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큰 자 논쟁

LNCK 2023. 6. 25. 20:26

큰 자 논쟁 [마가복음26] -- YouTube
◈큰 자 논쟁            막9:32~40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막9:33~36

◑'영적 감화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움직이고 따른다

영의 세계에서 큰 자가 있어요.
뭔가 움직이게 하는 힘과 권위, 지위.. 그것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큰 자'는 사람의 영을 움직입니다. 영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사람의 영과 마음에 움직이는 힘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힘의 기초는, 물리적인, 세상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권위입니다.

그 영적인 권위안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냐면,
사랑과 존경과 경외함, 감동 ... 그런 것을 통해서 사람이 움직여지죠.
그가 큰 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따라서 해야지'하는 감동을 느끼는 거에요.
이게 뭐죠?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죠. (이 권위가 있는 사람이 큰 자)

그리고 그 권위가 보통 어떤 것을 통해서 오냐면
존경심, 경외함, 사랑, 이런 우리 영을 움직일 수 있는 파워에 의해서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받게 되죠.

그게 '영적으로 큰 자'의 특징입니다.
 
▲반면에 '육적으로 큰 자'는, 돈의 힘으로, 지위의 힘으로, 육체의 힘으로
사람을 물리적으로 주관하지만

영적으로 큰 자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 권위를 가지죠.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움직이죠.
여러분들이 다 '영적으로 큰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아버지들, 가정에서 영적으로 큰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녀들이 여러분을 볼 떄, 존경함으로 말미암아, 
또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봄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부모의 영적 권위 때문이죠.

그래서 '영적으로 큰 자'가 되지 않으면,
그러면 자꾸 물리적 힘을 쓰게 돼요. 힘으로 억누르게 돼죠.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폭력을 쓴다든지... 찌질이죠.
여러분 사람은 그렇게 지은 받은 게 아니에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큰 자가 되잖아요?
그러면 큰 영향력을 미치게 돼요. 

(영적으로 큰 자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요. 
가정에서 가장들, 특별히 아버지들, 
자녀들이 여러분 마음대로 안 된다... 왜 안 되는지 아십니까? 

물론 걔들도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잘 해도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어떠냐면, 여러분들이 진짜 영적으로 큰 자면 
자녀들은 부모를 존경해요
존경하니까, 부모님 말씀대로 어떻하든지 따라가고 순종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그냥 애들 패고.. 패도 안 되니까 막 윽박지르고 
'나가, 이 놈의 새끼야!' 뭐 이렇게 되는 거죠. 영적으로 큰 자들이 되셔야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큰 자면 
특별한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러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라오게 돼 있어요. 

요즘 참 재밌더라고요. 대기업들에서서 나오는 리더십 책들을 읽다 보면 
과거하고 많이 바뀌었어요. 과거하고 많이 바뀌어서 
리더십이 점점 영적, 성경적 리더십에 가까워져요. 

왜냐하면 사람들도 경험을 통해서 아는 거에요. 
'이렇게 물리력을 써서 할 수 있는 것은, 직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구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한계가 있구나' 이걸 알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나오는 리더십 책을 읽어보면, 점점 영적이 돼가요. 
교회는 점점 새속적이 돼가고... 나중엔 바뀌겠어요.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어가고,
세상은 점점 영적이 되어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죠. 

그래서 여러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영적으로 큰 자가 되시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의 리더십은 훨씬 효율적이 돼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다른 수단을 써야 돼요. 
죄송하지만 돈지랄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움직인단 말이에요. 
영적으로 큰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영적으로 큰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막9:36~37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큰 자'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교보재를 하나 쓰셨는데 
어린아이였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를 하나 데려다가 이렇게 안으시면서 
이 아이를 보여주시면서 '영적으로 큰 자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를 세 가지로 설명을 하십니다. 

▲1. '영적으로 큰 자'의 첫 번째 특징은, 겸손한 자라는 거예요. 

이 아이를 '소자, 작다'라고 그랬는데 
사이즈가 작다는 뜻이 아니고, 겸손하다는 뜻이에요. 

'겸손'은 건 뭐냐 하면,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애들이 조금 머리가 크면 이제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특징은 뭐냐면, 뭐든지 엄마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이거 먹어도 돼? 안 돼?'  또 '저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엄마의 대답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믿습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자기 기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하여간, 
그전까지는 전적으로 엄마한테, 아빠한테 의지합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누가 영적으로 큰 자냐? 
어린아이 같은 자인데, 이 어린아이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거에요. 
모든 것을 하나님의 판단에 의지하는 거예요. 
계속 하나님의 판단을 의뢰하는 거예요.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어린아이처럼 묻는 사람, 
하나님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영의 세계에서는, 여러분 이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 위에 하나님의 권위가 부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천국에서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 한 분이세요. 

내가 아무리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얘기해도 
그건 그냥 뇌피셜이에요. (*뇌+오피셜, 자기 생각을 공식적으로 맞다고 생각함)
그건 그냥 '네 생각'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영이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귀신 들린 사람한테 여러분이 '나가!' 명해도 
전혀 들은 척도 안 할걸요? 
영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지, 우리의 권위가 아니에요.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영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요. 
돈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힘으로 밀어부칠 수도 있고... 
하지만 영은 달라요. 영적인 세계에서 유일한 권위자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뭐라고 얘기한다고 할지라도, 내 의견이 어떻다고 할지라도 
그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뭐라 그러셨느냐? 
이게 유일한 권위라는 거에요. 

그래서 겸손한 자가 큰 자예요. 
그래서 겸손한 자 위에, 하나님의 권위가 부어지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거든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거든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판단하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 위에는, 영적 권위가 부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권위 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것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여러분 굉장히 여러 번 
예수께서 '내 이름으로, 주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하라'고 가르치세요. 

왜냐면, 영의 세계에서 유일한 권위는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영의 세계에서 유일한 권위는 예수 이름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다른 거 가지고 아무리 얘기해봐야, 영은 꿈쩍도 안 해요. 
오직 예수 이름으로, 오직 예수 명령으로, 오직 예수 권위로 말하고 행할 때,
여기에만 순종하는 거에요. 영들은 여기에만 움직이는 거에요. 

그래서 누가 권위 있는 사람이냐 하면, 
누구 위에 하늘의 권위가 부어지냐 하면, 
예수 이름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겸손한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예수께 묻는 사람입니다. 

성경 찾아 봅시다. 
막16:17 '믿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르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에요.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돈이 아무리 많은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라도 
귀신 쫓아낼 수 있어요? 
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고 힘이 아니라는 거죠. 

영을 움직이는 것은 뭐예요? 내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권위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야마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인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귀신을 내쫓고 싶다고? 
귀신은 영이잖아요. 그러면 영적권이가 있어야 돼요.

힘이 많아, 돈이 많아, 능력 많아? 아무 소용없어요. 
그거 가지고는 영이 움직이지 않아요. 

영을 움직이려면 영적 권위가 있어야 되고, 영의 힘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내 이름을 의지하는 것'밖에 없어!..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약속대로 여러분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그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행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랬더니 걷잖아요. 

이게 여러분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영을 움직이는 자! 그 비결이 뭡니까? 

첫 번째 비결은 겸손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거예요.
'나는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아바아버지를 의지합니다.' 
이 사람이 여러분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영을 움직이는 권위가 부어질 거예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예요. 
유대인들에게 '이름'이라고 하는 건 '권위'거든요. 동격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의 권위를 의지해서 기도한다는 거에요. 
예수의 권위를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거에요. 

여러분은 누구의 권위를 의지해서 매일매일 살아가십니까? 
누구의 힘을 의지하십니까? 
세상의 힘? 내 건강? 내 직장? 내 지위?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제자들과 다를 바 없이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길을 가려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으로 큰 자가 되는 길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연약한 자처럼 보이는 거에요. 
'아니 쟤는 뭐야?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몰라요. 
'아이고 얼마나 연약하면 종교를 의지하냐?' 이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영적으로 진짜 큰 자는, 무능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요. 
예수의 권위를 신뢰하는 사람이죠. 이 비밀을 아는 거예요. 

'아, 영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 밖에 없구나!' 
'영을 움직이는 것은 예수의 이름밖에 없구나!' 

△이 영을 움직이는 예수 이름의 권위가 얼마나 크고 대단했는지 보십시오. 
38~39절에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대요.'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38~39

예수를 의지하는 자, 어린아이처럼 의지하는 자는 
심지어 그게 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권위가 부어졌다는 거예요.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뭐에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적대감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죠. 그러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했겠죠. 
(예수님을)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했을 때 영이 움직였다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하늘의 원리입니다. 
다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내가 충분히 이해했던/ 이해하지 못했던 관계없어요. 

영을 움직이는 것은 예수의 이름밖에 없어요. 
영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 밖에 없어요. 
예수를 의지하는 큰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어린아이가 나타내는 두 번째 특징은 순수하다는 거예요. 
요즘은 아이들이 하도 영악해져 가지고 순수한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이들은, 세상의 권력이나 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개념이 아직 없는 거죠. 
조금 크면 애들이 되바라져서 돈 맛도 아는데 
아주 어려서는 두 살, 세 살 때는 보세요. 
정말 개념이 없어요. 5만 원짜리하고 천 원짜리 주면, 천 원짜리 집잖아요. 
이런 때는 정말 순수합니다.

이게 영적으로 큰 자의 두 번째 특징이에요. 
세상의 권력, 세상의 돈, 세상의 힘에 대해서는 좇아가지 않는다는 거죠.
이걸 끊어내는 것이, 영적으로 큰 자가 되는 굉장히 중요한 길인 줄 믿습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는 어른이라서
그 개념들이 이미 다 들어왔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예수께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그러신 거예요. 
우리 안에는 계속 '세상에 큰 자'가 될 만한 유혹들이 보이거든요. 
돈이라든지, 지위라든지.. 이런 게 보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거기에 대한 유혹들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하게 뿌리고..' 계속 가르치신 거예요. 
그거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영적으로 큰 자가 되는 길은,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싶은 마음들을 끊어내는 겁니다. 

이 싸움들을 계속 싸우셔야 돼요.  
두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어요. 
세상에서도 큰 자가 되고 싶고, 영적으로도 큰 자가 되고 싶고.. 이건 불가능해요. 

세상에서 큰 자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큰 자일 수도 있느냐? 
이건 가능해요. 
요셉도 있고, 다니엘도 있잖아요. 

그런데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싶고, 영적으로도 큰 자가 되고 싶고... 
이건 불가능해요. 둘 중에 하나만 되고 싶어야 해요. 
(되고 싶어하는 야망이 문제)

요셉은, 다니엘은 두 개 다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싶은.. 그 마음 하나만 있었던 거죠.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싶어하면,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거는.. 하나님이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 수도 있는 거죠.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십니까?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걸 추구하십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영적으로 큰 자는 되지 못할 거예요. 

영적으로 큰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잘하면 두 개 다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위에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받을 수 없죠. 

그런데 진짜 영적으로 큰 자가 된 사람은
세상에서 굳이 큰 자가 되려고 하지 않아요. 그 가치를 알거든요. 

굳이 세상에서 큰 자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데.. 뭐하러 세상에서 큰 자가 되려고 그러겠어요? 

정말 여러분, 한 가지만 추구하세요. 괜히 양다리 걸치지 마세요. 
그냥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 한 가지만 추구하세요. 
'오직 그의 나라와 의의를 먼저 구하세요. 
오직 하나님 나라를 먼저 붙잡으세요. 
세상에 뭐 돈의 힘, 이거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그건 그냥 필요하면 하나님 따라오게 하시는 거에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랬잖아요. 
두 번째는 순수한 겁니다. 

▲3. 세 번째 예수께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 그러세요. '섬기는 자'를 뜻합니다.

41~ 42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천국에서 큰 자의 세 번째 특징은 '섬기는 자'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섬기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을 존중하고,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천국에서 큰 자예요. 

천국에서 큰 자는 뭐냐면, 사람을 영혼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게 천국에서 크게 대접받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 큰 자는, 사람을 하찮게 여깁니다. 
사람을 그냥 도구로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에 큰 제국을 이루었던 왕, 큰 자가 됐던 이집트의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것 같으세요? 
아니겠죠. 그냥 그 사람들은 그냥 숫자에 불과해요.
'내가 10만 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구나'하는 그 숫자!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거에요. 사람을 영혼으로 대하는 거에요. 
소중히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거예요. 
그걸 뭐라고 그러냐면 '사랑'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섬깁니다. 왜요? 소중하니까. 
엄마는 아이가 귀찮다고, 또는 별로 나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또는 얄밉다고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요? 
포기하기에는 너무 소중하니까요. 이게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한 존재를.. '그 사람이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내가 이 사람한테 잘해주면, 내게 어떤 콩고물이 떨어지지?' 
이거 말고,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그 사람 자체가 너무 귀해서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거를 사랑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거 보세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아요. 
엄마가 애 하나 키우려면 얼마나 귀찮은데요.. 얼마나 얄미운데요.. 
알 건 다 알아가지고서 얄밉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아요. 

때 되면 밥 주고, 우유 먹이고,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이 녀석이 나중에 커서 날 먹여살리겠지'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 아이 자체가 너무 포기하기엔 너무 중요한 거에요. 너무 소중한 거에요. 
이걸 여러분, 사랑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성숙한 사람은, 자기 자녀만 아니라, 자기 양떼를 그렇게 사랑하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전 우주에서 가장 큰,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존재가 계신데 
그 존재는 사랑이시라... 때문에 하나님은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저와 여러분을 섬기는 걸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까놓고 얘기해 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한테 남는 게 뭐에요? 귀찮은 것밖에 남는 게 없어요. 

Only by the grace 놀라우신 주의 은혜, 그거밖에 없잖아요. 
그게 사랑이라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전 우주에서 가장 큰 자의 본질이고 핵심이에요. 
그렇다면 누가 큰 자겠어요.? 
이 큰 자를 닮은 사람이 큰 자 아니에요? 
이 큰 자 God 를 더 많이 닮은 사람이 더 큰 자겠지요. 명백하지 않습니까? 

영적인 세계에서 누가 큰 자인가요? 
가장 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누가 많이 닮았는가? 
이게 큰 자냐, 아니냐를 가르는 명백한 기준 아니겠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거예요. '누가 큰 자냐고?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야, 섬기는 사람이야!'

굶주리고, 헐벗고, 보잘것없고, 옥에 갇히고, 목마르고, 주리는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영혼으로 대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 
그 사람이 '큰 자'라는 거에요. 

'그(세례요한)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눅1:15

이게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에요. 
저 사람에게 잘해주면 돈도 좀 생길 것 같고, 
나중에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요 여러분, 이것은 내가 큰 자가 되고 싶은 욕심(야망)이지 
그 사람을 영혼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게 아니에요.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작은 사람'이에요. 

다른 영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는 큰 자일지 모르지만, 영으로는 아주 작은 자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영혼으로 대하십니까? 아니면 육으로 대하십니까? 

매일 만나는 이웃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영혼으로 대하십니까? 육으로 대하십니까? 

직장에서 만나는 여러분의 직원들은 어떻게 대하십니까? 
영혼으로 대하십니까? 육으로 대하십니까?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내가 섬겨도 보답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세상적으로는 별로 그거 해가지고 남을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을 섬김에서 나타납니다. 

마25장에 보면, 예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뭐냐면 
섬겨봐야 나올 게 없어요. 되돌아 올게 없어요.

병걸리고, 옥에 갇힌 사람 섬겨봐야 나올 게 없어요.
이런 사람들을 섬길 때, 우리 안에 진정성이 증명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영혼으로 대하고 있다는 진정성.
돈이나 기회나 보답으로 보지 않고... 

△저희 교회가 오랫동안 시리아 난민을 섬기면서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요즘은 난민이 또 하도 막 이슈가 되니까 
'수원하나교회가 난민 사역 잘한대!' 이런 소문이라도 좀 나고 있죠. 

그렇지만 초창기 때, 거의 7~10년 동안은 
아무리 난민을 섬겨도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이게 여러분 때때로 쉽지 않더라고요. 맨날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맨날 그랬으면 제가 이상한 놈이죠.

근데 가끔가다가 때때로, 이렇게 슬쩍슬쩍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 C, 이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차라리 한국에서 독거노인이라도 섬기면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라도 있지! 

아 저 교회는 그래도 참 좋은 일을 하네요. 
뭐 이런 얘기라도 좀 듣지!' 

아 중동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뭐 아무리 쏟아부어도 
주위에서야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당시에는 1도 없었어요. 

차라리 독거노인이라도 섬기면, 동회나 구청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한다고 우리한테 그럴 텐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아니면 차라리 그 돈 모아가지고 교회나 크게 짓거나 그랬으면 
'야~ 교회가 크다' 이거라도 봐줬을 텐데... 

또 어떨 땐 목회자들 모이는 모임에 가봐도요. 
A 목사님은 이런 일 하시고, B 교회는 저런 일 하고... 훌륭한 일 하시네요. 
다들 존경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1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중동에 가봤어야 알죠. 
아무도 가보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중동에서 뭐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해요. 
우리는 그냥 조용히 묻혀 있었어요. 
티도 안 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면 제 안에서, 매일은 아닙니다, 가끔 어떤 게 올라오냐면 
막 외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우리도 한다고..' 
'중동에 가서 좀 봐 보세요. 우리도 좋은 일 많이 한다고...' 
막 이런 이렇게 올라와요. 

매일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어요. 
영적으로 좋을 땐 괜찮은데, 조금 영적으로 컨디션 떨어질 때는
이 마음 속 외침이 '육의 외침'이죠. '육의 외침'이 막 올라와요. 
참 쉬운 싸움이 아닙니다. 진정성의 싸움이에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사람을 영혼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존경 받으려는 것인가? 
이 '진정성'에 대해서 하나님이 물으시는 거예요. 

내가 정말 영혼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내 이름을 내려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여러분 이게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참 구분하기 어려워요.
근데 참 하나님께 감사한 게, 저희는 그런 거 아예 이용할 수 없도록, 
아무도 못 보는 저기 멀리 중동에다 쏟아 붓게 하셨어요. 

근데 요즘은 또 난민, 난민 하면서 언론에 자주 보도되니까
저희 교회가 뭐 조금씩 알려져서 조금 위험해지긴 했는데 

하여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성을 보기 원하세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이용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 영혼 자체로 소중한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이거든요. 

그 영혼 자체로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거고, 
그 영혼 자체로 세상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이걸 볼(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큰 자예요. 

여러분들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영혼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보십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돌려줄 어떤 보답으로 인해서 소중하게 여기십니까? 
이 진정성의 싸움, 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영적으로 큰 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