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기다린 구원자 요5:46, 신18:15 인터넷설교녹취
※신학 전공자 분들만 꼭 읽어 보세요.
<내용 요약>
모세는 지금으로부터 3천 5백년 전 당시 자기가 살던 시대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출애굽 (어린양 피의) 구원을 미리 들여다보고 감격해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냥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이, 당장 주어진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았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사역을 다 내다보면서,
자신의 출애굽 사역이, 주님의 구원 사역의 일부임을.. 멀리 내다보면서,
여유를 갖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서.. 자신의 출애굽 사역을 이끌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세처럼,
주님의 구원 경륜의 구속사역을 멀리 내다보면서,
그 승리의 기쁨으로, 그 놀라운 구원 사역의 기쁨으로.. 사역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모세처럼,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깨달아짐으로써,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모세처럼, 그 구원 경륜 속에 내가 동참되어지고,
내가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기쁨이 끊이지 않고, 소망이 끊이지 않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과 열정이 샘솟듯이 늘 솟아나야 하겠습니다.
◑서론
▶<모세가 기다린 구원자> 라는 제목으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요5:46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모세가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위 요5:46절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나에 대해서, 그 모세오경을 기록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가 모세오경을 보물찾기 하듯이 빈틈없이 잘 살펴보면,
나에 대해서 기록한 말도 간혹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모세오경 전체가 나에 대한 기록이다.’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요5:39절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눈을 씻고 쳐다봐도
모세오경에서, 예수님의 흔적이 등장하는 것을, 잘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는 성경을 뒤지면서,
모세오경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지,
그 사실관계를 한 번 밝혀보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그리스도와 구원 중심으로 읽지 않고,
자기 현실 삶의 가이드, 또는 자기계발서적으로서
‘뭐 내게 도움 되는 구절 없나?’ 하는 눈과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됩니다.
물론 성경이 그런 삶의 지침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부수 효과’이지, 성경의 주된 주제가 아닙니다.)
그 중에 한 본문이 신18:15절입니다.
◑1. 모세의 설교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기서 ‘그’가 누구입니까?
모세가 살아있던 당시에, 이 말씀을 듣던 출애굽 백성들은
혹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지칭한 것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물론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모세가 출애굽을 인도해 낼 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애굽을 내다보면서, 자신은 그 모형으로서 출애굽을 인도해내었다>입니다.
이 주제를 기억하시면서, 계속 설교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모세의 말을 들었던 당시의 히브리 민족은,
위 구절의 ‘그’를.. 여호수아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의 증언을 보면, 모세가 이 말을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 것이었다는 것이, 아래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의 해석 및 설교
행3:22~24절에,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가 일어나서 외친 설교에,
위 신명기 18:15절과 관련해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2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3
위 구절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사무엘 때부터 이어진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 때(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가리켜 말하였다. :23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미리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모세와 사무엘 이후의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 때를 가리켜서 말했다.
베드로는 모세가 ‘내 뒤에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이다.’
라고 말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 것이다’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스데반의 해석 및 설교
행7장에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스데반도, 모세와, 베드로의 설교와 맥(흐름)이 일치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약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행7: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스데반 집사는 이 설교를 마친 후에,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모세가 말씀했고, 신18:15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 분을 당신들이 무지해서 돌로 쳐 죽이지 않았소? .. 라고 설교하니까,
그 책망에 유대인들이 너무 분노해서, 돌을 쳐서 스데반을 죽인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보통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깨달았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깨달았고,
베드로가 깨닫고 설교했고, 스데반 집사가 깨닫고 설교한 것을,
오늘날 성경을 수없이 오래 공부한 오늘날 우리들이 못 깨닫고 있으면.. 이거 큰일입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계속 계시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내 삶에 현실적으로 보탬이 되고, 오복을 주는 말씀’으로 읽고 있다면, 큰일입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모세는 이미 알았습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 분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또다른 출애굽(어린양의 피를 통한 구속샤역)을
그분이 오셔서 준비하실 것을, 모세는 알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즉 수 천 년의 세월 전에,
모세는 벌써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들여다보고 깨닫고 감격스러워하는 (적용, 우리도 깨닫고 감격해야)
그런 세월을 보냈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마당에서 어떻게 등장을 하시는지,
모세의 기록 속에 어떻게 예수님이 거기에 계시되어 있는지,
그 흔적을 계속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모세의 이름>
출2: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라는 이름의 뜻이 ‘물에서 건져낸 자’라는 뜻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어근이 ‘마샤’인데, ‘끌어낸다 to draw’ 라는 뜻입니다.
▶우연의 일치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첫 제자들을 부르실 때,
초청하시는 부르시는 그 말씀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
즉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물에서 건져내는 to draw 사명자로 너희를 만들어주겠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동일한 사명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인데, 그것은 물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구약의 출애굽, 홍해구원 사건에서 미리 그림자로 계시되었습니다.
모세는 아마도, 자기 이름이 모세이고,
모세의 뜻이 무슨 뜻인지 알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to draw
특히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는, 자기의 사명이, 이미 자기가 태어날 때,
자기 이름(끌어낸다)을 통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한 일이, 출애굽 백성들을, 홍해에서 끌어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인생의 말년에, 모세는,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으니, 신18: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지상에 나타나셔서, 구원사역을 하실 때,
그 분도 ‘물에서 건져내는 사역을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을,
그림자로서 모세는 깨닫고,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사역을 먼 장래에 오셔서 하실 것을, 이미 알고,
그 마음속에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9:28절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9:28~29
이 장면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다가
백성들에게 내려올 때 옷에서 광채가 나고, 그 얼굴이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그런 모습으로 내려온 것을, 우리에게 기억나게 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 :31
위 눅9:31에서, ‘별세’란 말의 원어는 헬라어로 exodos 인데
‘떠난다’, 또는 ‘세상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departure
출애굽(엑소더스)때, 모세에게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서 자유민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듯이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서(별세, 엑소더스)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별세한다'는 말을 쓰신 것은
혼자 별세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듯이
주님께서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죽음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표현해주었던 것입니다.
▶출애굽의 시작은 유월절 어린양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각 집마다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라.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건너 뛸 것이다.. 는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사역을 시작하셨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돌아가신 그것을 우리가 기념합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서막이 열리는, 그런 일이 됩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쏟는 그 순간에, 출애굽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세례요한은 너무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 자신이 메시야인가 이렇게 궁금해 하지만,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는 순간에,
이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자신의 삶은 무명으로 살아도, 자신은 어린양 예수를 본 감격,
이 분을 알리는 사명을 맡은 것에 대해서, 너무도 감격스럽게 그것을 외치고 선포하는,
광야에서 목청껏 어린양 예수를 전파하는,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모세도 예수 그리스도가 장차 (완전한) 출애굽을 일으킬 어린양 예수라는 것을 깨닫고,
그 마음속에 감격과, 감사와 기쁨, 그것이 가득찬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았던 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세례요한도 그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바라보고, 기뻐했지요?
오늘날 우리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뻐하고 있습니까?
◑3. <예수님의 광야 40일>의 의미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의 삶속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우리가 찾아보는 그 세 번째 단서가,
이 광야생활입니다. 히브리 민족이 광야생활을 40년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광야 생활의 결론이, 신명기 8: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8: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40년 광야생활의 목적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는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생활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생활을 하도록 하신 목적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즉 여호와를 의지해서 사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시작이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이 되게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을 걸려서 깨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이 깨달은 그 내용을, 예수님이 압축해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40일 금식하신 그 기간은,
히브리 민족이 40년 광야생활 하면서, 결국은 얻게 된 그 결론,
그것을 예수님이 완성하신 그 자리에서부터
예수님의 사역이 출발하고 시작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의 완성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4. 한 가지 단서를 더 살펴보면 <성막>입니다.
히브리 민족이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 공로로
바로의 압제를 벗어나서 광야 길로 들어옵니다.
40년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만나를 먹고,
정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데,
그들의 삶의 여정 속에 하나님께서 성막(장막)을 두셨습니다.
그 성막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상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8:5절에 이런 기이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8:5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face to face로 대면했습니다.
거기서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자세하게 받고 내려왔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길이가 얼마, 높이가 얼마, 어떻게 만들라고 자세하게 지시했는데,
그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환상중에 천국의 실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막은 그 천국의 본 것의 모형(축소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약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막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압니다.
결국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하늘의 보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신 것임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천국과 그 속에 계셨던 성부, 성자, 성령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 그림자(모형)로 성막을 지은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요1:14절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영어로 dwell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시매..’ 원어적으로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서 33년을 우리 가운데 사신 것을,
요1:14절은, ‘성막을 만들고, 우리가운데 계셨다. 예수님 자체가 성막이었다.’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광야의 성막이 그 그림자였습니다.
이것을 모세가 미리 들여다 본 것이고,
그 그림자로서 출애굽 당시에 성막을 만들어,
성막을 앞세우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서 행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성막)과 함께 행진했고,
예수님(성막)을 모시고,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간 것입니다.
▶정리하면
-모세의 설교에서,
-모세의 이름에서
-출애굽, 홍해를 건넌 역사에서
-광야 40년을 통해서,
-또 그 속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요, 예표요, 모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출애굽 지도자 사역을 감당했고,
자신은,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의 예표적 사역을 하고 있으며,
‘내 뒤에 나와 같은 선지자(예수님)를 일으키실 것을 내다보았다’는 것입니다. 신18:15
(그러면 오늘날 성경을 가지고 공부하고 읽고 있는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오경이, 또한 성경전체가,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모세는 그것을 내다보며, 사역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또한 사역을 하는 중에,
자꾸 우리 삶에 뭔가 보탬이 되는, 성공적인 삶의 교훈을 얻으려 하고,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큰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을 놓치고,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땅에 살적에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으로 살았습니다.
출애굽 역사에서 정말 민족의 영도자로 무수히 많은 험산준령의 고비고비를 다 넘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가나안 땅의 문턱까지 인도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포함해서 성경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게 되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는 <이 땅의 출애굽>을 주도하는 인물로 살았지만,
그 가슴속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일으키실 <또 다른 미래의 출애굽>이
있다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그것을 감격해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주제
결국 모세도 자신이 지금 주도하는 그 출애굽 말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일으키실 또 다른 예수님의 출애굽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마침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가 오셔서,
예수님의 출애굽에 대해 의논하는 그 자리에 모세가 있었는데,
그때 아마도 모세는 이렇게 얘기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짐작컨대)
‘예수님 제가 이 땅에 살 때, 예수님의 출애굽을 미리 보고 참 감격스러워 했는데,
이제 이 변화산에 와서 예수님과 더불어서 예수님이 일으키실 출애굽에 대해서,
함께 의논하는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무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 안 나오지만 이런 얘길 아마 했을 것입니다.
▶히3:5~6절에 이런 기이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5절의 내용은,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시키는 대로, 신실하게 다 했다..
그것은 모세가 주도한 출애굽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집의 주인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적용 / 우리도 지금 출애굽 중, 광야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기다렸던 구원자, 그분은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인류역사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장막을 치셨고 요1:14,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림을 통해서, 출애굽의 역사,
즉 어린양의 피로 구원해 내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광야 생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마치 히브리 민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광야길로 들어선 것처럼,
▶1. 오늘날 우리들도, 출애굽 여정에,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읍시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앞장 세워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영적인 출애굽의 삶을, 그 여정을 이미 우리는 시작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가나안을 향해서 갔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이제 행진하고 있는
영적인 출애굽의 도상에 우리가 다 합류한 구원받은 백성들인 것입니다.
모세 당시의 가나안 땅은, 우리가 들어갈 천국을 의미하고요...
우리는 광야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광야에서 여러 시험을 다 이겨야 하겠습니다. 괜히 불평불만 하다가 징계 당하지 말고요...
모세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습니까.
이 땅에 출애굽, 죽음과 절망과 그런 아픔과 그런 노예살이 밖에 없었던 애굽의 삶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 내서, 광야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싸움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120세에 소천하기까지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이 삶이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펼쳐놓으신 장막(성막)과 함께 거하는 사람들이고,
그 안에,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심을 본 것처럼,
그 삶을 우리가 살아내야
우리가 광야교회를 살아가는 성도들다운 모습이 될 줄 믿습니다.
광야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싸움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도,
불의가 없고, 거짓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미워하고 죽이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일일이 싸워서 승리해야하는 과제가, 싸움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 광야 길을, 예수임을 앞장세우고 가는 이 길에서, 우리가 싸워야 되는 싸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많은 싸움, 전쟁을 싸웠습니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나안 문턱까지 갔고,
결국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앞장세우고 그 분의 영도를 따라서 광야 길을 뚫고 나가는,
예수님의 출애굽에 동참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실 때,
은혜와 진리가 이 땅에 충만한 것처럼,
지금 우리도 예수님을 모시고 나아갈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드는 일에,
우리가 힘과 노력을 제대로 한 번 기울여보는, 그런 2013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동시에 우리 가슴에는, 예수님께서 일으시키는 출애굽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영원한 세계로 진입하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우리가 하늘을 생각하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그런 하늘이 열려있는 그런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세가, 구원자를 기다리면서 수 천 년 역사 바깥에서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미리 들여다보고 감격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우리가 성경을 배워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모세가 바라보고 느꼈던 것과 같은 그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깨달음 속에서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이것을 우리가 늘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모세가 수천년 세월 바깥에서 먼저 들여다보고
감격해하고 기뻐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 예수 그리스도의 출애굽을
우리에게는 이미 성경을 통해 다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하늘이 열리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깨달아짐으로써,
출애굽의 지도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기쁨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소망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이 땅에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과 우리의 열정이
샘솟듯이 늘 솟아나는 우리 성도들 다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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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위 말씀은 예수님의 새로운 출애굽운동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그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는 것은 혼자 외롭게 올라오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는 광경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의 세계, 사랑이 충만한 평화의 나라로
저와 여러분,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 새출애굽을 시키는 일을 하시는 광경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요단강에서는 엄청난 큰 광경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한 사람이 성령을 받고
한 사람이 용서의 세계로 들어온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속에서 함께 용서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믿어야합니다.
(이문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