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배우다 | 창 2:18-25 | 주일예배 | 24.5.5 (youtube.com)
◈결혼을 배우다 창2:18~25
우리 시대의 위기는, 기초들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 기초 중에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이라는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시대가 이렇게 많이 흔들리는가요?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성경적 기준이 없어진 시대에요. Biblical standard
여러분, 결혼이나 가정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 예요.
우리가 먼저 성경을 통하여 결혼이 무엇인가, 가정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창세기 1:1절이 참 중요하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모든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도,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결혼을 인간의 어떤 본성이나 문화에 맡겨서도 안 되는 것이죠.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버리면 모든 게 뒤엉키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설계도 역시 하나님이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결혼 제도,
그 안에 하나님의 원리가 들어 있죠.
창세기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붙들어야 되고,
또 어디에서 잘못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요? 결혼과 가정에 대한 오리지널 텍스트가 창세기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창조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사역은 완전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창조의 사역을 하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보시게 좋았더라' 하셨어요.
그런데 최초로 하나님이 보시기 좋지 못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 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다는 겁니다.
자, 인간 설계의 기본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혼자 사는 것이 미화된 세상에서, 좀 귀를 기울여야 될 말씀입니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 결혼을 꺼리는 문화가 지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결혼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야 되냐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결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보장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다르게 표현하면, 결혼 관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 보다
더 나은 기쁨과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하셨다는 겁니다.
결혼 관계 바깥에서, 어떤 결혼의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거는 굉장히 위험해지는 거죠. 불가능하고요.
▲본문에 보면, 배필을 짓기 전에 아담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십니다.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의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자 동산의 각종 가축 동물들에게 이름을 짓게 했습니다.
이름을 짓는 일은 굉장히 창조 행위죠.
동산을 거닐면서 이름을 짓기 위해서
동물들과 만나고, 동물들과 교감을 하고, 아마 멋진 동물이 가득한 동산이었을 겁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어요.
그게 바로 고독 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고독 했습니다.
그 많은 생물들이 있었지만, 그 동물들과는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이죠.
요즘 현대인들은 애완 동물들을 많이 키우니
반려견을 통하여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 굉장하죠.
어떤 부인은 '반려견이 자기 남편보다 훨씬 낫다'고 그럽니다. 즐거움이 있어요.
그러나 동물이 아무리 즐거움을 준다 해도,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과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 고독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여자를 지으셨어요.
자 '돕는 배필'이라는 이 번역이, 우리에게 오해를 조금 가져다주는 단어 처럼 보입니다.
뭔가 보조적 역할, 여자가 남자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의미로 좀 와닿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돕는다'는 단어는 굉장히 스트롱 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다' 라고 할 때 '도움'이라는 단어와 같은데요.
이 단어는 사실 하나님께 쓰여지는 단어예요.
근데 '돕는 배필'할때, 이 단어를 쓴 겁니다.
그러니까 '돕는 배필'에서 '돕는'이란 말은,
'여자의 역할은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없이는, 아내의 도움 없이는, 남자는 불완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돕는 배필 rfcdrfcd.tistory.com/15976215
그러니까 단순히 남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정도, 빨래, 또는 아이를 길러주는 정도가 아니라,
남성이 남성으로서 온전해 지려고 하면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돕는' 역할을 그만큼 굉장히 강력하게 성경은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그렇게 설계해 놓았다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남편은 아내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요,
아내도 남편이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로 설계가 됐다는 거예요.
인간은 홀로 완전하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자,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구별된다는 거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 하나님의 그 성품과 인격을 인간 안에 불어넣으셨다는 겁니다.
자 그런데 죄로 인하여, 이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때,
남자는 가장 남자다워 지고, 여자는 가장 여자다워 집니다.
그 말은 뭘까요? 남편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야 되고,
아내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디자인이에요.
그리고 이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문화 대명령을 이루는 길입니다.
타락하기 이전에 주신 명령이죠.
남녀가 함께 만나 가정을 이루어 자손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로만 가능한 게 아니고, 여자로만 가능한 게 아니고
남자와 여자의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숫적인 번성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대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창조 - 타락 - 구속 (회복)" 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구속을 통해서 회복이 되면
다시 창조로 돌아가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것이 아브라함의 약속을 통하여 분명해 졌는데
그게 창12:2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랬어요.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성경에서 복이라고 할 때, 그 복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 한국이 지금 인구 감소로 가장 급격하게 붕괴되는 나라로 분류돼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저출산 세계 1위국이에요. 출산율이 지금 0.6으로 떨어졌어요.
결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팽합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가 생각보다 깊습니다.
물론 환경적으로 어려운 요소들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문화적 영향보다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내야 된다는 거죠. 성경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거죠.
가정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아이디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이 놀라운 것이다.. 라는 거죠.
여러분 여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존중히 여기시고, 그 생명을 일으키는 분이죠.
그래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여러분, 성경은 자녀가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태의 열매는 상급' 이라고 말합니다.
이 생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심이, 성경 안에는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으로서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통한 가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도록 만드셨다는 거죠.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러니까 철저히 성경은 일부일처제 입니다.
근데 세상이 타락하고, 악이 가속화 되면서, 생각보다 빨리 가정이 해체가 돼요.
그래서 창4장으로 넘어가면, 벌써 세상이 많이 악해져 있습니다.
창4:19절에,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실라였더라'
죄는 급속하게 가정을 깨뜨립니다. 죄가 결혼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근데 워낙 해져 가는 모습이 창4장에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성경은 철저히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를 통해서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얻도록 디자인 하셨습니다.
결국 죄는 성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하고, 무질서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동성애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용인 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들은 창조의 질서를 깨뜨린다는 거예요.
가정의 제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의 명령에
반항하는 문화라는 거예요.
여러분 동성애를 통해서는 자녀를 출생할 수가 없습니다.
남자와 남자끼리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여자와 여자끼리 결코 생명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기적 사랑만 남는 것이죠.
그것은 육신의 욕심을 따른 것이요, 순리를 벗어난 죄악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것들을 왜곡시켜,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특히 가정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미디어를 통하여, 특히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거죠.
'결혼을 왜 하느냐, 혼자 살아라!'
'괜히 결혼해서 고생하지 마라, 미친 짓이다!'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음성이 아니라
이 시대가 들려주는... 이 세대의 문화가 들려주는 메시지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가정이 바로 세워지려면, 가정의 원리를 성경 속에서 찾아내야 되고,
가정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은 뭐냐? 남자의 위치와 여자의 위치를 올바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면, '남자를 위하여 여자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들었다' 이것은 서로의 우열을 가리는 말이 아니라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습니다.
에베소서 에서는 부부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소개합니다.
아내에게는 복종을 요구하고, 남편에게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분명히 이해할 때, 혼란이 없어요.
'남편에게 복종 하라'는 말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남자들이 기가 많이 죽어 있습니다. '남성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남성 고유의 기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역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할의 혼란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가정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부부의 역할에 문제가 생기면, 자녀 교육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 어머니는 어머니로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성 역할의 혼란'은, 자녀에게로 그대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남성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되고,
이 일을 위해 여성이 도와 주어야 합니다.
여성의 도움 없이는, 남성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남성들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어요.
남성이 단순히 돈을 버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가정에 대한 책임이 더 강조돼야 됩니다.
근데 한국 사회는, 남성들은 돈을 벌어오는 도구로,
그리고 가정의 모든 책임은 아내에게로 넘겨 버리는 이런 상태는
굉장히 역기능적 가정이 되고마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은, 남편들의 역할이 훨씬 더 가정해서 강조 됩니다.
오늘의 부부 관계에서는 마치 사사 시대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로 대장 노릇 하고, 주인 노릇 하려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가정에 있어서 성경의 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강요와 압제와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의미하는 거예요.
머리 됨은 특권이 아니고 책임을 의미하는 겁니다.
가정의 핵심은 부부 관계이고
그 부부 관계 안에 리더십을 누가 발휘해야 되나?
남편이 해야 되고, 아내는 그 남편의 리더십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때 이것이 자녀와의 관계에,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자, 부부 관계 안에는 상호 보완적인 면이 들어 있습니다.
둘 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이기심이 들어설 공간이 없습니다.
만약에 도움을 받지 않겠다거나,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주장하면
함께 불행해지는 겁니다.
한 사람만 불행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함께' 라는 거죠.
그래서 서로를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 돼요.
배우자를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순간, 두 사람 모두가 불행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필요로하고, 서로 유익하고, 서로 만족하는 관계로 가야 됩니다.
일방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깨어지는 배경에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사랑을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거죠. 오늘 시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부부가 경제적 문제나, 성격의 문제로 어려운 게 아니라,
핵심은 사랑인데...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라는 거예요.
신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렵고 어려운 게 사랑하는 일입니다. 잘 안 되는 거죠.
모두가 '자기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이기심의 극복은 어디에서 가능합니까?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철저히 상대를 위해 죽어줄 수 있다면,
십자가의 원리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내가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나의 기쁨을 위해서 상대를 도구와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황금률이 부부 관계 안에도 너무도 중요합니다.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왜 황금율입니까?
내가 남(배우자)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을 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관계는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근데 이 구절은, 세상 사람들은 실천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받지 않았는데, 사랑을 베풀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받아도 줄줄 모르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그를 대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 밖에 없어요.
우리는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배우자)에게 먼저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 중심으로
나의 필요가 아니라,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 일을 할 때
우리의 부부 관계 안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가정은 물론, 인간관계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켜 주시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아담과 같은 사람을, 즉 남자만 짓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여러분 '남자와 여자를 따로 만드셨다'는 거예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거예요. 각기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가정의 행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다르게 지으셨다는 거죠.
여러분이 행복한 과정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너무도 다르지만, (내가 성육신처럼 낮추어서)
그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정 생활입니다.
그렇게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용납 하는 것,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상호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다운 게 뭘까요? 아내의 필요를 채워주는 거죠.
여자의 여자다움은 뭘까요? 여자로서 (남편을 세워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을 계속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둘이 하나가 되었다는 거죠.
둘은 다른데 하나가 되었다는 거예요.
2:24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이란 완전한 연합 입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마치 아교로 완전히 접착을 해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그런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하나되는 결합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중매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
하나님이 결혼을 주도 하셨다는 거예요. 신적 개입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결혼은, 그냥 사람들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니고,
그냥 감정적 끌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이 이끌어 들이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공동운명체, 모든 것이 서로 엮어져 있다, 따로 따로 설명될 수 없다. 분리되어 말할 수 없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함께 평가를 받는다는 거예요.
'나는 잘했는데 넌 문제가 있어!'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각자에게 묻는 게 아니라, 함께 묻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동산에서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 모두에게 심판을 내리 십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아내의 잘못이 나의 잘못이고
남편의 잘못이 내 잘못이에요.
결혼 이후부터는, 분리해서 평가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혼 이후부터는, 내가 남편이나 아내의 흉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문제가 터지면 서로 탓 하기가 바쁜데,
아무리 상대를 탓 해도, 부부는 함께 평가 되는 겁니다.
▲어떤 분은 '내가 어쩌자고 저 인간을 만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혹은 '난 속아서 결혼했다.' 이런 분들 계세요.
속은 게 아니라 결혼은 원래 그런 거예요.
몰랐던 거죠. 그래서 조금씩 배워가는 겁니다.
'속았다' 그러면 안 되죠.
결혼한 이후부터는 내가 몰랐던 것을 조금씩 알아 간다고 얘기해야죠.
결혼한 이후부터는 '내가 당신보다 낫다'고 아무리 소리질러도 소용 없어요.
같이 묶여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같이 평가를 받는다는 거예요.
남편은 60점이고, 아내는 80점... 그런 거 없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이제부터는 해야 하는 것은 결사적으로 상대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입니다.
상대가 불행해지는 데, 내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결혼을 했다면, 무조건 상대편을 높여주어야 됩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관계예요.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으로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거죠.
그래서 같이 살면서 점점 상대를 배워가면서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무조건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고,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나 중심적으로 살던 게 너무 몸에 익숙해 있어요.
요즘은 여러분 문화가, 아이도 하나만 기르니까 이게 (함게 사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자기 몸 하나만 돌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거예요.
함께 살아갈 준비가 전혀 안 된 채.. 결혼하는 거예요.
결혼은 함께 사는 것이거든요.
함께 사는 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물론 여러분 혼자 사는 게 편리하지요.
둘이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훨씬 더 편리해요.
오늘날 얼마나 편리한 문화예요?
원 룸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미디어에서도 한 사람이 혼자 사는 걸 얼마나 미화시켜 버려요?
혼자 사는 게 필요한 건 맞아요.
그러나 하나 놓치는 게 있습니다. 훈련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이... 혼자 살면 인식이 안 됩니다.
같이 살아보면...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게 금방 드러납니다.
부부는, 나눌 수 없는 한 몸이 되었어요.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됨의 중요한 것은, 부부 관계에서의 만족을 함께 얻어가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 만족을 얻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는 거죠.
하나님은 가정 안에서만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어요. 그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배우자를 그러므로 이제 남과 비교해서도 안 되죠.
비교처럼 나쁜 게 없잖아요. 비교야말로 상대를 낙심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자신감을 가정 안에서 불어넣어 줘야 되거든요.
서로 지지해 줘야 되고, 인정해 줘야 되고, 칭찬해 줘야 되고, 격려가 필요해요.
▲여러분, 셀프 이스팀 self-esteem, 즉 자존감의 문제는, 가정 안에서 형성되는 거잖아요.
바깥에서 아무리 유명하고 탁월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도
가정 안에서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인정해 주고, 지지하고, 격려해 주지 않으면
자존감은 한없이 바닥을 치게 돼 있는 거예요.
건강한 가정 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거예요.
아내로 부터, 남편으로 부터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서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될 때, 삶의 의욕이 생깁니다.
가장 훌륭한 남편이고, 소중한 아내로 인정 받을 때... 힘이 나는 거잖아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존귀한 가치,
배우자가 그 가치를 서로 인정해 주고 세워주는...
그 장점을 보는 눈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결합처럼, 부부 관계가 갈수록 깊어져 가는 거죠.
가정 안에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창3: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러분 창2장 마지막에 보면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하였더라'
부부의 관계는 신비로운 관계예요.
그런데 죄를 짓고 나니까, 서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기의 몸을 가리기 시작한 거죠.
이게 종교의 출발이에요.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을 포장 하기 시작한 거예요.
정직한 만남이 불가능해진 거예요. 서로 가리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서로를 바라볼 때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처방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가죽 옷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야 가죽 옷이 만들어지는 거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허물을 덮어 주시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결혼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마술단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어야 가정의 행복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은, 다 역기능적이었어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을
그대로 자녀들에게 흘려 보내고,
자녀들은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준비 안 된 채로 결혼을 하고,
그리고 살아가다 보니까 그 상처가 부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나중에 자라나서 또 준비 안 된 채 결혼을 하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분노와 상처들...
여러분, 내가 아무리 분노를 안 하겠다고 해도, 어느 순간 터져 버려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그 상처가 건드려 진 거거든요.
그 상처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가정에서 온 거예요.
그 누구도... 복음을 경험하지 않았던 우리 한국 땅 안에
그 어떤 가정도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볼 수 없어요.
성경적 프리즘으로 갖다 대면, 모든 가정에
모순과, 상처와, 아픔과, 어려움들로 가득 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아래서 분노하며 살았던 자녀가,
'나는 죽어도 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 아들 안에
그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상처로 떠덕떠덕 붙어서 응어리져서
나중에 보면, 그 아들이 커서 알콜 중독자가 되든지, 아니면 마약 중독자가 되든지,
때로는 도박 중독이 되든지... 다른 중독으로 빠지기 쉬워요.
왜요? 본 게 그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대로 안 하겠다'고 하지만, 받았던 상처가 그대로
자신의 삶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굴곡진 삶을 또 반복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전혀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로맨스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미숙한 존재인가요?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요?
그러므로 날마다 연약하고 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 속에 계속 담금질 될 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부부의 관계에 회복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아무리 봉사를 열심히 해도
그 봉사가 자신의 삶을 커버하는.. 포장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진정한 우리의 신앙의 진면목은, 교회 안에서, 사역 속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부부의 관계 속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거예요.
어느 순간, 내가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 안에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게 진짜란 말이죠.
어느 순간 싸움이 줄어들고, 싸워도 지혜롭게 싸우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기 시작할 때,
정말 용서가 안 되던 게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되고, 품어 지는 역사...
그래서 가정 안에 복음이 살아있으면, 그 복음의 힘이 우리를 회복시킬 때
우리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그냥 싫은 거예요. 도망치고 싶은 거예요.
그 가정의 어려움을 도피해서, 다른 형태로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겉보기는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지 모르지만
가정은 무너져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들의 중심은
우리의 부부 관계 안에 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빚어져 가고, 성숙해져 가고, 변화를 경험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하며 자녀를 키우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한 신자로 자라가게 되고요.
남편으로, 아내로, 부모와 자녀로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 시키기 위해서, 가정 만큼 좋은 곳은 없어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 시키기 원하세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 가기를 원하세요.
그리고 그 가정 속에 감춰져 있는 그 놀라운 신비, 그 비밀,
그 가정 안에서 주신 약속된 그 선물과 축복이 얼마나 큰지,
그 비밀을 알아가는 은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가정이 힘들지만 그 가정을 도피 하지 않고
그 가정 안에 들어가, 그 가정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선물과 그 영광과 약속을
발견해 나가는 것,
그래서 가정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 부요케하시고, 풍성케 하시고
더 하나님의 백성 다워지게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일들이
여러분들의 가정 안에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가정의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 부부가 있다는 거예요.
이 부부의 우선순위 priority 를 놓치지 말라는 거예요.
자녀 교육 염려 하지 마세요.
부부가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
부부의 하나 됨으로 인해서 모든 에너지가 다 나오는 거예요.
그러나 전통적 가정은, 결혼을 하고도 여전히 부모와 연결이 되어져서
부모에게 더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부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자녀가 생길 때,
자녀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부음으로
여성은 아내의 역할 보다, 어머니의 역할이 더 강조됨으로써
부부의 관계가 깨어 질 때... 결국은 가정의 자녀의 문제도 어려워지게 되고,
부부의 관계가 깨어 질 때, 결국은 노부모와의 관계도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온전한 회복, 이게 최우선순위 예요.
온전히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성숙한 부부가 될 때
자녀 교육과, 노부모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아름다운 회복된 관계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이루어 가는 일에 힘쓰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