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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사람의 눈은 땅 끝만 쳐다본다

LNCK 2023. 7. 7. 19:18


◈미련한 사람의 눈은 땅 끝만 쳐다본다      잠17:24     냉수한그릇창고 글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지만,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둔다’ 잠17:24   

Wisdom is before him that has understanding; 
but the eyes of a fool are in the ends of the earth. KJV 

잠언에서 늘 그러하듯이 
본문에도, 슬기로운(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이 대비되어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대비는 ‘가까이’와 ‘땅 끝’이다. 

▲1. ‘땅 끝’이라고 할 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낭 여행, 해외 여행’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이 가까이에 있는 줄 알지 못하고, 
본문에 ‘어리석은 사람의 눈은 땅 끝에 둔다’고 했다. 
늘 땅 끝만 쳐다보는 것이다. 

거기에 뭔가 신기하고, 색다르고, 내가 바라던 파라다이스가 있을 것 같아서! 

물론 여행에서 얻는 교훈과 재충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훈과 재충전을 위해서 잠시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은 괜찮지만 
본문에 나오듯이 
‘가까이’에 눈(관심)을 두지 않고 
‘땅 끝’에 온통 자기 관심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과거에 이런 경우를 느낀 적이 있다. 
열심히 일하시던 분이, 안식년이라고 6개월 정도 외유하고 오셨는데, 

그 후에 설교를 들어보니까, 
이전에 있었던 예리함, 영력이 확 다 사라져버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관측이긴 하지만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영력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목회자도 이런 저런 일로, 해외 출장이 잦다. 
그런데 한 4~5년 전에, 이런 말이 유행했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목회자의 실력은, 해외 출장 갔다 와서 표가 난다.’ 

어떻게 그런 말이 생겼는지, 
누가 그런 말을 최초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한때 제법 유행했던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뜻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은 해외 출장 갔다 와서, 오히려 영성이 떨어졌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정말 해외출장 갔다 와서, 
오히려 영성이 더 살아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정말 ‘실력 있는’ 목회자이다. 

지방 집회 인도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국내적으로 일종의 ‘땅 끝’이다.) 
명목은 지방 집회 인도차 사명을 감당하러 다니는데, 
집회를 인도하고 오고, 부흥회를 인도하고 오면, 
목회자가 더 뜨거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식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 주일 메시지는 준비가 거의 안 되어서,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지방 집회 인도는, 그 지방 교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이벤트’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벤트성 집회’였던 모양이다. 

행복은 땅 끝이든지, 땅 모퉁이든지.. 어떤 장소에 있는 것은 아니고,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다. 
땅 끝에 가더라도, 주님을 모시고 가야 한다. 

▲2. 땅 끝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다. 
‘어리석은 자는, 땅 끝을 바라본다’고 했는데, 

과거 중동시대를 배경으로 상상을 해 보면, 
무슨 과제가 주어졌는데, 그 과제를 수행하기 싫으니까, 

-저 땅 끝 너머에서 무슨 도적떼라도 먼지를 일으키고 우르르 나타나서 
-아니면 저 땅 끝 너머에서 무슨 먹장구름이라도 막 나타나서 
지금 현재 추진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관두게 되기를.. 
자꾸 바란다는 것이다. 

-도적떼가 아니면, 무슨 이웃마을 친척이나 친구라도, 말을 타고 나타나서, 
자기를 도와 줄 것을 기대하는 심리를 연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자꾸 손을 놓고, 
계속 땅 끝만 쳐다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내일 기말시험을 앞둔 대학생이, 전혀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서, 
‘어떻게 좀 시험지가 불에 탔으면 좋겠다...’ 하면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이다. 

그래서 자꾸 먼 산(땅 끝)을 쳐다보는 것이다. 

▲3.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는다. 
‘가까이’는 다른 말로 ‘현실’이다. 
‘현실적’인 사람이 ‘지혜로운/슬기로운’ 사람이다. 

내 눈을 
땅 끝(먼 곳)에 두지 말고, 
내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오늘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 즉 ‘주님의 뜻’은 
‘내 주변 가까이’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오늘 내가 그토록 원하는 ‘나의 행복’도 
‘내 주변 가까이’에 내 눈을 두어야 한다. 
거기에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이.. 잠언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기 가까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귀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귀중한 일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삶이다. 


◑안이숙 사모님과 해외 집회 (펀 글)

제(글쓴이)가 홍콩에서 살 때, 
86세가 되었던 안이숙 여사께서 특별집회를 하러 오셨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몇몇 분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당연히 미국 먼 길에서 그 연세에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오셨으니까,
파김치가 되어서 내리실 것이라고 모두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비서와 동행을 하셨는데, 젊은 비서는 오히려 피곤한 얼굴이었고,
86세의 하나님의 사람은 조금도 피곤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힘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이
며칠 동안 낮과 밤 두 번에 걸쳐, 하루에 5시간 이상 서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매일 앉아서 듣는 우리가 오히려 힘들어 할 정도였고
그분은 다리나 목이 조금도 아프신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꼭 찬양을 하셨는데
그분의 찬양소리는 20대의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원래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그분은 음악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의 추운 감옥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추위와 영양실조로 머리는 빠지고 목소리까지 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목소리를 주시면 죽을 때 까지 찬양을 하겠다고 약속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기도를 응답하셨고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 다섯 시간을 서 있어도 
그분은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유모러스했고,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85 세가 되어도 힘이 진하지 않은
갈렘의 살아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이숙여사는 하루에 한 시간씩 그때까지 꼭 운동을 하셨는데
감옥에서도 그렇게 운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 시간씩 운동을 하는 시간에 그냥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감옥에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늘 암송을 하셨습니다. 

나(글쓴이)는 그분을 뵈올 때, 제 나이가 삼십대 후반이었는데
나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분의 모델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암송을 시작하였고 나에게 성경을 배우는 모든 분들에게 
암송을 같이 하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구절씩 하다가 나중에는 한장 두장을 하다가
그 후에는 산상수훈이나 빌립보서, 야고보서 에베소서 등 짧은 성경을,
후에는 요한복음 전체를 도전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서 운동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