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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LNCK 2023. 6. 28. 15:37

결혼에 대하여 [마가복음27] -  - YouTube

◈결혼에 대하여               막10:1~12

본문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또 특별히 남자와 여자의 대해서 
또 부부의 하나됨에 대해서 
또 성에 대해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 또는 가정에 대한 이슈는 항상 뜨겁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를 이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전법이야 성전 갈 때나 중요한 법이죠.
또 레위인처럼 항상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성전법'은 매일 대해야 되는 법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가정은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가 매일 머물러야 되는 공간이고, 매일 마주 해야 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가장 기초를 이루는 터전입니다. 
가끔씩 들리는 곳이 아니지요. 

가정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가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다음 세대들이 길러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인격과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곳이 어디입니까? 당연히 가정입니다. 

▲제가 개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 반려견 키우는 가정들이 많아가지고 
TV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는 훌륭하다' 이런 프로가 있죠.
저는 이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그거를 봐요. 그럼 상당히 해소가 돼요.

문제 견들이 등장하고, 훈련 전문가가 나와서
개의 문제를 고쳐주는 그런 프로입니다.

근데 그 프로를 보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겁니다. 
나쁜 주인만 있는 거예요.

개가 나쁜 행동을 하는 이유는, 
100% 개의 엄마, 아빠로 부터 옵니다. 
즉 주인들이 개가 어릴 때, 잘못된 가치를 심어준 거예요.

개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든지...
한 마디로, 주인이 개 교육을 잘못 시킨 결과라는 거죠.
교육만 잘 시키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사람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아이들도, 부모가 교육을 잘 시키면, 훨씬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방임하면, 문제아가 되는 거죠.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은, 100% 가정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엄마 아빠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는가? 
이것에 의해서 아이들이, 장래에 어떤 어른이 될 건가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가정만큼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보세요. 
타락하고 나서 가정을 만드신 게 아니에요. 
창조 직후에 (타락 전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셨어요.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 속에 있었고, 
어쩌면 하나님의 창조 계획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일 거예요.

그래서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창조세계의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득하게 되길 원하셨어요.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득하게 땅을 채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백성들이 가정에서 키워지도록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가정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입니다.

▲오늘날 그래서 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여러가지 가장 근본적 위기를
근원을 찾아 들어가 보면, 결국 가정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그런 미숙한 세대들이 가정을 이루고
결국 그들이 교회의 근간을 이룰 때... 교회의 위기까지 발생하는 거죠.

그냥 자기 밖에 모르고, 신앙과 영성도 너무 미숙하고...
그래서 가정과 교회도 취약해지고, 
나아가 사회 구조가 취약해지는... 그런 큰 문제와 도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 TV방송에, 문제견 한 마리만 있어도 가정이 그냥 개판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아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정과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요?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 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이것을 위협하는 큰 도전 중에 하나가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아이들로 성숙되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교회가 맞고 있는 큰 위기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어디를 공격할까요?
태초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가정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사탄은
이제 젠더이슈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혼, 성, 가정, 이런 거에 대한 이슈라는 거예요. 

가정을 해체하고, 성을 망가뜨리고, 결혼을 무너뜨리는 이것이 
사단의 공격인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이미 예수님 당시부터 이혼이라고 하는 가정해체 대한..
사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적이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은 
'너희가 워낙 완악하기 때문에 (임시로) 허락하신' 거라는 거예요. 

그렇잖아 여러분, 이혼할 정도로 아주 사이가 극도로 나빠지면 
잘못하면 힘세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를 죽입니다. 
이런 일도 뭐 심심치 않게 벌어지잖아요. 

그래서 생명을 구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그냥 차선책으로 이혼을 허락하지 것이지, 
원래 근본적으로는 이혼을 한 번도 허락하신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게 성경적인 가치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에도 과연 크리스찬이 이혼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하는 
이슈는 참 다루기 어려운 이슈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통해서 모아진 지혜는 뭐냐면 
'생명의 위험이 있을 때는 이혼을 허락한다'는 거예요.
생명에 위험이 있을 때!

가정폭력이 너무 심해서 이대로 뒀다가는 아내가 죽을 거 같은 경으,
그런 경우는 이혼을 허락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성경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건 이외에, 뭐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닌데 
조금 기분 나쁘다고... 성격이 잘 안 맞는다고... 
그래서 이혼을 허락하신 적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본문에 바리새인들이 와서, 이혼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사단이 가정을 해체하려고 하는 공격들은 계속 있었죠.

◑오늘날 젠더 이슈에 대한 Q & A

그래서 오늘은 현대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젠더 이슈, 동성애 이슈 등 
여러 젠더이슈 들이 있는데 
이런 젠더 이슈, 성에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흔히 우리가 접하게 되는 몇 가지 질문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정과 성, 젠더에 대해서 뭐라고 가르쳤는가요?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저희 안에 올바른 가정과, 올바른 성에 대한 이해들이 
정립되어 되기를 기대합니다. 

▲1. 첫 번째 질문 입니다.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기독교는 여성에 대해 차별적"이라는 생각들을 가진 세상 사람들이 많아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기독교는 약간 남성중심적이다...
하여간 여성들에 대해서 조금 차별적이다.. 하는 그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정말로 여성의 대해서 차별적으로 얘기하고 있을까요?

본문에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찾아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막10: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혼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실은 이혼 보다 훨씬 저급한 질문이지요.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이 질문속에 이미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그 당시 유대사회 모습이 녹아있죠.
이 질문을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봤다면, 난리 났을 겁니다. 
'여자가 무슨 패트병이냐, 버리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인데, 근데 여러분 이 질문은 성경에 나와 있다고 그래서 
성경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던졌던 잘못된 질문이고, 
예수께서 질문에 대해서 올바른 대답을 하는 것이지요. 

하여간 당시 사회가 그런 사회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습니다. 
여자를 마치 물건 취급해서, 쓸모 없으면 버리고, 있으면 취하고 뭐 그러는 거지요. 

예수님께서는 전혀 그 말에 동의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어디에도 
여자를 남자와 다르게 하대하신 구절이 없어요. 잘 살펴보세요. 

구약에는 그런 오해를 살 만한 구절들이 있어요. 
그런데 구약은, 계시(성경)의  완성이 아니에요.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계시의 점진성' 이라 그래요. 

그래서 구약에 있는 표현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 당시에 문화나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 돼요. 

그래서 성경이 진짜 주장하고 있는 진짜 가치는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신약에서 뭐라고 말씀했는가?'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 쭉 살펴보시면 
여성의 대해서 편파적으로 하대한 구절이 한 구절도 없어요.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동등하게 대하셨어요.

본문의 질문에 대해서도, 뒤에 가서 제자들이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막10:11~12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남편에 대해서만 간음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아내에 대해서 똑같이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당시 유대문화에서는, 이게 그렇게 쉬운 표현이 아니었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은 물건 취급하던 그런 사회 속에서 
'남성이 간음을 행한다'  이거는 굉장히 말하기 어려운 컨셉이었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일부다처로 아내를 여러 명 얻어도, 큰 문제가 안 되던 사회였죠.
근데 그런 사회 속에서, 예수님은 남녀에게 똑같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자가 그렇게 하면 간음인 것처럼, 남자도 그러면 똑같이 간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남녀차별을 하신 적이 없어요. 똑같이 동등하게 말씀하셨어요. 

△또 뒤에 가면 막12장 에서 사두개인들이 와서 묻습니다. 
7형제가 있는데, 차례로 죽어서 7형제가 한 아내를 취했어요.
유대 문화가 수혼제 가 있었죠.
그 당시에는 전쟁이 있어가지고 남자들이 자꾸 죽으니까 남녀 성비가 안 맞았어요. 
그래서 남편이 죽고 나면,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 동생이 형수를 취했던 거죠.
그래서 가문이 계속 이어지게 한 거죠.

'그래서 7 형제가 차례로 아내를 취하고 죽었으면 
나중에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누가 그 아내를 취하겠습니까? '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막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무슨 얘기예요? 하나님 나라에는 남자와 여자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거에요.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갈 동안에, 하나님이 주셨던 남자와 여자의 어떤 구분이
있을 뿐이지, 하늘나라에서는 똑같이 다 존귀한 존재라는 거에요.

자 예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대해서 가지고 계셨던 가치는
정확히 공평하셨어요.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많이 비난했습니다. 

창기들 하고 같이 다닌다 그러고 
특별히 여자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체로 영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여성들에 대해서 차별적으로 대하신 적이 없어요. 
똑같이 대우하셨어요. 
오히려 어떨 때 보면, 여성들을 더 우대하셨던 경우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성문제에 있어서 
기독교를 보수적이라고 비난하는데 
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이슈가
성차별의 이슈가 아니라, 성역할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거에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성차별과 성역할은 다른 거예요. 
그러면 기독교가, 남성과 여성에 대해서 다른 역할을 분담했습니까?
예, 그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은 역할을 부여하지 않으셨어요. 

고린도전서에서 보면 은사가 있지요.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모두가 사도겠느냐, 모두가 선지자겠느냐?' 
이렇게 다양한 은사들을 두셔서, 서로 하나되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도록 하셨듯이 

가정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똑같은 일을 하라 그러지 않으셨어요. 다른 롤(역할)을 주셨어요. 

그건 성차별이 아니라, 성역할을 다르게 분담에 주신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성 역할에 대해서 만족 못 하는 거에요. 

특별히 페미니즘 같은 경우에는 
자매들이 그 성 역할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거예요. 

성역할이란, 결국 기본적으로는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출산과 양육에 
더 비중을 두는 역할인데 
이거를 왜 성차별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냐면, 결국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차별이란 얘기가 나왔지, 사실은 여러분 
출산과 양육을 돈 번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성차별을 제기하진 않을 거에요.

결국 이것은 뭐냐면, 성차별 이슈가 아니라 
성역할에 동의하지 못 하겠다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가치(성 역할)에 동의하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 타락한 인간이 정확히 이렇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가치를 딱 이렇게 정해 주셨는데 
어느 게 가치있는 건지를 분별을 못 해요. 

그래서 출산과 양육의 이라는 정말 영광되고 중요한 역할을 
자매들에게 맡기셨는데...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성차별이란 이상한 이슈가 나오게 된 거에요. 

이게 사실은 성차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성 역할에 대해서 동의를 못 하는 거에요. 

출산과 양육이, (돈 버는 게 아니라서) 굉장히 가치 없는 일이라 여기는데,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을 낳고 생명을 키우는 것이, 과연 어떤 가치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 보다 더 크고 영광된 일이 존재합니까? 

여성들이 삼성이나 LG에 취직해서 핸드폰 계발하는 거, 
그거하고 출산과 육아를 비교해 보세요. 
어느 게 더 중요한 일입니까?

출산과 양육, 생명을 낳아서 키우는 일을 
별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사실은 그 기저에 보면 결국 황금만능주의가 있어요. 돈이 최고라는 거죠. 
그래서 돈 많이 주는 것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이슈는 성 평등의 이슈라기보다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이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 
그리고 다음 세대를, 생명을 하나님 안에서 키워내는 '가정의 가치' 
그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이 이슈 뿐만 아니라,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모든 이 젠더 이슈가
다 기저가 똑같아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질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가치에 동의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는,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젠더 이슈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거예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그래요. 

▲2. 두 번째 질문은, 요즘 굉장히 뜨거운 질문 중에 하난데 
젠더(성, gender) 라고 하는 게,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하는 것인가? 

옛날에는 정말 생각도 못 해 봤던 이슈에요.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은.. 당연히 타고 나는 거지, 태어날 때 결정되는 거지... 
근데 요즘 젠더이슈의 핵심은 뭐냐면 
자기의 성 정체성 (남자냐, 여자냐) 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선택하는 거라는 거예요. 
이게 젠더이슈의 핵심입니다. 

성 정체성은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타고 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또한 그렇게 가르칩니다. 
먼 나라 얘기라고 생각되겠지만, 우리 자녀들이 요즘 그렇게 배우고 있다는 거예요. 

'네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여자로 살 필요는 없어' 
'네가 여자가 될 건지/ 남자가 될 건지/ 아니면 다른 성이 될 건지는 
네가 결정하면 돼!' 그거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고, 바로 여러분 자녀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젠더 gender 를, 생물학적 이슈로 보지 않고 
사회문화적인 이슈로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젠더 이슈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아주 명확하게 젠더 이슈을 말씀하십니다. 

10:6절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성경은 여러분, 이 젠더 이슈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고 클리어하게 가르칩니다.

시작 때부터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거에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거예요. 그걸로 끝! 
그 이상의 여지가 없어요. 

사람의 성별은, 즉 젠더는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젠더는,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여러분을 만드실 때 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 지으셨다는 거예요.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것입니다. 이게 성경의 선포입니다. 

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 젠더 이슈 한가운데는 
창조주를 향한 반역이 있어요. 

아무리 하나님이 나를 남자로 만드셨어도 
'나는 싫어,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나는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내 젠더는 여자로 할 거야!' 

'내 젠더는 내가 정할 거야' 이게 뭐예요? 반역이지요.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반역하는 거지요. 

△근데 오늘날은 여기서 안 발 더 나갔어요. 
이제는 사회적 젠더 라고 해서 58가지 성이 있대요. 
그래서 '그거 중에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고르세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성별 체크할 때 
이 58가지 리스트를 제시해요.

Google 과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인데 
거기서 젠더를 선택할 때, 58가지 리스트를 준다니까요.
자기 소개서에 그걸 체크하라는 거죠.

젠더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요. 여러분, 젠더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겁니다.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젠더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사회문화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선택해도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58가지 성을 만드신 적이 없어요. 

본문에 보면 '남자와 여자' 딱 두 개만 만드셨어요. 
이것이 인류의 기초며, 가정의 시작입니다. 

△아니 무슨 젠더가 58가지나 될까, 궁금해 가지고 제가 찾아봤어요. 
근데 태반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하여간 대충은 알겠어요.
대충 3가지를 얘기합니다.

-생물학적인 성, 전통적인 개념이죠.
-성적 자기 정체성으로서의 성
 내가 뭘로 태어났으냐와 관계없이
 나는 나를 누구라고 여기는가? 
 비록 내가 생물학적으로 남자라도, 나는 나를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성적 지향성
 내가 누구한테 끌리느냐, 
 남잔데 여자한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느냐?
 아니면 남잔데 남자한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느냐?

이 세 가지 이슈를 이제 조합을 하면, 세분화해서 58 가지가 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나는 생각 쪽으로 남자지만, 성적 자기 정체성을 여자야, 
그리고 성적 지향성은 어떤 존재에게 끌리는냐, 이게 좀 복잡합니다. 
단순히 남자에게 끌린다, 단순히 여자에게 끌린다.. 가 아니라 

남자였다가 여자로 성전환을 했는데 
스스로는 남자에게 끌리는 사람에게 끌린다... 이렇게 할 수도 있고요. 

생물학적으로는 여잔데, 성전환해서 남자가 됐는데 
그런데 남자한테 끌리는 사람한테 끌린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수십 가지로 분화되는 거예요.

그거를 다 다른 성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고르라는 거에요. 
네가 좋은 대로 고르라는 거에요. 이런 식이지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드시지 않으셨어요. 
딱 두 가지만 만드셨어요. 남자와 여자! 

그래서 이 사람들의 주장은 뭐냐면 
성적인 관계도, 꼭 남자와 여자가 맺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자기의 성적 자기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에 의해서 
그냥 자기하고 맞는 사람하고 성관계를 가지면 된다는 거에요. 

이 젠더이슈는, 동성애 이슈보다 훨씬 더 확장된 개념입니다. 
그래서 꼭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룰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성적 결합을 해야 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그냥 자기의 성적지향성에 따라서, 성적 자기 정체성에 따라서 
그냥 거기에 맞는 사람과 함께 살면 된다는 거에요. 
거기에 맞는 사람과 그냥 관계를 가지면 된다는 거에요. 자기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장에 의하면, 
가정이 꼭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루어야 되는 이유가 없어져요. 
남자가 남자와 가정을 이룰 수도 있고요. 
여자가 여자와 가정을 이룰 수도 있고요. 

젠더가 선택이라면, 결혼하는 방식도 선택이라는 거죠. 
성관계를 갖는 방식도 선택이라는 거죠.

남자가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던, 여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던 
그것은 선택이지, 뭐 틀리고 옳고의 이슈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이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럼 결국 어디까지 가는지 아십니까? 
개하고 결혼 하는 사람도 나와요. 실제 있는 얘기에요. 

유럽에서는 여러분 개와 혼인신고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상당수는 .수간이나 사탄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
그것도 혼인으로 인정해달라는 거에요. 참 하여간 별개 다 나와요. 
그래서 동성애 이슈라고 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죠. 

확장된 이슈는 결국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아주 심각하게 뿌리서부터 뒤흔드는 거에요. 뿌리서부터 뒤흔드는 거에요. 
하나님의 창조 자체에 대해서 반역하는 거에요. 모든 질서를 다 부인하는 거죠.

남자와 여자 이슈만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람과 짐승의 이슈까지 다 부인하는 거에요. 
'사람이 왜 꼭 사람하고만 결혼해야 돼?' 하는 거죠. 

신명기에 보면 여러분 절대로 동물과 식물의 종들을 서로 섞지 말라 그랬거든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그냥 인정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사람이 개하고 결혼을 하겠다니 이게 도대체...
 
그래서 기독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가 없어요. 

뭐 젠더 이슈들을 이렇게 들여다 보면, 일부 좋은 말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 각각의 표현들이 전부 다 틀렸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 이슈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뿌리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3. 세번째는 '동성애는 타고 나는 것이다' 라고 하는 주장이에요.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거야. 그래서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야!' 
그렇게 인정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마치 동성애는 왼손잡이 같은 거라는 거예요. 
태어나기를 왼손잡이로 태어났는데, 왼손잡이가 무슨 죄냐? 
오른손잡이하고 다른 것일 뿐이지... 이렇게 인정해야 된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된다는 주장이죠.
그래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질병으로 규정하면 안되고 
고치려고 해도 안 된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게 무슨 병도 아닌데 왜 고쳐?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된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자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과연 동성애 라는 것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냐 
아니면 선천적으로 유전되는 것이냐? 이건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거라면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그런데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라면 좀 달라요.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라면 일단 책임 자체가 본인에게 있고 
또한 후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고쳐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은 동성애가 선천적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천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요. 이건 당연히 후천적인 겁니다. 
복잡하게 생각 안 하셔도 너무나 심플한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심플한 것이 왜 논란이 되고 있는가? 
그거는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이건 과학이 아니에요. 이거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아주 심플하게 생각해보세요. 아이는요. 여러분 
이성애자들만 아이를 낳지, 동성애자들은 아이를 못 낳습니다. 그렇잖아요. 
아이를 못 낳으니, 선천적이라 볼 수 없지요.

그러니까 동성애자들의 가장 큰 이슈는 뭐냐면 입양을 합법적으로 허락해 
달라는 거거든요.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그러니까 동성애 가정에서는 항상 입양을 합니다. 

그럼 여러분 유전적으로 유전되는 거라면 
이성애 자들은 아이를 낳고, 동성애자들은 아이를 안 낳아요.

그러면 몇 세대만 지나면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동성애 유전자는 다 없어진다는 거에요. 설령 있었다고 해도.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성애자들이 많아진단 말이에요. 
이거 무슨 뜻이겠어요? 동성애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거죠.  

사이언스 지에 올라온 논문들을 봐도요. 
'실제로 동성애를 특정 지을 만한 유전자는 발견된 게 없다...' 
그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실 '동성애가 유전적이다' 이런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사상이에요. (저주의 유전 generation curse 일 수도 있죠)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여론몰이 이지, 
과학하고는 관계없는 얘기라는 거에요. 

▲4. 네번째로,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소수 인권들은 보호 받아야 되지 않는가?" 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게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분들의 논지죠. 

이유가 어쨌든 간에, 그 사람들도 인권이 보호받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말아야 되지 않는가? 이런 이슈입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교회들 중에는, 이를 지지하는 교회들도 있어요. 
'아니 그래도 약자들을 보호해줘야 되는거 아니냐?' 

어쨌거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사람들이 약자인데 
약자들은 보호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 이런 거죠. 

그래서 어떤 성정체성을 가졌던, 어떤 성지향성을 가졌던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지금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은요. 
그런 내용이 아니에요. 그렇게 순진하게 속으시면 안 돼요. 

'그래도 불쌍한 사람들이니까 보호해야 돼!' 
그렇게 하자면 얼마든지 찬성이죠. 
불쌍한 사람도 그냥 보호하자는 데 뭐하러 반대하겠어요?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거에요.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데, 좀 죄송하지만 
차별받는 게 있어야 차별금지법 이라는 게 성립하죠.
지금 차별 받는 게, 실제로는 거의 없다는 거예요.

물론 사회적인 인식에 의해서 '어휴, 저 사람은 동성애자야' 이렇게 볼 수는 있어요. 
그런데 법적으로 차별받는 게 뭐가 있습니까? 
식당을 못 갑니까? 취직을 못합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차별금지법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 규제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식의 의해서 사람들이 '저 사람은 좀 문제가 있어' 
이렇게 보는 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잖아요. 
법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잖아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이라고 햐면 
이 사람들이 법적으로 차별받는 게 있을 때 
그것을 법적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정하는 것인데 
법적으로 차별받는 게 있어야,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거죠...

취직을 못합니까, 식당을 못 갑니까? 
못하는 거 아무것도 없고, 법적으로 차별받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만약 있다면 자녀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문제가 있을 려나? 
상속하는 문제들도...

근데 기독교에서 그것 때문에 그렇게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입양문제, 상속문제...

기독교에서는 물론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막 결사반대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차별금지법의 진짜 내용은 뭐냐하면 
'사람들의 인식 자체를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거예요. 
'저게 옳다. 틀리다' 라는 도덕적인 신념자체를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동성애가 잘못됐다' 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거에요. 
이게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은 '차별금지법'은 굉장히 허황된 법입니다. 
우리의 확신과 스스로의 도덕적 기준을.. 법을 만들어 가지고 규제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헌법 정신에도 위배됩니다. 

헌법에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했거든요. 
'내가 옳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다는 거에요. 

물론 그 자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면 잘못된 거지만 
그렇지 않고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동의 안 합니다. 나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돼야 되는 거잖아요. 

그것 자체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굉장히 경직된 전체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회 속에서 허용되는 것, 허용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토론과 담론을 통해서 하나로 수렴돼 가는 거에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허용해도 되는 거냐, 안 되는 거냐?' 하는 
도덕적 문화적 기준들은요. 담론을 통해서 토론을 통해서 수렴돼 가는 건데 

법으로 말 자체를 못하게 하려는 거죠.
법으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얘기 자체를 못하게 금해 버려요.

그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잖아요. 
그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가, 
굉장히 경직된 전체주의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건 사회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목회자에게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는데, 그것을 얘기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럼 목사는 어떡하라는 거에요? 
그럼 신명기의 구절은 읽지 말라는 거예요? 그럴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게 교회에서 굉장히 많은 
어려움들과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사례들이 나옵니다. 

뭐 동성애자들이 와서 목사님한테 주례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든지.. 
그러면 목회자도 주례 안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냥 아무나 와서 주례해 달라고 하면, 해줘야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해 주기 싫은 경우도 있잖아요. 또는 해주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주례해 해달라' 그런면 다 해줘야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법들이, 이제 기독교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게, 건전한 의미에서 
'우리 주위에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인권을 잘 돌보자' 
이런 거라면 뭐 때문에 반대를 하겠어요? 반대할 이유가 없죠. 

동성애자들은 식당 출입도 안 되고, 취직도 못하고.. 
만약 그런 차별이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그렇게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별반대 운동에 동의할 거에요. 

예수님께서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잖아요. 보호하시잖아요.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있으면 치라'고 하셨죠.
이게 예수님 말씀이거든요. 

만약에 저는, 진짜로 법적으로 이들이 차별받는 것이 있다면 
차별을 금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뭐 어떻하기는 어떻게 해야 돼요? 당연히 포용하고 사랑하고 감싸줘야죠. 

그것과, '동성애가 틀렸다'고 얘기하는 거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예요. 
당연히 우리는 사랑하고 포용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줘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과 '동성애가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는 권한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나오고 있는 '차별금지법' 에 대해서는 
교회가 크리스천으로서 동의할 수 없는 거에요. 

그것은 꼭 '교회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가지고 이 법을 막겠어!' 
그런 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에요. 가장 소극적인 저항이에요. 
최소한의 저항이에요. 
우리의 신앙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거예요. 최소한의 저항이에요. 

'동성애가 틀렸다'라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에요.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뺏지 말라는 거에요. 그게 여러분, 핵심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속으시면 안 돼요. 
'차별금지법' 같은 경우도, 이 법안이 발의될 때 보면 
이게 하여간 꾀들을 많이 내요. 

그래서 하나만 가지고 발의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법안을 묶어가지고 패키지로 발의를 해요. 
그래서 반대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거 반대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좋은 게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계속 이 난리를 치는 거에요. 

그런 건 분리해서 발의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 좋은 거 10 개에다가, 말도 안 되는 거 한 두 개를 끼워서 
이제 한꺼번에 법안을 상정하는 거죠. 

그래서 읽어보기도 참 힘들어요. 
워낙 말도 복잡하고 여러 가지로 전문 용어로 되어있기 때문에요. 

여러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철저하게 깨여서 
계속 반대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돼요. 
지금 목소리를 안 되면, 나중에는 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는 거예요. 

▲5. 다섯 번째는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페미니즘 이슈가 있습니다.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조금 더 공부를 해보고 난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지금 제가 깊게 연구한 게 아니라서요. 

근데 한가지 확실한 게 있습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남녀차별에 대한 이슈,
즉 페미니즘 이슈는요, 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절반 이상은 남자들의 문제라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하라'
라고 하셨는데, 자매들이 형제들로부터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을 받았으면,
페미니즘이 이슈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뭔가 남편들이 억누르고 억압했기 때문에,
이 페미니즘 이슈가 돌출된 거죠.

저는 페미니즘 이슈가 옳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는 거에요. 
책임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해결책이 나올 거 아니에요. 

책임의 절반은 적어도 남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남자 형제들 잘 들으세요. 

한국이라고 하는 사회는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직도 
유교적 이에요. 훨씬 유교적 이에요. 남존여비! 

남성들은 만약 여자가 되어 보면,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이 많은지 
그제야 깨달을 거예요. 

형제들이 종종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래도 남자를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세웠으니, 
아내는 순종하고 따라와야지, 그게 당연한 거지!' 합니다. 

오케이, 맞습니다.
그러면 형제님은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시나요?'
이거는 네 생명 줘서 죽으란 얘기잖아요. 
그렇게 사랑을 안하니까, 가정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남성 여러분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매들에겐 절대로 당연하지 않습니다. 
남자에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로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다. 

설거지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건 왜 다 자매가 해야 돼요? 

여러분 우리 한국사회는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유교적 이에요. 
특별히 경상도 분들, 경상도를 차별하면 안 되는데, 하여간 조심하세요. 

'우리 가정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성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돼요. 

그래서 남자들이 가정에서 제대로 남성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예를 들어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든지...
그러면 우리 딸들을 페미니즘에 빼앗겨버리게 될 것입니다. 딸들이 투사가 될 거예요...

이 모든 젠더 이슈의 뿌리가 뭘까요? 그건 결국 반역이에요. 선악과입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가 싫다는 거죠. 

창조주 하나님이 뭐라고 정하셨던 간에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질서를 정할 거라는 거죠. 이게 선악과죠! 

성경은 아내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엡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이 말씀 들으면 페미니스트들은 
'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돼? 똑같은 인간인데! 
나는 싫어, 나는 남자들하고 똑같은 권리와 지위를 누릴 거야!' 

뭐에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가 원하는 게 더 위에 있다는 거죠.
죄송하지만 뭐라고 얘기하는지 간에, 결국 반역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왜 꼭 남자가 여자하고 결혼해야 돼? 싫어! 
나는 내가 원하는 성과 결혼할 거야!' 
죄송하지만 여러분, 뭐라고 표현해도 반역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여러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현대의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어요. 

그걸 동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서 반역하는 거기 때문에 그래요. 
반란군에 가담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 중에 옳바른 말들이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뭐 표현 자체가 다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에 가담할 수는 없잖아요. 
젠더 이슈를 명확하게 잘 보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말씀을 정리합시다. 
사실 이런 반역의 생각들이 시작되는 곳은, 결국 가정입니다. 
부부가 온전한 결혼의 연합을 이루지 못할 때 
자녀들의 마음 속에 선악과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보고 자라는 남성과 여성은
엄마와 아빠거든요. 

딸들이.. 아빠들에게서 
온전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의 매력을 보지 못하면 
그러면 남성들에게 안 끌리는 거에요. 

딸들이.. 엄마를 통해서 
온전한 여성의 역할과 여성의 매력을 배우지 못하면 
롤 모델이 없는 거에요. 

아들들도 마찬가지고요. 
온전한 "결혼의 연합"이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으로 선악과가 스며들게 됩니다. 

'남자가 저런 거라면, 난 차라리 여자랑 살래..' 

'남자가 힘 좀 세다고 저렇게 여자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이건 불공평해, 나는 여성의 권리를 찾을래!' 

'남자가 그렇게 비리비리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면,
나는 남자가 싫어, 그냥 혼자 살래!' 

여성의 권리를 찾는 것에 반대하는 것에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여성의 권리가 남자들과 똑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주셨어요. 

성경에서 주신 여성의 권리를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허락하신, 맡기신 고유한 그 역할들을 찾으십시오. 

남자가 여자랑 똑같이 되려고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어요. 

여자가 남자랑 똑같이 되려고 하면.. 결국 반역을 일으키게 돼요. 
성경적인 여성의 권리를 찾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자 오늘 본문7~9절에 보면 
막10:7~9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대로만 한다면, 여러분 아주 심플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대로만 한다면 우리 가정은, 전혀 다른 가정이 될 수 있어요. 

'부모를 떠난다'고 하는 게 무슨 말이냐면 
'자기의 익숙했던 것들을 떠난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결혼할 때 보면, 백이면 백 다 저지르는 실수가 뭐냐면 
자기가 살고 있는 그 환경, 내가 살아온 가치관, 내 삶의 습관에,
그 속으로 배우자를 끌어들이려 그래요. 
나는 하나도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거예요. 

아니,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자기 부모 집을 떠나야 돼요. 
-내가 익숙했던 환경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들 
다 내려놓고 새로 만들어 가는 거거든요. 

자기 부인이 되어져야 합니다.
근데 자기 부인을 안 하고 결혼하려고 그러니까.. 결혼해서 싸우는 거죠. 
싸우다 해결이 안되니까.. 힘으로 해결하고 하다가..  이혼하고 이러는 거잖아요. 

가정을 이루는 기초는 여러분 복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거죠.
내가 편한 것, 내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배우자랑 연합하는 거예요. 아멘!

그랬을 때 뭐가 일어나죠? 하나가 돼요. 한 몸이 돼죠.
즉 깊은 사랑의 연합 속에 한 몸이 되는 거예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잘 되면 내가 잘된 것이고 
네가 기쁘면 내가 기쁜 것이고 
네가 성공하면 내가 성공하는 것이고..' 한 몸이 되는 거에요. 

이렇게 한몸이 되면, 여러분 더 이상 젠더 이슈가 나올 게 없어요. 
제가 저희 아내하고 한 몸을 이루게 되면요, 
나는 남자지만 동시에 여자에요. 왜? 
내 몸 안에는 나도 있고, 아내도 있거든요. 

나는 남자지만 동시에 내 안에는, 한 몸으로서 내 아내가 있기 때문에 
남자의 권리보다 여자의 권리에 더 관심이 많아져요. 

또 남자가 느끼고, 남자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아내를 통해서 
여자가 어떻게 느끼고, 여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도 
같이 공유하게 돼요.

그래서 여러분 나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에요. 
나는 결혼을 통해서 한 몸을 이뤘기 때문에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를 품는... 이렇게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여러분 젠더 이슈가 틈탈 여지가 없어요.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었을 때 
그 안에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한 몸 된 가정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부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게 저런 거구나' 
이걸 부모를 통해서 배우는 거에요. 
그런 놀라운 축복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