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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베필

LNCK 2016. 4. 20. 14:53

◈돕는 베필                    창2:18             15.05.17.설교일부 스크랩, 출처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아내는 보조적 역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여자를 '돕는 베필'로 지으셨다고 표현합니다.

'돕는 베필'이란 표현의 히브리어는 에제르입니다.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베필'은 원어에는 없으나, 한글 성경 번역상 부드럽게 만들어 넣은 말이고요.)  


'돕는다' 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오해를 하게 되는데, 보조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남편이 주이고. 아내가 보조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제르 라는 표현에 동일하게 쓰여지는 표현이, 성령이 도우신다 할 때도

에제르 라고 합니다.

성령이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helper.


그런데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 성령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신앙인이 신앙인 답게 살수 있는 그 힘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 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가 신자답게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에제르입니다.

여성을 에제르 라고 한 것, '돕는 베필'이 이런 의미입니다.

보조적인 개념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의 도움 없이는, 남자가 남자다워 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자의 위치를 낮춰보는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조적 수단으로, 뭐 있는 듯 없는 듯, 그게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 이외에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하나됨이 깨져 버렸습니다.

서로의 관계 안에 긴장과 대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책임전가가 일어났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기적인 충돌이 일어났는데, 그 충돌이 뭐냐면 서로 머리가 되려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고 하고,

당연히 여자는 그 지배를 거부하는 긴장과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죄의 지배 아래 있는 가정들을 들여다보면, 일종의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신랑 쪽은 '절대로 잡히지 마라'

신부 쪽은 '신혼 초기가 중요하다.' 양가가 팽팽하게 막후 조정을 하고,

신랑신부 당사자도 권력 투쟁을 합니다.


서로 왕이 되려고 하는 거죠. 왕위 찬탈극이 매일 신혼가정에서 벌어집니다.

일방적으로 머리 됨을 주장하고 순종을 요구하거나,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에베소서 5장의 말씀도,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합니다.


바울사도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이 말씀을 했죠.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되는데, 자꾸 그 구절을 가지고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남자에게 아내가 순종하라' 이 구절은 꼭 남자들만 좋아하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아내들만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의 핵심을 가르치는 엡5:22절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 나오는데,

'피차 서로 복종하라'입니다.


우리 삶의 모델이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셨는지를,

우리가 보면서 남녀의 관계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2장을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신 분이지만,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내려 앉으셔서 섬기는 자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게 크리스천 남녀관계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누가 높냐 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지위를 주장하며, 그에 맞는 대우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행동하셨죠.


우리가 복음을 경험하고 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기꺼이 종이 되셨던 것처럼, 우리의 관계 안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경험하고 나면, 기꺼이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고

기꺼이 남편에게 복종하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군림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없는 가정은, 늘 대립입니다.

늘 갈등하고, 늘 자기를 주장하고, 늘 서로 학대하고, 서로 이용하고, 억압하고,

자기 논리를 관철하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그 가정은 이 사랑의 보금자리도 아니고, 전투장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부부가 둘 다 헬멧(보호장구)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루도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가 상호존중, 우열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등하다는 거죠. 한 몸이랍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한 쪽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고, 존중되어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안에 뿌리 깊은 남녀차별, 남성우월주의 이런 것들을

또 그 우월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해방운동 이런 극한 대립과 갈등이

가정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서,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고, 서로가 기꺼이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 됨의 모습을 실천하는 현장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철저히 상호보완적입니다.


남성이나 여성 모두 서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어요.

인류에 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모든 날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는데,

첫째날, 둘째 날, 셋째 날 .. 모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는데,

단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셨어요. 2:18

 

이 말은 '아담이 외로워보였다'는 말도 되지만,

'불완전했다'는 뜻이 더 많이 들어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일반적으로 한쪽만을 위해 존재하는 관계는 없습니다.

남성이 남성으로서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려고 하면, 여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남성들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현숙한 여인이 있습니다.

남자 홀로는 불완전하듯이, 마찬가지로 여성도 그렇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의 인생이 완성되어져 가는 일에, 남편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 여성으로서, 한 아내, 엄마로서 살아가는 세워져 가는 완성되어져가는 일에 남성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완성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무를 다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보조적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서로 함께 가정을 이루어가고, 함께 인생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가정을 봐도, 모든 것들이 함께 상호보완적입니다.

아이를 혼자 낳을 수 없고, 혼자 기를 수도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려하고,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서로의 강점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여자로 만드시고, 남자를 남자답게 하신 그것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그 가정이 복된 것입니다.


여성의 그 섬세함과 부드러움, 그 여성성, 그 어머니됨의 품

이것들이 가정안에서 얼마나 남편의 남성성과 조화를 이루는지요.


그리고 남성의 강함과 가정을 이끌어주는 리더십이, 그 가정을 안정되게 만듭니다.


이 남자와 여자로 지어진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고,


여러분, 여자는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잖아요.

남자에게 강한 힘, 그것은 여자에게 군림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여자를 보호하라고 주신 힘입니다.


여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연약하고 상처받기가 쉽습니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배려가 그 여자를 평안하게 해 주고,

그 평안함이 그 가정안에서 흘러나올 때

그것이 자녀에게, 남편에게까지 흘러가는 순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남자의 위치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역할을 다해야 됩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적 개념은, 세상과 참 많이 다릅니다.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또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지위와 역할이, 군림의 위치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희생을 하는 자리,

남편의 그 위치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 모두가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의 책임을 남자가 져야 되죠. 물론 아내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책임은 언제나 남자의 몫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모델이십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그 모습에서

우리는 남편의 모습을 찾아야 됩니다.


남성은, 섬김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군림하고 대우받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게 아니라, 섬기는 자로 가정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 사회에서 남자는 돈만 벌어다주는 수단, 도구가 되었습니다.

가정의 모든 일을 여자쪽에 다 맡겨버립니다. 상호보완적이야 하는데요.

요즘 맞벌이 부부가 늘어는데요. 문제는 모두 바깥으로 도니까 가정에 어려움이 많이 생깁니다.


일반적인 행복한 가정의 특징은, 남자가 남자의 역할을, 여자가 여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인 그런 관계가 될 때,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연약함을 보완해주려는 태도가 필요한 거죠.

인류 최초의 죄로 인하여 책임전가하고 비난하는 것, 이것을 가정 속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받고자 하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내 행복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기 보다는, 상대를 기쁘게 하려고 하면,

그 상대가 기뻐하는 그 기쁨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함께 기뻐해지는 역사가일어납니다.

나만 기쁘게 하려고 하고, 나만 행복하게 하려고 하면, 행복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립니다.


여러분 부부로 산다는 것은 사명입니다.

'내 배우자가 나를 만나 행복하다, 인생이 달라졌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때까지 생명을 걸고 섬겨야 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저 원수를 만나 내가 이렇게 되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내가 얼마나 잘났느냐를 증명하려고 상대를 무시한다면, 그건 잘난 게 아니죠.

상대가 잘나져야 내가 잘난 겁니다. 나만 잘났다.. 이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잘남이란, 나와 함께 한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를 통하여 증명되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그가 잘되었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각자의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혼자만 잘난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함께 잘 나야 합니다. 왜냐면 한 몸이니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약점을 다 열거하시면서

'너 그거 요거 좀 고쳐, 요것만 고치면 내가 너를 위하여 죽을 게.'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허물과 연약함이 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복음이 아니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고치려 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구원 못 받습니다.


자 이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 복음을 어디에 실천해야 되느냐.. 우리 가정입니다.

남편과 아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복음!


그런데 어떤 가정은 일평생 서로 상대의 약점과 잘못을 지적하면서, 비난하면서

팽팽하게 '당신 그것 좀 고쳐!' '당신은 그 점만 고치면 돼!'

일평생 서로 고치라는 비난, 이 허물과 약점을 드러내는 전쟁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이 들어가면, 이 복음 안에서 부부는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여주는 용량이 생깁니다.


또 때로는 이기려고 하지 않고, 지는 것입니다.

'여자라고 날마다 지라는 법이 있어?' 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지는 것이 이기는 거고요. 이기는 게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죠.


십자가의 원리가 가정 안에 적용되지 않으면,

부부의 관계는 위험한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거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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