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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요

LNCK 2024. 2. 22. 18:25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요 (youtube.com)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요      행3:11~26          ☞ 사도행전

*내용요약 : 본문 행3:11~26절은, 미문 앞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놀랍게 여기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성경은 그 사건을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4:22 단순히 한 사람 병 고친 게 아니라는 거죠.

표적(세메이온)은 뭔가를 가리키는 사건인데, 그럼 무엇을 가리키는 표적이냐? 
그 앉은뱅이가 치유된 표적이 가리키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예언된 예수께서,  :13
모세가 내 뒤에 '나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예언한 그 예수께서 :22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15
그래서 우리가 새롭게 되고  :19
'만민과 만물을 복 주고, 회복시키시는' 일을 행하셨는데, :21, 25~26

그런 회복(구원)의 첫 단추, 또는 예고편이 
바로 미문 앞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이다... 라고 베드로가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경험들은 사람마다 퍽이나 다릅니다. 
-'나는 언제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라고 특정한 영적 체험을 말하는 분도 계시고,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분도 계십니다. 

특정한 날짜나, 기억할 만한 경험은 말하기 힘들지만 
내가 지금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부인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만나기 전의 과정, 그 갈망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여, 또한 진리에 갈급하여 찾아 헤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행10장에 보면 고넬료 같은 사람도 나옵니다. 
'너의 기도와 구제가, 그 간절함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느니라'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갈급하게 찾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자기가 전혀 생각 안 하고,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단도직입적으로 불쑥 그를 찾아오신 경우도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도바울이 그랬고요.


본문 행3장,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사람, 그는 아무런 기대도 없었죠. 
그냥 동전 하나 얻을까 하고 쳐다본 사람인데, 자기 인생을 뒤흔드는 만남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면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3:11
그 앉은뱅이가 사도들을 강력하게 붙들고 놓지 않았다는 굳센 의지가 보이는 손입니다.

7절 '(베드로와 요한이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이때의 앉은뱅이의 손은 어떤 손이었겠습니까? 힘 없는 손이죠. 
그냥 구걸하려고, 동전 한 개 얻을까 하고 겨우 내밀은, 아주 무기력한 손이었을 것입니다. 

그 손을 베드로가 붙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사람이 스스로 자기 손으로 사도를 굳게 붙잡는 거예요. :11

왜 붙잡았을까요? 

병이 나았잖아요.
지금까지 남이 옮겨 주어서 여기에서 저기로 왔다 갔다 하던 삶을 살았는데, 
얼마나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겠습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겠지요.

누가복음에 열 명의 나병 환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대부분 다 그냥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이해도 됩니다. 
'엄마 나 나병이 나았어' 소식 전하러 간 나환자도 있었겠고,
뭐 친구들 만나러 간 나환자도 있었을 거예요. 그동안 오래도록 못 만났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와서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본문의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후에, 다른 데 가지 않고 
'사도들을 붙잡았다'는 것은, 3:11
이 사람이 바뀌었다,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사도들을 꼭 붙잡아야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겁니다. 

왜 붙잡았어요? 물어보면 
아마 자신도 조리있게 대답을 못 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자기 안에 뭐가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미켈란젤로의 그림인 '천지창조'가 떠오릅니다.    
그 그림에도 손과 손이 만나는 장면이 나오니까요. 아담의 손과 하나님의 손이 터치돼죠.

그림에 보면, 아담은 힘 없이 자기 손을 내밀고, 하나님은 힘 있게 손을 내미십니다.  주1)

 

요즘 구정 명절인데, 부모들은 자녀들을 만나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큰둥하는 그런 경우가 많죠. 처음에 이 장애우가 그랬다는 거죠.

무기력한 이 손, 그런데 그 손이 바뀌어서 
앉은뱅이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베드로를 강하게 붙드는... 뭐가 굉장히 바뀐, 변화된 것입니다.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미문 앞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보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쭈욱 모였습니다.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가 말합니다. 
첫 번째,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두 번째, 왜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 

'왜 놀랍게 여기느냐?' 이 말은, 놀랍지 않다는 말이 아니에요.  :12
여러분 40여 년 동안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이, 
걸어서 마구 뛰어다니는 것이 왜 놀랍지 않겠습니까. 

이게 별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대단한 일인데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 큰일이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  :12
이런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을, 사람들이 어떻게 주목할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 정말 주목해야 될 분이 있다는 거죠.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지금 눈앞에 한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설명하려면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큰 그림을 이야기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예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거부했다. 죽였단' 말이죠. 십자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부터 나오는 큰 이야기를 하고, 
그 중심의 예수를 놓고,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고 한 다음에, 
치유의 의미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느니라 

즉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사람을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병 나은 사실, 장애가 고침을 받게 된 사실은 
우연도 아니고, 하나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는 거죠. 

적어도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큰 역사의 한 부분이고, 
그 역사의 한 가운데 중심에, 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주2)

 

베드로의 설교는 '너희가 누군가?' 하는 거죠
3:25절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그리고 너희들의 사명 본래 사명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라고 하는 
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우리가 (너희가) 있다는 거죠. :25

짧은 설교지만, 베드로는 이런 하나님의 큰 계획을 차근차근히 말합니다

3:22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이 말은 모세의 유언 같은 말입니다. 
누가 은퇴하면서 후임자에게 이야기하듯이 
'내가 120세 인생을 정리하면서, 나 다음에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나올 것이다' 
'나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죠. 여호수아는 신약의 '예수'와 같은 말입니다.
23절의 '그 선지자'도 예수를 가리킵니다. rfcdrfcd.tistory.com/15974249

 

'여호수아가 선지자입니까?' 물을 수 있겠지만 
여호수아서부터 에스더서까지, 우리는 헬라 전통을 따라서, 70인역 전통을 따라서 
이거를 역사서다.. 이렇게 분류하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거를 예언서, 선지서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선지자'라는 말은 전혀 어색하거나 생소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니까요.

여호수아라는 말은, 히브리 말이고, 
여호수아 와 예수는 같은 말이죠.

 

그러니까 '모세가 나 같은 선지자'라고 했을 때 누구를 말하는가?  :22
'이중성취'라는 말이 있는데,
-첫째로는 여호수아를 뜻하지만요. 
-더 중요하게, 더 멀리는 '예수'를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이중성취

△그 예언의 결과가 뭔가요? 23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멸망 받으리라'  be completely cut off,  be destroyed 
원어로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영어 성경을 보면 '컷오프 될거다'고 했습니다.

'그 선지자 예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컷오프 될 것이다' 즉 잘려서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컷오프 될 것이다, 멸망하여 없어질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혈통으로 이스라엘 핏줄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에서 컷오프 되는 사람 있을 것이다'

반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1
어떤 민족이든지, 남자든 여자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그 누구든 이제는 새로운 기준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가운데 의자들을 몇 개 놓고, 많은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다가,

호루라기를 불면 재빨리 의자를 차지해서 앉는 사람이 남고, 나머지는 컷오프(탈락)돼죠.   

 

의자가 한정되어 있고, 딱 앉았어요. 이 사람들이 안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혈통적 이스라엘입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그랬는데 
어느 순간인가 사회자가 '다 일어나세요. 다시 돕니다'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을 새로 규정하시는 거예요.
'redefined the people of God, 새로 규정되는 하나님의 백성들'
지금 베드로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자리를 빼앗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바깥에 서서 그냥 아무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던 사람들 중에서도 
중간에 들어와서 주인공이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거죠. 

그 기준이 무엇인가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1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두 가지를 선물로 주실 텐데 
-하나는 죄 사함을 주실 것이고 
-둘째는 뭡니까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그 사람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사람들이 받은 사명이 생기는데, 
본래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세계 만민에게 복이 되라는 사명을 받는데,

그 사명이 바로 선교죠. 구원받은 우리가 받은 사명이에요. 

근데 사실은 따지고 보면요. 한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 받고, 죄사함 받고 
새로운 하나의 백성이 되는 이 과정 전체가 사실은 
크게 보면 '하나님의 구원'이죠. 이게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주3)

 

3:25~26절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땅 위의 모든 족속을, 너의 씨,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 전체가 선교이고요. 

그래서 '너희에게 먼저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보냄 받으셨고요. 예수님이 교회를 세상에 보내시죠.
선교 라는 말이 라틴어 mitto 에서 나왔는데,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 전체, 즉 보냄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전체가 
선교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이 우리의 회개와 세례라면, 
그 앞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수 있고,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거죠. 

'만물의 회복'이라는 전체적인 큰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회복은 뭔가 하면 
-첫 번째 개인의 회복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천국 백성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는 일이죠.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에 만물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전체가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큰 선교죠.

그러면 성전 미문 앞에 장애인이 병 나은 것, 고침 받은 것, 하나님 만난 것,
이 하나의 사건이 
"이런 큰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큰 계획, 회복의 '표적 sign' 이라는 거죠. 단순히 한 명 병 고친 게 아니라요.

그래서 선교적 교회, 하나님의 선교라는 것은 
우리 교회만 있는게 아니라
이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그 큰 그림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게, 선교적 삶인 거예요. 

오늘 내가 여기서 은혜 받는 것, 
우리 교회를 주신 것, 이게 다 하나의 점인데,
그 점들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그림, 하나님의 선교)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 큰 그림이 없으면, 그 점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죠.
이렇게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 나를 발견해 나가야 되는 겁니다. 

나는 지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걸 지금 베드로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한 앉은뱅이의 치유사건을 통해, 설교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씩 등산 가서 길을 잃는 사람들 있지요.  
국립공원은 안내문이 잘 만들어져 있지만,
보통 산에 들어가면, 초행인 사람들은 길을 잃기 쉬워요. *등산 앱이 없을 때
산 중에 들어가면, 사방이 다 보이는 게 산 뿐이라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어려워요.

산속을 7시간 8시간 돌아다녀도 못 빠져 나오는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런 거예요.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몰라서 그런 거예요.

남쪽으로 가야 되는데 북쪽으로 가고요. 
한참 왔다고 생각했는데 뺑뺑 돌고 그러잖아요. 마치 사막 속을 헤매듯이요.

그게 지금 한국교회가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한국교회가 힘든게 뭐냐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계에 대한 진리라면 
그 진리는 반드시 나에 대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그렇습니다. 구원의 진리도 그렇습니다.

그 큰 그림이, 내 개인에게도 적용이 되는 거죠. 내 구원을, 그 큰 그림 속에서 봐야 되는 거죠.  

지금 베드로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아브라함부터 이어오는 만물의 회복' 이야기를 쭉 하고,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는데, 

결국에는 그 얘기가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하면, 
이 사람들에게는 '여러분이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13~15

그렇죠. 사실입니다. 그들을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그러나 그 정죄가, 정죄에서 끝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 은혜 자리에서 다시 어디로 갑니까? 사명의 자리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이 말씀의 결론에 보면
'이 표적(세미이온)으로 병 나은 사람이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4:22

그런데 성경에 '기적'이라는 말과 '표적'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뜻입니다. 
기적은 정말 놀라운, 초자연적인 일이고요,

표적은 '세메이온'이라는 말인데, 영어로 Sign 이죠. 

그 표적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사건'   
그거를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앉은뱅이가 일어난) 표적은 뭘 가리키는가 하면, 
'만물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만물의 회복이 뭐예요?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과, 모든 질병과, 원치 않는 이별, 아픈 것들, 
서로 상처 주는 것들이 전부 다 없어지는 완전한 회복이, 
즉 '만물의 그 회복(구원의 완성)이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라는 말로 한 걸 봤을 때  :21  
아직 모든게 다 회복된 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나았지만, 사도행전에도 모든 병자가 다 낫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의문점을 같습니다. 
'아 그때는 병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는데, 요즘에는 왜 그런 일이 드물죠?' 

요즘에도 기적적인 치유는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모든 병자가 다 일어난 것은 아니에요. 
모든 장애인이 다 고침 받은 것은 아니에요.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경우도 있었지만, 
사도행전에서도 그건 굉장히 예외적인 사건이고요.
죽은 자가 모두 다 일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성전미문의 이 장애인이 나았다는 것은 표적이다 라는 말이죠.
이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이요 '요이 땅'하고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서에 보면, 맨 처음 무너지는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활 한번 안 쏘았는데 뺑뺑 도니까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성들은 어떻게 정복했습니까? 또 뺑뺑 돌았습니까? 
기도하니까 무너졌습니까? 아니죠. 진격해서 싸웠어야 되는 거예요. 
피를 흘리면서 싸웠어야 되는 거예요. 뺑뺑 돌면서 무너지게 한 것은, 여리고 성만 그랬죠.

사도행전에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지만, 모든 병자가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에 3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늘 언제나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에요. 
스데반은 한 번 설교하고 바로 돌에 맞아 죽었어요.

 

여러분 선교지에 가면요. 아시아의 오지나 아프리카에 가면,
지금도 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병자가 낫고, 성령충만하고, 말씀에 아멘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설교할 때, 30분이 지나면 대부분 졸게 만드는 그런 설교자도,
제삼세계나 오지에 가서 설교하면, 설교를 다 마쳤는데도, 
거기 원주민들이 '계속 설교해 주세요. 또 계속 설교해 주세요' 하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거기서는 2~3시간 설교할 때가 예사죠.

그 땅에서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역사하십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는
선교 초기에 하나님이, 그 땅이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땅이 되었음을 (표적으로) 선포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개인적으로 예수 믿어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요.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이 많으실 거예요. 
'내가 처음 예수 믿을 때, 막 열심히 와서 은혜받고 할 때,
기도 응답이 신기하게 잘 이루어져요. 
정말 하나님이 별별 희한한 것까지 다 응답해 주세요.' 

그런데 '예수 오래 믿으니까, 그런 일이 잘 없네요.' 하는 분들 계실 거예요. 
이게 뭔가 하면, 내 인생을, 그때 특별한 기도 응답들이 뭔가 하면
'내 인생을 하나님이 다스리기 시작하셨다'는 표적이에요. 싸인이에요. 보여주시는 거예요.  

근데 그 다음에는 기적만 바라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제 시작되어야 돼요. 

표적, 싸인이 뭔가 하면요. 
병자가 낫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은, 
이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에요.
그때 그곳에서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싸인(맛보기, 예고편)이에요.

학교 종이 땡땡땡 하면, 수업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가서는 선생님 말을 들어야 돼요. 
그럴 때에 그 교실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천둥벌거숭이 같은 개구쟁이들이 점점 의젓한 학생이 되어가고요. 
정말 뒷골목에서 왔다 갔다하며, 그냥 뭐 놈팽이 같은 애들도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실력자가 되고, 시대의 리더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학교라면,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예인 것입니다. 
본문의 미문 앞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이 '학교 종이 땡땡땡'인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표적(싸인)이죠.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사는 것입니다. 
19절에 '그리고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 '새롭게 되는 날'은 무슨 말인가 하면,
21절에 '만물의 회복'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그때 가면 모든 아픈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병이 정복되고요. 
모든 악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그날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9절에 '새롭게 되는 날'이라는 말은,
완전히 만물이 새롭게 될 그 미래의 은혜의 일부를, 
지금 오늘 여기 누린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과거에 수박을 살 때, 큰 수박 한 통이 있으면, 한 조각을 먼저 맛보잖아요.
그처럼 지금은, 그 회복, 만물이 새롭게 되는 한 조각 맛을 보는 것입니다.
그 표적이, 앉은뱅이가 나은 것이고요.

△작년에 한국에서 꽤 많이 달린 책 중에 <퓨처 셀프>라는 자기계발서인데요. 
거기에 보면, 일부 새겨들을 만한 충고도 있어요. 

'성공하고 싶으면 미래의 나를 그려 보라'는 거죠. 
5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보고, 
완전히 미래의 나를 빙의해 가지고, 
그 시각으로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이 나온다는 거죠. 

여러분, 이런 충고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도움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40년 이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는데,
누가 그냥 업어서 거기에 데려다주면, 거기에 앉아서 하루 종일 동냥하다가,
저녁에는 또 업혀서 집에 돌아가서 자고... 그렇게 일평생 동냥만 하고 살아왔는데, 
그 사람에게 가서 '10년 후에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보세오. 희망을 가지세요' 
이게 말이 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마치 본문의 앉은뱅이처럼, 오늘날 한국에, 이런 자기계발서의 내용이 
적용 안 되는 청년들이 너무 많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 네 모습을 그려보고 희망을 가지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속이 답답해지는 친구들이 너무 많을 거예요.

'네 미래를 그려보라' 말하는 순간에 
'무슨 미래입니까, 오늘 하루도 살기가 팍팍하고 힘든데...' 

구정 명절이 지났지만, 명절임에도, 아니 명절이어서 더 슬펐던 가정들도 있을 것입니다. 
'퓨처 셀프' 스스로 미래를 그려 보라, 뭐 나름대로 좋은 말이에요.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이상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게 은혜예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은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나 스스로 셀프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은혜,
한국 사람들이 잘 아는 말 '물은 셀프입니다' 식당에 가면 볼 수 있죠.

식당에서 물은 셀프로 떠 마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셀프로는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아무리 퓨처셀프를 그려 보려고 그래도, 나에게서 나올 수 없는 그것을,
그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예는, 본문의 장애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퓨처 셀프>가 아니라 <퓨처 그레이스>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 책 제목이기도 하죠. '미래의 소망' 
우리 인생이 다하는 날,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그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원치 않는 이별, 눈물로 헤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모하는 주님 품에 안겨서, 영광을 누릴 은혜입니다. 

이것이 만물의 회복이거든요. 
그때가 되면 다시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갑질하고, 업신여기는 게 없어질 것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 눈물 흘릴 일, 전쟁할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 날을 향해서, 언젠가 만물이 회복될 그 영광을 바라보고, 
그 영광의 한 조각을 (수박 한 조각처럼) 오늘 여기서 은혜로 누리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롭게 되는 날인 줄 믿습니다.  :19 *설교 제목

성전 미문의 장애인은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을뿐 아니라 
손도, 자신의 손으로 사도를 붙잡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게 진정한 회복입니다.
이제 더 이상 흘러가는 대로, 사람들이 나를 그냥 업어다 갖다 주는 대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눈빛도 바뀌었을 것입니다.
떨구었던 고개를 이제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손으로 하는 일이 바뀌고, 
의지가 바뀌고, 꿈이 바뀌고, 실천력이 바뀌고, 소망이 바뀌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회복의 능력입니다. 

우리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는 생명의 능력이 그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 은혜로 매일매일 새로운 삶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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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저는 이 장면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를 떠올립니다.

요즘은 뇌과학이 발달했어요. 
위 그림에서 '하나님의 뒷배경' 부분이, 인간의 뇌를 그린 것 같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뭐 화가가 나름대로 해부학에 꽤 조예가 있었다는 말도 있고요. 
그러나 뭐 잘 모르겠고, 어쨌거나 이 미켈란젤로가 대단한 영감이 있는 천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 손을 좀 눈여겨 보고 싶어요. 
하나님과 사람의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닿을락 말락 하는 그 순간을 그렸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은 다가오십니다. 터치하고 싶어 하십니다. 
의지를 갖고, 속도감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담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냥 축 처져 있죠. 
손가락이 닿던지 말든지, 하나님 나한테 오시든지 말든지 별 성의가 없어요. 
여러분, 성전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의 손이 이랬을 것입니다. 

 

 

주2) 중략된 부분

여러분 인간의 경험들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경험 그 자체는 하나의 점과 같아요. 
이 점이 점들이 연결될 때, 이 경험과 저 경험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병이 나았다.. 사실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요즘 말로 데이터입니다. 
데이터가 있지만, 여러분 데이터 자체가 의미를 만들진 않습니다. 
해석이 필요하죠. 

행4장에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나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여기에 몇 가지 팩트,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대 지도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저 사람이 병이 나았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사도들은, 시골뜨기들, 별로 공부도 못한 사람들인데 
기막힌 연설을 해서 예루살렘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예전에 '죽은 예수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인 줄도 아는 거예요. 
그리고이 병나은 이 사람이, 이 시골뜨기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것도 보고 있는 거죠.

그 지도자들은 꽤 많은 정보가 있었죠. 그런데 '이상이 여기며, 어떻게 할 줄 알지 못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이 사실과 저 사실이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의 경험들 그 자체로는 그렇습니다. 
해석되지 않은 경험은요. 필요없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았다, 종교적인 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은 하나의 점일뿐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그 경험이 강렬한 거 같아도요, 희미해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 그런 사람들 가끔씩 아실 거예요. 저도 많이 압니다. 
고등부 때 청년부 때 은혜 체험하고요. 방언도 받고요. 
막 밤새서 기도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심지어는 그러면서도 아예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엄청나게 심각한 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나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다 그거보고 은혜 받았는데, 
정작 본인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그랬던가? 우연이었겠지..'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체험 그 자체가 믿음을 만들지 못합니다.
체험을 했으면, 그 체험을 안고 말씀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 안에서 이 성경이 어떤지를 배우면,
그 성경 안에서 내가 누군지를 발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아무리 세상을 설명하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해도요. 
결국에 내 마음은, (믿음이 없으면, 말씀이) 내 마음 문 앞에 와서 두드리다가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주3)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를 아주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그 속에는 이런 요소들이 다 포함되죠.
-회개와 세례받음
-죄사함과 성령받음
-하나님의 백성이 됨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교에 동참함

그래서 여러분, 미문에 앉아 있던 이 사람에게 베드로가 다가가서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에 일부로 포함됩니다. 

선교사들이 어떤 나라에 가서 병원 세우고 사람 고치는 것도, 그게 선교예요. 
여러분, 병원 세우고, 학교 세우는게, 
이게 전도를 스무스하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진짜 선교는 전도해서 제자 삼는 것이지만요.

선교가 뭐예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하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전체 사역이 선교이기 때문에 
병원 세워서 사람들 병 고치는 것도 선교이고요. 
학교 세워서 교육하는 것도 선교이고요. 
배고픈 사람 빵 나눠주는 것도 선교이고요. 
목마른 사람을 위해서 우물 파는 것도 선교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개념

뿐만 아니라 폭정과 억압에 시달리는 사회에 들어가서 민주화를 도모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다 선교입니다. 
나아가서 자연을 보호하는 것,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그것도 여러분, 이 고통받는 피조물의 탄식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하나님이 그만큼 크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교'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다음 주부터 사순절 '탄소 금식'을 하는 것도 *탄소 배출을 가급적 줄임  
이게 선교적 과제로 고백하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선교할 일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근데 모든 걸 다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개념을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게 좋은 일이긴 하나, '복음전도-회심-변화-구원'의 전통적 본래적 의미의 선교를 희석시키거나, 
선교사역에 투입하는 힘을 분산시켜 버려서, 본래적 의미의 선교가 잘 되지 않게 만든다는 우려죠.
그런데 제3세계 해외선교는, 구호사역, 의료사역, 문화선교와 병행해서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복음전도만으로는 안 먹힌다는 거죠)

그래서 교회가 선교 과제를 잘 헤아려 보아야 됩니다. 
지금이 세계의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 
세계의 흐름을 살펴봐야 됩니다. 연구도 해야 되고요. 대화도 해야 되고요. 
컨퍼런스도 해야 됩니다.  *복음의 시대정신 https://rfcdrfcd.tistory.com/15981490

그래야 어디에 우물을 파야 될지, 어디에 학교를 세워야 될지, 
인권 운동을 해야 될지, 가정사역기 중요한지, 
방송국을 세워야 할지, 인터넷 환경에서 어떻게 앞으로 선교를 해야 될지... 

교회 세우는 것은 물론 그게 선교의 중심이죠.
그것과 아울러 현지 사정을 듣고, 연구하고, 조사하고, 대화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러면서 선교의 방향을 모색해야 되는 거예요. 
(모든 분야에 문어발 식으로 다 뻗칠 역량은 안 되니까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죠)

△그거 하려고 2024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 '제4차 로잔대회'를 하는 겁니다. 
총체적인 선교에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뭘 먼저 해야 되는가? 무엇이 중심인가? 
어떻게 선교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그걸 세계의 교회 대표들이 모여서, 토의하고, 질의하고, 기도하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