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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0장,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

LNCK 2023. 10. 17. 22:01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         창40장            여러설교정리

 

본문 창세기 40장은, 요셉이

떡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 해주는 내용입니다.

‘꿈과 그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요약하면, 성경말씀보다 꿈을 더 앞세우거나, 꿈을 더 중요시하는 신비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성경만 완전한 계시이고, 꿈은 거짓선지자의 이용 도구다’하는 극단적 태도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논지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1. 꿈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기 전에,

꿈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한 가지 계시수단이었습니다.

 

바로왕의 꿈(창41장)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꿈(단2장)은

하나님이 자기의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준 일종의 계시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꾸는 꿈이 모두 다 계시성을 띠고 있지는 않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꾸는 꿈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똑같은 반대극단입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부터 꿈이나 환상이나

천사 보기를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했다.

나는 다만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해 왔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동안 나는 하나님의 길로 다니는 자이고,

잘못된 데 빠지지 않을 줄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꿈이나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맞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술 관원과 떡 관원의 앞날은 정확히 맞추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언제 나갈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명자, 은사자는 없습니다.

 

▲예언적 꿈, 계시적 꿈을 믿지 않는 이유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주장하기를

꿈이란 ‘그 전날 자신에게 있었던 어떤 일’을, 밤에 잘 때 꿈으로 꾼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꾸는 꿈도 있습니다. 소위 개꿈이죠. silly dream

신자가 꾸는 꿈도, 확률적으로 평소에 개꿈을 더 많이 꿀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심상치 않은 꿈을 꾸면, 어제 있었던 일을 한 번 돌이켜 봐야 됩니다.

어제 누구를 만나서 대화했던 일, 어제 TV 보았던 내용, 어제 책에서 읽었던 내용..

그게 그날 밤에, 꿈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꿈의 해석> 책에는,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새벽에 자고 있는데, 마침 닭이 꼬끼요 하고 울거나, 자명종이 때르릉 울릴 때도 있죠

그때는 잠자는 사람이, 무슨 강도를 만나거나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흉흉한 꿈을 꾼다는 거죠.

그래서 프로이트는 ‘그래서 꿈은 거짓이며, 계시를 나타내지 않는다’라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그런 개꿈, 의미 없는 꿈도 있습니다. 그런 꿈을 사람들은 훨씬 많이 꿉니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의 꿈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꿈인가, 계시적인 꿈인가.. 가장 큰 구분점은

개꿈은.. 꾸고나서 얼마 지나면.. 저절로 잊혀집니다.

 

그런데 계시적인 꿈은.. 세월이 오래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오히려 오늘 새벽에 꾼 꿈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계시도 ‘상징적, 묵시적’인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 계시적 꿈도 ‘상징적, 묵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 일상 그대로의 모습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은.. 개꿈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징적, 묵시적’인 꿈, 그러니까 좀 기묘한 꿈을 꿀 경우에는

오히려 계시적일 수 있습니다. 동물이 나타난다 하든지, 무지개가 나타나든지 하는 거죠. 게시록, 다니엘서처럼.

 

그런데 ‘상징적, 묵시적’인 꿈은.. 해석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돌이켜 보면, 꿈은 맞았는데.. 해석이 틀려서

제대로 대처를 못한 적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징적, 묵시적’인 꿈을 꿀 경우,

지난 번에 틀린 해석을 한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해석을 하도록

개인적으로 많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고, 꼼꼼이 메모하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꿈의 내용보다, 꿈의 느낌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좋은 꿈, 길몽은.. 꿈에 느낌이나 기분이 좋습니다.

 

나쁜 꿈, 조심하라, 기도로 대비하라.. 라는 경고의 꿈은.. 꿈에 느낌이 안 좋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경고성 꿈'을 많이 꿉니다. 기도로 대비하라는 뜻이죠!)

꿈에 두렵거나, 당황하거나, 본인이 수치를 당하는.. 그래서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아주 안 좋으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꿈에 본인이 주체가 되는 꿈이 있고,

본인이 관찰자로 등장하는 꿈이 있습니다.

 

자기가 주체(주인공)가 되는 꿈은.. 자기 꿈이고,

자기가 관찰자(공중에서 내려다 보든지, 자기가 주위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꿈은.. 남의 꿈입니다.

 

남의 꿈이면.. 반드시 알려줘야 됩니다. 그리고 알린 이후에도 기도해줘야 됩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경고이면 경고 대로,, 알려주고, 기도해 줘야 됩니다.

 

그러나 꿈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됩니다. 꿈은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게시적 꿈은, 모친 마리아가 그랬듯이

자기 마음속에 비밀로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괜히 마구 발설했다가, 요셉처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MBTI 성격 유형에 보면,

Intuition (내면, 직관) 형이 있고.. “N”형이라고 부르죠.

그와 반대되는 Sensing (감각) 형이 있습니다. “S”형이라 부르죠.

 

꿈과 환상, 하늘의 음성... 이런 것은 “N”형들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S”형은 그런 것에 대해, 매우 어색해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는 자기를 이해하고,

남도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꼭 말하자면, 요셉도 “N”형, 직관형이었다는 거죠.

 

예를 들면, “S”형은 쇼핑할 때,

매장을 세 곳, 네 곳 이상 들러서, 꼼꼼이 따져보고 삽니다.

 

반대로 “N”형은 소핑할 때, 척 둘러보고 삽니다.

느낌, 직관, 촉.. 이런 것에 의존해서 양말도 사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합니다.

서로 장단점이 각각 있습니다.

 

 

◑2.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통해 계시를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완성된 계시인 성경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되,

하나님의 특별히 주시는 개인적 계시인 꿈을.. 적절히 분별해서 인도함을 받으면

자기와 공동체에 많은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안이숙 여사 꿈에서 일본 씨름쟁이를 이긴 간증

성 프란시스의 꿈

 

순교자 박관준 장로님은 ‘일본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유황불을 비와 같이 쏟아 내려서

멸망시키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815해방이 되기 전에도, 내년 8월에는 해방이 될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를 한다고 말하고 감옥에서 나가라’ 라고 회유하는 재판관에게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명년인 1945년 8월에는 당신들이 나를 가두어 둘래야 가두어들 수도 없을 것이오.

그때 일본이 망하든지 조선이 독립되든지 간에 끝장이 날 터이니

나는 그때에 나가겠소”

 

이런 내용은, 성경 66권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원리를 우선적으로 따르되,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시는 꿈과 음성을.. 지나치게 무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부인 오정모 여사는

기도하는 중에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본에서 큰 뱀이 기어 나와 조선 교회를 통째로 삼켜 버리려고

입을 벌리며 달려들자, 주기철 목사님이 큰 검을 빼어서

그 뱀을 세 동강으로 찍어 내던지는 환상이었습니다.

 

신13:3절에는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그 꿈대로, 현실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목사님은 순교로, 그 사탄의 형상인 뱀을 이기고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주목사님이 끝까지 순교의 길을,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걸어가셨던 힘은

어쩌면 오정모 사모님께서 꾸신 꿈에, 상당히 힘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꿈도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종의 심리적 현상에서 오는 꿈들입니다.

 

▲본문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요셉을 봅니다.

 

40:8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라고 하였죠.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라고 한 요셉의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상 요셉의 이 말은 무척 담대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저들의 장래에 대하여 알려 줄 수 있다는

어떤 예언자적 심정으로 이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은, 어떤 역사의 상황 중에도

그 중심부에 서서, 자신이 책임지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선지자적 소임을 다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이나 꿈해석을 실제로 할 때 보면,

좋은 해석을 할 때는 아무 마음에 부담이 없으나,

부정적인 재앙의 해석을 할 때는.. 상당히 심적으로 움츠러들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떡맡은 관원장이 죽게 될 것이다’라는 꿈해석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과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미움과 보복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자, 예언자는.. 그런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요셉이 좌고우면(좌우측을 두루 살핌) 하면서,

술맡은 관원장의 좋은 해석만 얘기해 주고,

떡맡은 관원장의 부정적인 해석은 슬쩍 감추고 넘어갔다면,

꿈을 꾸거나 해석하는 그의 은사는.. 없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더 이상 예언의 은사, 성령의 은사를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은사가 단절되어 버리는 거죠.

 

흉몽을 예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언자적 사명 속에 사는 자들은

자기 뜻이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요셉의 예언적 해석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실로 성취되었죠.

그 일을 계기로, 2년 후에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됩니다...

 

예언자들이 늘 명심해야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그런데 실제로 교회의 A집사님이 중병에 걸리거나, 죽는 꿈을 꾸었다면.. 얘기해 줘야 되나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르겠죠.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가 받아들일만한 믿음이면 말을 해줘야 되겠지만,

그가 받아들일만한 믿음이 아니면, 괜히 문제만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암에 걸리거나 죽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고, 결단하면.. 하나님은 또 뜻을 돌이키시거든요.

    ☞경고성 예언 http://blog.daum.net/rfcdrfcd/15978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