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222140017730
◈성소의 분향단 출30:1~10, 시141:2 2015.07.05 떡상, 등대
서론
성막에는 두 가지 종류의 단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이고,
둘째는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입니다.
번제단과 분향단 모두 ‘제단’(Altar)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두 제단은 모두 싯딤나무로 기본골격을 만들고 금속으로 입혔습니다.
번제단은 놋으로, 분향단은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래서 구분하기 위해
번제단은 ‘놋단’(Brazen Altar)이라고도 하고,
분향단은 ‘금단’(Golden Altar)이라고도 합니다.
두 제단의 용도는 둘 다 뭔가를 태운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번제단은 짐승을 태워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고,
분향단은 향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출25장에 보면 성막이 지성소와 성소로 나눠져 있고,
성소 안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는데,
동편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북쪽)에 떡상, 왼쪽(남쪽)에 순금등대,
그리고 정면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 앞으로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출25장에는 떡상과 순금등대에 관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고,
분향단에 관한 기록은 (출25장에는 없고) 출30장에서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기자는 왜 한 장에 성소 안에 있는 세 가지 기구들에 관한 기록을
3개를 한꺼번에 남겨주지 않고, 따로 떼어 놓았을까요? *출25장과, 출30장에 따로 뗌
아더 핑크(A.W.Pink)라는 학자는 이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1)
오늘은 성소의 분향단에 관해서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 분향단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다른 성소 기구의 경우에는 그 재료와 구조에 대해 먼저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출애굽기 30장에는 분향단을 만들라고 하신 목적이 먼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30:1a절에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향단은 향을 태우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향을 태운다”는 것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요?
▲첫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기도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7: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간구하고 계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요한일서 2:1절에도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사람이 비록 죄를 지었지만 저 사람은 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저 사람의 죗값을 갚은 것을 봐서 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변호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분향은 일반 제사장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30:7절에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분향의 1차적인 주체가 대제사장 아론이라는 사실을 못 박아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향을 사른다는 것은 1차적으로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향이 대제사장만의 임무는 아니었습니다. 일반 제사장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출30:9절에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분향단은 오직 분향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명령이죠.
사실 분향단은 그 생김새가 번제단과 유사하여, 제사용으로 잘못 사용할 소지가 있었죠.
여기서는 주체가 ‘너희’라는 복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제사장들도 분향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도 다른 불로 분향을 했다가 불이 나와 타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반 제사장들이 향을 사른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141편 2절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향과 기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눅1:9~10절에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여기 등장하는 제사장은 사가랴입니다. 그가 분향할 때 백성들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분향과 기도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5:8절에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향을 태우는 것이 성도의 기도를 예표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향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향은 하나님을 향한 찬미입니다.
히13: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분향단을 만들라고 하신 이유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성도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훈련되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실제로 기도를 실천하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테니스를 칠 때 팔의 힘을 빼고 공을 맞춰 상대방 코트 안에 떨어지도록 하는 것을
누가 알지 못합니까? 다 알 것입니다.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라. 기도에는 찬양, 고백, 감사, 간구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테니스도 배워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론과 실제는 전혀 다릅니다. 팔에 힘을 빼서 능숙하게 공을 받아 넘기는데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습을 하면 달라진다”(Practice makes the difference).
저는 교수생활을 하면서 테니스의 서비스 넣는 법을 많이 연습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어깨를 봤는데 피가 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피가 나는 줄도 몰랐는데, 거울을 보니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습하고 나니 공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로 이론적인 기도를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를 하고 계속 훈련을 해야 기도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라는 것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나올 계획이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러니 기도를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금요철야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기도 훈련을 받겠습니까?
▲출30:7~8절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아침에 순금등대를 정리할 때 향을 피우고,
저녁에 등불을 켤 때도 향을 피우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조석(朝夕)으로 분향하듯이 아침과 저녁에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분향단의 목적은 향을 올리는 것이지만
향을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도들에게 기도를 실천하도록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분향은 예표이고, 실체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분향단의 재료와 구조는 무엇인가?
분향단은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금을 입혔습니다.
그래서 ‘금단’이라고도 불립니다.
나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분향할 때는, 나무가 보이지 않고 겉면의 금만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신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3:1~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 기도를 능히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생각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분향단의 크기는 번제단에 비하면 매우 작습니다.
뜰에 있는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의미하고, 가로 세로가 5규빗에 높이가 3규빗입니다.
그런데 분향단은 성소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을 의미하며,
가로 세로 1규빗에 높이가 2규빗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십자가)을 예표하는 것이고,
분향단은 그리스도의 천상사역(중보기도)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둘 다 altar이지만, 다릅니다)
분향단이 정사각형으로 된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기도가
동서남북 온 세상에 흩어진 하나님의 모든 택자들에게 유효적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요17:9절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분향단에는 뿔을 만들라’고 했습니다만 (아래 사진)
뿔의 개수나 위치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30:3
그러나 번제단의 뿔이 네 개였고, 네 모퉁이에 있었음을 볼 때,
분향단도 그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뿔은 능력과 왕권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 7~8장에 언급되고 있는 뿔은 모두 왕권을 가리킵니다.
또 삼하22:3절에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그리고 눅1:69절에도 침례요한의 부친인 제사장 사가랴가 예언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는
이처럼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향단 윗부분에는 왕관처럼 뾰족하게 나와 있는 턱이 있었습니다.
흠정역(KJV)에는 이를 ‘Crown of Gold’(금관)라고 번역했습니다.
금을 입혔으니 ‘금테’라고도 합니다.
30:3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 면과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를지며’
‘너는 그 (분향)단의 윗면과 네 옆면과 뿔을 순금으로 입히고, 그 가장자리에 금 테를 둘러라’(새번역)
"금테"의 이미지는 제단의 장엄한 성격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것은 분향단 위에 있는 향로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난간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땅에 많이 떨어집니다. 기도가 위로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매일 학교에서 꼴찌를 하는 아이를 하루아침에 서울대 합격시켜 달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기도는 하늘에 상달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연세가 100세 된 노인을 200세까지 살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떨어짐이 없습니다.
▲눅22:31~32절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베드로를 집중공격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수난예고를 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을 ‘야단’(Rebuke)쳤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주제파악이 안 됩니다.
어디서 예수님을 가르치고 야단을 칩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저주하며 부인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저주한 것같이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내가 저 사람을 알면 내 성을 간다”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저주했다는 표현입니다.
(진짜 악의적으로 저주한 게 아닙니다. '제기랄' 정도의 저주)
그러니까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개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나 베드로의 죄나 오십보백보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지옥에 떨어졌고, 베드로는 수석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멸망당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해 중보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항하고
고라의 반역에 동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염병이 시작되어 14,700명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아론을 향해 말합니다. 민수기 16장 46~48절에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대제사장 아론의 분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염병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성도의 죄로 인한 징벌도 그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중보기도만 능력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이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도 모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변화를 일으킵니다”(Prayer makes difference).
▲그러면 분향할 때 사용하는 ‘향로’(Censer)는 어떻게 만들까요?
향로는 출27:3절에 보면 ‘불 옮기는 그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위 사진, 분향단 위)
성막 마당에 있는 번제단에 떨어진 불을 담아서, 성소의 분향단으로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놋그릇입니다. 그런데 성소의 모든 것이 금인데, 향로만 놋이니까
후일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이것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금향로’라고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는 놋입니다.
레16:11~19절에 보면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년에 단 하루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1) 지성소로 처음 들어갈 때는, 향로에 향을 가득 채워 불을 피운 후,
지성소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향(연기)이 지성소 안에 가득해서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대제사장과 직면하지 않을 정도로 자욱해 지면
2) 대제사장은 자기 죄를 위해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두 번째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피를 속죄소 위에 뿌립니다.
3) 다시 나와 세 번째로 들어갈 때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4) 그리고 네 번째로 들어가서 향로를 가지고 나와, 분향단 위에 다시 올려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이 되면 최소한 네 번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향단은 운반이 용이하도록 양편에 금고리를 두 개씩 달았고
거기에 채를 꿰어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이동하였습니다.
◑3. 분향단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러면 분향단을 두는 위치는 어디일까요?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분향단은 지성소 휘장 앞 성소의 정면에 위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까?
이단들이 분향단의 위치를 가지고,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히9:4절에 보면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제사장 아론이 지성소에 매일 들어갔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4절에 금향로가 지성소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가 분향단이 지성소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금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속죄일에는 지성소 안에 금향로도 있고, 언약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분향단이 지성소가 아닌 성소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30장과 히9장의 내용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4. 분향단의 향과 불은 어디서 오는가?
분향단의 불은 번제단의 불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불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완성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번제단에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도 번제단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번제단에 있는 그 불만 가지고 와서 향을 피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불로 분향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레10장에 보면, 아론의 네 아들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이 나와서 타 죽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분향할 때 번제단의 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속죄함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기도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은 속죄의 장소이고, 분향단은 기도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분향단의 향은 어떻게 만들까요?
향을 만드는 방법은 출30:34~38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7~38절에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향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만들어 분향해야 하고,
분향단 위에서는 분향만 해야지
번제나 소제와 같은 다른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구약시대의 분향은 예표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이고,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중보기도 하시는 것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일이고,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으로 분향한 것처럼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이번 여름산상축복성회로 다시 뜨겁게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은혜가 옵니다. 기도하면 재앙이 물러가고,
순금등대의 빛을 받은 것처럼 성령의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면 염병도 떠나가게 되며, 죄 사함도 받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향로마다 기도의 향이 가득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첫째, 떡상이나 순금등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은혜를 예표하는 것이고,
분향단은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를 예표하기 때문에
방향성에 있어서 분향단은 다른 기구와 구별된다.
둘째, 출애굽기 28~29장에 제사장의 의복과 위임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제사장이 분향할 분향단은 위임식이 끝난 다음에 기록되는 것이 논리적인 전개이다.
셋째, 떡상이나 순금등대는 그리스도 자신, 또는 행위를 예표하지만
분향단은 그리스도의 행위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활동까지도 예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성령님이 이런 순서로 계시하기를 원하셨다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