석 역시 적당치 않다. 

3) 70인역(LXX)은 이것을 원문에 없는 말로 보고, 아예 여기서 이 문구를 빼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 본문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것이다. 

4) 이 말을 약간 의역하여, '사울이 일년을 다스렸다'(saul regned one year)라는 해석이 있다.(KJV). 그러나 이것은 이어 나오는 '다스린 지'(*, 말라크)라는 말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은듯하다. 
5) 이 말을 본문 그대로 충실히 번역하여 '사울이 왕이 된 지 일년이었더라'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the Vulgate, Grotius). 그런데 우리는 이 다섯번째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다섯번째의 해석은 첫재, 성경은 우선 문자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에 부합되며 둘째, 본절의 다음 문구인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울이 실제적으로만 일 년 간 이스라엘의 왕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 

이 말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왕의 통치 기간 계산 방법을 통해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해 니산(Nisan, 혹은 아빕)월에서 다음 해 니산 월까지를 통치기간 1년으로 보지만, 실제 통치 1년 간의 중간에 니산 월이 걸리면 비록 만 1년이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통치 긴간을 2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여기의 '이 년'은 실제적으로는 1년이되, 그 중간에 니산 월이 낌으로 인하여 이같이 계산되었던 것 같다.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택하여' 앞에 '자신을 위하여'(로)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이같은 행위는 암몬과의 싸움을 위하여 사울이 온 백성을 군대로 소집한 것과는 성격상전혀 다르다(11:7, 8). 즉 사울이 택한 삼천 명은, 열방과 같은 왕으로서의 자신의 직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잘 훈련된 정예군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성전(聖戰)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병력이라기 보다는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중차출한 근위병적 성격이 강한 군대임이 분명하다(14:52).

'이천은...믹마스와 벧엘 산에' 
'믹마스'는 예루살렘 북쪽 약15km,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졌으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정도의 높이는 그 지역에서는 저지(低地)에 속한 편이었다(사10:28, 29). 그런데 이곳 믹마스의 남족은 '와디수웨이닛'(Wadi Suweinit)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고개들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보리의 산출이 많은 곳인데, 오늘날의 위치는 '묵마스'(Mukhmas)이다. 
한편 '벧엘 산'은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그냥'벧엘'로 나온다. 이곳은 믹마스 북서쪽 약 7km 지점의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위치했었다. 바로 이같은 이 지역의 표고(標高)때문에, 여기서는 '벧엘 산'으로 지칭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사울의 이같은 군사 행동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랜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사울의 장자 '요나단'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셨다'이다. 한편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가리키며,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울의 통치 거점이였다<10:26>.

'남은 백성은...장막으로 보내니라' 
이것은 사울이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소집했다가 다시 돌려보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그때 소집되지 않았음을 강조할 뿐이다. 사울이 이같이 한 이유는, 그는 (1) 훈련 안된 일반 백성들은 블레셋의 강한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으며, (2) 또한 은밀한 가운데 블레셋 군대를 기습 공격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카일은, 당시 사울은 길갈에서 왕의 대관식을 마친 뒤(11:15) 이스라엘 백성 중 3,000명을 뽑고 나머지는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라고 추측하나, 13:1의 진술과 비교해 볼 때 시간상으로 의문이 많다.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게바에 있는 블레셋...수비대' 
여기서 '게바'는 '기브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곳으로, 기브아 북동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한 지역이다. 오늘날의 우치는 '예바'(Jeba)로 판명된다. 그리고 '수비대'는 '기지' 혹은 '요새'란 뜻으로서, 아미도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통치 기간 중(삿13:1) 이스라엘의 주요 거점에 설치한 블레셋의 '군사 초소' 또는 '파견 진지'를 가리키는 것 같다. 10:5 주석 참조.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영토 깊숙한 곳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당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의해 많은 압제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9:16>.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블레셋의 본토 주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때 요나단에 의해 패배를 당한 '수비대'의 패잔병은 약 40km 정도 떨어진 자신들의 블레셋 영토까지 패주하여 자신들이 당했던 사실은 보고했던 것이다.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여기의 '나팔'(쇼파르)은 '양의 뿔'(the ram's horn)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행위는 '위험'을 경고하며, '성전'(聖戰, the Holy War)을 선포할 때 주로 언급된다(수6:4,  삿6:34,  렘4:19, 겔33:3). 따라서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블레셋 수비대를 격파한 승리의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쟁을 준비키 위해 백성들을 소집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격파함으로 인해 격분한 블레셋이 대규모 반격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내용일 것이다.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 이 길갈로 모녀 사울을 따르니라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이 단어(니브아쉬)는 원래 '악취가 나다'란 의미이지만,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겨우 '증오(혐오)의 대상이 되다'란 뜻이 된다(27:12,  출8:14,  삼하10:6). 
한편, 블레셋이 이토록 격분한 이유는 물론 직접적으로는 사울과 요나단이 자신들의 수비대를 공격 격파한 사실이지만, 그 전에 먼저 이스라엘이 그들의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확보하여 암몬 군대를 물리치는 등 전면적으로 블레셋에 항거하는 일련의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길갈' 
'길갈'은 요단 서편 약 6km 지점에 위치한 지역이다<7:16,  11:14>. 한편 사울이 이 지역을 백성들의 집결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요단강 평야에 속한 들판이어서 병력집결이 용이하였고, (2) 자신이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곳이었으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으며, (3) 당시 정치적 수도라 할 수 있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는 그 지리적 위치상 블레셋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여...좇으니라(차아크)’
이 단어는 원래 '소리치다', '부르짓다'란 의미이나,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군사적 목저의 대규모 집결 행위'를 가리킨다(삿7:23,24,  10:17,  12:1,  왕하3:21).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저자는 본절에서 블레셋 수비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습격에 대해 블레셋의 분노가 얼마나 컸고, 따라서 그 박격이 얼마나 거세었는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병거가 삼만...마병이 육천' 
여기의 이 숫자들은 서로 잘 조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증근동 지방에 있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병거'(chariot)의 숫자가 '마병'(horseman)의 숫자보다 많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삼하10:18,  왕상10:26,  대하12:3). 이에 대해 혹자(Wordsworth)은 블레셋이 다른 동맹국들로부터 병거를 삯내어 빌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나, 당시 블레셋이 군사력이나 군사 장비에 있어 전혀 이스라엘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추측은 무리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병거'의 숫자 '삼만'은 필사자의 실수에 따라 과대하게 표기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실수가 야기된 동기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원본은 1,000이었을 것이나, 필사자가 필사 중 1,000앞에 나오는 * (이스라엘)의 끝자   ('라멧'-히브리 알파벳 수치상 '30'을 나타내는 단어)을 중복 기록함으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 (2) 원본은 3,000이었을 것이나, 필사자가 필사(筆寫)중 3,000을 나타내는 숫자 '쉘로쉐느 엘레프'중 '쉰'(히브리 알파벳 수치상 '300을 나타내는 단어)에 점을 두개 찍음으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여기의 '병거'(레케브)는 보통 6개의 살이 달린 바퀴 두개가 달렸으며, 두 필의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였다. 이 수레의 대부분은 나무 및 가죽으로 이루어졌으나, 중요 부분은 청동이나 철로 장갑(裝甲)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병거의 뒷편은 열려있으나 앞면은 전사(戰士)의 보호를 위하여 어느 정도 높이까지 가리워져 있었다. 대개의 경우 이 병거에는 두 사람 정도가 탔다. 그리고 '마병'(파라쉼)은 B.C.1200년 경에 처음 조직된 듯하며, 그 목적은 적군에게 내달리어 좌충 우돌하며 그들의 대오를 흐트리고, 그리하여 적군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함이었다.

'백성은...모래 같이 많더라' 
블레셋 군대의 일반 '보명'(步兵)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래 같이'란 표현은 숫자의 많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독특한 성경적 표현이다(창13:16,  수11:4,  삿7:12,  삼하17:11).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벧아웬'은 '사악한 집'이란 의미이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믹마스 동쪽 약 1.2km 지점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의 집'으로 알려진 '벧엘'이 우상 숭배의 장소로 타락하게 되자 경멸하는 뜻으로 '벧아웬'이라고 불려지게 됐음을 언급하고 있다(호10:5). 수7:2 주석 참조. 그리고 '믹마스'(2절 참조)는 후대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가면서 많은 병참 마차를 남겨두었던 곳이었다(사10:28,29). 이같은 사실로 볼 때, 믹마스는 블레셋의 많은 군사들을 포용할 만한 넓은 곳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여기서 '진 치매'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세우다'란 뜻이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의 뜻에 응하여 모였으나, 블레셋의 막강한 군사력의 위용에 기가 질려 전의(戰意)를 상실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굴과 수풀과 바위틈' 
'굴'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천연 동굴을 가리킨다. 후일 다윗도 사울로부터 추격을 받을 때, 이러한 굴 속에 피신한 적이 종종 있었다(24:3). 그리고 '수풀'(호아흐)은 가시나무가 울창한 곳을 가리킨다(왕하14:9,  대하25:18,  아2:2). 또한 '바위틈'(crags)은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뜻한다(민24:21,  삿15:8,  사2:21).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히브리 사람'(이브림-the Hebrews)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이방 민족들이 경멸조로 사용한 말인데<3절>,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람인 저자에 의해서 그 말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저자가 여기서 일부 이스라엘 사람을 이같이 표현한 이유는 (1) 이들이 민족의 긴박한 상황을 무시한 채 요단 너머로 도피했다는 사실, (2) 또는, 추측컨데 이들이 전에 블레셋 족속의 용병으로 봉사했었다는 사실 중 하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문맥상 첫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것 같다.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갓'은 갓 지파가 여호수아로부터 기업으로 분배받았던 땅을 가리킨다. 당시 갓 지파의 기업은 요단 동편,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기업 가운데 위치했었다(민32:1-7, 34-36,  수13:24-28). 그리고 '길르앗 땅'은 (1) 넓게는 요단 동편 지역 전체를(수22:9,  삿5:17). (2) 일반적으로는 요단 강 동쪽의 땅 중 갈릴리 호수 남단에서 아르논 강까지를 가리킨다. 한편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해면보다 약 230m나 낮은 요단 계곡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해발 약 1,100m 이상의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물이 많아 수목이 울창하며 목초지로도 훌륭하였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당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위하여 백성들을 소집하면서 틀림업이 사무엘의 후원을 받았을 것이며, 따라서 이제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 소집된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무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사무엘을 기다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소집될 장소로 지정된 길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분명 사울은 그때 블레셋을 격파한 미스바 전투(7:7-11)를 생각하면서, 이번 전쟁에서도 사무엘의 도움이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무엘의 정한 기한...이레'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10:8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즉 사울은 10:8의 사무엘의 명령에 따라 길갈에서 사무엘을 '이레'동안 기다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10:8과 본절 사이에 전개된 많은 사건들, 즉 사울이 왕으로 공식 소개된 사건(10:27-24), 암몬 군대를 결파한 사건(11:1-11), 사무엘의 길갈 메시지(12:1-25), 사울과 요나단의 블레셋 수비대 공격(13:1-4) 등의 사건들을 매우 신속히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로 이해하여 시간상의 난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10:8에서의 사무엘의 명령은 오히려 11:14-12:25의 기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서 11:14-12:25에는, 사무엘이 10:8에서 언급한 주요 사항인 화목제와 사무엘의 훈계등이 확실히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1:15에는 10:8에서 언급된 제사 중 번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직 화목제만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번제는 화목제가 드려질 때 필연적으로 함께 드려진다는 점에서(1:24), 11:15에서 언급이 생략된 듯하다. 더구나 2년이나 지나서<1절> 시행될 일을 10:8에서 미리 지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치 못하다. 

따라서 여기의 '사무엘의 정한 기간'은 본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울이 군사 행동을 개시하기 전이나 혹은 군사 행동을 개시한 후 백성들을 소집하면서 사무엘과 사울 간에 약속된 또다른 기간으로 봄이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무엘은 그대 일주일 후 길갈로 내려갈 것을 사울에게 약속했음에 틀림없다. 한편 여기서 '정한'이라는 말은 히브리 본문에는 없고, 다만 칠십인역(LXX)과 갈대아역(The Chaldee)의 영항을 받은 번역자의 삽입일 뿐이다. 아무튼 여기서의 핵심은 이러한 연대순의 문제가 아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아니했다는 것과, 따라서 사무엘의 제사장적 권위가 무시되어 결국 사울이 하나님께 망령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혹자는 여기서 사울이 사무엘과 약속한 이레(7일)는 기다렸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 잘못은 없고 다만 사무엘의 제사장적 기능을 침범한 잘못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무엘이 약속된 이레의 마지막 날이 완전히 지나도록 길갈에 오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울이 사무엘과의 약속을 어긴 채 자신의 손으로 제사를 드린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할때 사무엘이 오지 않았음을 가리킨다(10절).

'백성이...흩어지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 전투(7:7-11)에서 사무엘의 집전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블레셋 족속들에게 나타나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7:10, 11>. 이러한 그들에게, 사무엘이 약속한 날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블레셋(5절)으로 인한 두려움을 가증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됐음이 분명하다.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울이...번제를 드렸더니' 
이것은 사울이 자신이 직접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 이 제사는 엘리의 증손자 아히멜렉에 의해서 시행되었을 것이다(21:1, 22:9,16). 따라서 사울이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다만 그때의 제사 성격상 반드시 사무엘에 의해 드려져야만 했었을 제사를(7:9) 사무엘 외에 다른 사람이 대충 드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여호와의 선지자의 권위를 경솔히 취급했다는 뜻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망령된 일(13절)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번제'(올라)와 '화목제'(쉘라밈) 앞에 각각 정관사 '하'(the)가 붙어있는데, 이것은 사무엘이 드리도록 되어 있는 '그' 제사를 가리킨다.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마치저...온지라' 
이 말은 그때 사울의 제사드린 행동이 지극히 성급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즉 이 말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때가 사무엘이 오기로 약정된 그 날이 저물기 훨씬 전이었음을 강력히 사시한다. 그러므로 그때 사울은 사무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날이 저물 때까지 온전히 사무엘을 기다렸어야만 옳았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본문은 사무엘의 도착 전에 제사를 드렸던 사울이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라는 사무엘의 질책 섞인 질문에 국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부분이다. 그 변명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1) 이스라엘 군사들의 흩어짐, (2) 사무엘의 도착 지연, (3) 블레셋 군대의 공격 가능성 등이다. 결국 사울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득이 자신이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울의 변명은 결국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것과 사무엘과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하지 못한 불순종의 결과에 다름아니었다. 진정 사울은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누구 보다도 큰 전쟁에 임하기 전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려야만 했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해야만 옳았다. 그러나 사울은 그러한 순종과 믿음의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부적격자라는 사실을 입증시키고 말았다.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이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뵙지 못하였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의역한 것이다(출32:11, 렘26:19). 결국 사울은 그때 자신의 주도 하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려 하였던 것이다. 
사실 희생 제사는 성전(聖戰)에 앞서 항상 드려졌으며(7:9), 이 같이 한 증용한 이유중의 하나는 그 성전의 신적 합법성을 하나님께로부터 승인받기 위함이었다(7:9, 14:8-10,37,  23:2,9-12,  28:6,  30:7,8,  삿20:23,27,  삼하5:19,23).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왕이...여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명령'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어떤 율법 규저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왕 사울 자신이 지켜야 했던 직무의 한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때 사울은 성전(聖戰)의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절대적 지도를 받아야 했다. 이것이 성전(Holy Wor)의 원리였다. 그러나 사울은 급박한 상황을 이유로 들어(11, 12절) 이같은 원리를 지키지 않았고, 바로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무시한 사울의 망령된 범죄 행위였던 것이다.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이것은 사울 왕조가 조건적이었던 사실을보여 주고 있다(12:25). 즉 사울은 여호와를 향한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권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계속 이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기의 이 말은 사울의 왕권이 그의 생전에 취소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사울의 왕권이 그의 당대에서 끝날 것이라는 뜻이다(13절). 한편 사울의 왕권이 그가 죽기 전에 취소될 것이라는 선언은 그의 결정적인 두번째 실수(15:9,15) 뒤에 나타난다(15:17-23). 

혹자는 여기서 사울의 첫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벌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생생한 경고(8:10-18)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깨닫고 실천해야만 했다. 즉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열방과 같은 왕(8:5,20)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오직 하나님의 요구대로 그 뜻을 구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과의 대전투라는 중요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열방과 같은 왕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성결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울의 거역 행위를 엄히 문책하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결코 불변적이고 결정정인 것이 아니었다. 즉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라도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회개했더라면, 그는 자신의 왕권을 훨씬 오래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왕하20:1,6). 그러나 징벌을 받은 후 사울은 더욱 강퍅케 되어, 결국 스스로 자신의 왕권을 단축시키고 만 셈이 되었던 것이다(15:26). 그러기에 미리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마음에 맞는 한 인물을 준비하셨는데, 이같은 모든 신적 섭리의 배후에는 다만 역사를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예지(豫知)와 예정(豫定), 그리고 전지성(全知性)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그 마음에 맞는 사람' 
이것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열방과 같은 왕'(8:5)과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왕권이 신적(神的) 기원을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의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다윗을 가리킨다(16:12,13' 행13:22).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으니라' 
여기의 '지도자'(나기드)는 '족장', '두령'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 왕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를 대신하는 다윗에게도 이 단어가 역시 적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삼으셨느니라'(*, 차와)는 '임명하다','명령하다', '위탁하다'란 의미이다(Davidson).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가 과거 완료형의 의미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의중에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다윗은 사울이 죽을 때 23세였으므로, 그는 이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혹은 갓 태어난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사무엘이...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로서(10:26), '사울의 기브아'(11:4)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였다. 사무엘은 그때 (1) 백성들을 격려하고, (2) 블레셋과의 전투에 대한 조언을 하며, (3) 자신의 신변에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특히 위의 세번째 목적은, 블레셋의 군대 중 벧호론 길로 향한 한 대(隊)가 그 지경에 있는 사무엘의 고향 라마를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하여 확인될 수 있다(18절).

'함께 한 백성...육백 명' 
여기의 '육백 명'은 원래 사울과 함께 했던 '이천 명'(2절)에 비하여 훨씬 적은 숫자이다. 이것은 결국 인본주의적 생각에 근거한 사울의 성급한 제사가 전혀 실효를 나타내지 못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8,9절).

16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난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사울...요나단...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여기서 '베냐민 게바'는 원래 블레셋의 수비대가 주둔하던 곳이었으나, 요나단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3절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언급된 것을 볼 때, 사울은 자신의 부대를 '길갈'(Gilgal)로부터 이동시켜 '게바'(Geba)에 주둔하고 있던 요나단의 부대와 합쳤음이 분명하다<2절>. 한편, 이곳 게바는 블레셋의 진(陳)이 있는 믹마스와는 그곳으로 통해 있는 협곡(峽谷) 길로 약 2km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바로 이같은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사울과 요나단의 소부대는 블레셋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17 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노략군들(마쉐히트)' 이 단어는 '망쳐놓다', '파괴하다'란 뜻을 갖는 동사(솨하트)에서 왔으며, 원래 상대 국가의 농작물. 과수(果樹)등을 파헤쳐 버리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선봉대를 가리킨다(신20:19,  삿6:4). 그러나 여기서는 상대의 진(陳)을 돌파. 파괴하여 상대의 사기를 꺽는 역할을 담당하는 막강한 기병(騎兵) 편대로 이해함이 타당한 듯하다.

'오브라 길로 말미땅에' 
'오브라'(Ophrah)는 벧엘 북동쪽 약 7km 지점에 위치했으며, 그 지명의 의미는 '엶은 황갈색'이란 뜻이다(수18:23). 그리고 그곳은 원추 모양의 산지로 형성되었다. 한편 '수알 땅'의 '수알'(Shual)은 '여우'라는 뜻이며, 그 땅은 오브리 약간 못미쳐에 있는 넒은 지경을 가리키는 듯하다(Aharoni). 그런데 보통 그곳은 사울이 부친의 암나귀를 찾기 위해 헤매던 지역 중의 하나인 '사알림'과 동일 지역으로 여겨진다(9:4). 결국 그때 블레셋의 제 1부대는 자신들의 진영이 있는 믹마스에서 북쪽으로 향해 진격했음이 분명하다.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벧호론'(Bethhoron)은 '동굴의 집'이란 뜻이다(수10:10 주석 참조). 이곳은 믹마스 서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했으며, 성경의 다른 곳에 나타나는 '윗 벧호론'과 동일 지역이다(수16:5). 그리고 이곳은 해발 약 600m의 고지이다(수10:11). 한편 이때 이 길로 향한 블레셋의 제 2부대에 의하여 사무엘의 고향 '라마'는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대는 광야를 향한' 
블레셋의 제3부대는 믹마스에서 남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이들이 향한 여기는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유대 광야의 북부인 듯하다.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때에...철공이 없어졌으니'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애굽에 거주할 때부터 쇠를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신4:20). 또한 이스라엘 땅에는 많은 철광석이 묻혀 있었다(신8:9). 따라서 그들에게는 발달된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철기(鐵器)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의 압제하에 있던 기간 동안(13:1).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철독점 정책에 의하여 농기구 이외에는 철 제품을 소유할 수 없었고, 아울러 무기를 만들 만한 철공(鐵工)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철공'은 블레셋인들이 침공했을 때 그들에 의해 납치되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같은 일들은 고대 국가에서 승전국이 패전국에 대하여 취하는 일련의 정략적 조치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흔했었다(왕하24:14-16)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본문은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신들에게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연장을 벼리려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는 것도 그들과 평화할 때나 가능하였지, 전시에는 그나마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23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블레셋 사람의 부대' 이 부대는 이미 세 방향으로 진격해 간 병력들이 아니라 본대(本隊)의 병력이었다. 이처럼 블레셋은 이스라엘 전역으로 병력을 3대로 나누어 보내고도(17.18절) 나머지 병력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술 자신을 가질 만큼, 다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숫적으로나, 무기면으로나, 조직면으로 얕보고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방심이 요나단에게 허를 찔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14:6-15).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어귀(마이바르)는 특정한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을 뜻한다. 
블레셋 군대는 그같이 함으로써 사울의 군대와 접전할 경우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선점(先占)하려고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