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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LNCK 2023. 9. 12. 11:55

https://blog.naver.com/karamos/80055342388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34-38        2006.10.22.

 

※내가 심어서 내 시대에 내가 거두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고

지금 내가 거두는 게 있다면, 앞서 누가 심은 것을 내가 거두는 것이요,

장차 내가 열매를 거두기를 바란다면,

지금 나는 열심히 심고.. 다른 사람을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은.. 통찰력이 깊은 사람입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

 

구상(시인)이 병치레를 하느라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919~2004

다른 여러 친구들은 병문안을 다녀갔는데 유독 가장 가까운 친구 이중섭은 *1916~1956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서 지치고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 친구가 병원에 있는데 병문안을 오지 않을까하고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며칠 후에 이중섭, 이 가난한 화가가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이 사람아." 나무라듯이 말을 했습니다.

 

이중섭은 대답했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한테 올 때 빈손으로 올 수 있겠나?

그럴 수는 없잖아." 말을 흐리면서 손에 든 꾸러미를 내놓았습니다.

 

"그저 미안하네. 이 꾸러미를 풀어보게나. 실은 이것 때문에 내가 늦었네." 그러는 것입니다.

"그저, 내 정성으로 알고 받게나." 꾸러미를 풀고 보았더니

천도복숭아를 그린 한 장의 그림이었습니다.

 

"내가 이 그림을 그리느라고 그동안 문병을 못 왔네.

옛 어른들의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데.

이건 진짜 복숭아는 아니고, 그림이지만은 많이 먹고 건강하게" 그러더랍니다.

 

구상은 이 친구의 정성과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하며 이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뼈가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 고마움에 눈물을 닦았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기쁨과 인간적인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동물적인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물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동물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하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간됨의 모습입니다.

 

어찌 사랑을 돈으로 계산합니까? 어찌 물질로 계산하겠습니까?

사람만이 가지는 기쁨과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뿌리를 생각하기도 하고, 그 깊은 세계를 생각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생각하며.. 그렇게 느끼고 감격해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입니다.

 

여러분, 중국 사람들의 격언을 들어보세요.

"우리는 물을 마실 때마다 우물 을 판 사람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물 한잔을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생각하며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감격,

이것이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끝도 없는 그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고독한 노인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지나올 때마다 생수를 그릇에 퍼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줍니다.

그것이 이 사람의 생활이요, 이 사람의 즐거움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을 퍼주다 보니까 손님 중에 어떤 분들은 고맙다고 돈을 한 푼씩

그렇게 사례금으로 줬단 말예요. 이렇게 돈을 조금씩 받다보니까 이게 재미가 나요.

 

그래서 이제는 아예 돈을 달라하게 되었어요. 또 안주면 섭섭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물 한 바가지 퍼주고 돈을 받아 조금씩 착착 쌓여 모이기 시작하니까

이게 재미가 나는 거예요. 이렇게 하던 중에 아, 어떻게 돼서인지

이 오아시스 물이 자꾸 줄어듭니다.

 

샘물이 자꾸 줄어드는걸 보고, 노인은 생각했습니다. '이거 왜 줄지? 왜 이 물이 줄지?'

그는 생각하기를 '아, 이 크나큰 야자수들 이놈들이 전부 물을 빨아먹어서 이 물이 주는구나'

하고 그 야자수 나무들을 모조리 찍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물은 아주 말라버렸습니다. 이 노인은 더 이상 돈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이 조그마한 사건 속에서도

우리 사람의 미련하고 어리석음이 어디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추수의 기쁨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오늘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이 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거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수고하고 수고해서.. 내가 오늘 먹고사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기쁨이 있고 추수의 기쁨이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수고했고 누군가가 땀을 흘렸고 누군가가 고생해서

내가 오늘 이 추수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심은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다.” 요4:37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의 모든 문제가 어디 있냐하면, 내가 심고 내가 거두겠다는 거예요.

내가 심었는데 내가 왜 거두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하늘의 이치는 그렇지 않아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심은 것을 내가 거두고, 또 내가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둡니다.

 

이 이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원리 속에 살면 원망도 불평도 없습니다.

확실히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러나 꼭 내가 심고 내가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심고 내가 거둡니다. 아니 내가 또 그 누군가가 거둡니다.

 

여러분, 추수의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추수하면서 나를 위해서 수고한 분들을 이렇게 떠올리면서 감사하고요

또 오늘 내가 수고하면서 언젠가 거두게 될 저 앞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 정도가 돼야 사람이고, 또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개인적인 간증의 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용서하시고 제 간증이니까 제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1951년 1월 13일, 저 북한 땅 황해도 장현 돌다리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에서

새벽기도 갔다가 돌아와 가지고,

막 뒤에서 총소리가 나고 대포소리가 나고 중공군들이 개입되면서

유엔군들이 후퇴하고 있을 때, 그때 저는 부득불 집을 떠나게 됩니다.

 

당장 오늘 밤 어디서 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 계획도 없고, 돈도 없거니와, 돈이 통하지도 않습니다. 뭘 가지고 떠나겠습니까?

그러나 아니 떠날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는 저를 앞에 놓고 이 말씀 저 말씀으로 훈계하신 다음에

"안심하고 떠나라. 오로지 성경책 하나를 들고.“

그것도 이상하게 제가 보던 성경책이 있는데도 그건 놔두고

아버지가 보던 성경책을 들려주면서 "가지고 떠나라."

 

그래서 떠났어요. "내가 너를 위하여 새벽마다 기도 할 테니까

너는 요 시간에는 꼭 기도해라. 기도 중에 만나자.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 말씀 한마디를 뒤로하고 저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지금부터 약 15년 전에 평양에 처음 방문했을 때 *2006년 설교

저의 어머니에 대한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저들도 그걸 알고 나름대로 애를 썼더라고요.

좋은 소식을 내게 전하기 위해서.

 

그랬더니 물론 어머니는 안 계시고, 어머니에 대한 호적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 호적에 기록대로 보면, 제가 도착하기 전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어머니의 나이 94세예요. 94세에 돌아간 기록을 보고,

‘이 어렵고 고달픈 세상에 이런 악조건 속에서 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뭣 때문에 그렇게 오래 계셨습니까?’ 하고 기도하면서 울부짖어보았습니다.

 

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 위해서 기도하느라고 오래 살았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모든 것은

그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서 내가 오늘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5년 동안 미국 유학을 했습니다만, 단 한 번 백 불도 내 돈을 써본 일이 없고

그런 후원을 받아본 일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그 귀한 장학금을 주어서,

아니 여비까지 주고 비행기표까지 주어서, 아주 편안하게 5년 동안 유학을 했습니다.

 

가만히 지금 생각을 해도, 누구도 나 같은 넉넉한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없어요.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 장학금이 감사해서, 저는 놀지 못했습니다.

방학 때도 저는 절대로 놀러가지 않았습니다.

 

이 귀한 장학금을 가지고 공부하는데 놀 수 있느냐? 그래서 제가 아주 유명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그냥 겨울 여름방학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줄만 알았죠.

 

그런데 우리나라 귀국한 후에 가끔 선배 목사님들을 만나 뵙습니다.

제 선배 목사님들을 만나보니까 "아니, 자네가 곽선희 인가?"

"예. 그렇습니다."

 

"아, 자네 할아버지가 곽시형 장로지?" "맞습니다."

"아, 내가 자네 할아버지 장학금 받고 공부한 사람일세.."

그런 사람을 여러 사람 만났어요.

 

우리 할아버지 제게 말씀해주지 않았어요.

가끔 장학금을 드린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마는,

어쨌든 간에 제 할아버지 장학금 받아가지고 목사 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심어서 내가 거두는 거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제 집도 없고 가진 거는 없습니다마는 쓰는 것은 부잡니다. 넉넉하게 삽니다.

어째서?

저의 할아버지가 ‘거지 잔치’를 1년에 몇 번 하는 걸 늘 보았습니다.

 

세상 떠날 때도 마지막으로 일주일 동안 거지잔치를 하라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일주일 동안 천막을 쳐놓고 온 동네, 온 면이 모여서

‘거지 잔치’ 하는 걸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베풀더니 내가 어디가나 많은 귀한 분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나는 봤습니다. 그가 심고 내가 거둡니다.

내가 지금 거두는 이것이 나의 노력, 나의 선, 나의 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추수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심은 자가 있고, 나는 거저 거두는 것이다.

바로 그 감격으로 거두는 마음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총으로 받아야 하고, 이것은 같이 나누어야 하고,

아니 또다시 나는 심어야 합니다.

씨를 뿌려야 그래야 누군가가 또 먼 훗날에 거둘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씨와 종자를 주시고, 파종케 하시고, 물을 주시고, 거름 주고, 가꾸고

땀을 흘려 김을 매는 농부의 수고가 있습니다마는

농부는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했더라도 종자를 주신 하나님,

그리고 비를 주신 하나님, 햇볕을 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심기도 하고 물도 주고 수고하겠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요,

더더욱 거두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많은 수고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요? 하늘로부터 온 것이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Insight, 그 통찰력을 보세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수가 성 앞에 있는 우물에서 불쌍한 사람, 여자 하나를 만나서 개인 전도를 합니다.

 

이 불쌍한 과거를 가진 여자는 남편 다섯이 있으니 지금의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랍니다.

정말 비참하게 한평생을 살아온 이 불쌍한 여자, 땡볕에 물 길러 온 여자를 만나서 전도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메시아를 아는 순간 감격해서

물 길러 왔던 사람이 물동이를 두고 동리에 들어가서 전도를 합니다.

‘내가 메시아를 보았다고..’

동네 사람들, 언제 그렇게 준비했던지 온 동네사람이 이 우물가로 모여듭니다.

 

그 모습을 딱 보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Spiritual Insight. 흔히 말하기를 ‘영적인 통찰력’ 이라고 합니다.

 

그걸 보세요.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

아이고, 저 사람들 갈급해가지고 복음에 갈급해가지고 왁 하고 모여드는 사람들.

여러분, 이걸 보면서 예수님은 가을을 느꼈습니다. 거둘 때가 되었다고.

거둘 때가 되었다... 추수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억압과 탄압 속에서 그 멸시를 받으며

이스라엘은 최악의 환경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최악의 여건 속에서 그들은 오로지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메시야의 나타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제나 오늘이나 메시야의 나타남,

Messiah Expectation, 메시야를 대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메시야가 나타났다하는 말을 듣고 온 동리가 왁하고 모여듭니다.

이것이 거저 된 일입니까? 예수님은 여기서 추수의 기쁨을 느낍니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역사가 있었던가?

얼마나 많은 선지가가 죽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급했던가?

그리고 예수님은 저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추수 자로서의 거두는 자의 기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십니다.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하시고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또 다시 씨를 뿌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와 큰 희생을. 기독교의 역사는 곧 순교사입니다.

많은 고난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얼마나 많은 선교사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오늘 거두는 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의 인물들

 

이 기쁨의 뜻을 알고 전해야 할 것이고 함께 해야 할 것이고

또한 만방으로 이 기쁨을 공유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다시 씨를 뿌려야하겠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십시다. 언젠가 누군가가 거둘 것입니다.

 

웬 노인이 그것도 산에서 유실수 나무를 심고 있더랍니다.

"노인께서 아니 뭣 때문에 이렇게 수고하십니까?"

"아니, 이렇게 나무를 많이 심어야지."

 

"이 나무가 유실수 아닙니까?"

"그렇소."

 

"그러면 도대체 이 나무는 얼마 후에 열매가 맺혀지는 겁니까?"

"아마 60년은 돼야 될 걸."

 

"그럼 60년 후에 열매가 맺힐 것을, 지금 노인께서 그 언제 그걸 잡수시겠다고 이걸 심고 계십니까?"

"이 사람이, 천지의 이치가 그렇지 않네.

나는 그 누군가가 심어놓은 것을 먹었고, 내가 심어놓아야 다음 사람이 먹을 거 아니겠는가?"

 

여러분, 오늘 내가 누리는 이 풍요와 자유와 기쁨이 거저된 것이 아녜요.

많은 수고와 희생이 있어서 오늘 내가 있음을 아는 그 감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묵묵히 또 다시 씨를 뿌리십시다. 부지런히 뿌리십시다.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하면 먼 훗날에 누군가가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선한 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