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9장, 종말적 관점에서 본 에스더서 여러설교정리 ☞ 에스더 설교모음
◑서론
에스더서는 겉으로는 전혀 종교성이 없는 책처럼 보이지만
"아말렉의 진멸"이라는 이슈,
즉, 하나님의 원수들의 진멸에 대한 예언의 성취,
그럼으로써 메시아(종말) 시대의 염원이 담겨진 책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구원을 예표하는 책이라는 거죠.
종말에 (12월 13일에) 핍박을 받아 도륙될 수밖에 없는..
죽어야 되는 운명이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그들(우리)을 구원해 주셨다..라는 그게 에스더서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후손들은 계속 부림절을 지켜오고 있고,
그 전날은 금식합니다.
에스더 때 3일 금식한 것을 기념하는 금식이죠.
그리고 부림절 때 <에스더>를 낭독합니다.
본문 에스더 9장을 보시면 역전의 날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헌신하였던 에스더의 그 헌신을 통해서
적그리스도와 마귀의 나라가 패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고 온전케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1. 종말에 대적이 완전히 패배한다
1절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아달월은 바벨론 식의 달(月) 이름으로 유대종교력으로는 제12월,
태양력으로는 2-3월에 해당되는 때죠.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하만과 그 추종자들이 왕을 유혹하여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려고 음모를 꾸몄던 사실(3:7)을 가리킵니다.
대적들이 유다인들을 공격하게 된 원인은,
유다인들에 대한 어떤 원한, 반감도 있었겠지만,
그들을 죽임으로써,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은 1만 달란트는 왕의 내탕고에 넣겠지만,
그 이외의 남는 것들은, 자기들 차지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무리해서 유다인들을 향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산 성에서 대적 500인+300인이 희생되었고, 9:6, 15
수산성 바깥 제국 내 전체에서는 대적 7만5천인이 희생됩니다. 9:16
▲아마 그 대적들은 주로 아말렉 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민수기의 예언을 보면, 아말렉인들이 결국 멸절될 것이 예언되어 있거든요.
그 예언이 결국은 에스더 때, 부림절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의 예언을 보면,
아말렉 멸망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24:19~20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이 예언이 이 에스더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가 됐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민수기(출애굽) 때부터 계속 사무엘에게까지 '아말렉 진멸'을 얘기했는데 *삼상15:3
그러나 그때까지 아직 진멸이 안 됐던 거예요.
이제 에스더 때 비로소 진멸이 된 거예요. 시간적으로 따지면 약 1천년이 지나서죠.
그러니 부림절에 죽은 사람들이.. 하만과 그의 열 아들을 위시해서
주로 아말렉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이 내용을 종말적 사건의 예표로서 보면,
적그리스도(하만)와 거의 추종자들이 (유다인을 공격한 대적들이)
마지막 때에, 결국은 진멸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만과 대적들이 완전 득세합니다.
그래서 유다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완전히 다 죽이고,
그들의 재산까지 다 빼앗는 것으로.. 그렇게 성도들이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듯이 물밑에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지난 교회 역사 2천년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되었죠.
그게 종말에는, 더 완전하고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조선 기독교를 천황숭배 아래에 두려했던 일본 제국주의도
결국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자탄과, 동경대공습으로 불의 심판을 받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는,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해방 후에 크게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났죠.
▲2절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본 구절은 유대인들이 결코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즙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에게 공격을 해오는 자들만
자신들의 대적으로 보고 그들만을 죽였던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 하여... 막을 자가 없고'
모든 민족들에게 임한 이 두려움도 8:17절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려는 섭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싸인으로서 본문을 보면
1~2절은,
종말에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은 완전히 도륙하고
특별히 언약백성들을 끝까지 괴롭히는 자들을 도륙하는 장면입니다.
끝날에 그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3절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마지막 때에 이 성도들을 도울 자들이 있고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성도들과 끝까지 싸우는 그룹들(소위 아말렉족, 하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대적하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는 거에요.
그들은, 성도들이 뭘 잘못했기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는 존재 자체가 밉고, 원수로 여기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유다인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듯이, 성도들이 그렇게 될 때가 온다는 거죠.
그런 날을 소위 ‘대환난 the great tribulation’이라고 부릅니다.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러나 성도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후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에서 보듯이요.
▲4절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성도가 큰 환란을 당하고, 대환난을 통과할 것이지만,
모르드개의 예에서 보듯이,
오히려 그 환난을 통해, 성도는 더 높아지는 기회가 됩니다.
대궐 문지기였던 모르드개가, 그 환난으로 인해서 총리급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4
하나님 자녀의 영광 받음은, 곧 하나님이 영광받으심입니다.
※지금 여기서 ‘종말’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요,
꼭 ‘역사의 최후 종말’이라고만 생각할 필요 없이 *대종말
‘나의 종말’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종말
종말론을 생각할 때는, 항상 대종말과 소종말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종말(소종말) 때도,
그 마지막 때에 성도들은, 모르드개처럼, 지위가 회복될 것입니다.
환난을 통과할 때, 도망가는 사람은 그런 영광이 주어지지 않겠지만,
그 환난을 기도와 금식으로 묵묵히 이겨내는 성도에겐.. 모르드개처럼 높아지는 것입니다!
슥8:23 ‘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5절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절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여기서 ‘진멸하고’가 히브리어로 ‘아바드’입니다. :5, :6
하만이 왕의 조서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썼죠. 3:13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결국 대적들이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높은 장대를 세웠으나, 거기에 자기가 달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성도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이런 진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접한 대로 대접받고 말았습니다. 마7:12
‘진멸하다’ *아바드 : perish, destroy
적그리스도의 세력에게는 결코 자비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싸인이죠.
적그리스도에게 동조하는 세력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만과 동조세력의 진멸받음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대적들이 그렇게 자비 없는 심판 받음을 예표하는 것이며,
이것은 지구 종말 때의 얘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환난을 통과할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대적에게 짖밟히고, 아바드 perish 당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개입으로,
결국은 대적들이 아바드 perish 될 것을.. <에스더>가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2. ‘여호와의 전쟁’을 싸운 유다인들
10절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5절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절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이 말은, 중요하니까 세 번 반복했는데,
그 의미는 유다인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그들을 진멸하되, 그 재산에는 손대지 마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들이 성경 곳곳에 나타나요.
이러한 전쟁들의 특징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대적)을 벌 주실 때에 하시는 명령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전쟁은, 탈취물이나 전리품을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는 전쟁은,
즉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이 탈취물이나 전리품에, 일절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전리품을 차지하게 되면,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란 이미지가 훼손되죠.
이방이 볼 때 ‘저게 다 돈 벌려고 그랬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 재산을 일절 취하지 않으면
이방이 볼 때 ‘그럼 뭐하러 목숨걸고 전쟁하지?’ 하고 의문을 품다가
‘아~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의 예
1) 창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4개 연합국과 승전하고 돌아와서
그들의 재산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전리품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드러내는 전쟁에서는
그 대적들의 재산을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2)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한 다음에, 아이 성을 정복하기 직전,
'그들의 재산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왜냐면 이 전쟁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언약 백성들이 들어왔음을 선포하는 상징이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들을 진멸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말라’ 명령한 것이죠.
그런데 아간이 은 2백 세겔, 금 50세겔, 아름다운 시날 산 외투를 몰래 빼돌렸다가
그 거룩한 전쟁을 망치게 됩니다.
아이성 전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망쳤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죠.
지금 모르드개 주도의 전쟁은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조서에는, 당시 문화로 동해보복법 원리에 의해,
두 번째 조서에 대적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다고 썼기는 했지만, *8:11
유다인들은 대적들의 재산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하면 본문에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15, 16절
3) 이런 원리가 또 사무엘상 15장에 나타납니다.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나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셨죠. 삼상15:3
그런데 사울은 그 말씀을 무시하고,
아각 왕을 생포하여 살리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합니다.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삼상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그리고 뭐라고 말하냐면 '내가 여호와께 제사 제물로 쓰려고 남겼다'고 둘러댑니다. :15
사실 사울 왕은 인간적으로 현명했습니다.
왜 멀쩡한 소와 양을 다 죽입니까? 그게 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귀한 재산이잖아요!
사울 왕은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가 아예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불순종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다행히 에스더 당시 유다인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성실히 수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은 그 재산에 손대지 않습니다.
그러니 본문 9장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이방 대적들을 그냥 진열하는 그냥 ‘복수하는 날’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거예요.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했다는 거에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예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 전쟁을 싸우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조금도 없습니다. 일도 없어요.
하나님은 그 진노를 그냥 쏟아버리십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외치셨던 하나님이
그때는 진노의 포도주, 섞이지 않는 포도주를
일반 백성들에게 마시게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에스더서를 볼 때, 마지막 때를 같이 놓고 보셔야 됩니다.
자비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주는 고난을 견디는 것이
하나님이 종말에 주시는 고난을 견디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이걸 이해하셔야 돼요.
몸은 능히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했죠. 마10:28
마지막 때, 우리 하나님의 진노는 너무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는, 우리 각자의 소종말에도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3. 마지막 날 왕에게 아뢰는 성도의 기도의 권세
11절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절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왕은 이미 수산 성에서 그만하면 유다인의 대적들이 충분히 죽었고,
다른 지방에서도 충분히 죽었으나,
에스더여, 그래도 부족하거나 네 성에 차지 않으면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그런데 에스더가 대답하는 것을 보십시오.
당돌한 건가요? 아니면 잔인한 건가요?
수산 성에서, 하루 더 보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합니다.
13절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에스더는 지금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한을 품은 게 아닙니다.
에스더는 지금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대적,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들’을 진멸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 종말의 때에,
이렇게 하나님의 대적들이 정망 깡그리, 남김 없이 멸절(아바드, perish)될 것을
에스더를 통해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러니 교회나, 주의 백성들이나, 하나님의 성도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하나님의 보복을 입는데, 그 때는 진멸(아바드, destory) 됩니다.
뭐 더러워서라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워서라도 피해야 됩니다.
어느 젊은 목회자가, 전교인 금식일을 선포했는데, (*에스더서에 3일 금식이 나오죠)
하는 수 없이 자기 어린 유치원생 자녀들에게도 금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평소에 쾌활하던 자녀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금식하고 너무 힘이 없어서,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찢어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금식하면, 그걸 바라보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찢어지신다는 거죠.
그리고 그 아픈 마음으로, 자녀들을 돌보시고, 그 자녀를 편애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대적들은, 진멸되게 되는 거죠! <에스더>처럼
※표기할 때, 에스더는 사람 이름, <에스더>는 성경 이름.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
▲지금 에스더는 왕 앞에서 탄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이 하고 있는 얘기는 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이제 그대는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으니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12
상징적으로 볼 때, 지금 아하수에로 왕을.. 하나님에 상징됩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엎드려 울고 있는 에스더는.. 중보기도자, 성도에 상징됩니다.
13절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은, 하늘 법정에서 일어납니다.
지금 본문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심판대, 하늘 법정, 하나님의 어전회의장
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은, 성도가 기도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중보기도자로.. 하나님의 보좌를,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뭘 독단적으로 행하실 때도 있지만,
대개는 중보기도자들과 동역하기 원하십니다.
‘내게 말하라,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12
말세의 성도, 중보기도자를 예표하는 에스더는
이러 이러한 소원을 아룁니다. :13
그러한 에스더는 마치 용맹한 여전사 같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지금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 ‘대적들을 진멸하는 전쟁’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느 귀용은 ‘군화를 신은 신부’로 묘사했죠.
성도는 그저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군화를 신었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에 있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국물도 없습니다.’
▲이렇게 종말 때, 마지막 때,
에스더로 예표되는 성도는
중보기도자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하늘법정에서, 하나님의 어전회의에서
자기의 소신과 뜻을 어필하는 것입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뭘 요구하냐면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13
그러면 지금 에스터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 마귀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 이 얘기입니다. 종말론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지고 대신 못 박히셨죠.
그러나 마귀나 사단의 죄짐까지 져 주신 것은 아닙니다.
종말에는,
사단이 완전히 형벌을 받고 나무에 매달리는 겁니다. :13
마귀의 진영이 완전히 박살나는 것이 에정되어 있습니다. 계20:10
그것을 에스더는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 아들'은 상징일수도 있습니다.
'열'은 성경에서 보통 '만수 full number'죠. 그러니 '충분히 많은 아들'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신부/성도/중보기도자는, 하늘 법정에서, 하나님의 어전회의에서
사단의 나라가 완전히 무너질 것을 선포하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
*앞서 <에스더> 1~2장에서 아하수에로를 잔인한 폭군으로, 악의 화신으로 설명으로,
본장에서는 동일 인물을 '하나님'의 상징으로 설명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렇고,
저런 각도에서 보면 저렇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고레스 왕도 '나의 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진짜 하나님의 종은 아니고, 그냥 불신자요, 이방 왕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보통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지만,
저렇게 보면, 대적의 각도에서 보면 .. 무섭고 무자비한 심판주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