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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장,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하다

LNCK 2023. 10. 27. 22:17

◈창49장,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하다       여러설교정리

 

◑서론

 

더 깊이 연구하실 분들은, 본문 창49장 야곱의 12아들 축복과

신33명 모세의 12지파 축복을 비교하시면, 더 깊고 풍성해집니다.

  ☞모세의 12지파 축복

 

▲1. 혹자는 본문 창49장 ‘야곱의 축복’은,

말은 축복인데, 실제 내용은 축복이 별로 없다.. 고 혹평합니다.

 

그리고 어떤 아들은 축복보다는, 오히려 엄한 꾸지람 같습니다.

르우벤도 ‘물의 끓음 같도다’하고 야단을 맞았고,

레위와 시므온도.. 아버지께 혼이 나고 있습니다.

단도 워딩이 그렇게 축복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47:28절에, 야곱의 예언적 축복이 마친 후에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성경은, 분명히 야곱의 말을 ‘축복’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라크

 

왜 야곱의 송곳 같은 찌르는 말이 ‘축복’이 될까요?

훈계와 징계의 말도, 그 아들들이 달갑게 들으면.. 그게 결국은 축복이 됩니다.

 

특히 구약이 말하는 축복은, 한국의 샤머니즘적 오복이 아니라

그 축복의 내용은 ‘생명의 회복, 생명의 넘침,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일차적으로 뜻합니다.

부귀와 장수는 그 부수효과로 따라올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49:1~28 저주도 축복인가

 

▲2. 창49장에 12아들을 축복하지만,

사실 야곱은 창48장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함으로써

자신의 아들들에 대한 축복을 시작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의 스타트가 48장부터 라는 주장48장 요셉이 아들들을 축복하다

 

 

◑창49장의 특징

 

▲1. 시어체로 기록되었다는 점 (2~27절)

창49장에는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언, 축복을 해주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죠.

이 축복의 특징은 시어체 poem 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시어체로 되었다는 것은 강조를 뜻하거나,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록된 성경을 귀로 듣고 머리로 외워야 했습니다.

책이 없었고, 있어도 너무 비쌌기 때문에, 보통은 다 암기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문장이나 내용은, 강조하기도 하고

외우기도 쉽게 시어체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창세기 49장 전체가 시어체로 기록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2. 그렇다면 왜 창49장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예언적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1절 '너희가 후 일에 당할 일'

즉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해 주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언의 축복인 것이죠.

 

이러한 예언 시가, 모세5경 안에서 또 여러 번 나타납니다.

민24:14~24절의 발람의 예언

신31:29절의 모세의 유언

본문 창49장을 포함해서 이 3개의 시에서

 

'그때가 오면, 그 날이 이르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들의 요지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가운데는 왕이 나타나고, 왕을 통해서 입니다.

창49:10, 민24:7, 신33:5절에, 왕이 각각 나타나 있습니다.

 

이 예언적 시의 초점은 왕이고,

그 왕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으로 이어지고,

또 이 세상의 왕 예수님으로 완성이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12지파에 예언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기에 초점을 두고 보아야 합니다.

 

▲3. 그리고 창49장의 주제어가 반복되는데

특히 49:28절에 보면 '축복'이라는 단어가 3번 반복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축복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8

 

개역개정과 새번역, NIV에도 '축복'이라는 단어는 2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KJV을 위시하여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축복(바라크)가 3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축복'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의 생명’)

창세기 49장에 축복이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3번이나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그 결론지었죠.

 

그렇다면 창49장에서 전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축복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전체적인 것을 이해하고,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성경 전체의 세 주제는,

하나님의 존재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분명히 본문 창49장에도, 3가지의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날이 되면,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운데 왕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유다를 통한 왕의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가면 우리가 알게 될 것인데

유다의 후손 다윗을 통한 이스라엘의 왕국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열쇠구멍 과도 같은 유다의 예언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 전체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쇠구멍을 통해서 큰 방을 보듯이)

 

이 야곱의 축복의 구조를 이해하면

또 성경 전체가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랜덤하게 12아들들을 축복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축복 안에는, 하나님의 예언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축복은 예언적이기 때문에 49:1

미래를 바라보고 축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날, 이 하나님의 때를 보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창49장의 축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을 읽어내야 합니다.

 

'축복' 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2아들에 대한 축복

 

이제 본격적으로 야곱이 아들들을 어떻게 축복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예언적 축복이 기록되어 있죠.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후일에 당할 일'

'날들의 끝에'(in the end of the days)이다. Keil은 이 말이 '예언적 언어로

일반적인 미래를 가리키지 않고 말세, 즉 최종 완성의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고 했죠.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너희는 모여 들으라...들을지어다' '너희는 모이라'(1절)는 내용과

'들으라'는 명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임종이라는 상황의 긴박성 및 계시의 중요성 때문이죠.

 

즉 이후 나오는 야곱의 유언 속에는 세계 통치, 미래 역사의 흐름,

메시야의 강림 등 구속사의 중대 사건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받은 자는 야곱의 아들들임과 동시에

언약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아들입니다. 본장에서 진행되는 야곱의 축복은

인간적인 요소와 언약적인 요소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은 야곱의 육체적인 아들로서

또한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적인 대리자로서 예언을 받은 것입니다.

 

▲1 르우벤 (3~4절)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그는 장남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생득적인 권리가 있었지만(3절)

아버지의 첩 빌하를 간통한 죄(35:22)로 인하여 이후 그러한 권리를 상실케 되었죠(4절).

 

'기력의 시작' '장자'를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헌입니다. 신21:17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

야곱의 장자로서 르우벤이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언급되어 있죠.

 

첫째로 언급된 위광(威光)은 특별히 장자가 누릴 수 있는 제사장직의 수행과 관계된 말이죠.

즉 족장시대에는 한 가족의 가장이 제사장직을 수행하였고 장자가 그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습니다(출29:9).

 

둘째로 언급된 권능은 가족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특히 전시(戰時)에는 장자가 가족들을 지휘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죠.

그런데 르우벤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이 모든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르우벤이 조급하고 정욕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이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암시가 여러 곳에 나오죠.

 

르우벤은 애굽에 곡식을 구입하러 갈 때 베냐민을 데려가기 위하여

그의 두 아들을 볼모로 내어 놓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고요(42:37).

 

또한 그의 후손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민16장),

땅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갓지파와 더불어 먼저 정복한 요단강 동편땅을 유업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었죠(민32장).

 

그 외에도 르우벤 지파와 다른 지파가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하면서

조급하게 단을 쌓다가 내란이 일어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수 22장).

 

'탁월치 못하리니'

르우벤이 장자로서의 위광과 권능을 상실할 것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장자권적 영적 주도권은 유다에게로 옮겨졌으며(8절),

장자가 마땅히 상속받아야 할 두 몫의 상속은 요셉이 받게 되었습니다(48:22, 대상5:1).

 

▲2 시므온 ▲3 레위 (5~7절)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같이 예언했습니다.

왜냐면 세겜성 사건 때, 둘이 함께 행했기 때문입니다. 34장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이들이 같은 부모의 피를 받은 자들일 뿐만 아니라(29:33, 34)

기질적으로 유사하였기 때문에 '형제'라고 표현되었죠.

 

그들은 세겜인을 대량 학살할 때에 함께 앞장서는 잔인성을 보였었죠(34:25).

그때 이미 야곱은 그들의 행위를 엄하게 꾸짖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혹독하게 책망하고 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KJV는 '잔인한 기구들이 그들의 처소에 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반면에 RSV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무기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개역 성경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였죠.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분노대로...끊었음이로다'

가축의 힘줄은 한번 잘리면 다시 회복될 수 없는 부분이므로

그 가축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수 11:6).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내가...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가 야합하여 악을 도모한데 대한 대가로

흩어짐과 분리의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 분배시 유다지파에 흡수 통합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신33장에는, 모세가 12지파를 축복하는데,

거기에 아예 시므온 지파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벌써 흡수 통합되어 버린 것입니다.

'내가...흩으리로다' :7 라고 한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죠.

 

이러한 저주는 향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정확하게 성취되었는데

그 단적인 예는 두번째 인구 조사 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인구조사 결과 시므온지파는 12지파 중에서도 가장 적은 수인 22,200명을 기록했죠(민26:12).

 

이외에도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 분배시 몇몇 성읍만을 할당받았으며(수 19:1-9)

레위 지파 역시 독자적인 기업을 갖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국 각지의 48개 성읍에 흩어져 거하게 되었죠(수 21:1-40).

 

야곱은 두 아들을 강하게 비판한 기록이 34:30절에도 잘 나타납니다.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도 엄한 꾸지람을 듣습니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 :7

 

그러나 이런 꾸지람도 달게 듣고서, 앞으로 행위를 고치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 위 서론에서 설명했습니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라’는 뜻이죠.

진짜 ‘너는 장래에 저주 받아라’는 말이 아니라,

또 옛날처럼 ‘혈기부리면 저주 받는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워딩은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입니다. 요나의 예언이죠.

그 말은 ‘회개하고 무너지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죠.

 

 

레위는 다행히 회복됩니다.

그럼 누구는 회복을 하고, 왜 누구는 회복을 못했는가요?

 

민수기의 광야 여정에 보면, 싯딤에서 바알 브올 사건이 있었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들과 혼합되지 말라고 했는데

이방 여인들과 섞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미디안 여자를, 감히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데도

그 진영에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레위 지파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죠.

 

그때 죽은 그 사람이 바로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 라는 사람이었어요. 민25:14

 

그래서 창35장의 세겜성 살육 사건으로, 시므온이 창49장에서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는데,

그 후손들이 분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모압 땅 바알브올 사건에서 시므온 지파 시므리 족장이

또 앞장 서서 음행의 범죄를 저지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죠. 본문 신명기 얼마 직전에 일어난 일이죠.

 

그 결과로, 신33장 모세의 축복에서, 시므온 지파는 아예 누락이 되어버립니다.

실제로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 분배를 못 받고,

유다 지파의 기업 속에서 흩어져 살게 됩니다. 유다지파에 흡수 통합되어 버립니다.

 

레위지파는, 아버지에게 저주를 받고, 저주 받은 가문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지파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시므온 지파는 레위와 똑같은 저주를 받고, 그 저주가 계속해서 이어진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회복의 기회는 늘 있습니다. (레위지파)

오늘이라도 회복의 기회는 있는 거예요.

상처를 서로가 보듬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유턴하지 않으면

마치 물이 아래로 떨어질수록 가속도가 붙고 힘이 붙는 것처럼

내리 축복이 아니라, 내리 저주가 더 강력해지는 것을

이 시므온 가문의 역사에서 보게 됩니다.

 

출32장에 보면, 시내산 앞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 돌판을 받는 그 중요한 시점에

밑에 있는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고 난리가 났어요.

 

모세가 내려와서 분노하면서 '누가 하나님 편에 서겠느냐?'

그때 놀랍게도 칼을 차고 레위 지파가 나옵니다.

 

세겜 성 사람들에게 칼을 썼던 레위와,

4백 년이 흐른 뒤에 그 레위 후손들도 다 칼을 썼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데 칼을 썼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칼을 쓴거에요.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서,

레위 지파가, 가족과 형제와 자기 자식조차도 내려놓고 하나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평생 하나님 앞에 양을 '칼로' 잡는

제사장 지파가 되도록 만드셨던 것이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이 속을 썩인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더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늘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시므온 지파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레위 지파로 회복될 것인가?

 

내가 그냥 우리 가문에 흘러오는 대로 이 분노가 '내리분노'로 흘러가도록 놔두고

이 저주가 '내리저주'로 흘러가게 놔둘 것인가?

그러면 시므온 지파로 전락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님을 위해서 결단하고, 인생을 턴 turn 하면

하나님께서 그 지파를, 그 가문을

레위 지파처럼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칼을 쓸 줄 아는 것도 능력이죠.

다만 그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칼을 사람들에게 휘두르면 다치는 것이고

그 칼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죠.

 

여러분의 자녀들가운데도, 시므온과 레위 같은 캐릭터를 가진 자녀들이 있을 겁니다.

의분이 강하고, 못 참고...

네 제 친구도 아들이 그래서 학교에서 뭔가 잘못된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찾아가서 항상 얘기하고.. 갈등하고..

 

이게 부모는 너무나 걱정스럽지만, 아이의 캐릭터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주어진 아이들이 있어요.

부모가 볼 때는 '얘가 왜 이렇게 공격적인가?' 그래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무조건 누르려고 하는데

그게 능사는 아니죠.

 

그의 내면에 있는 그 에너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대의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중보기도를 해주셔야 돼요.    전화위복을 이룬 레위지파처럼

 

▲4 유다 (8~12절)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야곱은 유다에게 그의 형들과는 대조적으로

처음으로 풍성하고 순수한 축복을 하였습니다.

유다는 그 이름 자체로도 '찬양'이라는 뜻을 갖고 있죠(29:35).

 

뿐만아니라 그는 형제들이 요셉을 해치려 할 때 피를 흘리는 것보다

파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제안하였으며(37:26),

자신을 베냐민의 담보물로서 제공하였고(43:9)

총리 대신 요셉 앞에서 진실하고 의젓하게 변호하였습니다(44:16-34).

이와같이 그는 행동에 있어서도 형제들에게 찬송을 받을만 하였습니다.

 

나중에 유다의 후손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침으로써 백성들의 찬송을 받았습니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를 사자로 비유한 것은 군사적 통치권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치자의 모습은 10절에서도 이어지는데

규와 지팡이가 떠나지 않는다고 했죠.

 

귀와 지팡이는 모두 왕권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영국 왕 대관식을 보면, 이걸 둘 다 쥐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유다 지파의 다윗 왕이 수행한 정복 사업(삼하 8:1-10:19)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며

유다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타나셔서 원수들을 멸망시킨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계5:5).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규(홀)는 왕권을 상징하는 증표물을 가리킨다.

왕은 공중 집회 때에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항상 '규'를 휴대하였습니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이 말은 혈통적인 유다의 통치권이 끝나는 기간을 선포한 말임과 동시에

영적 유다 왕권의 통치권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시점을 예언한 말이기도 하죠(계5:5).

 

그런데 그 같은 분기점이 되는 때는 실로가 현현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로'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죠.

 

-지명(地名)으로 보고 유다의 통치권이 실로까지만 미친다는 견해.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명사로 이해하여 '평안의 때'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

그러나 이 역시 개념이 불투명합니다.

 

-가장 합당한 견해로 장차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실 '메시야'를 의미한다는 견해죠(민 24:9, 대상28:4).

이는 여러 학자들이 지지하는데(Aal-ders, Calvin, Lange) 역사적인 정황과도 부합됩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의 지상 왕권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예표하며

여인의 후손 언약(3:15)이래로 면면히 계승되어 온 '메시야 언약’은

야곱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기서 백성은 백성들 복수로 쓰였는데 ‘많은 나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주인공이 누군지 압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서 영원히 세상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히브리인들은 평화시에 나귀를 타고 여행하죠.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죠.

이러한 나귀는 대개 잡목에 매어두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장차 비옥한 가나안 땅에, 귀한 포도나무가 너무 흔하게 되어

나귀를 그 포도나무에 매어두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부유해진다는 뜻이죠. 그런데 너무나 풍족하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죠.

유다의 후손이 왕이 되면 모든 것이 풍족해질 것이라는 거죠.

 

'또 그 옷을 포도 주에 팔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계19:11, 13

이 말은 심판 자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적들을 물리치고 그 피로 옷이 붉게 물든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63:1~6절에도, 이러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의 심판 자로 오실 때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일차적으로는 장차 가나안 땅에서 유다의 후손들이 향유하게 될

평화롭고 풍성한 축복을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유다의 후손, 즉 메시야를 통해 누리게 될

성도의 평화롭고 풍부하며 건강한 삶을 묘사한 말입니다.

 

▲5 스불론 (13절)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후에 스불론 지파가 직접적으로 해변에 거주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주함으로써 이 예언을 이루었습니다(수19:10-16).

 

특히 이 귀절에 언급되어 있는 '배' 및 '시돈'은 무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들로서,

이들은 스불론 지파가 상업을 중시할 것에 대한 암시를 줍니다.

한편 시돈은 두로와 베이루트 중간에 위치한 중요 항구 도시입니다(사 23:2).  스불론, 평범함 속의 은혜

 

▲6 잇사갈 (14~15절)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건장한 나귀' 문자적으로는 '뼈의 나귀' 곧 골격이 좋은 나귀란 뜻입니다.

이것은 잇사갈 지파가 튼튼하고 힘이 센 종족(삿 5:15)이지만

우직하고 단순하여 다른 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힘든 노동 일과 농사 일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비유적 묘사입니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직역하면 '노예 족속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잇사갈 지파가 상부 지배 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받는 계층이 되어 육체적인 고역 및 납세의 의무에 시달리게 될 상태(왕상9:21, 대하8:8)를 묘사한 예언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안식처, 쉴 곳'입니다.

수고하고 압제 당하는 그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곳에서 안식하게 될 그러한 예언입니다. 잇사갈 지파 이야기

 

▲7 단 (16~18)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심판자 judge'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이렇게 예언이 됩니다.

 

한편 본절은 이 가운데에서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단 지파가 차지하게 될 역할을

간략한 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은 그 이름이 '재판관'이란 의미를 가졌는데

이 예언은 단의 후손인 삼손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죠.

 

즉 삼손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내면서 백성들을 재판하며

또한 블레셋을 격퇴시켜 백성들의 안전을 지켰던 것입니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은...독사리로다'

이는 단 지파가 비록 적은 무리이지만 그들에게 많은 압박을 가하는 강대국과 싸워

승리할 사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강한 적과 싸워 라이스 성읍을 점령한 일이 있고(삿 18장)

삼손 당시에도 블레셋족을 거듭 격멸시킨 일이 있습니다(삿 15장).

 

그런데 일부 고대 교부들(Augustine, Iranaeus)은

-단 지파가 우상 숭배의 근원지였다는 점(삿18:18)과

-구원의 반열에서 단지파가 빠져있는 점(계7:5-8)을 들어

이를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단은 17절에 ‘말을 물어 말탄 자를 떨어뜨리는 독사’로 묘사됩니다.

말탄 자는 침략자를 뜻하고

독사처럼 침략를 물어서 물리친다고 말해주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삿18장(라이스 물리치고 그 땅 차지)의 내용을,

이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혹자는 이 귀절을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자각한

야곱이 축복을 마칠 때까지 기력을 유지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앞서 예언한 두 지파(잇사갈, 단지파)의 타락으로부터

그의 후손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본절을 17절에 대한 고대 교부들의 해석과 연관시키면

이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괴로움 당하는 성도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본절을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야곱의 염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8 갓 (19절)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의 용감성에 대한 예언이죠. 그들은 요단강 동편에 살면서

여러 차례 동방 족속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략자들을 성공적으로 격퇴시킴으로써 이 예언을 성취시켰죠(신33:20, 대상5:18).

 

(8절은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마치 랩을 하듯이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비록 원수에게 쫓기지만 최후 승리를 얻을 것이다.. 라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이 소망도 마침내 유다의 자손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9 아셀 (20절)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 지파는 후에 갈멜산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였죠(수 19:24-31).

지중해 해변에 있는 이곳은 땅이 기름지고 소산이 풍부하였습니다.

후에 솔로몬 왕은 여기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두로 왕 히람에게 양식을 공급한 적도 있죠(왕상 5:11).

 

아셀의 자손들은 풍성함과 진미를 누릴 것입니다.

이 풍성함과 진미로 유다에게서 나올 왕 메시아를 섬기될 것입니다.

 

▲10 납달리 (21절)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납달리 지파가 마치 사슴처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데 매우 민첩하고 능숙한 자들이 될 것임을 예언한 말입니다.(삼하22:34)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이고, 재롱이 귀여울 것이다.. 라는 뜻이죠.

이는 미래의 큰 번영과 풍성함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실례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을 때

납달리 지파가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한 사실(삿 4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 요셉 (22~26절)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은...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비록 가뭄이 심한 지방이라 할지라도 샘 곁에 심겨긴 나무는

그 같은 자연의 재해를 당하지 않는 축복을 지닌 샘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셉의 가문도 외부 상황에 개의치 않고 항상 번창할 것이라는 의미죠(시1:3).

이러한 예언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하여 충분히 성취되었죠(민 26:28-37).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이 애굽에서 형제들과 아비의 가족을 구원하였듯이(45, 46장)

이후로도 여전히 요셉 가문의 은택이 다른 지파들에게 미치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활 쏘는 자'는 '활의 명수들'이라는 뜻인데

요셉 개인의 과거에 닥쳤던, 그리고 장차 그의 가문에 대항할

모든 적대 세력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수11:16-18, 삿 12:4-6).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대적을 활쏘는 자로 비유한 것은

훗날 므낫세 지파인 기드온과 활을 잘 쏘는 미디안 족속과의 대접전(삿6-7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Keil).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야곱의 전능자의 손' 시 132:2, 5에도 '야곱의 전능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사1:24에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이스라엘의 전능한 자'란 표현이 나옵니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으로 묘사된 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족장 야곱을 그 많은 고난에서 구원하셨고,

또한 장차 요셉의 후손들을 대적들의 모든 핍박과 잔인한 공격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이에 대하여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를 '전능자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는 견해

그럴 경우 본절 전체의 의미는 요셉 가문의 번영과 강성의 근원이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를 요셉과 동격으로 보는 견해

그럴 경우 본절은 요셉이 전능자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곧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죠.

 

요셉에게 반복되는 단어는 22절에는 풍성함과 확장을 의미합니다.

요셉에게 반복되는 단어는 축복입니다.

 

23절에는 적들은 요셉 족속을 공격하지만

24절에 잘 막아내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겨낼 것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25~26절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고, 모든 분야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껏 요셉을 축복합니다.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하나님...도우실 것이요'

야곱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끊임없는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러한 자상한 도움의 손길이 요셉의 후손들에게도 미치리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도움을 받았던 야곱이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행한 이러한 축복은

축복을 받는 자로 하여금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였을 것입니다.

 

'위로 하늘의 복' 이슬과 비와 햇빛을 가리킨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유목 사회에서 이와 같은 자연의 혜택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래로 원천의 복' 샘들과 지하수와 같은 물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특히 한발이 심한 팔레스틴 지방에 있어서 이러한 물을 풍부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 많은 자손을 가지리라는 축복입니다.

노동력과 부(富)의 문제가 곧 바로 인력의 다소 문제에 직결되어 있던 고대 사회에서

자손 번성은 당연히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큰 축복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죠(1:28;시 127:3, 4).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한없음 같이'

-지금까지 야곱이 그의 총애하는 아들 요셉에게 베푼 축복(22-25절)은

야곱 자신이 아비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27:27-29)보다 훨씬 풍성한 것이며

 

-그 같은 축복은 마치 산이 영원하여 변함이 없는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고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형제 중 뛰어난 자' 여기서 '뛰어난 자'에 해당하는 뜻의 '네제르'는

'구별된 자', '성별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KJV와 RSV도 이를 '구별된 자'(him that was separate)로 번역하였다.

 

이 귀절은 요셉이 형들보다 뛰어난 것같이

그의 후손들도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구별되게 뛰어날 것임을 의미합니다. 49:22 담을 넘은 가지

49:22~26 요셉의 축복 2

 

▲12 베냐민 (27절)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은 물에 뜯는 이리라' 베냐민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을 생생히 묘사한 말이죠.

이러한 기질은 기브아 전투시의 베냐민 용사들(삿20:21, 25)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삼상11:6-11, 14:47-52)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죠.

 

'아침에는...저녁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의 시점인 아침과 저녁을 언급함으로써

'항상' 베냐민의 후손들이 원수들에 대하여 승리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베냐민도 유다의 모습과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물어뜯는 늑대라고 말하고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눈다고 했습니다.

원수 들에 대한 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승리 하여서 빼앗은 사자 같고,

베냐민은 사자 보다 못한 늑대입니다.

 

 

정리하면,

야곱의 축복의 개념은 승리한 군사의 모습으로 강조 됩니다.

그리고 원수를 이기고 풍성함을 누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니까 승리와 평화 그리고 풍성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승리와 평화는 유다의 후손에게 나올 메시아를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평화와 번영을 주듯이

다윗의 우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평화와 잃어버린 에덴 동산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이 바로 야곱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예언이었습니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야곱이 각 아들들에게 내려 주었던 축복은

개인적 차원의 축복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 곧 야곱의 12 아들들을 통해서 형성될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미치는 축복임을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적 축복은 단순히 야곱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豫知)를 좇아 행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도 전혀 그들의 지난 행동을 고려치 않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엄정히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이다. 즉 야곱은 아들들의 행적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향후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명에 맞게 축복을 베푼 것입니다.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장사하라'

야곱은 47:29, 30에서 요셉에게 개인적으로 하였던 매장지에 대한 부탁을

여기서는 공식적으로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사후 매장 문제에 대하여 이처럼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12:1-3. 26:2, 28:13)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47:30>.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이...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야곱은 조상의 매장지에 얽힌 이야기를 그 자식들에게 다시 하였죠.

물론 야곱 역시 그 이야기를 그의 아버기로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족장 사회에 있어서 언약의 전승은 이와같이 구전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아브라함과...장사하였노라' 아브라함의 장사에 대해서는 25:9에,

사라의 장사에 대해서는 23:19에, 그리고 이삭의 장사에 대해서는 35:29에 기록되어 있죠.

그러나 리브가의 장사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레아의 죽음에 대하여도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막벨라 굴에 장사된 것으로 보아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에 죽었던 것 같습니다.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앉아서 축복하던 야곱이 이제는 누워서

그 발을 침대에 모았다는 뜻이다. 즉 야곱은 호흡을 거두기 직전까지

분명한 정신으로 아들들에게 축복한 후 기운이 진하여지면서 죽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비록 험한 일생을 살았기는 하나 죽음 만큼은

매우 순조릅고 편안한 자연사를 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던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46:4).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이 말은 그 열조들이 묻힌 묘지에 매장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제 막 숨진 야곱을 가리켜 무덤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선조들의 묘지에 묻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영혼이 사후에도 계속하여 존재한다는 것과

야곱이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내세에 들어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