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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

LNCK 2006. 6. 12. 21:51
한 민족 디아스포라는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 - YouTube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  마28:18-20     05.08.07.설교녹취

정민영 선교사

한민족의 근대사를 ‘하나님의 선교’의 사관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과거 수구적, 은둔적민족성

▲원래 우리 민족은 수구적, 은둔적이었습니다.              *수구: 옛것을 지킴
5천년 역사 가운데 한 번도 뚜렷하게 외국으로 진출한 적도 없고
또한 한 번도 외국인들을 뚜렷하게 환영한 적도 없었습니다.

구한말 주변 나라들이 모두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도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할 만큼 수구적, 은둔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열강들은, 민족의 자주적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닫힌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은자의 나라’라는 한국의 별명은
윌리엄 그리피스 William Griffis 목사의 책
"코리아 더 헐밋 네이션" Corea-the Hermit Nation (1882)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별명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데
특별히 북한이 계속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워낙 닫혀있어서요.

현재는 개방적, 진출적 민족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은자의 나라 백성들이 지난 백년 사이에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은둔하던 백성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170여 개 국에 650만 명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습니다.
(인구 7명당 1명이 외국에서 살고 있는 셈)
유학 및 어학연수 붐으로 그 숫자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20년이 된 ‘코스타’도 → ‘코리언 디아스포라’로 관점이 변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유학생들을 위한 집회’에서 → ‘세계로 흩어진 한국인’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해
줄 것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나서 외국에
주재하는 그 자리에서 세계를 위해 공헌/봉사해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각자가 부르심을 입은 대로 따라야할 것임.
베드로는 유대인에게로,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2. 복음을 받고서도 나라를 잃었던 역사의 딜레마

백 년 전 조선이 복음을 최초로 받았으면, 주님께 복 받아 나라를 찾았어야 했는데
도리어 한일합방으로 잃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도리어 어려움이 더 컸습니다.  

당시 정황은 가까이는 일본, 청나라, 러시아와,
멀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서로 한반도를 침탈하려고 경쟁적이었습니다.

이런 풍전등화의 급박한 상황에서 조선 성도들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워낙 국력이 미약했으므로, 기도로 하늘을 바라보는 길 외에
달리 다른 방도가 없을 만큼 처절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먹이감이 된 당시 조선
당시 프랑스와 미국, 영국이 서로 한국의 문호를 열려고 했습니다

1866년 미국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오다 조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프랑스는 미국에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했고, 같은 해 강화도를 침략했고(병인양요),

5년 후 1871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빌미로 미국이 한국 침략하고(신미양요),
그래서 미국은 한미통상수호조약 체결, 철도를 깔고 금광채굴권을 따냅니다.

1885년 영국 함대도 거문도를 3년간 점령, 한반도를 선점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때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연이어 러일전쟁(1904)도 승리해서
동 아시아 지역 맹주로 떠오릅니다.

영국과 미국은 조선을 일본에 주는 대가로, 일본이 러시아를 막아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러일전쟁 중 일본의 전비를 뒤에서 도와줬습니다.

미국은 ‘가쯔라-테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이 조선을,
미국이 필리핀을 갖기로 밀약합니다.
그 결과 조선에는 을사보호조약(1905)이 체결됩니다.

당시 조선은 복음의 신앙부흥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1903년에 원산부흥운동이 일어났고, 기독교인들은 주님께 ‘독립’을 기대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이 없지만, 하나님이 뭔가 해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부터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고,

1910년, 백만인구령운동으로 온 한반도 전체가 복음으로 출렁거리면서
민족의 암울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해주심을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1910년, 한일합방을 맞이하면서, 기대감은 퇴색되고
나아가 배신감, 신앙에 대한 포기 심리까지 생깁니다.

당시 성도들은 문득 예레미야서의 정황과 일치됨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모르는 바벨론에게 침탈당하는 정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냐 같은 거짓선지자는 설교하기를,
“염려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데, 저 안 믿는 바벨론에게 절대 안 망한다!”
백성들도 그런 낙관적 메시지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예레미야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민족을 이방 바벨론에 붙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선뜻 이해는 안 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디아스포라(분산을 통한 복음의 확산)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점은
온 한반도가 복음으로 부흥하던 시점과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선 성도들의 간곡한 기도에 외면하셨습니다. ★
왜요?
디아스포라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요.... ★

◑3. 한 민족 디아스포라(분산)가 시작되다

반만년동안 굳게 걸어 잠겼던 민족이 그때부터 디아스포라를 시작한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 강점이 시작되면서 당시 인구의 1/4이 한반도를
떠났다고 한다. 전무후무한 민족 대이동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조선민족을, 예수를 잘 믿던 민족을,
고난의 근대사를 통과케 하셨는가요?
그때 당시는 하나님의 포석(앞을 내다보는 바둑의 수)을 잘 몰랐습니다.

그것은 우리민족 분산의 시작이었다. 만주, 산동성, 연해주 등지로….
오늘날 같은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백 년 전부터 디아스포라를 겪게 하셨습니다.

당시 신사참배 및 일제 강점 때문에 연해주에 건너갔던 조선인은
약 2백 교회를 그 곳에 세웠습니다.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역시 하나님의 역사
그러던 중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 동포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킵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이렇게 짓누르십니까?’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피신 갔던 사람들은
또다시 피눈물을 쏟으며 수만리 떨어진 중앙아시아 각 처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선교의 큰 그림을 아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도에, 구소련이 붕괴되고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독립하면서
한국 선교사들이 물밀 듯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했고,
그들은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도움과 조력으로, 놀라운 선교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만약 60년 전에 중앙아시아에 미리 진출했던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해방 후 오늘날까지 디아스포라는 계속되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가 싫다며 한반도를 떠났습니다.

경제적 목적으로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갔으며, 중동에도 돈벌러 갔습니다.
복합적 이유로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졌으며,
중남미에 농업이민(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625같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난 사람들도 많다), 미국이민으로 떠났고,
외환법이 풀리면서 해외여행 자유화 물결,
오늘날 유행하는 해외유학….

▲민족성의 DNA가 바뀐 것입니다
지난 5천년동안 은둔, 수구적이던 민족이
→ 이제 진취적, 활동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세계에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민족성의 DNA가 바뀐 것이다. 누가?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수많은 바울과 바나바를 예비하셨고, 지금도 예비하고 계십니다.


◑4.구한말 근대사의 난제는 유대인의 난제와 비슷했습니

▲1. 유대인도 흩어졌다.(는 점이 비슷했다)
베드로전후서등을 포함한 공동서신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를 위해서 쓰여진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헬라어로 디아스포라)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1)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사방에 흩으셨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극악무도한 나라 로마에 의해 나라가 빼앗겼고,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런 정황 가운데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관점과, 메시야 예수님의 관점은 전혀 달랐다. (는 점이 비슷했다)
만약 일제 강점기에 메시야가 조선 땅에 오셨다면,
우리는 그분께 무슨 기대를 했겠는가요?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서 구원할 정치적 메시야로 기대하지 않았겠는가요?

예수님의 5병2어 기적 때 왕을 삼으려 했던 것도 → 정치적 기대가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그가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로 알았노라’
→ 정치적 기대가 있었습니다.

부활 후에도,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기대했다.(행1:6) 그러나
40일 동안 계시면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나라’에 대해서만 가르치셨습니다.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은 “주님, 설마 이렇게 떠나시진 않으시겠죠?”
예수님 대답은 매우 섭섭했습니다; 그런 신경 끄고, 땅 끝까지 복음이나 전해라!
이렇듯 유대인의 관점과, 메시야 예수님의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구한말 조선 성도들의 하나님께 기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관점과 역시 크게 달랐습니다.

▲왜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민족이, 불신 로마에게 침탈을 당했는가요?
왜 그런 수치와 모욕을 허락하셨는가요?
하나님의뜻은 → 디아스포라(흩어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이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초석이 마련되었습니다.

흩어진 그들은 온 세상에 회당을 세워 여호와하나님 신앙을 전파했고,
이것은 후에 사도바울의 복음전도에 크나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열방의 음모는 모두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모략은 굳게 섰습니다.
일본의 음모는 실패했습니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음모로 인해 원자탄 징계를 받았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을 밀어준 죄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에게 크게 당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의 계획(디아스포라, 한민족분산)은,
당시 크리스천들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모략이었지만,
그것은 실패하지 않고, 오늘날 멋지게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베드로
베드로는 이런 고민(불신국가에 짓밟힌 것)을 깊이 생각하다가
어느 날 깨달았다. 유대 민족이 사방에 이렇게 흩어진 이유를…
그래서 디아스포라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너희 디아스포라는 택하신 족속이다. 너희 디아스포라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너희 디아스포라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여기에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대입해봅시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선교적 목적이었습니다.

이방인을 개로 여겼던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들을 사방에 흩지 않았더라면,
과연 바울과 바나바 같은 출중한 선교사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요?
둘은 모두 다소, 구브로의 디아스포라 출신이었습니다.

바울은, 4백년 역사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네트웍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5. 지금도 한민족 분산의 시대는 계속 된다

▲국민 전체가 디아스포라
나는 처음에, 해외 이민자들만 디아스포라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 전체가 디아스포라 세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유학, 지사근무, 해외여행, 단기선교여행
안 갔다 온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해남땅 끝, 지도에도 안 나오는 어느 외딴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엔 평생 어업에 찌들은 거친 피부의 전형적인 한국의 어부인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의 자녀들 중 한 명은 이태리 유학,
또 한 명은 미국에 유학 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적 체질이, 국민전부가, 디아스포라로 바뀐 것입니다.

한민족을 통해 선교를 이루시려는 거대한 대하드라마의 끝자락에
우리가 지금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 ‘한민족 분산의 시대’에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가요?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에 가야할 사람은 누구인가? … 바로 우리들입니다.

▲선교는 릴레이 개념
한때 선교는 ‘마라톤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 거기서 뼈를 묻으라고 주문했습니다.

지금은 ‘선교는 릴레이다’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선교의 마지막 세기가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지난 2천년
교회의 선교를 면면히 이어온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는 과연 누구인가요?

흔히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는 가장 탁월한 주자를 세우는 법입니다.

한민족은, 만약 분산되지 않았더라면, 가장 선교에 맞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민족을 통한 세계선교의 꿈을
1백 년 전부터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드림’에 부합되는 꿈을 갖고, 거기에 쓰임 받는,
그런 성도들이 됩시다!

<남서울은혜교회 초청강사(정민영 선교사)설교 0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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