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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를 품는 흩어진 그리스도인

LNCK 2024. 4. 2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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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24 [설교] “사마리아를 품는 흩어진 그리스도인"  - YouTube

◈사마리아를 품는 흩어진 그리스도인    행8:1~15           

◑도입 / 이민자의 애환을 서로 나누다

 

최근에 한 속회(구역)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처럼 교우님들과 가까이서 교제할 수 있는, 은혜로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민자로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어려웠던 시간들을 주로 이야기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왠지 '딥 토크'가 될 것 같았습니다. 
고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 당 제한시간을 정했습니다. 
안 그랬더라면 밤새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습니다. 

교우님들의 나눔 중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어려웠던 일들을 들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 들리는 영어, 또 경제적인 어려움, 신분 문제 등, 각 가정마다 각종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분들에게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서로 몰랐습니다. 

어떤 가정은 미국에 오기로 결정한 후에, 3개월 만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훌쩍 떠나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미국에 오기로 결정한 후에 몇 년이 지나도록 오지 못하다가 
계획보다 훨씬 늦게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급히 왔든 늦게 왔든, 참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남편들의 고백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각 가정의 이민사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각자 다른 시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이곳으로 건너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배경과 과정을 거쳐서, 미국 동부 지역에 뿌리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방식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자기가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입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8장의 전반부의 그 내용들 중,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1. 흩어짐을 통해, 복음이 이방에 전파되다

 

사도행전 7장 후반부에는 스데반의 죽음 사건이 있었습니다. 
8:1절부터는 스데반이 순교한 그날에 있었던 일들이 나옵니다. 

순교 직후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은 바로 박해였습니다. 
'그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  8:1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순교였던 스데반의 죽음은, 기독교 박해의 서곡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임당한 그날부터,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는,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박해가 아니었습니다. 
동족 유대인들로부터의 박해였습니다. 

'박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직역을 하면, '뒤쫓김을 당함, 추적을 당함, 괴롭힘을 당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박해의 예가 중간에 나와 있습니다. 
당시 박해 전문가, 최고의 박해자였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했던 일입니다. 

그가 했던 일은,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감옥에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끈질기게 추적하고 좇아갔습니다. 적당히 봐주지 않고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사울은 박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임당한 바로 그 날부터, 이런 박해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박해와 함께 일어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설교의 전반부에서 주목해 보려는 일입니다. 
8:1b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바로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의 "흩어짐"입니다. 
여기 1절에 나오는 '흩어졌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스페이로 라는 말입니다. 
'넘어서, 통하여' 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 와 
'뿌리다' 라는 스페이로 가 만났습니다. 

즉 디아스페이로 는 '흩뿌리다, 두루뿌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씨앗을 널리 흩뿌리다, 파종을 두루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1절에 나오는 '흩어졌다'라는 말은 수동태로 쓰여져 있습니다. 
즉 흩어짐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라는 의미입니다. 
부득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강제적인 일이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박해, 그리고 흩어짐, 
이렇게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이뤄집니다. 
4b절 '그런데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1절에 나왔던 '박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이 4절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이 흩어져서 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원어로 '유앙겔리조', 영어로 Evangelize입니다. 

박해로 흩어졌던 사람들은, 곳곳마다 두루 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파종하듯이 뿌렸습니다. 

8:1절, 8:4절의 '흩어진 사람들'은 나중에 11장에 가서 한 번 더 나옵니다. 
그들은 멀리 베니게와 구브로까지 갔습니다.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시작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지역에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늘 하나님을 모르는 부정 unclean 한 대상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도, 이방인에 대한 관점이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후에 고넬료라는 이방인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처음부터 쉽게 흔쾌히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번 말씀을 하신 후에, 겨우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스스로는 가지 않았을 만한 곳(사마리아와 이방 땅)들을, 
박해를 받고 흩어져서야 비로소 가게 되었습니다. 

페니키아(베니게)와 키프로스(구브로) 
그리고 나중에 최초의 이방인 교회이자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인들은, 이방 땅, 자신들이 정착한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물론 안타깝게 스데반은 순교를 했었고, 이어지는 박해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인들이 흩어지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게 잘못되어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짐 이후에, 이방 땅에서의 복음 전파가 놀랍게도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지금까지 8장에서 첫 번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흩어짐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19세기 미국 부흥 운동의 뿌리가 된 작은 기도회 (펀 글)

19세기에 미국에 큰 부흥 운동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이 그 부흥 운동의 뿌리를 추적해 보았다.

 

찾고 거슬러 올라가 보았더니

예레미야 램피에르라는 사업가가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뉴욕의 월스트릿 근처의 작은 교회에서

처음에 6명 정도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서 이 숫자는 20명으로 늘어났다.

또 조금 지나서 40명으로 늘어났다.

그런 기도회가 굉장히 오래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도 모임이 커지자 챔버스 스트릿의 버튼 극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거기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에 경제공황이 찾아왔다. (핍박은 아니지만, 경제적 궁핍으로 시작되어 흩어짐)

그 때 이 극장 정오기도회는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다.

작은 30~40명이 모여서 기도했는데, 그 모임이 자라서 나중에 3천명이 모였다.

 

여기 뉴욕에서 뜨겁게 기도했던 사람들이 북쪽 보스톤으로 가서 기도운동을 벌였다.

남쪽 필라델피아 워싱턴D.C.흩어져서 거기서도 기도운동을 일으켰다.

 

서쪽으로는 시카고흩어져 뻗어나갔다. (동쪽은 대서양)

시카고에서도 뉴욕과 똑같이 (메트로폴리탄) 극장을 빌려서 기도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거기 시카고 기도운동에 참석했던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드와이트 무디였다.

그 기도의 불길이 당시 21세 청년이었던 무디 에게까지 번져, 그의 구령의 열정에

불을 당겼다.

그 곳에서 은혜 받고 변화 받은 무디, 한 시대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를 통해 19세기 미국 전역에 부흥 운동이 계속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런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의 출발이 어디인가?

뉴욕의 월스트릿 근처의 작은 교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영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작은 기도회에 소망을 건다.

작은 기도회가 자라서, 나중에 큰 나무가 되고, 큰 성령의 불길로 타오를 것을 내다본다.

 

◑2.  이어지는 내용은 <사마리아 전도>입니다. 

5절에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8:5

행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 내부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세워졌던 7사람의 지도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립이, 8장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빌립 역시 예루살렘에 있다가 흩어졌던 무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앞서 말씀드린 이방지역이 아니라,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악한 귀신이 쫓겨나기도 하고, 
장애인과 환자들이 고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도들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그들 중 대표 사도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빌립만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도 사마리아로 내려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세워졌던 오래된 벽을 허문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을 받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요8:48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사마리아 사람이란, 거의 귀신 들린 사람과 동급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4장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말을 건넸을 때도 그녀는 많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을 무시하고 상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 역시 좋은 마음이었을 리 없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깊은 반목과 증오와 적개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당시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눅9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마을을 지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유대와 갈릴리 지역을 지나다닐 때 
그 중간 육로인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요단강 둑길로 우회해서 건너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곤 하셨습니다. 

눅9장에서 예수님께서 또다시 사마리아 마을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곳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요한이 예수님께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눅9:54 

요한은 왕하1장에서 엘리아가 했던 일을 소환했습니다. 
엘리야가 사마리아 왕의 군사들을, 불을 내려 태워버렸던 그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장면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자처럼, 요한은 격렬하고 과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렇게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만 해도 
사마리아인들을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랬던 요한이 본문 행8장에 와서,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직접 내려갔습니다. 찾아간 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8:15

요한과 베드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성령을, 그들도 똑같이 받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구하였습니다. 
여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8:15

이 구절이 한글 성경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원어로 읽으면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사도라는 의무감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들을, 예전처럼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진실한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8:17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기도를 한 후,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요한은 사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으로 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전역을 마음에 품고,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상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마리아 선교>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유대 예루살렘에 있던 빌립이 먼저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8:5

이어서 베드로와 요한도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8:14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령을 받았고, 곳곳마다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순서를 보면서,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구절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사도행전 전체 구절을 한 번에 보여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은 충실하게 이 순서에 맞춰서 진행됩니다. 
1장~7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9장부터는 이방인의 사도(바울)의 이야기와, 첫 번째 이방인의 회심(고넬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중간인 8장에 사마리아를 빠뜨려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꼭 거쳤어야만 했습니다. 사마리아를 꼭 품고 갔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까지 이르러' 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땅끝까지 가기 전, 빌립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사마리아를 품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8장의 전반부는 크게 두 주제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흩어짐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였다. 
-땅끝까지 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품었다... 는 주제였습니다

◑적용 / 그렇다면 이제  본문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초대교회 안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였던 사탄의 공격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왜 스데반이 죽었어야만 했는가?' 
'왜 이렇게 심한 박해가 일어나는가?' 
'왜 우리는 집을 떠나서 도망가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신가?' 라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상 못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스스로 움직일 리 없던 이들을 흩으시고, 각곳에 전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사탄의 계략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과 과정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가운데도, 주님은 동일한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을 떠나서,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 
또 재외국민들을 통해, 본문과 같은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초반에 나누었듯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미국에 살게 된 사연은, 우리 각자 다양합니다. 
우리 중 어떤 분들은 '지금껏 왜 그때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 
'잘될 것 같았던 그 계획은 왜 어그러졌을까?, 왜 지금의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질문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흩어진 성도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모양으로, 또 지금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예전에 전혀 몰랐다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상 못할 일을 우리에게도 행하셨습니다. 
제가 교우님들께 많이 들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미국에 안 왔다면, 신앙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한국에만 있었더라면, 지금까지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을 리 없을 거란 말입니다. 
이역만리 떠나온 이방인으로 살다보니,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고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까지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참 농부이신 하나님의 손에 뿌려진 씨앗처럼, 
우리 각자가 이곳에 '뿌려진' 이유는,   *흩어지니라 8:1참조
우리 역시 이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라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미국)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는 
이곳에서 우리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복음 전파의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삶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에 와서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갈등, 유산이나 가족의 죽음 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시간, 
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인내해야 될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시기마다, 머문 곳곳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선교지로 보내셔서 만나게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기도 하고, 복음 안에서 교제하며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 때문에 (그 분들 만나라고) 그때 내가 거기에 있었구나, 
내가 거기에 가게 되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이 교회)에 
지금 두신 이유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한국에 있게 하지 않으시고, 
흩어서 옮기신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흩뿌려진 (8:1)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땅끝가기 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품었던 이야기 역시, 
지금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빌립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던 사이였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세워졌던 그 견고한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 벽은 땅끝으로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허물어졌어야만 했던 벽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마리아를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땅끝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꼭 그 전에,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도, 유대인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한 사람입니다. 
내 눈에는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근처에 있지만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는 짓마다, 들리는 소식마다, 나의 인내를 시험하고 분노를 유발시키는 사람입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내 안의 잔잔한 마음 위로 
파도와 쓰나미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데, 누구에게나 한 명쯤은 있을 것입니다. 

빌립과 요한과 베드로가 사마리아에서 했던 일을, 우리도 한다는 말은 
우리도 그 사람과 우리 사이에 놓인 그 견고한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일하실 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관심 없던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은, 용서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스데반도 죽기까지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의 요한도, 예전에는 불로 멸하고 싶었던 그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8:15
기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사람들을 위한, 진실한 기도가 핵심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사역을 했던 R T 켄달 목사님이란 분이 쓴 <완전한 용서>
라는 책에, "완전한 용서의 7가지 증거"가 나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완전히 용서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1) 그들이 나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2) 그들로 하여금 나를 두려워하거나, 나때문에 긴장하게 만들지 않는다. 
3)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도와준다. 
4)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체면을 살려준다. 

5) 그들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지켜준다. 
6) 그들을 한 번만이 아니라, 한평생 용서한다. 
7)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해준다. 

이 내용을 보시고 나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1번부터 7번까지, 내게 해당되는 한 개도 없다고 말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평생 축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를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는 것이 마지막입니다. 
그 사람을 축복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용서가 끝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실 때, 
그 사람 역시, 우리처럼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우리 삶 속의 사마리아 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품고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로, 땅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속회 모임에서 나눴던 다양한 이민사로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흩뿌리신 디아스페이로 하신 디아스포라들입니다. *흩어지니라 8:1
우리 삶 속에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믿게 하시려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 모두를 지금 이곳에 두셨습니다. 
우리 역시 땅끝으로 나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품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진정한 축복, 최선의 기도를 드려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8장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그대로 성취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신 곳에서, 즉 이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또한 우리 주변의 사마리아를 품고, 땅 끝까지 나아가시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함께 "나를 통하여" 라는 곡을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적 잠재력과 역할 https://rfcdrfcd.tistory.com/15975766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 https://rfcdrfcd.tistory.com/8635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