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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과 시대정신

LNCK 2024. 5. 7. 19:0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로잔 운동>

 

개회예배 l 최성은 목사 [제3차 로잔 목회자 콘퍼런스] - YouTube

로잔과 시대정신      
부제 : 무엇이 로잔운동을 시대적으로 이끌어 가는가? 
제3차 로잔 목회자 콘퍼런스 (2023년) 강의 녹취         

 

▲도입
뉴욕 타임즈의 유명한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주1) 
2004년에, 존 스토트 목사님이 살아계실적에,      *2011년 소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 내에서 교황을 한 명 선출 한다면 
그 분은 단연코 존 스토트 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서 굉장히 많이 그 말이 회자가 됐었죠. 

1차 목회자 컨퍼런스 때, 사실 저희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마음을 같이해서 함께 모였습니다. 
그때 적은 숫자로 한 50명 정도 모였던 것 같아요. 
그때 존 스토트 와 로잔에 대해서 제가 강의를 했었고요. 

또 2차 목회자 컨퍼런스 때는, "존 스토트와 복음,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가 발제를 했었습니다.

(그때 워낙 내용이 많아서, 당시에 강의를 다 못 해서 
이번 3차 컨퍼런스 교재에 그 내용을 실었습니다.) 

로잔 언약 Lausanne Covenant 의 입안자이며, 
그리고 로잔 운동에 가장 많은 공헌을 했던 사람이 있다면 존 스토트일 것입니다.

그만큼 존 스토트의 신학이 로잔 운동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도 크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3차 (로잔대회 준비) 목회자 컨퍼런스'가 이제 세 번째를 맞이해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저희들이 나아가야 되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기도를 하면서 
'로잔 운동과 뉴노멀 시대의 목회'라는 주제, 

아무래도 목회자 컨퍼런스 이기 때문에 
우리 목사님들께서 처하신 그런 환경과 상황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로잔과 사회적 상황, 
즉 social involvement 혹은 social responsibility 라는 주제,

다시 말해서, 이 로잔 운동이 추구하는 
'복음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나? 

특별히 코로나 상황에서, '공적 영성'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가지고, 저희들이 2박 3일 동안 함께 고민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로잔 운동이 가지는 시대 정신

▲안중근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려 했던 작가
얼마 전에 김훈 작가가 <하얼빈>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2022
소설 책인데 역사에 바탕을 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책이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이 책은 좀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에 김훈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후에 
일본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일본 법관들이 기록한 문서를 읽어보았는데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제국주의의 약육강식과 악과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답고 강력한 모습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때의 그 마음을 50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제 나이 칠십 세가 되어서야 겨우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또 인터뷰에서 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소설이나 보고서를 다룬 책들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근데 안중근 의사가 옛날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시대에서 온갖 고통과 고민과 고난을 
자기의 온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살아 갔던... 
그러한 젊은이의 모습을 (소설로) 그려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훈 작가는, 소설 <하얼빈>에서 
청년 안중근 의사가, 그 시대를 지배했던... 
그러나 그 시대를 뛰어넘는... 
그 시대의 그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듣고, 
어떻게 자신만의 시대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려했다... 는 것입니다. 

굉장히 그 인터뷰와 글이 제게 감동적이었습니다. 
'시대 정신'이라는 말은 Spirit of Time, Spirit of Age죠.

저는 이 시간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시대 정신'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주2)
   *복음의 시대 정신 https://rfcdrfcd.tistory.com/15981490

▲로잔운동도 시대정신을 담아낸 운동이었다
로잔도 사실 운동인데요. 로잔 운동이라고 그러죠. Lausanne Movement
운동이라는 것은, 그 시대 상황,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어려움과 아픔과, 그 시대의 필요 때문에 생겨난 것이 
운동 movement 이고, 
로잔 무브먼트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역사 속에 일어난 모든 운동은, 즉 무브먼트는 
원인과 이유가 있는 것이고, 
모든 운동은, 그래서 그 시대의 위기와, 아픔을 계승하는 시대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시대 정신도, 시대의 관심을 반영을 합니다. 
그 시대의 아픔의 소리를 반영을 합니다.  *시대정신

그렇기 때문에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고민하다가 일어난 어떤 운동이 
이유와 원인을 계속 인지하고, 그 역사성을 계속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일어난 운동은, 그 정신을 잃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시대 정신을 외면하면 
그 운동은 시스템과 행정은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실체와 영향력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로잔 운동은 
1970년대 라는.. 
혹은 1930년대, 
혹은 더 앞서 에딘버러 대회가 시작된 1910년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모든 시대의 아픔과 시대의 정신, 
그 혼돈과 아픔에 대한 답을 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로잔운동은, '시대의 위기와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죠. 
물론 그 주체는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그러 해야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신본주의적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낸 운동

아까 정말 기도 하시는데, 막 이렇게 제 가슴이 뭉클 하고 뜨겁더라고요.
이번 '4차 서울인천 로잔대회'가 2024년에 열리게 되는데,
2024년이면, 로잔운동이 시작된지 50주년이 됩니다. 희년이죠. 

전 세계의 많은 운동이 30년을 넘긴 운동들이 많지 않습니다. 
혹시 50년, 70년 계속 되었다 할지라도, 
그 초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시스템만 남아 있는 그런 운동들도 많죠. 

◑좌측 우측 양 진영을 아우르는 로잔 운동, 로잔 선언문

 

1974년도에 만들어진 로잔 언약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성경 이후에, 완벽한 언약이 만들어진 게 어디 있겠습니까? No 

로잔 언약, 그 뒤를 이은 마닐라 선언문, 케이프타운 서약 
통칭해서 '로잔 선언문' 들은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게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고, 
소위 말하는 자유 진영에서는 '덜 급진적이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로잔언약의 입안자인 존 스토트도 
살아계실 때 사실 양쪽 진영에서 공격을 많이 받았죠. 

그런 일부의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잔 선언문이, 이제까지 만들어졌던 복음주의 선언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포괄적이고 그리고 가장 균형이 있다' 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노선 속의 보수단체들과 진보단체들이 
사실은 이 로잔 언약을 그들의 비전 선언문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1) 첫째 이유는, 당시에 로잔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복음 주의자' 라고 이렇게 부른다면 
그 시대의 고통과 울음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 라는 것, 

당시 복음주의자들이 사회 상황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다 라는 그 몸부림을 
저희들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74년에 로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표적인 두 기둥은 
-미국의 대중부흥사 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영국의 목회자이면서 신학계를 이끌었던 존 스토트 목사님 

 

그 외에도

-신 복음주의 운동의 기수였던 칼 헨리 목사님 
-복음주의 변증학자인 프란시스 쉐퍼 
-독일 선교학자인 피터 바이엘하우스 
-미국의 선교학자인 랄프 윈터 (이 분은 마닐라 대회부터 부각됨)
이런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 혹은 변혁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이 운동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동시에 로잔대회는, 특별히 사회적 관심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로널드 사이더 같은 신학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보수계를 놀라게 했던 것은 
남미의 (해방)신학자들도 대거 참여를 했습니다. 

-에콰도르의 르네 파딜라    주3)

 우리가 지금 외치고 있는 '통전적 선교' 개념을 이 분이 외치기 시작. holistice mission

-페루의 사무엘 에스코바
-푸에르토리코의 올레스 E. 코스타스 
-인도의 비아니 사무엘 등
이런 쟁쟁한 제삼세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당시에 1974년 로잔 운동에 같이 함께 참여했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땐, 좌측과 우측에 있던 분들이 
서로 치열하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논쟁하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 목사님도, 서로 얼마나 많이 싸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존 스토트는, 빌리 그레이엄의 어떤 미국적인, 또 보수적인, 근본주의적인, 
또 대중적인, 상업주의 적인 면이 좀 가미되어 있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싫어 하셨다고 해요.

이런 면들을 볼 때, 참 다양한 사람들이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들이 복음을 이 사회 가운데서 어떻게 증거 하고, 
사회와 시대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함께 전도해 나갈 수 있을까? ... 이걸 함께 모여서 고민하고 토의했다는 거죠.
그 목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2) 두 번째는, 그래서 그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있어서 
복음의 변함 없는 텍스트인 성경에서, 그 답을, 혜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게 로잔운동의 너무나도 중요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잔 선언문들을 읽어보면, (좌우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저희들이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로잔언약을 읽어보면, 
복음과 즉 텍스트 와 
그리고 사회적인 상황 즉 컨텍스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했었던 흔적이,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태국에서 YG 리더인 오장석 목사님과 또 한 목사님, 젊은 리더들이 대화를 했는데 
젊은이들 자기네들이 지금 읽어봐도 그 처절함이 느껴진대요. 

얼마나 치열하게 거기에 대해서 고민을 했는지... 
그 선언문을 읽어보면, 
지금 젊은 리더들도 그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잔 선언문에는 메타 버스(가상 세계)와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메타 버스와 같은 그런 초현대적인 이야기만 빼고,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현대적 모든 이야기들이 
그 선언문들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습니다. 

피터 바이엘하우스, 랄프 위터, 존 스토트가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서, 문화 선교에 대해서, 
이미 1970년대에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그들은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존 스토트가 1977~1981년까지 Christianity Today에,
<모퉁이돌 그리스도, 존 스토트의 베스트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제했습니다.
이제 '복 있는 사람'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는데요. 

여기에 마지막 결론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이 미치는 영향력' Influence of the Lordship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도전을 합니다. 여기에서도 그 고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는 주시다' 라는 고백에는 신학적 함의 뿐 아니라 윤리적 함의도 있다. 
예수님의 주되심에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제자도 인데, 
진정한 제자도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삶을 그의 권위에 복종 시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론상으로는 늘 그렇게 주장했지만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개인 윤리에만 제한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 우리는 사회 윤리의 큰 도전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분야의 후발 주자여서 따라 잡아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나는 안락사 와 낙태, 노동과 실업, 노사 관계, 인종 문제, 핵무기 공포,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한 글을 썼고... 

(여러분 50년 전에 벌써,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모든 것들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글을 썼는데, 나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서 
'스토트는 사회적 행동을 뒤좇느라 복음 전도를 포기했다' 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더욱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쓰고 있고, 
그 통합의 원리는 예수님의 주되심 이다.」   <모퉁잇돌 그리스도> PP360~361

아마 이 부분(로드십)은, 로잔대회 준비위원장 유목사님이 많이 강조하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트가 복음주의자들에게 사회적 아픔에 대해서 관심을 보일 것을 
계속해서 균형 있게 강력하게 호소를 하면서, 

(사회적 관심은) 로드십 즉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통합적인 자세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금과 빛은 그것이 녹아져 있는 환경을 바꿉니다. 
소금은 박테리아에 의한 부패를 막아주고 빛은 어둠을 몰아 냅니다. 

이 말은 '사회 복음 social gospel'을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Social Involvement, Social Responcibility 와 Social Gospel 은 확연하게 다른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제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 바램은, 
이 말은 '사회 복음'을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해방신학 같은 것

우리는 사회를 완전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개선시킬 수는 있습니다. 

제 바램은, 장차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그런 사회적 의제들에 관심가지고, 참여하자는 것입니다. 

즉 환경 문제, 빈곤을 퇴치하는 노력, 대량 파괴를 가져오는 무기를 폐기하도록 하고, 
만연한 에이즈에 적절하게 대처하며, 
모든 문화권 가운데서 여성과 아동의 인권 human right 을 옹호하는 일과 같은 분야에
세계복음주의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추구하며 개선하는 노력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제가 언제까지나 지나치게 좁은 채로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미 50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놀랍습니다.
당시에는 피부를 와닿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치열하게 이미 고민을 했다는 것입니다.

참 너무나도 중요한 관심들, 
복음에 균형을 잡으려고 치열하게 했었던 그 몸부림들... 
(복음은 원래 전인적, 통합적이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좌측, 또는 우측으로 치우친 것을 교정하려는 그 노력들...)

원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라는 것이 
자유주의자 나 어떤 극단에 치우친 근본주의자 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이게 바로 복음주의자들이 해야 되는 과제와 의제이다!' 라는 이야기였죠. 

▲바로 이것 때문에 1974년도에 로잔언약의 제5항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죠. 

「로잔언약 제5항 :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누구나 존경받고 존중을 받아야 하며 착취 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 해왔고 
때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서로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친다.」

이 선언문(조항) 때문에, 상당히 진보 쪽에 있는 사람들도 
로잔운동에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런 것 때문에 한국에서 사실 '복음과 상황'이라는 단체도 생겨나게 된 것이고 
많은 Left Wing 에 있었던 사람들도, 이 면에 대해서 좋아하고 
그리고 로잔 운동에 대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존 스토트는 다시 균형을 잡습니다. 복음적으로 되돌아가는 거죠. 
계속해서 로잔언약 제5항입니다.

「비록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적 행동이 복음 전도가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 및 정치참여는
둘 다 그리스도인의 의무 임을 확신한다.」

사회적 행동이 복음 전도가 아니며, 
Social Gospel 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해방주의 신학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왜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냐?' 라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복음주의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도전을 받아야 된다 라는 이야기죠. 

「우리는 복음전도 와 사회 및 정치 참여는 둘 다 그리스도 인의 의무 임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 와 사회 및 정치 참여 둘 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순종의 여부에 대해 불가결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메시지는 또한 모든 형태의 소위 억압 및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도 내포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악과 불의가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고발하기를 두려워해서 안 된다. 중략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위 로잔언약 제5항, 즉 <사회적 책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들... 이런 것들이 이어졌으며, 그에 대해 답했습니다. 

▲그래서 1974년 로잔대회가 끝난 다음에 
1975년에 <현대 기독교 선교,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책에서 
"사회적 책임과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존 스토트가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선교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과 사회 참여는 같이 간다' 라는 것이죠.
그걸 holistic mission (통전적 선교) 라고 명칭하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1990년에,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의 책임 Dicisive Issues Facing Christian Today> 
책에서, 그동안 존 스토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즉 윤리, 신앙, 세상 문화, 특히 동성애, 핵, 온난화, 빈곤 등 
복음주의자들이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고, 
복음으로써 말씀으로써 여기에 어떻게 대답을 하고, 대응을 하고, 행동 해야 되는지를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1992년에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The Contemporary Christian> 책에서는 
후기기독교 시대를 사는, 포스트 크리샌덤, 그리고 포스터 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을 하고, 
그리고 복음이 어떻게 시대에 대해서 답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의 복음주의자들이, 존 스토트 뿐만이 아니라 
이런 고민을 가지고 로잔 운동을 끊임없이 이끌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가 시대적 아픔의 소리에 함께 울부짖었던 것처럼, 
존 스토트를 위시한 이런 로잔 운동을 일으켰던 분들이 
당시에 그 시대에 답하고자, 서로가 조금씩 다른 면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안에서 서로가 마음을 모았다' 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좌, 우편이 다같이 존경하는 본 회퍼
여러분 참 하나 신기한 게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 나치 라는 사회악에 대항한 
본 회퍼를 진보나 보수나 다 좋아합니다.  rfcdrfcd.tistory.com/15980964
그리고 다 본 회퍼를 우리의 스승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 본 회퍼를 보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다를 수도 있는데 
보수나 진보나 다 본 회퍼를 좋아합니다. 

본 회퍼 역시 시대 정신을 가지고 
복음으로써 그 시대에 답한 사람 가운데 하나죠. 

비평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존 스토트 나 본 회퍼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따르고, 그 정신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로잔대회를 바라보며

저는 개인적으로, 2024년 로잔대회를 생각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다뤘으면 좋겠다.. 라고 
로잔을 후원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1. 첫째는 현재 당면한 과제들 입니다. 
이거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의제들인제, 앞선 로잔운동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죠. 

-팬데믹 상황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영혼에 대한 치유를 다뤄야 된다.. 고 생각합니다. 

-포스터 팬데믹 이후에 세계 선교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핍박이 극심한 지역에 대한 관심과 기도, 
특히 북한과 이슬람 지역 

-의도적이고 철학적이고 전략적인 반기독교적 공격에 대한 대비,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교육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미안마,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기도와 재정적 지원에 대한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복음의 우선 성과 포괄 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계속해서 로잔 운동을 할 때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복음 전도의 우선성 Primacy of Evangelism 과 궁극성 입니다. 

Primacy (우선성) 라는 단어를 써왔는데, 
최근에는 Ultimacy (궁극성) 라는 단어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의 우선성'이란 이 말을, 처음에 로잔운동에서 썼었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복음의 포괄성'입니다. 
어떻게 이 복음의 우선성과 유일성을 가지고 
포괄적으로 inclusive 하게, 세상의 아픔의 소리에 공감을 하면서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논의해야 된다는 거죠.

▲3. 복음과 사회적 책임 Gospel & Social Responcibility
이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조금 관심이 저하되었다가, 뉴노멀 시대에 다시 한국 교회, 
그리고 전 세계 교회에 중요한 주제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말을 요즘 많이 쓰죠. '공적 영성'이라는 말, 
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뉴노멀 시대에 복음이 균형 있게 제시하는 복음의 관심,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기후 변화와 창조 생태계에 대한 책임과 회복의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선언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행동 하자' 라는 액션 플랜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2) 사회 정의에 대한 노력 
즉 인종 차별, 사회학 구조, 여성과 아동 폭력, 사회적 약자, 빈곤의 문제, 
노동 정의, 경제 윤리, 종교적 핍박에 관한 관심과 참여

3)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 
즉 도시화, 메타 버스와 선교, 문화, 예술, 인종 갈등 
그리고 특별히 이 면을 좀 강조하고 싶습니다.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는 2024년 대한민국에서 아시아 공동 주최로 
로잔대회가 열리는 만큼 

 

한반도에 대한 문제들, 

북한의 굶주림의 문제들, 인권에 관한 문제들, 통일에 관한 문제들, 
북한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구조악의 문제들, 
그리고 중국의 핍박 받는 그리스도 인에 관한 문제도 
저희들은 특별히 2024년도 로잔운동의 희년을 맞이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책임감 있게 세계 교회들에게, 우리가 이야기해야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로잔 운동이 강조했던 많은 말들이 있지만, 
특별히 세 단어로 요.약해 본다면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복음/ 교회/ 세상 

이 세 가지 단어를 가지고 
-단순함 Simplicity 
-거룩함 Holiness
-겸손함 Humility
의 덕목을 가지고, 이 세 가지를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 복음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 
'어떻게 복음을 살아낼 것인가?' - 급진적 제자도

존 스토트 는 마지막으로 '급진적 제자도'를 말했습니다. 
원래 책 제목이 <Radical Discipleship> 이죠.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복음을 제자도를 가지고 살아낼 것인가?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배경을 한 번만 조금 더 다시 훑어보고 마치려고 합니다. 

1966년 4월에 시카고 휘튼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습니다. 
The Congress on the Church's Worldwide Mission
근데 이 대회를 평가할 때 '보수적인 단체들이 모였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이 대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르침과 달리 
세상의 고난과 아픔에 대해서 복음주의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라고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원래 처음에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성경적 원리들을, 인종 차별, 전쟁, 인구 폭발, 가난, 가정 붕괴, 사회 혁명 및 공산주의와 
같은 문제들에 적용하지 못 했음을, 
복음주의자들이 고백하고,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전 세계 인종, 평등, 인간 자유, 및 모든 형태의 사회 정의를 위해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고 싸울 것을 촉구 했다고 합니다. 

이게 선언문 초안에는 없었는데, 이 대회 중에 모여서 같이 기도하다가 
회개하고 마지막에 이것을 다시 만들어서 추가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나가셨던 거죠. 
시대 정신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열린 1966년 베를린 세계전도대회에 
The World Congress on Evangelism
조종남 박사님과 김활란 박사님 등 한국분 일곱 명이 참여하시게 되죠. 

이 베를린 대회에서도 휘튼 대회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고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이 1968년에 제4차 세계교회 협의회 WCC 웁살라 대회에 
존 스토트가 참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임에 참석한 존 스토트가 이런 회고를 합니다. 
"육신적인 가난이나 기아에 대해서, 염려와 외침은 들렸지만, 
복음화 되지 못한 수백만의 영적 기아에 대해서 염려하거나
주를 거부하고 회개하고 않았던 도성을 향해 우셨던 
우리 주님의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균형을 잡는 이야기죠. WCC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육신적인 가난, 기아, 궁핍, 죽음, 사회 구조악.. 여기에 대한 염려, 
이거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해야 된다.. 라고 스토트는 계속 이야기했는데... 

웁살라 대회에 가 보니, 그런 논의는 많이 하는데 
그러나 '영적으로 회개를 하지 않고 죽어 갔던 그 도성을 향해서 우셨던 
주님의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몇 번의 과정을 거쳐서 1974년 로잔 운동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눅19:41~42절 말씀은 아주 단순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영적으로 다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심장한 말씀을 내 놓으셨습니다. 

'너희가 평화에 관한 소식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샬롬에 관한 소식...  '샬롬'이 뭐냐?
우리는 이것을 진영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 해석에 대한 것들은, 다 목사님들이고, 선교 신학자 이시니까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시고 우셨던 그 마음, 
하나님의 아들 이시지만,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라는 이 뜻은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아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한계성, 
인간의 모든 그러한 사회 구조악, 죄로 말미암아 발생한 창조 질서에 어긋남, 파괴, 
이런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보시고, 
하나님으로서 이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이 마음이야 말로.. 우리 기독교인들, 복음주의자들이 가져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은 널려져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상업적으로! 
사실 요즘 세계 주요 기업들이 홍보, 광고를 만드는 것을 유심히 제가 보았습니다. 

과거에는 자기네들의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선전하는데 주력을 기울였는데, 
요즘 주요 기업들은, TV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대놓고 광고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북극곰이 기후 환경 문제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프리카의 기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맨 끝에 그들의 기업 로고를 딱 하나 붙이고 광고가 끝납니다

자기들 기업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겠다 라는 것이죠. 
기업은 철저하게 이윤을 남기는 집단입니다. 

그들도 세상의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려고, 
물론 기업의 목적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것(시대 정신, 사회 분위기)을 캐치 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팬데믹 상황에서 계속 공영방송에서 '피가 모자란다'
우리가 계속 듣는데 
사실 그 일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팬데믹 상황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피로에 찌들어 있는데 
'대한민국의 피로 회복,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 시키자!' 
그래서 저희들이 헌혈 운동을 교회들 마다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헌혈운동을 하나의 바스켓에 담는 일이 필요하고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 뭇매를 맞고, 이미지가 무너지고, 
그래서 그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뭐라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되는데, 

돈으로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돈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 인들로서
우리가 연합해서 할 수 있다 라는 것... 

이 얘기를 왜 말씀 드렸냐면요. 이거를 이단들이 캐치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교회가 헌혈을 1만 명 했다. 2만 명 했다'
그러면 신천지에서 '3만 명 했다' 하고 나올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이단)도 캐치를 했어요. 
그래서 매스컴에서 계속 돈 주고 광고하면서 '우리도 3만 명 했다. 4만 명 했다'
하는 광고가 나가지 않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연합을 해서 대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잔 운동, 이렇게 좌측 진영, 우측 진영,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교회 대표들이 
4천 명, 5천 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엄청난 물질과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모이는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시대의 아픔에 공감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타협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우선성 
The Primacy of Evangelism, The Center of Gospel News, 
Having a Mind of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함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해야 되는 통전적 복음과 통전적 선교,

이것이 어떤 시대에 따른 방향이 아니라, 
원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성을 보시고 우셨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대마다 다른 유행이 아니라 
복음은 변질 되지 않지만, 복음을 담아내는 그 그릇으로  
우리가 변화 되어야 로잔 운동이, 
특별히 전 세계를 향하여 영향력이 있고, 

그리고 우리 한반도에서 로잔 운동이 열릴 때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목회자들과 우리 선교사님들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1974년 로잔의 주제는 Let the Earth hear His Voice 
'온 땅이 그 분의 복음을 듣게 하라'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 외쳤던 주제는
Proclaim Christ until he comes :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모든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 하자'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의 주제는
God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세상과 자신을 화목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이렇게 조금씩 의제가 변화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세상, 복음 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이것을 회복하고,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그런 2024 로잔대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1)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세컨 마운틴> 이라는 그 책을 쓴 바 있다.

 

주2) '시대정신'이라고 해서
이게 뭐 '헤겔의 시대 정신' 혹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시대 정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3) 르네 파딜라 *https://www.newspower.co.kr/49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