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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10장,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회복되다

LNCK 2023. 11. 9. 19:12

◈에10장,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회복되다      에스더 설교모음

 

본문 에10장은, 이제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어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다스리니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매우 태평성대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총리’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왕의 다음’이라 했으니, ‘총리’로 봅니다.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역사책에 ‘마르두카 Marduka or 마르두쿠 Marduku’ 라고 기록된

사람과 동일인으로 봅니다.

모르드개가 다스리는 동안, 페르시아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거죠.

 

이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될 때,

나라가 크게 흥왕하며 태평성대가 된다는 뜻이며,

장차 천국에서의 평화와 흥왕을 예표한다고 하겠습니다.

 

 

◑본론1. 모형론적으로 본 에스더서               *모형론이란?  주1)

 

이 글은, 에스더도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모르드개도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한 책 <에스더>에, 그리스도가 두 명 나와도 문제 없는 것일까요?

네, 문제 없습니다.

 

왜냐면 창세기를 보십시오.

거기에 꼭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 한 명만 나옵니까? 아니죠.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유다도... 각각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에스더, 그리스도의 모형

 

앞서 https://rfcdrfcd.tistory.com/15981307 ◑1.에서 살펴보았죠.

 

▲하만, 적그리스도의 모형

 

-유다인들을 12월 13일에 몰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가 하나님처럼 경배받기를 원했다는 점에서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아서 죽이려 했죠)

-그가 모르드개(그리스도 예표)를 죽이려고 장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봅니다.

 

그래서 그는 종말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또한 자기를 따르던 추종자들과 함께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종말적 관점에서 본 에스더서

 

▲모르드개, 그리스도의 모형

 

1) 하만이 계획한 형틀은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한 형틀이었으나

그 형틀에 하만이 달려 죽음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는 승리의 기점이 되고 말았죠.

이것은 예표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활로 승리의 상징이 되었고, 대적들을 영원한 형벌로 패배시켰습니다.

 

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을 기념하여 12월 14일과 15일을 부림절이라 하여

대대적인 잔치를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갖게 될 ‘승리의 천국 잔치’를 예표합니다.

 

3) 하만과의 대립에서 승리한 이후에 우리가 읽은 본문에 모르드개는

온전히 승리자의 모습으로 금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은 8:15

바로 다니엘이 본 환상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단7:9-12).

 

4) 모르드개가 다스린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아래에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다스릴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합니다.

이 나라는 현재적 천국도 되고, 미래에 완성될 천국도 됩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임하시면

우리에게 있는 슬픔과 멸시와 천대가 변하여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동시에 존귀함이 있게 될 것이며,

어린양과 더불어 천국잔치를 성대하게 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미래로 돌리는 것은, 좀 허전합니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오늘날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성도는,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뒤따라,

우리들도 마귀를 대적하여 그 세력을 분쇄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1:28

 

5) 이러한 모르드개, 그리스도를 닮은 자, 그리스도의 예표는

예수를 믿고 세례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하만(적그리스도)의 압박과 협박을

피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걸고 정면으로 맞서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싸운 결과입니다.

 

그 결과 믿음의 산 증인이 되어

영원토록 승리하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 준 것이죠.

 

오늘 우리도 믿음의 산 증인이 되어

다시 오실 왕 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본론2.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의 모습

 

오늘날 작은 예수인 우리 각자가 추구해야 하는 그림입니다.

 

▲1. 전쟁 후에 잔치가 있습니다.

 

9: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에스더>에 치열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1월 13일부터 시작된 전쟁이.. 근 1년을 끌어오다가 12월 13일과 14일에 절정 climax에 달했죠.

 

하나님은 유다인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수산 성에만 대적 8백인이 도륙되었고, 그 외 지방에서는 7만5천 인이 죽임당했죠. 9:16

 

이 일은, 종말에 마귀와 그 추종자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을 예표합니다.

계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9:17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잔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승리와 개선의 축제죠.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의 끝에는 잔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혹자는 ‘에스더서는 잔치로 시작해서, 잔치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1장의 잔치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잔치입니다.

그러나 막바지 9장의 잔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즐기는 잔치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천국 잔치를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도 예수님은 종종 ‘잔치 비유’를 통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요2장의 가나혼인 잔치

-마25장의 열처녀 비유에 나오는 결혼 잔치

-마22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예복이 없어서 쫓겨난 사람 있었죠)

-성경의 마지막 계시록에도 결혼잔치가 나오죠.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잔치를 즐기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먹음직스런 음식을 눈앞에 두고, 절대로 체면 차리지 않으셨습니다.

 

잔치 집에 가시면 포도주도 드시고 흥얼거리시면서

잔치분위기에 어울릴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어 축제를 즐기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그 시간에 천국에서 있을 잔치를 내다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잔치하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복음으로 사는 인생은 ‘잔치하는 인생’인 것입니다.

흥청망청하는 잔치가 아니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사모님께, 주일날 가장 좋은 음식을 준비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에는 반드시 자녀들과 바베큐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장차 들어갈 천국 잔치를, 자녀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바라보고 사모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의 상황이 ‘잔치’인 것입니다.

 

▲2. 최초의 부림절 잔치 가운데 진정한 안식이 있었습니다.

 

9: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쉬며' 라는 단어 히브리어로 ‘누아’인데, to rest, settle down

우리가 잘 아는 안식 ‘샤밧’하고는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샤밧’은 그냥 일을 마치고 쉬는 것이라면,

본문 17절의 ‘누아’는 ‘일이 다 해결되고 나서 쉬는’ 것입니다.

 

전쟁에 승리했을 때,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때 진정한 쉼과 자유가 얻어지죠. 그게 ‘안식-누아’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안식-누아’가 됩니다

 

샤밧은 잠시 내가 열심히 일 하던 것을 멈추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누아는 은혜가 있어야만 가능한 안식이에요.

 

샤밧은 쉼을 내가 결정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아는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휴가를 보낼 때,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몸과 마음이 쉬려고 합니다.

그건 ‘샤밧-안식’이에요.

그런데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뭐냐면 ‘누아-안식’이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 은혜, 문제해결.. 그 후에 얻어지는 안식!

 

창8: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누아)

방주가 자기 사명 다 하고, 아라랏 산에서 머물며 안식한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샤밧-안식도 취하지만,

누아-안식도 취하는 거예요.

우리 사명을 다 마쳤으니, 거기서 진정한 쉼이 있는 거죠.

 

지금 그리스도(모르드개)가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에 대해서 살피는 중입니다.

거기엔 ‘일, 사명을 다 마치고 쉬는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죽고 나서 천국에서도 누리겠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이걸 누리는 것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잠 자기 전에 기도하면서

오늘 주님이 시키신 사명, 일을 다 끝냈으니, 이제 누아-안식을 취하자하는 거죠.

 

그게 연속이 되면, 나의 소종말 때에, 누아-안식을 취하려고,

영광중에 기꺼이 눈을 감을 것입니다.

 

1월13일에 시작된 전쟁이 12월13~14일에 마쳐지고,

성도들은 잔치와, 안식을 취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대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에게

큰 잔치와 진정한 안식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3. 모르드개 (그리스도) 가 통치하는 나라     

 

10: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본토에 더해서 바다와 섬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1절에 ‘바다와 섬’을 언급한 것은, 지중해 쪽으로 영토가 더 확장됐을 뜻합니다.

 

10: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실제로 아하수에로 왕 때, 페르시아가 국토를 최대로 확장했다고 합니다.

모르드개가 등용되면서, 더 부강해졌다는 거죠.

 

마치 애굽의 바로가 요셉을 등용해서, 당시 세계를 평화롭게 다스린 것처럼

지금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모르드개를 등용해서,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립니다.

 

모르드개는 총리로서, 유다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서 일합니다.

특정한 민족이 아니고 모든 민족을 위해서!

 

이것은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 성도들이 창1:28절 말씀처럼 ‘다스리고 정복하는(사랑으로 섬기는)’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을 뜻합니다. 모르드개가 그 본이죠. 우리 각자는 작은 예수이고요!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 :2

문자적으로 '왕이 존귀케 한 모르드개의 위대함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란 뜻이죠.

 

'모르드개'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의 제2인자가 된 것을 강조합니다. 8:2

 

이같이 모르드개의 존귀케 됨은 곧 유대인들이 존귀케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짐을 뜻합니다.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같은 언급은 다른 역사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앞에 기록된 내용이 정확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표현입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역사책에 ‘마르두카 Marduka or 마르두쿠 Marduku’ 라고 기록된

사람과 동일인으로 봅니다.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모르드개가...왕의 다음이 되고'

모르드개가 '총리'의 직위에 올랐음을 가리킵니다.

 

'모르드개'가 바로 이러한 직위에 올랐던 것에 대한 증거는

1) 그가 왕의 허락 없이도 자유로이 왕에게 나아갈 수 있었던 사실(8:1),

2) 그가 제 2인자였던 하만이 갖고 있던 왕의 반지를(3:1, 10) 넘겨 받았었던 사실(8:2),

3) 그가 왕만이 입을 수 있었던 제왕색(帝王色)의 옷을 입었던 사실(8:15) 이죠.

 

'그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형제'(아흐)는 종종 성경에서 '동족'을 의미합니다. (레25:39, 46-48, 신2:4, 8).

곧 '유대인들'을 가리키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여'

'복지를 추구하다' 혹은 '부(富)를 추구하다'의 뜻이며

요세푸스는 이것을 모르드개가 백성들의 기대이상으로 그들을 번영케 한 것으로 해석했죠.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安慰)하였더라'

여기서 '그 모든 종족'(칼자르오)은 문자적으로 '그의 모든 자손'이란 의미죠.

그런데 여기의 '자오'는 오직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이므로

여기의 '그 모든 종족'은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인 셈입니다.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한편, '안위하였더라'(다바르 솰롬)는 문자적으로 '안녕(평강)을 선포하였더라'는 뜻으로서

유대인들이 평강하기를 기원하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니, (위태헤게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요)

그리스도 또는 작은 예수가 다스리는 나라는,

번영하고, 안위(샬롬)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본문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리 모두가 사모해야 되는 나라입니다.

내 개인이, 우리 가정이, 우리 공동체가, 우리 나라가, 온 세상이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어야 하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하죠!

‘하만’은 몰아내야 하고요.

 

 

◑4.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마지막 때는 ‘법률 전쟁’이 중요한 전쟁 영역

 

에스더서에 나오는 큰 싸움의 이슈가 ‘조서’ 전쟁입니다.

하만의 주도로 1차 조서가 공포되었는데,

그 조서를 변개나 철회를 못 하니

모르드개 주도로 2차 조서가 공포되어서, 어려웠지만 싸울 수 있었습니다.

아니었으면, 일방적으로 당할 뻔 했습니다.

 

오늘날 첨예하게 영적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입법, 법률’ 분야입니다.

 

-낙태 합법화와 그 반대

-동성애, 차별 금지법의 확대

-창조론에 반하는 진화론 교과서 등재

 

우리나라에 <에스더 기도운동본부>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죠.

 

그래서 마지막 때는 어떻게 보면 이런 조서 싸움, 법률 싸움입니다.

이 에스더서처럼

현대에도 진짜 영적인 전쟁은 법률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이 싸움에서 최전방에 선 단체의 이름이 에스더 기도운동본부입니다.

에스더처럼 금식하고 기도하며 나라를 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참여와 지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4:20절을 보세요.

종말에 대해, 예수님이 쭈욱 말씀하시고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기도의 변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기계적으로 딱딱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기도의 변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렇게 읽어야 더 임팩트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지붕 위에 있는 자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갈 일이 생길 것이다.

밭에 있는 자가 그 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가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화 당한다)

 

기도 안 하면 너희가 도망하는 바로 그날이 겨울이나 안식이 될 것이다.

그러니 기도해라' 이 말입니다.

 

지금 기도해야.. 나중에 그런 일이 안 발생하고, 또한 우리가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 기도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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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하수에로 이후 아닥사스다

 

아하수에로와 에스더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아닥사스다 라는 설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주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아하수에로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아닥사스다(롱기마누스) 죠. BC 464

아닥사스다(롱기마누스)는 폐위된 와스디의 아들이었죠.

 

아닥사스다는, 왕비로 에스더의 유일한 핏줄(딸)인 다마스피아와 결혼했고요.

다마스피아는 어머니 에스더에 이어 제국의 왕비가 되었죠.

 

에스더는 소중한 자신의 딸을 와스디의 아들에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더의 딸 다마스피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특별한 일을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죠.

 

그런 이유에서 아닥사스다는, 사실 유다인들을 위한 우호적 조치들을 취합니다.

에스라의 2차귀환

느헤미야의 3차귀환 (그래서 유다인이 그 높은 직책까지 얻게 된 거죠)

모두 아닥사스다의 허락과 후원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장모 에스더와 함께, 장모의 고향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죠.

 

 

주1) 모형론 또는 예표론이란 헬라어 ‘튀포스’에서 온 말로서 영어로는 typology라고 합니다.

그 뜻은 맞은 자국, 인쇄자국, 양식, 식양, 또는 본보기, 예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형의 그림자 내지는 투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튀포스)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이를 유형론 또는 모형론이라고도 하는데 유형(類型)이란,

성질이나 특징 따위가 공통적인 것끼리 묶은 하나의 틀.

또는 그 틀에 속하는 것이라는 뜻이요,

 

모형(模型)이란 같은 형상의 물건을 만들기 위한 틀. 실물을 본떠서 만든 물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만든 본보기나, 만든 작품을 줄여서 만든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원형과 모형, 또는 원형과 유형 사이에는 공통성이 존재하게 되어있는데

그걸 살펴보는 것이 ‘모형론’ 또는 ‘유형론’입니다.

 

특별히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므로, 요5:39

이런 모형론, 또는 유형론적 성경해석이 더욱 힘을 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