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창41장,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LNCK 2023. 10. 18. 09:30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9857729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창41:46~57             2014.05.18.

 

서론

 

인류 역사 가운데 창세기 41장의 스토리만큼 드라마틱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침에 죄수였던 사람이, 저녁에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된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교도소에 있던 수인이, 저녁에 대한민국의 총리대신이 된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창41:32절에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하나님만이 아침에 죄수였던 사람을 저녁에 총리가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41장에는 요셉을 급속도로 승진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4개의 주요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꿈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바로 (1~8절)

 

꿈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인간과 의사소통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여러 수단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지금도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요셉의 인생에 있어서도 꿈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요셉도 어린 시절 꿈을 두 번이나 꾸었습니다.

곡식단들이 자신의 곡식단을 향해 절을 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을 향해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두 번의 꿈을 통해 인생의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꿈들을 통해서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언젠가 가족들의 절을 받는 위치에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에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은 그 꿈들을 해석해 줌으로써 출옥할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두 번에 걸쳐 꿈을 꾸고 그 의미를 몰라서 괴로워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도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 높이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던 것입니다.

 

물론 꿈이라는 것을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꿈 가운데는 허망한 꿈도 많이 있습니다.

또 ‘개꿈’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한 꿈을 꾸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서 고개를 흔들어 잊어버리면 됩니다.

왠지 기분이 나쁘고 내용도 연결이 안 되는 꿈은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5:7절에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꿈이 많은 것도 헛되고, 말이 많은 것도 헛된 일입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73:20

좋지 않은 꿈은 깬 후에 무시해 버리시면 됩니다.

혹여나 개꿈을 꾸시면 고민하지 마시고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가 보이고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꿈을 ‘영몽’이라고 합니다.

 

욥33:15~16절에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하나님이 밤중에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몽도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 응답이 꿈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바로의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몽이었습니다.

바로의 꿈은 요셉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의 바로는 세계 최고의 통치자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집트가 가난한 나라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는 애굽의 절대적인 통치자였습니다.

바로는 애굽 사람들에게 신으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바로 왕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막강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두 번 꿈을 보이시니까

그의 마음에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하니까 더욱 괴롭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꿈은 아름답고 살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갈대 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그 후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오더니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를 잡아먹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잡아먹었는데도 허기가 채워지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흉악한 일곱 암소가 살찐 일곱 암소를 먹어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쇠약하고 동풍에 비쩍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비쩍 마른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런 꿈을 두 번이나 꾸고 보통 꿈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41:8절에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의 마음이 심히 번민하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암소는 애굽의 신 아이시스를 상징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애굽에는 여신 아이시스와 남신 오시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호루스와 같은 신들의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시스로 대변되는 암소가 비쩍 말라서 살찐 암소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비쩍 말랐다'는 내용의 꿈을 꾸고 나서 41:21

바로의 마음속에는 국가적인 재앙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는 애굽의 유명한 박사들과 술객들을 불러 속히 해몽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술객들조차 해몽하지 못하자 바로는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에서 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41:19

이 말을 통해서 바로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번민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자도 별 볼일 없습니다. 두려워 벌벌 떨게 된 것입니다.

 

◑2. 바로 왕 앞에 서게 된 요셉 (9~36절)

 

바로가 꿈의 의미를 몰라서 쩔쩔 매고 있으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과거의 허물을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2년 전 감옥에 갇혔을 때 떡 굽는 관원장과 함께 있었는데,

그 때 히브리 청년 요셉이라는 사람이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 주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왜 술 맡은 관원장은 2년 동안이나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때를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정하신 때에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바로가 꿈 해석을 잘하는 청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급히 수염을 깎고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30년 동안 겪은 모든 고난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요셉은 준비된 모습으로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몇 번의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부자가 될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30년 동안 하나님이 철저하게 준비시키셨습니다.

어려운 환난을 거치는 동안에 강하고 지혜롭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준비된 사람으로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15절에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신으로 여겨지는 애굽의 왕이 일개 죄수를 불러다가 대화하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이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 바로는 죄수를 불러다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보고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요셉이 “예!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꿈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제게 맡겨 주십시오!”와 같이 상당히 건방진 말투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대답했다면 요셉은 훈련이 덜된 사람으로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대답은 대단히 겸손합니다. “저는 꿈을 해석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게 꿈 해석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스스로 영광을 차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실 것이라며 바로의 마음을 안심시킵니다.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대화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몽둥이를 들고 이실직고하라고 하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차라리 때려죽이세요!”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겁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먼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바로의 마음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꿈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입니다.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한 마디 대답이 바로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가 알아듣기 쉽게, 분명하고도 납득이 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첫째, “꿈을 두 번 겹쳐 꾸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고자 작정하셨고

속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꿈이 두 개의 개별적인 내용이지만 핵심은 한 가지로

하나님이 바로에게 하실 일이 한 가지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이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당신이 행하실 일을 미리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바로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는구나. 나를 기억하시고 행하실 일을 미리 계시해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은 7년 동안 애굽 땅에 풍년이 올 것을 예언하신 것이고,

비쩍 마른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7년 동안 흉년이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주1)

그 7년 흉년은 너무 극심하여 이전의 풍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해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셉은 바로에게 제안을 합니다.

이제 당신은 지혜있고 명철한 사람을 관리로 택하여

7년 풍년 동안에 애굽 전역에서 소출의 20%를 세금으로 거두어

성에 잘 보관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7년 흉년이 와도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탁월한 제안이었습니다.

히브리인이었고, 노예였던 요셉이 지금까지 누구도 제안하지 않았던 곡식 소출의 20%를

세금으로 거두라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바로는 주변에 많은 행정관들도 있었습니다만 일개 히브리 노예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사실 이 제안의 핵심은 애굽에 세금혁명을 일으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죽이는 혁명이 아니라 살리는 혁명입니다. 매우 합리적인 혁명인 것입니다.

 

풍년이 올 때 세금을 올리면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올 때 세금을 올리면 누구라도 반발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울 때는 세금을 낮춰야하고 호황을 누릴 때는 세금을 좀 더 거두어도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제안이었던 20%의 세금을 거두라는 것은

백성들의 반발을 살 필요도 없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3. 전무후무한 요셉의 승진 (37~45절)

 

요셉은 바로 앞에 서서 주어진 기회를 100% 살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해석과 제안을 들은 바로 왕은 전무후무한 요셉의 승진을 허락한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그 당시 애굽 왕조가 힉소스 왕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셈족입니다.

그들이 약 200년간 애굽을 통치했는데, 셈족이었던 바로가   (*백성들은 함족)

셈족이었던 요셉을 총리로 세우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 역시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승진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요셉의 해석하고 제안한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다 받아들였습니다.

38절에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요셉을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39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바로는 요셉을 향해 “내가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를 보지 못했도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처럼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는 말은 아무리 훌륭한 말을 했다고 해도

지혜롭지 않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의 말은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말한다고 자처하지만

아무 가치 없는 말입니다. 전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지혜의 근본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만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요셉을 이처럼 칭찬하고 줄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애굽 온 땅을 다스릴 총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요셉에게 절하고 복종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바로가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다만 위뿐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리 이외에 모든 권력은 네가 다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애굽의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미국에 건너 가서

억울하게 감옥에 있다가 서른 살이 되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바로는 이어서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인 요셉의 총리 임명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자기 인장반지를 빼어 요셉에게 끼워주며 결재권자가 되었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버금 수레에 태워 지나가는 가운데

모든 백성들을 향해 엎드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셉의 명령 없이 수족을 놀릴 자가 없을 것이라는 절대 권력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어 요셉과 혼인을 시켰습니다.

아스낫은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아 주었습니다.

첫째는 므낫세였고 둘째는 에브라임이었습니다.

 

영어로 므낫세는 ‘잊다(forget)’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게 두 배나 복을 주셨도다’는 의미로

‘에브라임’이라고 호명하였습니다. 드디어 요셉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백성이 요셉을 향해 절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요셉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절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4. 그대로 실천되는 요셉의 정책 (46~57절)

 

요셉은 매우 바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애굽 전역을 여행하면서

7년 풍년의 기간 동안 부지런히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각종 곡물을 세금으로 거두어 각 성의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어떤 거래든지 정확하게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었는데,

얼마나 세금을 많이 거두었는지 그 거둔 것을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49절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은 공적으로도 승승장구했고, 사적으로도 두 아들을 낳아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7년 풍년의 때가 속히 지나가고, 드디어 7년 흉년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기근은 무섭습니다. 오늘날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에 굶은 아이들을 보면 뼈만 앙상하게 남아 파리 떼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근이 7년이나 계속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한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심지어 자기 자녀도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54절에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입니다.

풍년의 때에 세금을 잘 거두어 비축했기 때문입니다. 애굽 백성들이 흉년이 오니까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바로의 대답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55절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창 41:55).

이 구절은 창세기 41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 설교 제목

 

▲애굽 백성들이 곡식이 없고 굶게 되니까, 바로에게 와서 양곡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때 바로의 대답은 “요셉에게 가라”(Go to Joseph!)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Do whatever he tells you!)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예표하죠.     주2)

 

요셉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요셉을 찾아 갑니다.

요셉은 드디어 모든 창고를 열고 곡식을 팔아 애굽 백성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각국 백성들도 양식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양식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에게 가면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

 

창41장에는 두 가지 교훈이 있는데, 인간적인 교훈과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적인 교훈으로,

첫째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잊어버리는 시간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억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생의 기회가 왔을 때,

요셉처럼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놓치지 않는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리 잘 사는 나라를 가 봐도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늘이 도운 나라라는 뜻입니다.

미국은 역시 천조국답게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바로는 양식이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여러 말 하지 않고 단 한 마디를 했습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통 받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시 하시는 대로 하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 가면 기쁨이 회복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은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면 천국에 갈 사람들로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께로 가면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좋은 것이 풍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한 마디는 바로처럼 “요셉에게로 가라!”

즉, “예수님께로 가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잔치 자리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다 떨어졌으니 어떡합니까? 했을 때, “예수님에게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이었습니다.

하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포도주 항아리에 아구까지 맹물을 채웠습니다.

어리석은 짓 같아 보였지만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잔치 자리에는 이렇게 맛있는 극상품의 포도주를

왜 아직까지 내어놓지 않았냐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자는 괜찮습니까? 아닙니다. 유능한 사람은 괜찮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라! 그리고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생명의 떡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디도 생명의 떡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생명의 떡이 있고, 예수님에게 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다 생명의 얻게 됩니다.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바로는 아주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로 가십시오!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행하십시오!”

우리도 삶을 살다가 고통스럽고 좌절이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로 가면 됩니다.

예수님께 수시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은 7년 동안 애굽 땅에 풍년이 올 것을 예언하신 것이고,

비쩍 마른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7년 동안 흉년이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알곱 암소와 일곱 이삭을 ‘7년’으로 해석했던 것일까요?

‘7개월’이 될 수도 있고, ‘7주간’이 될 수도 있고, ‘7 decades’ 70년이 될 수도 있잖아요.

 

성경에는 일일이 안 나오지만, 요셉은 평소에 꿈을 많이 해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죠.

 

그런 많이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해석법, 해석원리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7년’으로 정확히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와 비슷한 꿈을, 요셉에게 보여줬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 안 나오지만, 추론입니다)

 

 

주2)

요셉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면, 나중에 요셉이 백성들에게 폭정한 사실, 

즉 흉년 때 곡식을 나눠주는 대가로, 그들의 돈을 다 거둬들이고,

그들의 땅과 가축을 다 국유화시키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그것은 요셉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사실과 충돌되지 않습니까?

 

요셉과 더불어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잘 예표하는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의 목자의 이미지는 예수님의 이미지의 판박이죠.

그가 원수들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이미지는.. 예수님의 형상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편으로는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과 다윗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이지, 그들이 예수님은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비슷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고 맞습니다. 예표할 뿐이지, 예수님은 아닌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